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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 기자의 한국기업 탈각의 순간들] 매일경제신문 | ④ ‘당신도 지식인입니다’ 시대의 화두로
입력 : 2026.03.11 10:3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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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5월2일 시내 정동에 위치한 글로벌녹색성장기구 사무실에서 이석채 전 경제수석(완쪽에서 두번째)을 모시고 당시 비전코리이팀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상협, 이수석, 강영철, 손현덕, 김영태. 부즈앨런 한국보고서 발표를 보름 정도 앞둔 시점, 장대환 사장은 비전코리아 추진팀원들을 사장실로 불렀다. 부즈앨런이 한국보고서를 탈고하고 운영위원회의 추인을 거친 뒤 이를 토대로 실무진들이 발표 자료를 만들고 있었던 때였다.
장 사장이 우리에게 물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우리 매일경제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무엇인가?”
의외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사이 다시 물었다.
“보고서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소위 언론 동네에서 흔히 하는 말로 ‘야마(제목을 뜻하는 일본어)’를 물은 건데 우리는 ‘너트크래커’, ‘재정경제원 해체’가 가장 임팩트 있는 키워드라고 답했다. 실제 기사도 그렇게 쓸 판이었다.
그런데 장 사장의 생각은 다른 데 있었다.
“나는 지식 격차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선진국과의 지식 격차를 줄이는 일 아닌가 싶어.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그리고 국민은 국민대로. 나는 우리 매일경제신문이 이 지식 격차를 줄이는 범국민 실천 운동에 앞장섰으면 하는데 어떻게들 생각하나?”
미팅을 마치고 사무국으로 내려온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시작했다. 사실 실무진들은 ‘지식 격차’에 대한 비중을 크게 두지는 않았다. 결론 부분의 하나 정도로 잡고 있었다. ‘지식’이란 말이 손에 잡히지 않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인 데다 ‘지식을 높이자’고 주장하는 게 저널리스틱한 관점에서 보면 벙벙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명히 인정할 것은 부즈앨런 한국보고서의 키워드는 ‘지식’이었다. 보고서는 “선진국과의 지식 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결코 일등국가가 될 수 없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너트크래커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지식을 기반으로 한 성장 엔진을 가동시켜야만 한다”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던 뉴질랜드도 구조 개혁에는 성공했지만 지식을 기반으로 한 개혁에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실무진은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지식이란 말이 참신해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가 고정관념에 매몰됐기 때문 아닌가. 정작 중요한 게 지식이라면 이걸 참신하게 만들고 범국민 실천 운동으로 이끄는 동력으로 삼아야 하는 게 우리가 할 일 아니겠는가. 재경원(재정경제원) 해체라는 것이 급한 일이라면 지식 격차 해소는 중요한 일이다. 재경원 해체는 단기적 과제고 지식 격차 해소는 중장기적 과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보고서의 발표를 둘로 나누어 현상 진단(너트크래커)과 액션플랜(재경원 해체)을 부즈앨런이 담당하고 지식 격차 해소를 매일경제가 맡기로 역할분담을 했다. 비전코리아 매경의 제언은 ‘한국을 세계의 두뇌강국으로 만들자’였다.
대략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전개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장표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실무 작업을 벌였다.
먼저 한국보고서에서 우리는 왜 ‘지식’이란 키워드를 뽑아 냈는가, 왜 두뇌강국을 제안하는가를 설명하자. 그러면서 지식경제가 세계적인 추세이며 21세기 국가경쟁의 핵심 무기는 노동 자본이 아니라 지식임을 강조하자. 우리가 말하는 지식이 무엇인지를 각인시키자. 그 지식은 단순히 책이나 자료를 통해 얻는 지식이 아니라 ‘일하는 방법을 개선, 개발, 혁신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게 경영학의 구루라고 하는 피터 드러커가 내린 정의였다. 그에 따르면 학문적 지식 위에 실용적 지식이 있고 실용적 지식 위에 현장 경험이 있다. 우리는 그동안 교수나 학자 기술자 등 일부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로 인식돼 온 지식을 일반 국민도 충분히 습득 실현할 수 있는 생활 속의 지식으로 끌어오려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실천 운동의 모티브를 찾았다. 그게 바로 ‘당신도 지식인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실시한 신지식인 프로젝트였다. 매일경제는 지식인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로 엘리트 냄새가 물씬 풍기는 ‘An Intellectual’보다는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A Knowledger’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피터 드러커는 그런 지식인의 전형을 리츠칼튼 호텔의 청소부에서 찾았다. 미국 버지니아주 리츠칼튼에 근무하는 아주엘라라는 청소부는 ‘청소’라는 작업을 표준화해 생산성을 높이고 그 결과 맬컴 볼드리지 생산성 대상을 받았다. 그녀에게 청소는 ‘단순한 허드렛일’이 아닌 ‘고품질 고객 서비스’의 하나였다.
우리는 이런 유형의 신지식인을 찾아 나섰다.
수많은 사람들을 발굴했는데 1번 타자로 등장시킨 인물은 국가대표 축구감독 차범근이었다. 프랑스 월드컵의 주역이었던 차 감독은 상대팀 전력과 선수들의 컨디션을 컴퓨터로 분석하고 이에 맞는 전략과 전술을 과학적으로 수립함으로써 한국 축구의 부가가치를 높인 인물. 그가 1991년 울산 현대 감독을 맡으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노트북 컴퓨터의 구입. 그는 그때부터 각종 자료를 저장해 한국 축구를 ‘감(感)’이 아닌 ‘자료’에 기반한 축구로 바꿨다.
