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 활성화 전략의 뉴패러다임 : 신야간경제 (1)

    입력 : 2025.09.11 10:29:46

  • 어두운 한국의 지방 도시
    밤의 가능성에 주목할 때
    무더위와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방도시 경제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청년 일자리는 줄어들고 시민의 삶은 지쳐간다. 이제는 단순한 회복 전략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성장의 돌파구, 신야간경제(NTE:Night-Time Economy)가 필요한 시점이다.
    가치 있는 도시, 활기 넘치는 도시, 일자리가 넘치는 도시로 변화할 수 있는 전략. 이는 문화와 복지를 통한 시민의 활력 회복, 외부 관광객 유치에 따른 소비 확대, 그리고 경제·문화·고용·복지 네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이다. 그 해답은 낮이 아닌 밤에 숨겨져 있다.
    세계축제협회 아시아지부 회장으로 활동하는 정강환 배재대학교 관광축제한류대학원장은 소멸에 위험에 직면한 국내 지방도시들에 ‘신야간경제’ 전략을 적용하면 도시 활성화에 획기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주창한다. 정 회장의 분석을 통해 ‘신야간경제’가 지역활성화의 법이 될 수 있을지 시리즈로 진단한다.

    왜 지금, ‘야간’인가

    지금까지 도시가 집중해온 시간은 대부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하지만 그 시간대는 이미 활성화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수많은 정책과 시도가 있었지만,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등한했던 야간은 여전히 미개척의 영역이다. 이제는 “야간에도 시민에게 문화적·경제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천착해야 한다. 낮에 국한해서 답을 찾으려다 보니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신야간경제 성장 배경에는 세계인들의 취침시간이 늦어진다는 점이 자리잡고 있다. 2018년 보고서에서 따르면 런던 시민들을 당시에 54%가 저녁 11시 이후에 잠들고 24%는 자정 이후 잠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런던 시민 65%는 적어도 일주일에 1번 이상 야간활동을 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런던 시장은 주말 24시간 운행하는 지하철도 만들고 야간시장도 임명하면서 창조경제를 형성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영국 런던의 런던아이(London Eye)와 런던 카운티 홀(London County Hall)을 배경으로 한 템즈강(River Thames) 야경
    영국 런던의 런던아이(London Eye)와 런던 카운티 홀(London County Hall)을 배경으로 한 템즈강(River Thames) 야경

    세계가 선택한 전략, 신야간경제

    유럽에서 시작된 ‘신야간경제’는 이제 글로벌 도시 활성화의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영국은 2021년 코로나 직후 ‘신야간경제’를 도입해 167조원 시장을 열었다. 2022년에는 ‘격리’에서 ‘만남과 모임의 욕구’를 어필하면서 240조원 지출을 기록해 유럽 국가들에게 주목의 대상이 됐다. 2022년 야간경제 소비 규모는 약 256조원, 이 가운데 문화 콘텐츠 지출이 72조원에 달해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5.1% 가량을 차지했다. 같은 해 1920만 명의 음악 관광객이 영국을 방문해 15조원의 수익을 올렸고, 6만 2000개 이상의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러한 성과는 신야간경제가 단순히 낮 시간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는 부차적인 활동이 아니라, 야간 그 자체가 도시 발전의 새로운 무대이자 문화와 관광을 넘어 사회적 안정과 고용 창출을 견인하는 핵심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특히 야간은 이제 단순히 휴식과 소비의 시간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교류가 일어나고, 다양한 문화적 실험과 창의적 활동이 꽃피며, 새로운 경제적 기회가 창출되는 주체적인 시간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야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한 도시의 국제적 경쟁력과 주민의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영국 런던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 London)
    영국 런던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 London)

    이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2024년 영국의 야간경제 시장 가치는 288조원에 이르렀고, 야간 문화경제는 80조원으로 성장했다. 이 뿐만 아니다. 영국 내수 ‘야간경제’ 시장은 데이타임 경제보다 두 배 이상 크며, 포스트 팬데믹 회복세에서 야간경제가 더욱 빠르게 회복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영국의 성공은 호주로 파급돼 지난 2022/2023년 보고서에 의하면 시드니 맬버른을 중심으로 156조원 시장을 창출했다. 전년에 비해 19%나 확대되면서 호주 경제를 살렸다. 중국은 2019년에 신개념 정책을 도입했다가 2023년에는300조원 내수시장을 열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밤의 잠재력은 단순한 유흥이 아니다. 문화·예술·관광 분야에서 나타나는 상당한 소비력과 고용 효과야말로 신야간경제가 주목받는 이유다.

