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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택자도 은퇴자도 OK! ‘세대 공존형’ 실버스테이가 온다
입력 : 2026.02.09 17: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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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가 유례없는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노후 주거 문제는 이제 개인의 준비 차원을 넘어 국가의 존립과 직결된 핵심 화두로 부상했다. 그동안 국내 시니어 주거 시설 시장은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을 보이며 중산층의 소외를 야기해 왔다. 보증금만 10억원에 달하고 매달 내야 하는 생활비가 500만원을 훌쩍 넘기는 고가 실버타운이 한 축이었다면, 다른 한 축은 소득과 자산 기준이 매우 엄격한 저소득층용 고령자 복지 주택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정작 평생 성실하게 일하며 연금을 적립해 온 평범한 중산층 은퇴자들은 갈 곳 없는 ‘주거 사각지대’에 놓여 고립돼 왔다. 이러한 시장의 구조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실버스테이’가 최근 본격적인 공급 궤도에 오르며 노후 설계를 준비하는 세대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실버스테이는 60세 이상 고령자가 식사와 청소, 세탁 같은 전문적인 생활 지원 서비스를 누리면서도, 20년 이상 이사 걱정 없이 내 집처럼 편안하게 장기 거주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기존의 실버타운이 가진 서비스의 편리함과 공공 임대주택이 가진 거주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이 이 사업의 골자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민간 중심의 고가 실버타운과 공공 주도의 저소득층 주택 사이에는 그동안 분명한 정책적 간극이 존재해 왔다”며 “중산층 어르신들에게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주거 선택지를 넓혀드려 경제적 부담은 낮추고 삶의 질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하는 것이 실버스테이 사업의 핵심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 제도의 탄생 배경은 지난 2024년 3월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주제로 개최된 민생토론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중산층 고령자를 위한 새로운 주거 모델인 ‘민간 임대형 시니어 레지던스’ 도입을 공식화하며 정책적 의지를 천명했다.
이후 정부는 2024년 7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같은 해 하반기에는 이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 마련과 함께 시범 사업지 선정을 마쳤고 2025년부터 본격적인 공급 체계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2024년 민생토론회의 주제인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의 내용에 대해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실버스테이 정책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대목은 입주 자격의 과감한 완화다.
기존의 정부 지원 주택 사업들은 형평성 논리에 따라 철저하게 무주택자 위주로만 운영돼 유주택 은퇴자들의 소외감을 키워왔다. 하지만 실버스테이는 은퇴한 유주택자들도 입주 대상에 포함했다.
물론 무주택 가구 구성원이 1순위로 우선권을 갖는 원칙은 고수하되 남은 물량에 대해서는 유주택자도 추첨을 통해 입주할 수 있도록 문호를 넓힌 것이다.
이는 집 한 채가 사실상 전 재산인 대한민국 대다수 중산층 은퇴자들의 현실적인 자산 구조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어르신들은 평생 살아온 소중한 자산인 자택을 당장 처분해야 한다는 심리적, 경제적 압박감에서 벗어나 실버스테이의 쾌적한 환경으로 주거지를 옮길 수 있다.
기존에 거주하던 주택을 임대해 거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실버스테이의 임대료와 서비스 이용료를 충당하는, 이른바 ‘자산 유동화’를 통한 선순환 노후 생활 구조를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유주택자 허용은 자산은 있으나 현금 흐름이 부족한 고령층의 현실을 감안한 조치”라며 “은퇴자들이 자산의 가치는 지키면서도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가족 간 유대를 중시하는 한국적 정서를 반영한 ‘세대 공존형’ 모델도 주목할 만하다.
실버스테이는 일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과 혼합된 단지로 구성되기도 하는데, 이때 정부는 실버스테이 입주자의 직계비속 중 무주택자에게 동일 단지 내 일반 임대주택에 대한 우선 신청 기회를 부여하기로 했다. 이는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하나의 아파트 단지 안에서 독립적인 사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서로의 안부를 수시로 확인하고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싱가포르 등 주요 선진국에서 인기를 끄는 2대 거주 시스템을 한국형으로 구현한 셈이다. 자녀 입장에서는 주거 고민을 해결함과 동시에 부모님 곁을 지킬 수 있고, 부모 입장에서는 손주들과 수시로 만나며 고독감을 덜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자들의 기대감이 높다.
