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핑보험에 독서보험까지…일상에 스며드는 ‘맞춤보험’

    입력 : 2025.09.23 16: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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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최근 직장동료 추천으로 ‘수도권 지하철 지연보험’에 가입했다. 1년 보험료는 1400원. 휴대폰으로 1분 만에 가입할 수 있어 부담이 없었다. 며칠 뒤 여의도로 출근하던 중 지하철 고장으로 30분 넘게 지연되자 역에서 빠져 나와 택시를 탔다. 회사에 도착해 택시비 영수증과 티머니 카드번호를 보험사에 제출했더니 보험금 2만원이 지급됐다.

    보험사들이 내놓는 ‘미니보험’이 일상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다. 미니보험(소액단기보험)은 보장 범위가 좁고 기간은 짧지만, 보험료가 저렴해 부담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가입 절차도 대부분 모바일 앱이나 홈페이지에서 간편하게 끝난다. 과거에는 여행자보험, 휴대폰보험 정도가 대표적인 미니보험이었지만 최근엔 서핑·독서·반려견 산책 등 생활밀착형 테마로 확대되며 이색 상품도 쏟아지고 있다. 젊은 층을 겨냥한 틈새 상품이 쏟아지며 소비자 선택권도 넓어지고 있다.

    다만 미니보험은 보장 범위가 제한적이고 기간이 짧은 만큼 실제로 필요한지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 보험료는 손해율을 기반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무심코 여러 건 가입하다보면 불필요한 지출이 될 수 있다.

    보장범위 유의해야

    NH농협손해보험은 최근 성격유형지표(MBTI) 검사 결과에 맞춰 담보를 추천해주는 ‘NH헤아림MBTI보험’을 출시해 눈길을 끌었다. 예를 들어 타인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감정형(F) 고객에게는 ‘보이스피싱 보장’담보를, 야외 활동을 즐기는 외향형(E)에게는 ‘골절 진단비’를 권하는 식이다. 직관형(N)에는 원형탈모, 사고형(T)에는 통풍 진단비를 추천한다. 만 19~60세가 가입할 수 있으며 보험기간은 1년이다. 보험료는 40세 기준으로 모든 담보를 최소 가입금액으로 선택할 경우 남성 7210원, 여성 7220원 수준이다.

    롯데손해보험은 부모님이 당하는 사고에 대해 보장하는 상품인 ‘불효자 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부모님이 보이스피싱·스미싱 등 금융 사기나 강력 범죄를 당했을 때 최대 100만원을 지급한다. 손주 돌봄 중 골절·관절 손상 발생 시 30만~50만원을 보상한다. 양가 부모 중 2명 이상이 가입하면 보험료를 10% 할인한다. 월 1만원대 보험료를 한 번만 내면 1년간 보장된다.

    롯데손해보험은 자사 플랫폼 ‘앨리스(ALICE)’를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미니보험들을 선보이고 있다. 롯데손보에 따르면 앨리스를 통해 판매하는 미니보험 21종의 누적 판매 건수는 올해 상반기 기준 약 34만 건에 달하며, 2030세대 가입자가 48%다. 최근엔 여름철 레저 수요에 맞춘 ‘렛세이프(let:safe) 서핑보험’을 출시했다. 하루 1000원에 서핑 중 발생할 수 있는 상해, 골절, 후유장해 등을 보장하고, 타인 상해 시 최대 1억 5000만원까지 보상하는 ‘무동력 수상레저기구 배상책임’ 담보도 포함된다. 지난 겨울에 출시한 ‘스키보험’에 이어 계절별 레저 활동에 맞춰 미니보험 상품을 지속해서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또 ‘가전 A/S 보험’은 제습기, 식기 건조기 등 품목별로 월 수백원만 내면 연 100만원 한도 내에서 수리비를 지원한다. 스키장 사고를 보장하는 ‘레저상해보험’, 팬 활동인 ‘덕질’을 하며 발생할 수 있는 상해나 사기 피해를 보장하는 ‘덕밍아웃보험’도 눈길을 끈다. 덕밍아웃보험은 콘서트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해 사고와 콘서트 티켓·굿즈 등 직거래로 사기를 당하면 피해 금액의 90%를 50만원 한도 내에서 보상한다.

    1000원 미만 ‘동전 보험’

    보험료가 1000원 안되는 ‘동전 보험’도 있다. 2030세대의 경우 복잡한 보험약관이나 비싼 보험료에 부담을 느낄 수 있는데, 동전 보험은 미니보험보다 보장을 대폭 축소한 대신 보험료가 더 저렴하고 온라인에서 간편하게 가입 가능한 게 특징이다.

    NH농협생명의 ‘검진쏘옥 NHe 용종진단보험’은 30세 여성 기준 보험료가 월 850원에 불과하다. 만약 건강검진에서 대장·위·십이지장 등에서 용종이 발견되면 진단금 5만원을 지급한다. 보험료는 가입할 때 한 번만 내고 1년간 1회 보험 보장이 된다. 같은 보험사의 ‘환경쏘옥NHe독감케어보험’은 40세 기준 남자 5400원, 여자 7200원으로 독감 진단 후 항바이러스제 처방 시 보험금 20만원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교보라이프플래닛은 130원(20세 여성 기준)만 내면 가입 가능한 ‘바이러스 보험’을 출시했다. 일본뇌염, 홍역 등 바이러스 질환에 감염되면 건당 50만원을 보장해준다.

