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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인문학 산책] 평범한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입력 : 2026.04.16 18: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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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2001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시작된다. 공사 현장 옆 쓰레기 컨테이너에서 한 역사가가 우연히 한 무더기 노트를 발견한다. 고급 양장 노트에서 싸구려 연습용 노트패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트였다. 생산 시기도, 제본 형태도, 종이 질도 모두 달랐다. 그러나 그 내용은 같았다. 누군가의 일기였다. 모두 148권인 이 노트들은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50년간 쓰였다.
약 1만 5000쪽, 500만 단어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일상은 무작정 흘러가 망각의 강물 속으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 습관적 반복은 우리 삶의 든든한 바탕을 이루지만,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다. 시간의 침습을 받으면 가차 없이 버려져 흔적조차 없어질 뿐이다. 그러나 모든 순간이 덧없는 건 아니다. 그 안에도 감각을 자극하고, 정서를 끌어내며, 정신을 사로잡는 일이 무한히 일어난다. 문제는 ‘붙잡는 힘’이다. 발터 벤야민은 말했다. “과거의 이미지는 획 지나간다. 과거는 인식 가능한 순간에 인식되지 않으면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사라지는 섬광 같은 이미지로서만 붙잡을 수 있다.”
사람들 대다수는 찰나에만 감탄할 뿐이다. 잠시 눈 돌리고 귀담았다, 무심하고 무표정하게 제자리로 돌아온다. 자기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어떤 결정적 한순간이 지금 막 지나갔음을 모른 채 그냥 살아간다. 그러나 인생이란 주의를 다해서 붙잡은 순간들의 모음집이다. 단 한 차례라도 신경 써 주목하고, 정신을 기울여 되새겼던 순간들의 집합이다. 강물의 반짝임은 순식간이지만, 기억의 회로 속에선 영원히 빛난다. 일기란 단지 삶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흩어져 사라질 생의 순간들을 불멸의 아카이브에 접지하는 일이다.
쓰레기 컨테이너에서 발견된 일기에는 온갖 시시콜콜한 일들이 적혀 있다. 거기엔 “자기 인생을 기록하려는 한 사람의 필사적인 몸부림”이 담겨 있었다. 집으로 일기를 가져온 역사학자는 이 일기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평생 쓴 일기가 왜 쓰레기장에 버려졌는지 알아내려 애쓴다. 그러나 실패한다. 일기엔 화자의 주의를 끈 일상의 사소한 일들은 숱하게 적혀 있었으나, 정작 신상 정보는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일기의 특성이기도 하다. 일기에 이름, 주소 등 자기에 대해 쓰는 사람은 없다. 당연한 일상은 아무런 주목할 가치가 없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그저 살아 있는 ‘나’일 뿐이다. 그러다가 죽고, 쓰레기장에 던져진다.” 이는 삶의 은유이기도 하다. 살았을 땐 그토록 당연하고 생생하던 일이 한순간 무의미해져서 공허 속에 던져진다.
누군가 추적해 쉽게 복구하지도 못할 만큼. 몇 년 후, 말기암으로 투병하던 역사학자는 이 일기들을 작가 알렉산더 마스터스에게 넘긴다.
알렉산더 마스터스는 주변부 인간의 삶을 다룬 독특한 전기로 유명한 작가다. 범죄자로 전락한 한 노숙인의 일생을 추적한 <스튜어트: 거꾸로 가는 인생>, 지하실에 틀어 박힌 어느 수학 신동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이먼> 등 사회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의 일생을 기록해서 보여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의 망각된 삶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발견하려 애써온 것이다. <폐기된 인생>(문학동네)은 그가 역사 학자에게 건네받은 방대한 일기들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일기는 “나는 아주 필사적으로 생에 집착한다. 내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느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사람은 자신이 위대한 삶을 살 수 있고, 예술적 재능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걸 감수할 수 있다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위태롭게 살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줄곧 평범한 일만 할 뿐이다.” 그러나 이 일기는 실패와 공허로 끝난다. 위대함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그 자리를 “‘나’는 망가졌고 패배했고 희생되었다”라는 탄식이 차지한다.
제목대로, 이 일기는 버려진 삶, 쓰레기장에 처박힌 삶에 관한 기록이다. 작가는 일기 주인의 실패한 삶, 폐기된 인생을 되살리고, 끝내 그 정체를 추적해 밝혀낸다. 필적 감정가를 찾아가고 사립 탐정을 동원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한다. 작가의 발자취는 자기를 잃은 사람들이 정체성을 되찾으려면 얼마나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한 사람의 인생은 또한 기억하고 기록된 순간들의 단순 집합을 넘어선다. 약 500만 단어로 이루어진 삶의 기록은 막상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선명히 말해주지 않는다. 누구나 인생을 기록한 원고지를 쌓으면 한 트럭은 되겠지만, 그걸 정제하고 정리해서 이야기로 꾸미지 않으면, 삶의 주인공, 즉 자아는 생겨나지 않는다.
일기를 쓴 사람은 로라 프랜시스, 일흔세 살 여성이다. “내 인생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어린 시절, 그녀가 품었던 소망이다. 10대 때 이미 소설 세 편을 써낸 작가였고, 스스로 반 고흐 같은 재능을 타고난 화가라고 여겼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했고, 예술가로서 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녀는 번번이 삶의 기회를 놓치고, 실패를 거듭하며 슬픔과 불안, 불만과 환멸 속에 살아간다. 예술가가 되고 싶으나 예술가로 살지 못하고, 사서가 되고 싶으나 사서로 살지 못한다. 심지어 마음에 둔 남성과 사랑조차도 이루지 못한다.
몇 차례 고용과 해고를 반복한 끝에 로라는 그녀를 가둔 ‘잔혹한 간수’의 집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살아간다. 스물두 살 때, 그녀가 앞날에 대한 불안 속에서 쓴 글이 자기 실현적 예언이 된다. “예순 살 즈음 힘겹게 싸워온 인생을 돌이켜보며, 다방면의 재능과 대단한 아름다움을 지녔는데도 무엇 하나 이루지 못했음에 깊은 슬픔을 느낄지 모르겠다.”
작가는 이처럼 로라의 삶을 조금도 낭만화하지 않는다. 그 삶에 어떤 역전 드라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그녀는 148권이나 되는 일기장이 어떻게 버려졌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아니,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펜이 종이에 부딪히는 소리가 좋아”, 여전히 매일 일기를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대실패이기보다 평범한 실패에 가깝다. 좌절과 실패 없는 인생, 처음 뜻 그대로 이루고 사는 인생은 얼마나 드문가. 우리 대부분도 비슷하게,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아간다. 그로써 작가는 로라의 삶에서 한 평범한 인간이 자기 존재를 매일 기록했을 때 생기는 “고요한 보편성의 감각”을 되살린다.
로라의 삶은 대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생에 걸쳐 그 대단하지 않은 삶,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삶을 꾸준히 기록해온 행위만은 함부로 흉내 내지 못할 만큼 대단했다. 이로써 그녀는 쓰레기처럼 버려진 삶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순간들, 뜨거운 감정과 치열한 역사가 담겨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고 보면 평범한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평생에 걸쳐 자기 진심을 담은 일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특별해진다. 누구나 그런 비장의 무기를 갖추고 있지 않을까.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