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투자자 시선 사로잡은 원유·금·은 - 시장 전망 나쁘지 않지만 ‘변동성’은 주의

    입력 : 2026.04.16 18: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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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원자재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전쟁, 금리 불안 등으로 촉발된 글로벌 불확실성이 원자재 슈퍼 사이클을 만들고 있어서다. 가장 매력적인 비(非)달러 자산인 금이 사상 최고가를 찍는 한편 은, 구리, 백금 등 다른 귀금속·금속 자산들 역시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그간 잠잠하던

    국제유가도 중동 분쟁으로 불타올라 배럴당 100달러를 찍었다. 투자자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세를 보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해하고 있다. 주식, 채권과 같은 다른 자산들과 비교해 변동성이 커 언제 어떻게하락세로 전환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의 전망은 어둡지 않다. 원자재 슈퍼 사이클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보면서 지금은 원자재 시장을 떠날 때가 아니라 적극적인 베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전남 여수시 석유화학단지 공장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전남 여수시 석유화학단지 공장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5000달러 돌파한 金

    올 들어 금은 사상 최초로 온스당 5000달러 선을 돌파했다. 지난해 10월 온스당 4000달러를 돌파한 이후 약 4개월여 만에 나타난 일이다. 5300달러까지 올라간 금 가격은 중동분쟁이 터지며 살짝 조정을 받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500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금은 투자자들에게 최후의 안전자산으로 불린다. 다른 자산들의 가격이 무너져내려도 희소성이 있어 경제적 가치를 저장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금 가격은 기축통화인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실질금리가 내려가는 국면에서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실질금리는 금 가격과 반대되는 흐름을 보였는데,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경제 통계 프레드(FRED)에 따르면 지난해 초 미국 10년물 국채금리 수익률은 2.3%를 상회했으나 현재 1.8%대로 내려와 있다.

    금 가격을 상승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바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금 매집 현상이다. 중앙은행은 외환보유고를 다변화하기 위해 여러 자산을 모으는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경제가 휘청이자 안전자산인 금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신흥국 중앙은행 중심으로 이러한 움직임이 두드러졌는데, 특히 중국 인민은행의 매수세가 강했다. 그 결과 금 수요량이 큰 폭으로 증가했고 중국 인민은행의 외환보유액 대비 금 비중은 2020년 초 3%대였지만 현재 7%대까지 올랐다.

    금 가격이 오르자 금에 투자하는 상품들의 수익률도 점점 올라갔다. 그중 금 가격 지수를 추종하는 ETF(상장지수펀드)의 수익률이 상당히 높았다. 금 선물가격을 추종하는 TIGER 골드선물(H) ETF는 지난1년간 약 60% 상승했다. 국내 투자자들이 퇴직연금에 편입할 수 있는 ACE 금현물 ETF는 같은 기간 약 70% 상승했다. 금 채굴기업들의 주가도 상승세를 보였다. 금 채굴기업들의 채굴 비용은 고정비 성격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금 가격이 상승하면 채굴기업의 이익은 더 큰 폭으로 증가한다. 대표적인 금광 기업으로는 뉴몬트, 앵글로골드 아샨티, 배릭 마이닝 등이 있다. 뉴몬트의 주가는 1년간 약 130% 상승했다. 앵글로골드 아샨티, 배릭 마이닝도 같은 기간 각각 180%, 120% 올랐다.

    ‘사상 최고치’ 은 -30% 대폭락

    은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은은 트로이온스당 70~80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지난해 초 30달러 선이었던 걸 감안하면 2배 넘게 오른 것이다. 은은 금리 완화와 유동성 팽창의수혜를 받는다. 지난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3년 6개월 만에 양적긴축 종료를 선언하면서 시장에 유동성이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은의 최대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의 은 재고량도 감소하는 추세였기에 은 가격은 금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과거부터 은도 금과 함께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그래서 많은 투자자들이 은을 금과 마찬가지로 안전자산으로 오인한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금과 다르게 전세계 은의 60%가 산업 현장에 쓰이기 때문이다. 실물 투자용은 16%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경기 흐름을 많이 타는 귀금속 자산이다. 실제로 은은 경기가 호황일 때 수요가 늘어난다. 은은 필름, 반도체, 태양광 패널 제작 등에 쓰인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 설치와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늘어나고 전기차 판매 또한 개선되고 있기에 은을 필요로 하는 곳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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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방 산업의 전망이 매우 밝았기 때문에 많은 투자자들이 은 가격 상승에 베팅해왔다. 실제로 은 가격을 추종하는 ETF 상품인 KODEX 은선물(H)은 지난해 초 5000원 수준이었지만 지난 1월 2만원까지 올라갔다. 한 홈쇼핑 방송에서 진행된 실버바 판매도 55분 만에 완판되는 기록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은의 높은 변동성을 보여준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1월 30일 트로이온스당 120달러를 상회하던 은 가격이 선물시장에서 하루 만에 31% 하락해 78달러 선까지 내려왔다. 46년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한 것이다.

