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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형 기자의 트렌드가 된 브랜드] 시치스 | 국내 공식 진출한 이탈리아 럭셔리 공간 브랜드 “모두 접근할 수 있다면 럭셔리가 아니다”
입력 : 2026.01.21 14: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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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샤또 루이 14세’는 지난 2015년 3억달러에 거래된 세계 최고가 부동산이다. 파리 교외 베르사유와 마를리 르 루아 사이에 자리한 이 대저택은 정원까지 23만㎡에 이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부동산개발사가 2008년부터 3년에 걸쳐 완공한 저택의 내부는 17세기 베르사유 궁전의 양식을 따라 대리석 조각상, 금박을 입힌 분수대 등 초호화 장식을 자랑한다. 지금은 사우디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가 소유하고 있다. 바로 그 3억달러를 지불한 주인공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이름이 ‘시치스(SICIS)’다.
공간에 예술을 입힌 이탈리아 명품
시치스는 모자이크 예술의 수도라 불리는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 지역에서 탄생한 공간 브랜드다. 도대체 공간 브랜드가 뭔가 싶은데, 쉽게 말해 텅 빈 방에 조명, 의자, 소파, 침대, 패브릭, 벽 장식, 바닥, 오브제 등 IT 기기를 제외한 전 제품을 오직 방 주인의 주문대로 제작해 채우고 배치한다. 물론 단 하나의 품목도 허술하거나 서툰 게 없다. 철저하게 고객이 원하는 콘셉트로 원 앤 온리(One&Only) 솔루션을 구현한다. 모든 제품의 제작은 라벤나의 대형 공방에서 60여 명의 장인들이 100% 수공예로 진행한다. 모자이크 타일부터 가구, 조명까지 모두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데, 전 세계 어느 곳의 프로젝트라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고객의 주문을 완성하기 위해 개발한 소재도 남다르다. 천연 미네랄을 활용한 1000여 종의 모자이크 타일과 유리 사이에 금속과 섬유 등 아트 패널을 입힌 자재 베트리테(Vetrite)는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다. 모자이크 패턴에서 영감을 받은 고급 실크와 울 소재의 텍스타일, 조명 시스템 역시 시치스만의 독창적인 기술이다. 18세기 나폴레옹 시대의 마이크로 모자이크 기법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하이엔드 주얼리 라인업도 갖췄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과 작품, 제품이 세계 최고가 부동산 ‘샤또 루이 14세’를 채우고 있다. 그것만? 람보르기니 호텔부터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타워, 라스베이거스의 벨라지오, 시저스 팰리스 호텔, 뉴욕 센트럴파크타워의 공간이 시치스의 작품이다.
그림 같은 벽면과 바닥은 모두 시치스의 모자이크 타일로 완성됐다. ▶ 시치스의 혁신적인 발명품 ‘베트리테’
시치스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소재가 베트리테(Vetrite)다. 유리, 폴리머, 금속을 독특하게 배합한 이 오팔 유리 시트는 곡면 가공이 가능하다. 양면 사용, 백라이트, 반투명 또는 불투명 버전으로도 제작할 수 있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예술적 완성도가 높아 벽면뿐 아니라 외부 마감재, 난간, 파티션, 가구의 문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꿈을 실현시키는 지니
뭐든 할 수 있다는 ‘알라딘’의 ‘지니’처럼 고객의 원하는 콘셉트를 최고의 럭셔리로 구현하는 시치스는 1987년 마우리치오 레오 플라쿠치가 설립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성당 등 건축양식에 쓰이던 모자이크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고, 100% 수공예로만 이뤄지던 작업을 산업화하며 명성을 얻었다. 브랜드명인 ‘SICIS’는 라틴어 ‘Sic Immensos Clarosque Inceptos Somniavi’의 약자로 “내가 꿈꾸었던 위대하고 유명한 모험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잊히던 고대 예술을 럭셔리 산업의 정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브랜드의 비전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탈리아 라벤나의 공방에서 한 명의 장인이 수천 개의 작은 유리 조각들을 정교하게 배치한다. 시치스에서 일하는 장인들은 모두 국립예술학교 내 모자이크학과에서 최소 5년 이상 수련을 거쳐 학위와 자격을 취득한 인원들이다. 그들이 작업하는 각각의 테세라(Tesserae·모자이크 조각)는 크기가 채 1㎜도 되지 않지만 이 테세라들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물은 수백만달러를 호가하는 요트의 내부나 두바이 7성급 호텔을 장식한다.
모자이크 타일로 완성한 벽 장식. 그렇다면 과연 내로라하는 전 세계 부유층들이 시치스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완전 맞춤 제작’ ‘검증된 명성’ ‘이탈리아 장인정신’ 등 세 가지 요인을 내세우곤 한다. 우선 시치스에 의뢰한 프로젝트는 완전 맞춤 제작이 가능하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독특한 패턴, 색상 조합, 재료를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다. 일반 대리석이나 타일과 달리 시치스의 모자이크는 각 프로젝트가 고유한 예술 작품이 된다. 일례로 1㎡당 수만달러에 이르는 아티스틱 모자이크 패널은 마르크 샤갈의 ‘푸른 종들의 가을’이나 자코모 발라의 ‘발코니에서 달리는 소녀’와 같은 명화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다. 고객은 자신만의 디자인을 의뢰할 수 있고, 시치스의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가 전체적인 프로젝트를 관리한다. 여기에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들을 장식하며 얻게 된 명성과 메이드 인 이탈리아란 품질보증이 신뢰를 더하고 있다. 1992년 첫 프로젝트였던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리조트의 스티브 윈 카지노 바닥과 벽면의 모자이크부터 뉴욕 플라자 호텔, 파리 리츠 호텔의 스파, 두바이 부르즈 알 아랍, 마카오의 더 13 호텔, 라스베이거스 윈 앙코르, 시저스 팰리스 등에도 시치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도산대로에 쇼룸 열어
시치스는 2025년 12월 18~19일 양일간 도산대로 쇼룸에서 프리뷰 행사를 열고 한국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날 사전 예약한 고객들과 프라이빗 세션을 진행한 엔리코 몬티 시치스 글로벌 비즈니스 총괄은 “모두가 접근할 수 있다면 그것은 럭셔리가 아니다”라며 “진정한 럭셔리는 그것을 원하는 개인만을 위한 것일 때 럭셔리라 불릴 수 있다”고 브랜드의 원 앤 온리 철학을 소개했다. 엔리코 총괄은 “브랜드 특성상 특별하고 대단한 홍보를 진행하진 않지만 시치스를 경험한 고객들의 특별한 감탄이 소셜미디어 시대에서 기대 이상의 홍보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시치스가 뉴욕, 런던 메이페어, 파리, 밀라노 브레라 지구, 두바이, 베트남 사이공 등 국가별 랜드마크 지역에 오픈한 쇼룸들은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과 취향 등을 고려해 제각기 다른 형태로 구성돼 있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24-19에 자리한 한국 쇼룸의 1층은 모자이크, 베트리테를 중심으로 한 주거 공간을 구현했다. 2026년 초 개장할 지하 1층은 럭셔리 바(Bar) 콘셉트로 완성될 예정이다. 시치스 관계자는 “도산대로 쇼룸 오픈에 앞서 이미 국내의 프라이빗한 공간 1곳의 시공을 완료했다”며 “고급 레지던스와 호텔 등의 협업 문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 시장에선 모자이크, 베트리테 기반의 건축 내·외부 조형물 아트 비즈니스로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SICIS]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4호 (2026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