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훈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유행어 30개를 알면 일본의 변화를 한눈에

    입력 : 2025.12.18 10:55:54

  • 일본은 매년 연말이 되면 한 해의 신어와 유행어를 정리해 발표하는 행사를 가진다. 일본의 출판사인 자유국민사가 1984년 시작해 매년 12월 1일 발표하는 것이 관례다. 신어·유행어는 본상 수상에 앞서 30개의 후보를 먼저 발표한다. 이는 해당 연도에 일본에 어떤 일이 생겼고, 어떠한 변화를 낳았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 꼽힌다.

    ‘곰 피해’로 어려움 겪는 일본 열도
    일본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하라케이기념관 부지에서 발견됨 곰 <사진 교도 연합뉴스>
    일본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하라케이기념관 부지에서 발견됨 곰 <사진 교도 연합뉴스>

    30개 후보 중에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 ‘곰 피해’다. 현재 일본은 마을까지 곰이 내려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잇따라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일본 환경성에 따르면 곰 습격으로 인해 일본에서 숨진 사람은 2025년 4월부터 11월까지 13명에 달한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왔던 2023년 6명의 2배를 넘는다.

    특히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곰의 공격으로 죽거나 다친 172명 중 66%인 114명은 산이 아닌 도심에서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4~6월에만 해도 등산이나 산나물 채취 등 숲을 찾았다가 곰의 공격을 받은 사상자가 다수였지만 7월부터는 주민 생활권 사상자가 전체의 80%를 차지했다. 일본은 도심에서의 곰 피해가 증가하자 조수보호관리법을 개정해 올해 9월부터는 시가지에서도 곰 포획에 엽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충분한 대응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곰 피해가 가장 심한 아키타현에는 일본 자위대도 파견됐다. 일본 경찰청은 마을 인근에 나타나는 곰을 소총으로 퇴치할 수 있도록 국가공안위원회 규칙을 개정했다.

    현재 소총의 용도는 흉악 범죄 예방과 진압 등에 한정됐지만 일부 지역에서 외출이 어려울 정도로 곰이 자주 나타나자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올해 마을을 습격하는 곰에 의한 피해가 늘어난 배경으로는 숲에서 곰의 먹이가 되는 도토리 등 나무 열매가 흉년을 맞은 점이 꼽힌다. 여기에 40년에 걸쳐 곰의 서식지가 확대되고 개체수도 늘어난 것도 문제로 거론된다. 이에 따라 곰으로 인한 피해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저렴한 비축미인 ‘고고고미(古古古米)’
    정부 비축미를 판매 중인 할인매장 <사진 ATP 연합뉴스>
    정부 비축미를 판매 중인 할인매장 <사진 ATP 연합뉴스>

    일본에서 요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급격히 오른 물가다. 새로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도 물가를 잡겠다는 것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었을 정도다. 이를 반영해 등장한 유행어가 ‘고고고미(古古古米)’와 ‘물가고’다.

    고고고미는 쌀값과 관련이 있다. 일본 쌀값은 2024년 여름부터 꾸준히 올랐다. 슈퍼에서 판매되는 쌀 5kg 평균 가격이 우리나라 돈으로 4만 1000원을 넘기도 했다. 1년 사이에 쌀값이 약 두 배가량 오르자 정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비축하고 있던 쌀인 비축미를 시장에 내놓았다. 2025년 5월에 2023년산과 2022년산 비축미 판매를 시작했다. 이들 비축미는 시중에 판매되는 쌀값의 절반 정도로 가격이 형성됐기 때문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비축미를 판매하는 대형 할인점에는 긴 행렬이 늘어섰고, 1가구당 1포대로 수량을 제한했지만 금방 매진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정부가 쌀값을 잡기 위해 2021년산 비축미까지 투입하면서 ‘고고고미’라는 얘기가 나왔다. ‘고(古)’ 1개가 1년에 해당하는 셈이다.

    일본에 쌀값이 폭등한 계기는 2024년 8월 규슈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7.1 지진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 지진 직후 거대 지진이 닥칠 가능성이 커졌다고 판단해 ‘난카이 해곡 지진 임시 정보(거대 지진 주의)’를 발표했다. 거대 지진 주의는 처음 발령된 것으로 이를 의식해 사람들이 쌀 사재기에 나섰고, 결국 수요와 공급 균형이 무너지면서 쌀 가격이 올랐다. 이후 햅쌀이 출시된 뒤에도 쌀 가격이 잡히지 않자 일본 정부는 급기야 ‘증산’을 공식적으로 거론하고 나섰다.

    사진설명

    지진과 관련해서는 ‘7월 5일’이 유행어로 꼽혔다. 이는 일본 만화가 다쓰키 료가 펴낸 ‘내가 본 미래 완전판’에서 시작됐다. 그는 1994~1998년 잡지에 게재한 만화를 모아 1999년 ‘내가 본 미래’라는 단행본을 펴냈다. 이 책 표지에 ‘대규모 재해는 2011년 3월’이라는 문구가 있어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을 예언한 인물로 주목받았다. 이 책의 개정판에는 진짜 대지진이 2025년 7월에 온다는 내용이 실려 일본 사회에 불안감을 안긴 것이다. 저자는 “재난이 일어나는 것은 2025년 7월”이라며 “갑자기 일본과 필리핀 중간 근처의 해저가 펑하며 균열했다”고 말했다. 2025년 7월 대지진은 공교롭게 규슈 남쪽 도카라 열도에서 6월부터 비교적 규모가 작은 지진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정작 당일에 아무 일도일어나지 않으면서 불안감은 급속히 사라지게 됐다.

    ‘트럼프 관세’와 ‘여성 총리’

    2025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재등장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대해 일방적인 관세 인상안을 내놓아 세계 경제가 혼돈에 빠졌다. 일본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여서 긴 시간의 논의 끝에 2025년 7월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일본은 미국이 예고한 25%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자동차와 농산물 등의 시장 개방과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특히 일본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5500억달러가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에 자유도가 떨어지면서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투자방식이라는 얘기가 일본 내부에서 나오는 가운데, 미국의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이라면 장기적으로 일본 기업에도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10월 4일 치러진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당선되고, 21일 임시국회에서 총리로 선출되면서 일본에서도 처음으로 여성 총리 시대가 열렸다. 다카이치 총리는 소견 발표에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버린다”고 밝히며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겠다”라고 말해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이 밖에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영화로 일본에서 큰 성공을 기록한 ‘국보’, 연예인과 스포츠선수가 이용하다 적발된 온라인 카지노의 준말인 ‘온카지’, 더운 여름이 지속되면서 계절이 여름과 겨울의 두 개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의 ‘2계’,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의 공식 캐릭터인 ‘먀쿠먀쿠’ 등도 2025년 일본 사회를 달군 유행어로 꼽혔다.

    [이승훈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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