    은 가격 폭락을 촉발한 건 미국의 경제를 관장하는 연준 의장이 케빈 워시로 지목됐다는 소식이었다. 케빈워시는 현 연준 의장인 제롬 파월보다 더 강력한 매파적인 인물로 꼽힌다. 급격한 금리 인하, 양적완화 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시장은 케빈 워시가 연준 의장이 되면 금리 인하 속도가조절되고 달러화 가치도 생각보다 덜 떨어질 것이라 봤다. 저금리, 약 달러를 생각해 실물자산에 유입됐던 투자금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면서 그간 레버리지로 은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의 반대매매 물량이 쏟아졌다.

    귀금속 ETF 반대매매 규모도 4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됐다. 이러한 은 폭락 사태는 과거에도 있었다. 1980년 은 시장을 독점하려던 미국의 헌트 형제가 자금 압박으로 시장에 은을 대규모로 던지며 은 가격이 고점 대비 50% 넘게 하락한 적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악마의 은’이란 별명이 붙었다. 현재도 폭락 이후 여전히 전고점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금 가격도 최근 은 폭락 때 온스당 4600달러까지 폭락했으나 회복하고 있는 상태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귀금속 자산 가격급락은 단기 금 가격 상승 속도 조절일 뿐 하락세 전환이 아니다”라며 “올해 금 투자 비중 확대 의견과 가격 예상 범위(4350~6000달러)를 유지하지만 신임 연준 의장 지명 여파가 소화될 때까지 금 가격은 단기 차익 실현과 저가 매수세 사이에서 숨 고르기 장세가 예상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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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시대 이끌 구리

    금, 은에 이어 원자재 슈퍼 사이클을 이끈 주역이 있다. 바로 구리다. 구리 가격은 지난해 40% 가까이 올랐고 지금도 시장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구리는 철강, 전력, 인프라, 건설 등 많은 산업 현장에 주재료로 쓰이며 ‘산업의 쌀’로 불린다. 대규모 인프라를 조성해왔던 중국이 전 세계 구리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가격도 좌지우지했는데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전 세계적으로 건설되고 있는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구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아직 데이터센터 건설에 들어가는 구리양은 전 세계 수요량의 1~2%밖에 안 되지만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비중이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구리 가격은 톤당 1만 2000~1만 3000달러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구리 가격 상승엔 다른 요인도 작용했다. 구리를 생산하는 초대형 광산들에서 잇단 사고가 발생하며 공급부족이 전망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계 3대 광산 중 하나인 그라스버그 광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광산 운용이 중단됐다.

    이 때문에 구리의 제련 수수료가 마이너스 상태까지 떨어졌다. 제련소들이 구리 정광을 확보하기 위해 오히려 웃돈을 줘야 할 만큼 원재료가 귀해졌다는 뜻이다. 국제구리연구학회에선 올해 전세계 구리 시장이 15만 톤 규모의 공급부족 상태에 시달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로벌 투자 기관인 씨티은행은 올해 구리 가격에 톤당 1만 3000~1만 5000달러 선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자들은 향후 구리 가격 강세를 예상하고 관련 기업 혹은 금융투자 상품에 눈을 돌리고 있다. 프리포트 맥모란은 미국의 최대 구리 생산 기업이다. 프리포트 맥모란은 구리를 메인으로 채굴하고 이 과정에서 나오는 금, 은 등의 부산물을 추가 생산한다. 지난해 주가가 약 30% 올랐다. 구리 선물 가격을 추종하는 국내 ETF로는 TIGER 구리실물, KODEX 구리선물(H), 해외 ETF는 CPER, COPX 등이 있다.

    CPER은 구리 선물지수를 추종해수익을 내는 상품인 반면 COPX는 전 세계 구리 채굴기업을 모아 투자하는 대표적인 광산기업 ETF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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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분쟁으로 폭등한 유가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전 세계 에너지 자산들도 주목받는다. 이란은 세계 원유 수송량의 3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했고 그러면서 국제유가가 폭등했다. 영국 북해에서 생산되는 브렌트유와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의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며 1년여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카타르 국영 에너지 기업의 LNG 시설 가동이 중단되자 천연가스 가격도 폭등했다. 유럽의 천연가스 벤치마크인 TTF는 폭격 직후 46% 폭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카타르는 세계 2위 LNG 수출국으로 미국 다음으로 LNG를 가장 많이 수출하고 있어 시장이 급격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지역 천연가스 벤치마크인 JKM도 40% 가까이 올랐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우크리이나 전쟁 당시보다 이번 사태가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본다. 원유, 석유제품, 가스, 비료는 물론 다양한 석화 제품들의 공급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란을 둘러싼 중동분쟁이 계속되고 있어 장기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단기 원자재 투자자 금이 원유, 가스 등 에너지 섹터에 집중되고 있지만 분쟁이 지속될 경우 다른 원자재 자산들의 가격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천연가스 가격 상승이 전력을 원료로 삼는 광산, 제련 기업들의 생산비용을 압박할 것이라고 봤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천연가스는 전력원으로 전체의 22%를 차지하는데, 공정 과정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알루미늄부터 구리, 금, 철광석, 우라늄 등 금속 시장 전반에서 가격 전가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최 연구원은 또한 에너지 가격 상승이 농·축산물 시장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비료 시장에서 58%를 차지하는 질소계 비료의 원료가 바로 천연가스”라며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질소계 비료→옥수수→사료→돈육’이라는 밸류체인 전반을 뒤흔들것”이라고 했다.

    [홍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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