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열의 스테이블코인 돌아보기 ⑦]원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거대 파도 자산가는 ‘부의 선점’을 어떻게 할까?

    입력 : 2026.04.23 17:28:26

  • 금융의 역사는 언제나 기술이 제도를 앞서가고, 제도가 그 뒤를 추격하며 신뢰의 틀을 완성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우리는 이미 스테이블코인이 해외송금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국경이라는 장벽을 3분 내외의 짧은 시간과 파격적인 수수료로 허무는 혁신을 목격했다. 불과 몇 해 전만해도 은행 창구에서 수일이 소요되던 송금이 이제는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해결되는 시대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이면에는 자금세탁방지(AML: Anti-Money Laun dering)시스템을 회피하는 통로로 악용될 수 있는 위험과 규제의 사각지대라는 그림자가 늘 공존해왔다. 이제 그 논의의 중심이 달러를 넘어 ‘원화’로 옮겨오고 있다.

    최근 여당과 금융위원회가 추진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2단계 입법)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바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제도권 편입이다. 특히 은행이 50%+1주의 지분을 갖는 컨소시엄 구성과 디지털자산거래소의 참여 비율을 15~20%로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이 가시화되면서 시장은 이달 중 공개될 여당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도화의 명분과 법조·학계의 거센 비판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은행 중심 컨소시엄’ 모델은 철저하게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과거 테라 붕괴와 FTX(Futures Exchange) 파산 사태를 통해 준비금의 불투명성과 거버넌스 실패가 초래하는 위험을 뼈아프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발행 주체를 은행권으로 묶어 엄격한 준비금 공시와 감독을 요구함으로써 시장 실패의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는 EU의 MiCA(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나 미국의 GENIUS Act가 지향하는 ‘투명성의 제도화’와 그 궤를 같이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히 가치를 고정하는 기술이 아니라, 투명한 준비금과 독립적 검증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거버넌스의 문제라는 것이 당국의 확고한 시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성에 대해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디지털자산거래소의 지분을 15~20%로 제한하는 규제안에 대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는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분 제한이 지난 수년간 민간 혁신을 주도하며 기술적 노하우를 쌓아온 가상자산 사업자들의 창의성을 억누르고, 결과적으로 기존 금융권의 독점적 기득권만 강화하는 ‘역행적 규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가진 거래소의 역할을 단순 주주 수준으로 축소할 경우, 시스템 효율성이 떨어지고 글로벌 디지털 금융 경쟁에서 뒤처지는 막대한 기회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대, 관련 산업 투자 전략 정책적 격돌이 거세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었을 때 파급력이 막강하다는 뜻이다. 자산가들은 단순히 스테이블코인을 개인 포트폴리오의 자산 배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이 거대한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고 운영할 ‘관련 회사’들에 대한 지분 투자나 전략적 접근을 통해 부의 선점을 고민해야 한다.

    첫째, 컨소시엄의 중심축이 될 대형 은행주의 재평가다. 정부안대로 ‘50%+1주’의 지배구조가 확정된다면, 발행사와 준비금 관리 기관으로서 은행의 지위는 독보적으로 강화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대마진 중심의 전통적 수익 구조를 넘어, 디지털 자산 수탁(Custody) 및 발행 수수료라는 새로운 비이자 수익원을 대규모로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둘째, 신뢰의 기반을 제공하는 AML(Anti-Money Laundering) 기술 보유 회사에 대한 주목이다. 지분 제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운영 노하우를 가진 기업들의 기술적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특히 트래블룰 (Travel Rule) 대응 솔루션과 AI 기반 이상거래 탐지(FDS) 기술은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에 안착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인프라다. 이러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금융권 컨소시엄에 기술 파트너로 합류할 상장사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대의 실질적인 수혜주로 부상할 것이다.

    셋째, 지불 결제(PG) 및 핀테크 회사의 변신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진정한 파괴력은 투자 수단을 넘어 실생활 결제 영역에서 나타난다. 이미 글로벌 결제 거인이 스테이블코인을 결제망에 이식하고 있듯이, 국내에서도 실물 결제 혁신을 주도할 기업들의 가치가 재평가될 것이다. 스마트폰만으로 결제 대금을 실시간 처리하고, 복잡한 환전 절차 없이 전 세계 어디서든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기존의 무거운 결제 구조는 획기적으로 단순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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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회사 투자 시 고려 및 주의할 점

    거대한 기회 뒤에는 반드시 정교한 검증이 따라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 참여하는 회사에 투자할 때는 다음의 요건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우선 발행사의 준비금 운용 방식이 얼마나 투명하고 안정적인지 확인해야 한다. 준비금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객관적 증명과 더불어, 위기 시 즉각적인 현금화가 가능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는지가 투자 판단의 첫 번째 기준이다. 준비금의 부실은 단순히 해당 코인의 가치 하락을 넘어 파트너사 전체의 연쇄 위기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당 기업의 규제 적응력과 거버넌스 수준을 파악해야한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술을 넘어 법적 정합성의 문제다. 국내 특정금융정보법은 물론, 수취 국가의 규제와도 일치하는 컴플라이언스 역량을 갖추었는지, 이용자의 고객확인제도(KYC: Know Your Customer) 시스템이 얼마나 견고한지가 지속 가능성을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보안 사고 대응 능력이다. 24시간 거래되는 디지털 자산의 특성상 해킹이나 시스템 오류는 치명적이다.

    정지열 한양대 교수
    한국자금세탁방지연구소 소장이자 한양대학교 겸임 교수로, 자금세탁방지(AML)와 금융범죄
    예방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학문적 연구와 함께 금융당국, 국제기구, 민간 금융기관 등에 자문을 하며 제도 개선과 정책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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