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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心 사로잡는 금융사 여성만을 위한 보험·대출·카드 상품은
입력 : 2025.11.20 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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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위한 금융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출산한 여성에게 지원금을 주는 보험이 나오는가 하면, 여성에게소득 증빙 없이 대출을 내주는 여신상품이 출시되고, 여성의 소비 활동에 우대금리를 주는 적금이 인기리에 판매 중이다. 금융사가 여심을 사로잡으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사기업인 금융사가 여성 공략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금융사는 왜 여성 대상 금융상품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고 보는지, 또 관련 상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한화손보가 불붙인 ‘여성 위한 보험’ 경쟁최근 금융계에서 여성 상품 개발이 가장 활발한 영역은 보험업권이다. 생명보험사, 손해보험사를 가리지 않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화손해보험은 여성 보험 경쟁에 불을 붙인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한화손보는 2023년 7월 시그니처 여성건강보험 1.0을 출시한 이래 2025년 10월 20일 기준 시리즈 3번째 상품인 3.0까지 내놨다.
상품을 세 번이나 업그레이드하며 출시한 이유가 있다. 여성 전용 상품이 회사의 수익 증대에 톡톡한 역할을 한 것이다. 시그니처 여성건강보험은 월 20억원이 넘는 신계약 매출을 기록했다. 한화손보가 내놓은 보장성보험 단일상품 가운데 최고 실적이다. 올해 안으로 원수보험료 누적 실적은 5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사의 여성보험은 고객에게 선택받기 위해 여성 특화 담보를 다양하게 탑재했다. 유방과 갑상선, 자궁 관련 질환을 검사하고 치료하는 과정 전체를 보장하는 패키지 담보로 이뤄졌다. 기존 보험에서는 보장받기 어려웠던 정신질환과 흉터치료 영역까지 확장했다.
출산 지원금 특약도 있다. 여성이 첫째를 낳으면 100만원, 둘째를 출산하면 300만원, 셋째를 낳으면 500만원을 준다. 셋째까지 낳으면 총 9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고객이 늘어나는 효과를 얻었다. 시그니처 여성건강보험을 론칭한 후 한화손보에 새로 가입한 장기 고객은 직전 1년 대비 38% 증가했다. 이 기간 여성 고객이 60% 가까이 늘었다. 신규 고객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상품 출시 전 50% 미만에서 출시 후 56%로 올랐다.
손보사 이어 생보사도 참전여성 전용 상품의 매출 증대 효과가 입증되며 각 보험사가 여성 고객 모시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여성 상품이 확산하는 데는 설계사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고객이 “A사에는 여성 보험 있던데 여기엔 없어요?”라고 물어보면 설계사 입장에선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설계사가 본사에 여성상품 개발을 요청하고, 기업이 이에 부응하면서 각 보험사로 관련 상품이 퍼져나가는 것이다.
롯데손해보험은 2024년 1분기 ‘포미(For me) 언제나언니보험’을 선보였으며, 2025년 3분기엔 이를 확대 개편했다. 가입 연령과 보장 범위대폭 넓힌 것이다.
언제나언니보험은 여성에게 빈번히 발생하는 질병을 다방면으로 보장하는 상품이다. 여성생식기암에 걸리면 진단비 1000만원을 지급한다. 요실금 수술(급여)은 30만원을 보장한다. 특정부인과질환 고강도초음파집속술(HIFU) 치료에는 100만원을 보장한다. 보험료는 기본 담보만 선택했을 때 40세 여성을 기준으로 매월 3000원대다.
생명보험사도 이 전쟁에 참전했다. 생보사는 기존 먹거리였던 종신보험이 신세대로부터 좀체 관심받지 못하자 건강보험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건강보험 중에도 더 블루오션인 시장을 탐색하던 도중에 여성보험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올해 9월 교보생명은 교보더블업여성건강보험(무배당)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임신·출산부터 중년·노년기까지 여성 생애 전반의 주요 질병을 보장한다.
특히, 가입 20년이 지난 후에 3대 질환으로 진단받으면 보험금이 2배로 증액되는 구조를 채택하며 타사 상품과 차별화를 꾀했다.
여성 전용 상품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건 일반적으로 여성이 보험에 관심이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험을 비교하고 추천해주는 핀테크인 해빗팩토리의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월평균 보험료는 8만 3000원인 반면, 20대 여성은 9만 8000원을 쓴다.
성별 보험료 지출액의 차이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더 확대된다. 60대 여성의 월평균 보험료 지출은 48만 4000원으로 남성의 30만 7000원에 비해 50% 상당 많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여성이 어릴 때부터 고객으로 끌어들여 오랜 기간 충성고객으로 유지할 유인이 충분한 셈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빌려주는 대출비단 보험사만 여성에 공들이는 건 아니다. 여수신 상품에서도 여성 전용 상품이 늘어나고 있다. 저축은행은 여성에게 혜택을 주는 대출 상품을 판매 중이다. KB저축은행의 kiwi여성비상금대출이 대표적이다. 이 대출은 여성에게 소득 증빙없이 최대 500만원을 빌려주는 상품이다. 같은 저축은행에서 다른 비상금대출의 한도가 300만원인 것과 대조적이다. OK저축은행도 소득증빙 없이 최대 500만원을 빌려주는 주부OK론을 판매한다. 신용등급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나이스 신용평점이 351점 이상이면 심사를 받아볼 수 있다. 여성에게 고금리를 주는 적금 상품도 있다. 신협이 판매하는 레이디4U적금이 대표적이다.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레이디4U적금은 월간 최대 100만원을 최장 3년간 납입할 수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고금리 적금들이 대부분 월간 납입 한도를 30만원 이하로 설정해둔 것과 대조적이다.
