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철소에 뜬 ‘AI 동료’ K-철강, 로봇·휴머노이드로 현장부터 바꾼다

    입력 : 2026.04.16 17:32:10

  • 최근 방문한 광양제철소 고로 현장. 섭씨 1500도짜리 쇳물 열기가 가득한 공장 바닥. 그 사이를 묵묵히 오가는 네발 달린 기계가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이다. 스팟의 임무는 풍구 순찰이다. 풍구는 고로 내부에 열풍을 불어넣는 통로로, 고온의 좁은 공간이라 사람이 접근하기 어렵다. 로봇개는 매일 정해진 경로를 자율주행으로 돌며 누수·발열 등 이상 징후를 감지해 중앙 통제실로 실시간 전송한다. 작업자가 굳이 현장에 나서지 않아도 무인으로 정밀한 설비 점검이 이뤄진다.

    전통적인 굴뚝 산업의 상징이던 제철소가 달라지고 있다. 포스코는 제조 부문의 ‘인텔리전트 팩토리’와 사무 부문의 ‘인텔리전트 오피스’라는 두 축으로 전사적 디지털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다. 고위험 수작업을 자동화하고 숙련 작업자의 노하우를 시스템에 이식해 글로벌 철강 패권을 유지한다는 전략이다.

    이 흐름은 이미 제강 공정에서 성과로 증명됐다. 지난해 포스코는 제강 전(全) 공정 자율조업 시스템을 실제 조업에 성공적으로 적용했다. 로봇이 슬래그 위치를 스스로 파악해 제거하고, 전로에서는 AI가 변수를 분석해 산소 투입량을 자동 결정했다. 생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끌어올린 검증된 사례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이 흐름을 직접 챙기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올해 첫 그룹 경영회의에서 AI 전환(AX) 가속화를 그룹 체질 개선의 핵심 과제로 못 박았다. AI를 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동력으로 정의하고, 제조 현장 AI 도입으로 초격차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사무 부문 AI 전면 확산으로 전사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다.

    사진설명

    고온 도금 공정도 거뜬…AI 팔이 불순물 걷어낸다

    광양제철소 도금공장 안. 용융아연 욕조(Zinc Pot) 위로 쉴 새 없이 코일이 지나간다. CGL(연속용융아연도금 라인)에서 자동차 강판용 표면 처리가 이뤄지는 현장이다. 뜨거운 욕조 표면에는 산화물 등 부유물(dross)이 끊임 없이 올라온다. 예전에는 작업자가 직접 고온 열기를 버티며 무거운 도구로 이를 걷어냈다. 근골격계 부담은 물론 화상 등 안전사고 위험이 상시 도사렸다.

    지금은 산업용 로봇 팔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고성능 카메라가 부유물 위치를 실시간으로 인식하면 로봇이 정확히 걷어낸다. 핵심은 학습 방식이다. 숙련 작업자가 실제 부유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그대로 로봇에 학습시켰다.

    작업자의 손동작 패턴을 AI가 흡수한 셈이다. 속도와 정밀도 모두 사람을 넘어선다. 중대재해 위험을 줄이면서 생산 효율도 함께 올렸다.

    자동제어로 연 21만t 증산… 냉연 기술의 진화광양제철소 냉연 라인에서는 소프트웨어 혁신이 조용하지만 압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냉연 공정은 열연코일을 잇는 용접기부터 표면 스케일 층을 제거하는 산세, 원하는 폭으로 자르는 사이드트리머, 고객사가 요청한 두께로 최종 성형하는 냉간 압연기까지 고도로 복잡한 연속 공정이다.

    기존에는 숙련 작업자가 여러 모니터를 보며 전 구간을 손으로 제어했다. 어느 한 공정의 속도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감각에 의존해 나머지를 다시 맞춰야 했다. 눈과 손이 쉴 틈이 없었다. 포스코는 광양제철소 냉연부와 기술연구원 협업으로 전 공정 자동 속도제어 시스템을 자체 개발했다. 수십 년간 숙련공이 체득한 조업 노하우를 컴퓨터 제어 로직에 온전히 이식했다.

    공정 상황을 실시간으로 판단해 최적 속도를 스스로 계산하고 적용한다. 사람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속도 불균형으로 인한 라인 정지가 줄면서 시간당 10t 이상 생산량이 늘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21만t 추가 증산이다.