임대료 인상 연 5% 이내 제한
‘사전 신고제’로 법적 안정성 강화법적 안정성 측면에서도 실버스테이는 기존 실버타운보다 우위에 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실버타운은 노인복지법상 ‘노인복지주택’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건축법상 주택이 아니기 때문에 입주자 보호 장치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고질적인 지적이 있어 왔다. 사업자가 갑자기 임대료를 크게 올리거나, 경영난으로 파산했을 때 보증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입주자가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실버스테이는 민간임대주택법을 적용받는 엄연한 ‘주택’이다. 따라서 임차인으로서의 법적 권리를 확실히 보장받으며, 임대료 인상률은 연 5% 이내로 엄격히 제한된다.
특히 100세대 이상의 대규모 단지의 경우, 임대료를 올리기 30일에 반드시 지자체에 신고해야 하는 ‘사전 신고제’가 적용된다. 이때 지자체는 해당 지역의 주거비 물가지수 등을 검토해 증액의 적정성을 심사하므로 사업자가 독단으로 가격을 올리는 행위가 원천 차단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거주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중산층 수요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법적 안전장치가 될 것”이라며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머물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비용 측면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현재 업계가 추정하는 실버스테이의 입주 비용은 2인 기준 보증금 3억 5000만원 안팎에, 월 이용료는 140만원에서 190만원 수준이다. 정부는 초기 임대료를 실버타운, 노인복지주택 등 기존 시니어 레지던스 시세의 95% 이하로 산정하고, 임대료 5% 증액 제한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보증금 10억원에 월 500만원을 내야 하는 고가 실버타운과 비교하면 현실적인 가격대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일각에서는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는 지점이다.
실버스테이가 중산층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여전히 비용 장벽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실버스테이의 임대료와 서비스료를 합친 월 부담액은 고령자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며 결과적으로 ‘중간 가격대 실버타운’의 변형된 형태가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시설 기준 또한 고령자의 신체 특성을 고려해 엄격히 적용된다. 전용 공간에는 응급 상황에 대비한 비상 연락 장치, 휠체어 이동이 자유로운 문턱 없는 바닥(무단차), 미끄럼 방지 바닥재 등이 설치돼 안전한 환경을 제공한다.
공용 공간 역시 안전 손잡이 부착 등 안전 시설을 확보해야 하며, 식당·여가활동실·체력단련실·의료지원실 등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한 커뮤니티 시설을 필수로 갖춰야 한다.
1기 구리갈매 2029년 준공 목표
일본식 ‘사코주’ 성공 사례 벤치마킹
경기 용인에 있는 한 실버타운에서 거주자들이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다. 여기에 민간 사업자의 창의성에 따라 사우나, 수영장, 골프연습장 같은 고급 편의시설이나 자산관리, 법률자문 서비스 등이 선택적으로 추가돼 거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특히 의료지원시설은 보건실 수준을 넘어 인근 대형 병원과 연계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령층의 가장 큰 고민인 건강 관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들어 공모가 시작된 2기 사업지들인 경기 파주 와동(858가구)과 강원 원주 무실(487가구) 블록은 이러한 도심 인프라와 의료 접근성을 극대화한 입지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24년 12월 구리갈매역세권에서 택지 공모 방식으로 시범사업에 들어간 1기 실버스테이는 우미건설이 내년 착공해 2029년 준공할 계획이다. 구리갈매역세권(B2블록)은 임대주택 총 725가구 중 346가구가 실버스테이로 채워진다.
정부는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운영 방식에도 유연함을 더했다. 최근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식사 및 생활 지원 서비스 비용을 주택 임대료와 분리해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운영 업체가 입주민들의 요구에 맞춰 서비스의 질을 자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정부가 가격을 일일이 통제하기보다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맞게 합리적인 수준에서 서비스가 경쟁적으로 제공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실버스테이의 모델은 일본의 성공 사례인 ‘사코주(서비스 지원형 고령자 주택)’를 적극 참고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교통성이 주도해 사코주 제도를 도입했다.
사코주는 요양병원처럼 통제된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집에서 살면서도 필요할 때 마다 돌봄 서비스를 호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일본에서 사코주는 고령자들의 고독사 문제가 줄어들고 지역사회 안에서의 통합적 케어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한국형 사코주인 실버스테이 역시 우리 사회 노인 주거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만 실버스테이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인 만큼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관계자는 “민간 사업자들이 20년이라는 긴 운영 기간 동안 수익성을 유지하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사후 관리 체계를 촘촘히 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운영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나 품질 인증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또한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 소도시까지 이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공급 물량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추후 새 공모를 통해 물량을 꾸준히 늘려 나갈 계획이며 민간 제안 방식도 활성화해 사유지에서도 실버스테이가 원활하게 지어질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홍혜진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5호 (2026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