우대금리를 받으면 연 최고 5%의 이율이 적용된다. 예적금 금리가 빠르게 떨어지며 최근 연 3%대 예금을 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금리 상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화와 뷰티, 쇼핑 등의 영역에서 신협 체크카드로 결제하면 우대 금리가 부여된다. 여성의 소비 패턴을 공략한 적금인 셈이다.
여성 기업가에겐 이자 깎아드려요금융을 통해 여성의 활발한 창업을 독려하려는 시도도 있다. IBK기업은행은 여성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패밀리기업대출을 판매하고 있다.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 기술보증기금과 손잡고 여성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에 최대 1%포인트의 우대금리를 부여한다.
충남신보는 경기침체 지속으로 어려움을 겪는 충남 여성기업을 위한 해당 특화보증의 규모를 올해 1000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특화보증의 보증료 감면 혜택도 강화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남성 위주의 기업 문화 때문에 여성 창업가는 초기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며 “금융을 통해 여성 기업이 더 잘 정착할 만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건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돼 결국 모두에게 이롭다”고 말했다.
확대되는 여성의 경제력 “가정 경제의 중심은 여성”금융사가 여성 상품 라인업을 늘리는 이유는 확대되는 여성의 경제력에 있다. 여성은 활발한 사회 활동을통해 소득을 늘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정 내 경제적 의사결정에서도 더 많은 결정권을 부여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NIQ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이 통제하는 소비 규모는 2024년 기준 31조 8000억달러(4경 45000조원)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계속 증가해 향후 5년 내 전 세계 재량비 지출의 75%를 여성이 결정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량지출은 기초 생활비 등 필수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금액이 아닌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금액을 의미한다.
NIQ에 따르면 여성은 지갑을 열 때 세 가지의 가치를 주로 살펴본다. 평등과 지속 가능성, 그리고 진정성이다. 여성의 경제 활동이 예전보다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성별 임금 격차와 유리천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성평등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려는 금융상품에 여성 고객이 더 마음을 쓸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배준성 한화손해보험 상품전략본부장(상무)은 “금융산업이 생애주기별 자산관리 고도화, 건강관리 등 헬스-웰스(Health-Wealth) 매니지먼트로 진화하면서, 여성이 가정의 재무와 건강을 함께 설계하는 핵심 의사결정자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 개발이 금융사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전쟁 직후 나온 ‘숙녀’ 만을 위한 금융 세계적 주목
숙녀금고 <사진 우리은행> 여성금융은 근래 들어 더 활발해지고 있지만, 2020년대에 완전히 새롭게 탄생한 개념은 아니다. 여성이 금융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은 역사적으로 지속돼 왔다.
한국만 해도 그렇다. 한국전쟁이 정전한 지 오래 지나지 않은 1959년에 이미 여성고객만을 위한 은행이 탄생했다. 그해 6월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이 여성만을 위한 숙녀금고를 종로지점 별실에 개설한 것이다. 당시 상업은행이 숙녀금고를 설치한건 한국전쟁 이후 여성의 경제 참여가 늘었기 때문이다. 전쟁통에 많은 남성이 죽거나 부상당하면서 여성은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이후엔 점차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상업은행은 주부를 비롯한 여성 거래자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해 저축을 증대하기 위해 숙녀금고를 설치했다. 여성을 통해 수신을 풍부하게 확보하면 대출 영업을 하는 데 유리하리라고 본 것이다. 숙녀금고 창구직원은 숙녀에 대한 에티켓이 뛰어난 남행원 가운데 선발됐다. 숙녀금고는 여성만을 위한 은행으로서 ‘금남의 금고’로 불릴만큼 여성 고객 위주의 차별화 전략을 전개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글로벌 금융 시장 기준으로 봐도 앞서나간 시도였다. 미국 금융 일간지 ‘아메리칸 뱅커’지는 1964년 6월 8일자 인터내셔널 뱅킹란의 기고문에 숙녀금고를 소개했다. 한국의 금융이 세계인에게 소개되는 데 여성 전용 은행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여성 중심의 금융 서비스로 노벨상을 받은 사례도 있다.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무함마드 유누스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총재다. 유누스 총재는 1983년 가장 가난한 사람도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려는 목표로 그라민은행을 설립했는데, 이 은행의 대출 고객 95%는 여성이었다. 기존의 은행은 남성에게만 대출해줬지만 그라민은행은 여성 고객을 적극 포용한 것이다. 유누스 총재는 여성에게 초점을 맞춘 이유를 “여성이 돈을 벌면 아이들에게 혜택이 가고, 가정이 달라지며, 조금씩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을 행복하게하지 않고는 가족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의 금융 접근성은 과거에 비해 개선됐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평가다.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 그중 하나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자산 2조원 이상 금융회사 99곳 중 28 곳은 여전히 여성 등기이사가 단 한명도 없다. 전체 임직원을 놓고 봤을 때, 금융권의 성비는 균형 잡혀 있으나, 직급이 올라갈수록 남초 현상이 심해지는 것이다.
모두에게 평등한 금융을 고민하기 위해선 금융사 결정권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더 높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창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2호 (2025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