    편의성도 높아졌다. 각 공정의 지연 상황, 제품 검사 결과, 압연용 롤 교체 여부 등을 실시간으로 작업자에게 알려주는 가이던스 기능이 더해져 전 공정 현황을 상시 파악할 수 있다. 품질도 올라갔다. 냉연 코일은 공정 연속성이 생명인데, 속도 자동제어로 라인 정지를 최소화하면서 최종 강판 표면 품질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향상됐다. 24시간 육안 모니터링이 사라져 작업자 피로도도 뚝 떨어졌다. 신입 직원도 별도의 현장 적응 기간 없이 즉시 투입이 가능해졌다. 이 모든 제어 로직은 광양 현장에 구축된 CRM(Cold Rolling Master) 스마트룸에서 통합 관리된다. CRM은 냉간압연기(Cold Rolling Mill)의 약자를 차용해 냉간압연 공정의 ‘마스터’라는 의미를 담았다.

    AI와 사물인터넷을 결합한 냉간압연 설비 통합 관제시스템으로, 압연기마다 개별 설치된 ‘AI 밀 셋업 모델’을 중앙에서 일원화 관리한다. AI 밀 셋업 모델은 강종·재질별 특성을 반영해 압연 하중을 예측하는 인공지능 모델로, 산·학·연 협력으로 개발해 2021년 냉연 전 공장에 적용됐다. 고객사 요구에 따른 강종·두께 변경 대응도 빨라졌다. 기술 개발을 주도한 손광호 광양제철소 냉연부 명장은 “이번 기술은 광양제철소가 수십 년간 쌓아온 기술 경쟁력의 핵심 이정표”라며 “인텔리전트 팩토리 구현을 목표로 글로벌 초격차 경쟁력을 계속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포스코명장 제도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인품을 겸비한 직원을 선발해 기술을 전수하는 제도로, 2015년 도입 이후 2025년까지 총 29명이 선발됐다. 현장 기술인에게는 최고의 영예다. 이 기술은 포스코 마하라슈트라 등 인도 현지 생산법인을 포함한 해외 공장으로도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포스코가 도입한 로봇개(4족 보행 로봇) ‘스팟’이 광양제철소 고로 풍구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포스코가 도입한 로봇개(4족 보행 로봇) ‘스팟’이 광양제철소 고로 풍구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한 작업자가 고로 설비 점검용 4족 보행 로봇 ‘스팟’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한 작업자가 고로 설비 점검용 4족 보행 로봇 ‘스팟’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휴머노이드 도입 초읽기… 무인 제철소 시대 활짝

    다음 단계는 인간형 로봇이다. 포스코와 포스코DX는 최근 미국 산업용 휴머노이드 전문기업 페르소나AI에 300만 달러를 투자하고 파트너십 협약을 맺었다. 투자금 45억원은 포스코DX와 포스코기술투자가 공동 조성한 신기술투자조합 펀드에서 집행됐다.

    내년 2월부터 제철소 내 철강 코일 물류관리에 휴머노이드 실증 사업이 시작된다. 수십 톤짜리 코일을 크레인에 연결하는 벨트 체결 작업 등 고위험 수작업을 로봇이 대신한다. 작업자의 손이 닿기 어려운 극한 환경을 인간형 로봇이 채우는 구조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고위험 작업에 로봇을 먼저 투입하면 중대재해 리스크를 줄이고 24시간 연속 생산 체제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연구개발 조직도 손봤다. 공정DX연구소 내에 로봇AI연구그룹을 신설하고, 기존에 지주사 포스코홀딩스 산하 미래기술연구원이 담당하던 피지컬 AI 연구 기능을 사업회사 포스코로 끌어내렸다. 연구와 생산 현장의 거리를 좁혀 기술 상용화 속도를 높이겠다는 포석이다. 제철소의 두뇌와 팔 역할을 담당할 이 조직이 현장 맞춤형 지능화 기술을 직접 이끈다.

    1밀리미터 오차도 잡는다… 포항 PIMS 예지정비

    포항제철소 압연 공정 통제실. 운전자 화면에 이상 경고 알람이 뜬다. 강판의 실제 폭과 설계 정보가 1밀리미터 어긋난 것이다. 사람 눈으로는 놓치기 쉬운 차이지만, 포스코가 자체 개발한 지능형 유지보수 시스템 PIMS는 이를 즉각 잡아낸다.

