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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6400시대’ 은행 위협하는 증권사, 브로커리지 호황은 어디까지 갈까
입력 : 2026.04.24 11: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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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지수가 최고점을 찍은 21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개미가 돌아오자 증권사가 은행보다 빨리 돈을 벌기 시작했다.”
올해 1분기 여의도 금융가를 설명하는 가장 직관적인 문장이다.
은행은 여전히 거대한 이자수익을 기반으로 금융권의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성장률만 놓고 보면 분위기는 달라졌다. 증권사 실적은 주가 상승, 거래대금 폭증, 개인투자자 귀환, 고액자산가 자금 이동이 한꺼번에 겹치며 은행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뛰고 있다.
NH투자증권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NH투자증권의 1분기 순이익은 475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8.5% 늘었고, 영업이익도 6367억원으로 120.3% 증가했다. 연환산 자기자본이익률은 19.6%까지 올라섰다.
거래대금이 이익을 만든다증권사의 이익 구조는 은행과 다르다. 은행은 예대마진과 대출자산이 실적의 중심이다.
금리, 대손비용, 규제 환경에 따라 이익이 완만하게 움직인다. 반면 증권사는 시장이 뜨거워질 때 이익 탄성이 훨씬 크다.
투자자들이 사고팔수록 위탁매매 수수료가 늘고, 주가가 오르면 고객 자산이 불어나며, 위험 선호가 회복되면 펀드·랩·ELS·채권·퇴직연금 같은 금융상품 판매도 함께 살아난다.
이번 1분기에는 그 모든 조건이 동시에 맞아떨어졌다. NH투자증권의 1분기 브로커리지 수수료수지는 3495억원으로 전분기보다 57.4% 증가했다.
국내 주식 일평균 거래대금은 66조8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80.5% 급증했고, NH투자증권의 국내주식 수수료수익은 3097억원을 기록했다. 시장점유율도 10.7%로 올라섰다.
단순히 주가가 오른 것이 아니라, 거래 빈도와 고객 자산, 약정금액이 함께 커진 것이다.
한국예탁결제원 통계도 같은 흐름을 뒷받침한다.
1분기 국내 증권시장 결제대금은 일평균 35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6% 증가했고, 장내외 주식결제대금은 6조5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46.2% 늘었다.
주식시장이 단순한 가격 상승장을 넘어 ‘거래량의 장세’로 바뀌었다는 의미다.
은행보다 작지만, 은행보다 빠르다물론 절대 규모만 보면 은행은 여전히 강하다.
KB금융의 1분기 순이익은 1조8924억원, 신한금융의 순이익은 1조6226억원이다. 은행 계열사의 안정적인 이자이익은 여전히 금융지주 실적의 바닥을 받친다.
그러나 이번 분기의 변화는 ‘누가 더 많이 벌었나’보다 ‘누가 더 빠르게 성장했나’에 있다.
KB국민은행의 1분기 순이익은 1조1010억원으로 전년 대비 7.3% 증가했다.
반면 KB증권의 순이익은 3478억원으로 93.3% 급증했다. 신한은행은 1조1613억원으로 2.7% 증가했지만, 신한투자증권은 2884억원으로 167.4% 뛰었다.
은행이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 동안 증권사는 엘리베이터를 탄 셈이다.
이 변화는 금융지주 내부 권력지도에도 영향을 준다.
저금리·고령화·대출규제·건전성 부담이 커질수록 은행의 이자이익만으로 고성장을 만들기는 어렵다. 반면 증권사는 자본시장 활황기마다 그룹의 이익 변동성을 끌어올리는 성장 엔진이 된다.
KB금융은 이번 1분기 비은행 부문 비중이 43%까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은행이 벌고 증권이 보조했다면, 지금은 증권이 금융지주의 실적 서프라이즈를 만드는 국면이다.
KB금융 관계자는 1분기 실적 발표에서 “그룹 이익에서 비은행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43%까지 증가했다”고 밝혔다.
슈퍼사이클의 배경은 ‘개미’와 ‘플랫폼’거래대금 슈퍼사이클의 중심에는 개인투자자가 있다.
팬데믹 이후 개인투자자는 한 차례 거대한 시장 학습을 거쳤다.
과거의 개인투자자가 단기 매매와 테마주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해외주식, ETF, 채권, 퇴직연금, 공모주, 대체투자까지 투자 범위를 넓혔다.
증권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은 단순 주문 창구가 아니라 개인의 자산관리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이 때문에 거래대금 증가는 브로커리지 수수료에서 끝나지 않는다.
NH투자증권의 금융상품판매 수수료수익은 491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87.7% 늘었다.
주식시장이 뜨거워지면 투자자는 계좌에 머물던 현금을 주식으로 옮기고, 주식 평가이익이 생기면 다시 펀드와 랩, 채권, 연금 상품으로 자산을 재배분한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매매 수수료→자산관리 수수료→운용·IB 수익’으로 이어지는 복합 수익 구조가 작동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2026년 증권업 전망에서 높은 투자심리와 AI·반도체 등 첨단산업 성장, 생산적 금융 정책이 증권업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봤다.
특히 위탁매매 자금 유입 국면에서 증권사들이 단기 이벤트나 수수료 경쟁에만 기대기보다 플랫폼 편의성, 투자정보 제공, AI 기반 의사결정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증권사 전성시대는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도 거래량과 변동성은 금융회사 실적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로이터는 나스닥의 1분기 실적을 전하며 중동 지역 긴장과 거시 불확실성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졌고,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면서 거래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나스닥의 시장서비스 매출은 미국 현물주식과 옵션 거래량 증가에 힘입어 13% 증가했다.
미국 온라인 브로커 찰스슈왑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회사가 공개한 2026년 1분기 자료에 따르면 고객 일평균 거래는 1023만2000건으로 전년 대비 39% 증가했다.
한국의 개인투자자 귀환과 미국의 리테일 거래 확대는 서로 다른 시장에서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투자자는 더 자주 거래하고, 더 다양한 자산에 접근하며, 금융회사의 수익원은 예금과 대출에서 거래와 자산관리로 넓어지고 있다.
진짜 승부는 거래대금 이후다다만 증권사 호황을 무조건 낙관하기는 어렵다.
거래대금은 강력한 실적 촉매지만 가장 변덕스러운 변수이기도 하다. 시장이 조정을 받거나 변동성이 줄어들면 수수료 수익은 빠르게 둔화될 수 있다.
특히 브로커리지 의존도가 높은 증권사는 거래대금이 줄어드는 순간 실적 탄성이 반대로 작동한다. ‘슈퍼사이클’은 기회이지만, 동시에 다음 하강기를 준비해야 하는 신호다.
그래서 이번 호황의 본질은 단기 실적보다 구조 전환에 있다. 증권사는 돌아온 개인투자자를 일회성 고객이 아니라 장기 자산관리 고객으로 붙잡아야 한다.
은행이 예금과 대출을 통해 고객의 생활금융을 장악했다면, 증권사는 투자와 연금, 퇴직자산, 글로벌 자산 배분을 통해 고객의 미래금융을 장악해야 한다. 거래대금이 커진 지금이 바로 그 전환점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리스크, 금리 변동, 자기매매 손익 변동성, 수수료 인하 경쟁은 여전히 부담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으로 돈이 이동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은행의 시대가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금융권의 성장 중심이 은행 창구에서 증권 계좌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2026년 1분기 증권사 실적은 그 변화를 숫자로 증명했다. 개미가 돌아오자, 여의도의 돈 버는 속도가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