‘철가방 아저씨’에서 스타 강사로 변신한 중국집 배달원 조태훈 씨도 매일경제가 찾아낸 신지식인이었다. 그는 단순한 짜장면 배달부가 아니라 대학 교수들도 탄복할 만한 고객 서비스와 마케팅의 진수를 습득한 분이었다. 어느 날 중국집에 연인으로 보이는 청춘남녀 둘이 들어와 짜장면 하나 짬뽕 하나를 주문해 조금씩 나눠 먹는 것을 보고 다음날부터 짜장면 배달할 때 짬뽕 국물을 준비했다. 당시 신장개업하면 중국집 홍보로 성냥갑을 돌렸는데, 실제 중국 음식 주문은 총무과 여직원들이 한다는 점을 착안해 판촉물을 성냥갑에서 여자 스타킹으로 바꾼 조태훈 씨. 그의 현장 경험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지식이었다. 1년 정도 지난 1998년 12월 4일 김대중 대통령은 경제정책 조정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지식기반산업 발전 방향을 보고받고 신지식인 창출에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김 대통령은 신산업만이 지식산업은 아니다”며 신지식인의 사례를 제시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조태훈 씨였다. 그러면서 김대중 정부는 매일경제의 신지식인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신지식인 선정 작업도 공동 추진했다.
이런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인물이 바로 이화여대 김효근 경영학과 교수(이화정보화전략연구센터장)였다. 그는 매일경제가 부즈앨런의 한국보고서에서 추출한 ‘지식’이란 키워드에 꽂혀 제3차 국민보고대회의 두뇌강국 보고서와 신지식인 보고서 프로젝트에 가담했고 이를 토대로 ‘신지식인 보고서’를 발간한다. 두뇌강국 보고서는 하버드대 경영학과 마이클 포터 교수가 만든 컨설팅사인 모니터컴퍼니와 공동 기획했다. 김 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해방 후 근 50년간 전 세계를 통틀어 한국인처럼 노력한 국민이 있나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열심히 배우고 어떻게든 잘 살아 보겠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해 왔습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그 당시 외환위기의 상황은 저에게 더더욱 절망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신지식인 돼야겠다는 결론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게 당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훗날 ‘눈’ ‘첫사랑’ 등의 가곡을 만든 음악가로도 명성을 날리는데 이를 기반으로 ‘경영예술’이란 새로운 지평을 연 진짜 신지식인이기도 하다.
명품 국제대회 ‘세계지식포럼’의 탄생신지식인 프로젝트는 1998년 매일경제신문의 신년 화두이기도 했다. 시무식을 마친 날 장대환 사장이 비전코리아 팀원들을 불렀다. 차나 한잔 하자고 올라오라는 전갈이었다. 우리는 1년 넘는 오랜 기간 수고한 데 대해 격려차 호출인 줄 알았다. 일부 팀원은 혹시 “사장님이 하사금이라도 주는 거 아니야”라는 기대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언감생심. 그동안의 고생과는 비교도 안 될 또 다른 임무가 떨어졌다. 역시 오너는 칭찬에 인색하다는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팀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날벼락(?)이 떨어졌다. 그것이 바로 세계지식포럼이었다.
비전코리아 추진팀 초기 멤버인 강영철 부장, 손현덕, 김영태 기자와 당시 워싱턴 특파원으로 나간 김상협 기자, 그리고 새롭게 비전코리아팀에 합류한 이봉호, 송준영 기자 등이 완전 새로운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출발점은 지식. 지식 격차를 좁히자는 차원에서 선진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의 유명 인사들을 불러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지식 공유의 장을 만들자는 프로젝트였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벤치마킹 대상이었으며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을 창설하자는 게 매일경제의 비전이었다. 시기는 10월을 목표로 했다. 약 9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한국보고서 발표는 2년 뒤 동양의 다보스포럼이라고 일컬어지는 세계지식포럼의 탄생을 가져왔다. 사진은 2009년 10월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세계지식포럼에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사실 이 세계지식포럼 아이디어는 이봉호 기자에서 비롯됐다. 일본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연수 중이던 그는 1997년 말 인사 때 강영철 부장이 경제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신임 기획특집 부장으로 발령 난다. 그러면서 신년 업무보고를 하는데 기존 강 부장이 작성한 안에 세계지식포럼을 끼워 넣었고 그게 장 사장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나중에 이 얘기를 장 사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강 부장이 본의 아니게 패싱(?)당했다는 생각에 약간 짜증 섞인 투정을 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어렵사리 계획안을 마련해 보고했는데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장 사장은 “이런 정도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행사를 치를 수 없다”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하게 준비하라”고 재차 지시했다. 결국 제1회 세계지식포럼은 첫 지시가 떨어진 뒤 거의 3년의 시간이 지난 2000년 10월18일부터 이틀간 서울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렸다. 주제는 ‘지식으로 새천년 새 틀을 짠다(Shaping the New Millennium with Knowledge)’였다. 매일경제는 이를 시발로 매년 가을 어김없이 세계인의 지식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 27회째가 된다.
[손현덕 주필]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6호 (2026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