    PIMS는 단순 설비 데이터 수집을 넘어 현장 맞춤형 판독 모델로 진화한 통합 설비관리 플랫폼이다. 공정 전반의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기계 고장 전조를 미리 감지한다. 특히 핵심인 압연 공정에서는 강판 코일의 실제 소재 폭과 설계 정보를 상시 대조해, 1밀리미터 차이도 이상 경보로 처리한다. 품질 불량과 공정 차질을 미연에 방지하는 구조다.

    초고속으로 달리는 강판의 치우침도 영상 모니터링으로 포착한다. 강판이 찢어지거나 라인에서 이탈하는 ‘판파단’ 대형 사고를 사전에 막는다. 운전자의 순간적 조작 실수나 상황 인지 지연으로 인한 휴먼 에러를 대폭 줄였다.

    안전 효과도 직접적이다. 과거에는 라인 과적 상황이 생기면 작업자가 지하 설비 공간에 직접 들어가 고철 스크랩을 손으로 치워야 했다. 질식·협착 위험이 항상 따라 다니는 최악의 고위험 작업이었다. 예측 시스템 도입 이후 돌발 정지 자체가 줄면서 이런 작업도 자연스럽게 감소했다. 안전이 곧 원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현장에 뿌리내린 결과다. 기술 개발을 이끈 옥광일 포항제철소 파트장은 “수십 년간 쌓인 조업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확인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며 “PIMS는 작업자가 언제나 안전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곁에서 지원하는 지능형 도구”라고 말했다.

    “설비의 안정적 운영이 곧 작업자 안전이자 글로벌 원가 경쟁력”이라는 게 그의 확신이다.

    포스코그룹과 MOU를 체결한 미국 로봇 스타트업 페르소나 AI가 개발 중인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모형 이미지. <사진 포스코
    포스코그룹과 MOU를 체결한 미국 로봇 스타트업 페르소나 AI가 개발 중인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모형 이미지. <사진 포스코
    광양제철소 도금공장 부유물 제거 로봇이 카메라와 AI를 활용해 아연 용액에 뜬 부유물을 자동으로 인식해 제거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광양제철소 도금공장 부유물 제거 로봇이 카메라와 AI를 활용해 아연 용액에 뜬 부유물을 자동으로 인식해 제거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손광호 포스코명장이 광양제철소 CRM 스마트룸에서 냉간압연 공정 자동 속 도제어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손광호 포스코명장이 광양제철소 CRM 스마트룸에서 냉간압연 공정 자동 속 도제어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

    사무실도 인텔리전트… 사내 생성형 AI 경진대회

    변화는 공장 밖에서도 진행 중이다. 포스코는 2023년 포스코DX와의 협업으로 사내 업무시스템과 결합한 생성형 AI 플랫폼 ‘P-GPT(피지피티)’를 도입했다. 외부 클라우드가 아닌 사내 보안 시스템과 완전히 결합한 사설 플랫폼이다. 단순 서류 자동화를 넘어 전략적 의사결정 지원 영역까지 활용 폭을 넓히고 있다. 구매·마케팅·경영지원 등 사무 전 부문이 대상이다.

    광양제철소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내 생성형 AI 경진대회를 열었다. 현장 직원들이 직접 자신의 업무 프로세스를 에이전트 시스템으로 구현해 겨루는 방식이다.

    대화형 챗봇, 기술 문서 자동작성, 프로그램 코드 자동생성 등 실무 밀착형 아이디어를 직접 시제품으로 만든다. 외부 전문가가 아닌 현장 직원 스스로 자신만의 AI 비서를 만드는 셈이다. 안전 수칙과 보안 마인드를 이미지 생성 툴로 4컷 만화로 표현하는 창작 부문도 함께 열린다.

    회사는 사내 교육 플랫폼을 개방하고 타사 우수 적용 사례를 수시로 공유하며 직원들의 과제 수행을 전폭 지원한다. 장인화 회장이 주도하는 스마트 제철소 전환은 이미 상용화 궤도에 올랐다. 제강 자율조업 성공에서 시작해 냉연 자동제어, 로봇개 순찰, 도금 공정 자동화까지 각 현장에서 성과가 쌓이고 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쇳물을 다스리고, 휴머노이드가 고위험 현장을 맡는 풍경이 현실이 됐다. 포스코는 쇳물 생산 기지에서 소프트웨어 두뇌와 피지컬 팔다리가 결합된 공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안전과 원가 경쟁력을 동시에 잡으려는 K-철강의 질주는 계속된다.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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