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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인플레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
입력 : 2025.12.24 13: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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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의 습격
마크 블라이스 외 지음/ 서정아 옮김/ 21세기북스
코로나19 팬데믹이 휩쓸고 지나간 세계는 ‘고물가’라는 새로운 불안을 맞이했다. 세계 각국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막대한 돈을 푼 것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실제 그해 6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40년 만에 최고치인 9.1% 상승하며 사람들에 충격을 안겼고 독일과 한국도 각각 49년, 34년 만에 최고 물가를 기록했다. ‘모든 것이 오른다’는 공포가 세계를 지배했고 각국 정부는 강도 높은 금리 인상으로 물가 단속에 나섰다. 그럼에도 물가는 쉽게 잡히지 않았고 ‘저금리·저물가 시대’의 종언이 거론됐을 정도다.
그러나 2025년 현재 2%대 안정적 물가로 회귀한 상황에서 돌아보자면 당시의 호들갑은 무색해진다. 이때 인플레이션은 ‘일회성 사건’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정말 이대로 끝일까. 정치경제학 분야의 권위자인 저자들은 이 같은 낙관론에 단호히 경고한다. 이들은 “사실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한다. 인플레이션은 통화량 증가뿐 아니라 공급망 붕괴와 같은 공급 쇼크, 임금 상승, 독점 기업의 가격 전가 등 복합적 요인이 뒤엉킨 결과이며 세계는 이런 요인들이 과거보다 훨씬 많아진 구조적 전환기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에 따른 홍수와 가뭄 등의 재해가 농업과 에너지 생산을 교란해 공급 쇼크를 일으키고 관세 폭탄 등 지정학적 갈등이 글로벌 공급망을 분열시킨다. 고령화 등 인구 구조의 변화가 가져올 노동력 부족과 임금 상승 압력도 고물가를 예견하게 한다. 2022년의 물가 쇼크는 이런 변화와 충격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상호 작용하는 세계의 전조라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위협이 항상 존재하는 ‘인플레이션 2.0’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의 본질을 알아야한다. 책은 6개 장에 거쳐 인플레이션의 정확한 의미부터 측정법, 인플레이션의 ‘만병통치약’처럼 활용되는 금리 인상 정책의 허와 실 등을 쉽고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핵심은 인플레이션이 지금껏 알려진 통념처럼 ‘모두에게 공평하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내는 현상이라는 주장에 있다. 일례로 2022~2023년 유가 상승기 석유 기업들은 막대한 부를 얻은 반면 저소득 임금 근로자는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저자들은 물가 대응으로 각국 정부가 쓰는 금리 인상 정책에 대해서도 자산가에게는 이득을, 서민에게는 대가를 치르게 해 경제적 격차를 심화시킨다고 꼬집는다. 저자들은 이 구조를 제대로 이해해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개인 차원에서 실물 자산 등 헤지 수단을 확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이 책은 방대한 데이터와 역사적 사례로 인플레이션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부터 2020년대 에너지 위기까지 반복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누가 ‘승자’로 남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스코틀랜드 빈민가 출신인 블라이스는 “경제정책은 언제나 선택의 문제이며, 그 선택은 불평등을 키울 수도, 줄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결국 너의 시간은 온다
염경엽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모든 감독이 스타 선수 출신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공한 감독들 중에는 선수 시절엔 평범했지만 지도자로서 대성한 이들이 많다. LG 트윈스를 29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고, 올해 2년 만에 다시 챔피언 자리에 앉힌 염경엽 감독도 그중 하나다. 그는 스스로를 중간도 못가는 ‘엉터리 선수였다’고 했다. 그런 그가 야구 인생 2막을 펼치며 새로운 ‘커리어 하이’를 써내려가고 있다. 책은 2023년 우승 이후 염 감독에게 출간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염 감독은 틈틈이 구술하고 자료를 정리하며 집필을 이어왔고, 올해 또 한 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직후 ‘적시에’ 세상에 나왔다. 형편없던 선수에서 프런트 직원, 스카우터, 운영팀장, 단장, 그리고 우승 감독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은 천신만고 끝에 이뤄낸 짜릿한 역전 경기와 같다. 인생의 바닥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 초라한 선수 경력을 지닌 초보 감독이 어떻게 성공적인 리더로 성장했는지를 과정과 철학으로 풀어냈다.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
서동욱 지음/ 김영사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를 썼던 저자가 전편에 이어 다시 한번 “삶이 이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고, 결말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의 힘을 그러모으자”라고 제안했다. 삶의 결말이 영화처럼 바뀌기를 바란다면, 지렛대로 바위를 움직이듯 생각의 지렛대로 삶을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부끄러움, 권태, 냄새, 무의미, 사랑과 질투, 심지어 음악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생각하는 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 익숙한 것, 당연한 것과 완전히 다른 결론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를 일반인의 쉬운 표현으로 바꾸면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늘 익숙하게 한쪽 방향, 한쪽 면만 바라보고 살다가 익숙한 것은 낯설게, 어두운 것은 밝게 보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결론을 바꿀 수 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생이 두 배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싶다. 다만 책은 군데군데 다소 난해한 대목도 있다. 부제 ‘삶의 무의미를 견디는 연습’.
작은 정복자들
에리카 맥앨리스터·에이드리언 워시번 지음/ 김아림 옮김/ 곰출판
곤충은 약 3억년 전 지구에 등장한 이래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개체로 살아남은 동물군으로 꼽힌다. 전 세계 포유류가 6500여 종인 데 반해 곤충은 현재까지 보고된 것만 100만 종에 달한다. 이처럼 긴 역사에서 이들이 저마다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스스로 가장 단순하면서도 완벽한 신체 구조로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신간 ‘작은 정복자들’은 이처럼 곤충들이 보여주는 생존 전략과 삶의 지혜에 초점을 맞춰 많은 영감을 준다. 책은 곤충이 인간의 삶을 더욱 낫게 만드는 데 널리 활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나방의 천연 빨대는 대량 예방접종 등 재사용이 가능한 의료용 주사기 개발에 응용되고 있고, 아메리카동애등에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대체 식량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저자 에리카 맥앨리스터는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수석 큐레이터로 근무하는 곤충학자다.
차가일상
김소연 지음/ 아트레이크
단순히 마시는 음료를 넘어 차 문화를 즐기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차가일상’은 차 문화를 즐기려는 입문자를 위한 도서다. 전 세계 차를 맛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탐구해온 저자가 ‘차’를 즐기는 법부터, 각종 차에 담긴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책은 ‘차’의 어원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국 홍차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세계 최상급 홍차 중에 영국 차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세계 3대 홍차는 인도 다즐링홍차, 스리랑카 우바홍차, 중국 기문홍차다. 영국은 홍차를 수입해 브랜딩에 성공했을 뿐이다. 이렇듯 책은 차의 역사, 하나의 차나무 잎으로 만들어졌지만 각기 다른 이름을 지닌 이유, 세계사를 바꾼 주역이었다거나 찻잎에도 계급이 있다는 등 차 속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