    롯데손해보험의 ‘플렉스 일렉트로닉스’는 가전 제품에 대해 품목별로 3년간 연간 100만원 한도로 고장 수리비용을 보장한다. 김치냉장고 보험료는 990원, 식기건조기는 940원, 제습기는 300원 등 가전 제품 15종류에 대해 원하는 품목만 골라서 보험을 들 수 있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을 겨냥한 미니보험도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NH농협생명의 ‘ESG쏘옥NHe대중교통보험’은 버스나 지하철, 기차 사고뿐 아니라 정류장 대기중 사고도 보장한다. 40세 여성 기준 보험료는 단 240원인데, 교통사고 사망 시 최대 2000만원까지 보장된다. 승용차·오토바이 사고는 500만원까지 보상한다.

    삼성화재는 업계 최초로 ‘수도권 지하철 지연보험’을 출시해 독점 판매권과 특허도 확보했다. 수도권 지하철이 30분 이상 지연돼 택시를 이용하면 월 1회, 3만원 한도로 택시비를 보상하는 실손 보험이다. 연 보험료는 1400원으로 저렴하다. 보상 절차가 간편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택시비 영수증과 티머니 카드번호만 제출하면 지연 사실과 탑승 시간 등을 자동으로 확인해 보험금을 지급한다. 특히 이 보험은 지하철 고장이나 지연이 발생할 때마다 신규 가입자가 급증해 출시 한 달 만에 가입자가 2000명을 넘기도 했다.

    반려동물 보험도 미니보험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 중이다. 캐롯손해보험의 ‘스마트온 펫산책보험’은 산책 중 반려견이 사람이나 다른 동물을 다치게 했을 경우, 반려견을 잃어버리거나 사고로 사망했을 경우를 보장한다. 산책을 나갈 때만 보험을 켜는 방식이라 효율적이다. 한 달 2000원의 기본료로 소형견 기준 산책 1회(4시간)에 38원이 차감돼 월 52회까지는 추가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다.

    펫보험 전문 소액단기보험사(미니 보험사)가 출범하기도 했다. 마이브라운반려동물전문보험은 삼성화재와 삼성생명 등이 출자한 국내 첫 미니보험사로, 반려동물 보험에만 특화된 전용 상품을 선보인다. 대표상품인 ‘옐로우 플랜’은 말티즈 2세 기준 월 1만 9863원, 푸들 기준 월 1만 8203원으로 연간 최대 3000만원을 보장한다. MRI·CT 등 고액검사와 고액치료 각 6종을 횟수 제한 없이 보장하는 게 특징이다.

    고가 스마트폰 보급 확산으로 휴대폰 파손보험도 주목받고 있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은 수리비를 지원하는 휴대폰 보험에 자기부담금 10%(최소 3만원) 옵션을 도입했다. 휴대폰 보험은 수리보장횟수(1~5회), 자기부담금 비율(10~40%)을 사용자가 직접 선택해 보험료를 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갤럭시 Z 플립7 사용자가 자기부담금 10%, 수리 보장 3회를 선택해 가입하면 월 보험료는 약 7400원 수준이며, 파손 시 매번 최대 80만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 자기부담금 10% 옵션과 30% 옵션 간 보험료 차이는 2000원 안팎이다.

    트렌드 겨냥한 신상품 잇달아

    트렌드를 겨냥한 신상품 출시도 이어지고 있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교보e독서안심보험’을 내놨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탄생이 독서 열풍으로 이어지자 이에 발맞춰 독서 습관과 관련이 깊거나 꼭 필요한 부분만을 짧게 보장하는 상품을 새롭게 개발한 것이다.

    이 보험은 독서 중 발생할 수 있는 안구질환 , 근육·관절장애 , VDT(Visual Display Terminal)증후군, 척추질환 등을 보장하며 관련 질환 수술 시 연 1회, 수술보험 10만원(가입금액 1000만원 기준)을 지급한다. 40세 남성이 1회 일시납으로 가입할 경우 보험료는 1290원 수준이며, 가입 나이는 20~60세, 보험기간은 1년이다.

    이 밖에도 동양생명은 교통재해 시 응급실 내원비와 골절 진단 시 각각 10만원을 보장하는 ‘미니교통재해보험’을 1000원대 보험료로 출시했다. KB라이프는 지하철,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 이용 중 사망 시 최대 5000만원, 장해 진단 시 최대 1500만원을 보장하는 ‘대중교통안심보험’을 출시했다. 보험료는 남성 1200원, 여성 500원 수준이다.

    사실 보험사 입장에서 이런 미니보험은 장기보험 대비 수익성이 높지 않다. 보험사들은 고객이 낸 보험료 중 일부는 보험금 지급을 위한 준비금으로 쌓고, 나머지는 채권·주식·부동산 등으로 운용해 투자 수익을 낸다. 10년, 20년 이상 납부하는 장기보험은 고객이 오래 유지하는 만큼 운용 자금 규모가 커지지만, 미니보험은 계약 기간이 짧아 보험료를 오래 받지 못하고 보험료 자체가 소액이라 대규모 수익 창출이 어렵다. 여기에 설계·마케팅·관리 비용까지 감안하면 수익성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보험사들이 미니보험을 속속 내놓는 이유는 브랜드 인지도와 고객 접점을 넓히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니보험은 2030세대가 보험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치 ‘체험상품’처럼, 가볍게 가입해본 경험이 장기보험 가입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MZ세대는 재미와 개성을 중시하는 만큼, 이들 잠재적 고객을 겨냥한 보험사들의 맞춤형·이색형 미니보험 상품도 늘어날 것”이라며 “다만 보험료가 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약관과 보상 범위를 꼼꼼하게 따져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김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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