    뒤늦은 한국, 잠재력은 충분
    아일랜드 더블린 템플바 구역(Temple Bar, Dublin)
    아일랜드 더블린 템플바 구역(Temple Bar, Dublin)

    유럽에서 시작된 신야간경제는 북미, 오세아니아, 중국 등 전세계로 퍼지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이런 흐름에 끼지 못한 상황이다. 대도시의 한국인들이 주말에는 대부분 자정이후에 잠자리에 드는 현실에도 야간 여가활동에 대한 정책적 배려나 긍정적으로 유도하는 소비지출 유도는 미흡하다. 아직도 술집, 클럽, 카페, 식당, 영화관정도의 야간 옵션을 가지고 야간경제가 발전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야간경제에는 퇴폐, 마약 등과 연결될 수 있다는 인식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과거 흥청거렸던 한국의 밤은 오히려 어두워지는 형편이다.

    반면 런던에서는 주말에 야간 개방하는 박물관들이 15개가 넘는다. 이미 오래전에 주말에 24시간 지하철을 운행 중이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주말 야간 갤러리 문화공간 행사들을 보노라면 관광객들은 깊은 인상을 받는다.

    중국도 24시간 서점들이 젊은이들의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며 긍정적인 소비를 유도한다. 싱가포르의 야간정원은 야간쇼핑과 연결되는 독특한 포인트다. 신야간경제 국가들의 젊은이들의 클럽이나 바에서 알콜농도는 이제 저알콜과 무알콜을 선호하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 모두가 야간을 건전하게 유도하는 주요 요소들이다. 런던의 신야간경제는 최근 7년간 알콜 관련 야간범죄를 절반으로 줄였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세계 20개국 40개 도시의 신야간경제 사례에도 한국 도시는 포함되지 않았다. 국제적 경쟁력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도 위축될 필요는 없다. 한국의 잠재력은 충분하다. 거리와 문화 공간에 야간 특화 콘텐츠와 시스템을 더하고, 야간시장(Night Mayor) 같은 전담 조직을 마련하기만 하면 네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기회를 열 수 있다. 신야간경제는 음주, 회식, 야간간판 정도의 술집, 식당 카페 등의 좁은 개념에 국한해선 안된다. 박물관, 문화유산, 야간쇼핑, 야간서점, 스포츠, VR 게임, 교통시스템 등으로 생각의 범위와 혁신이 필요하다.

    박물관·미술관의 주말 야간개장, 주말 24시간 지하철, 24시간 서점 지원, 야간정원 조성 등은 모두 정부의 리더들과 공무원들의 사고 전환을 요구한다. 선진국처럼 야간시장(Night Mayor) 같은 전담조직이 필요한 지점이다. 도시의 야간시장이 야간경제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면 성공 가능성은 더 커진다.

    결국 관점의 전환이 긴요하다. 단순한 ‘야간관광’이 아니라 ‘신야간경제’로 접근해야 한다. 세계는 이미 ‘밤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도시의 밤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곧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밤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 이제는 한국도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도시의 밤을 전략적으로 키워야 할 때다.

    사진설명

    ▶ 정강환 세계축제협회 아시아지부 회장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93년 배재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뒤 국내 유일 축제경영대학원인 배재대학교 관광축제한류대학원을 이끌고 있다. 한국 축제학 개척자로 꼽히며 100여 명의 석·박사 졸업생을 배출해 국내외 축제 리더를 양성해왔다. 50여 개 나라가 활동하는 세계축제협회의 아시아·한국지부 회장으로 활동하며 주민화합 중심에서 지역개발형 축제로 전환을 이끈 ‘축제계몽운동’을 30여 년간 진행해 축제산업 패러다임을 바꿨다. 보령머드축제, 추억의 충장축제, 서구아트페스티벌 등 대표적 지역개발형 축제를 기획•개발했다. 정동야행, 진주남강유등축제 등을 통해 한국 도시의 야간 경쟁력 강화를 주창하고, 지방소멸 위기 해법으로 야간형 축제와 신(新)야간경제를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영국 첼시 플라워쇼, 스페인 토마토축제, 캐나다 윈터루드 등 세계적 축제와 교류도 확대해 K-축제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오는 9월 중순 세계 축제계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세계축제협회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70년 만에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헌액된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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