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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터와 산업시설의 핵심 인프라 전자 기업의 새로운 전장된 냉난방공조
입력 : 2025.08.11 17:3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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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센서.서버더홈 삼성과 LG가 냉난방공조(HVAC)를 본격적인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기존 소비자 가전 사업만으로는 더 이상 성장 동력을 찾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산업용 냉방과 에너지 솔루션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HVAC는 오랜 기간 건설사나 설비 전문 업체의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다. 고성능 서버와 반도체 칩에서 발생하는 발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 기술이 중요해지면서 냉난방공조는 ‘설비’가 아닌 ‘디지털 인프라 일부’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특히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공조 시스템의 기술력에 따라 AI 연산 성능이나 전력 효율이 좌우되는 시대가 열리면서 전자업계는 이 시장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테크나비오에 따르면 전 세계 HVAC 시장은 2027년까지 약 740억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6.5% 수준이다. 특히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고효율 히트펌프 보급이 확산되고 있으며 미국·중국 등 AI 주요국에서도 서버량 증가에 따른 냉각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냉방 기술이 단순한 생활 편의가 아니라 국가 인프라 차원의 전략 자산으로 떠오른 셈이다.
삼성·LG, HVAC로 사업 확장 본격화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 흐름을 간파하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연말 조직개편을 통해 ‘ES(에너지솔루션) 사업본부’를 신설하며 HVAC 사업을 회사 차원의 핵심 축 중의 하나로 끌어올렸다. LG전자는 조직을 분리하고 해외 전문기업을 인수하는 등 독립 성장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LG전자가 최근 인수한 노르웨이 온수 솔루션 기업 ‘OSO’는 유럽 시장에서 고효율 워터스토리지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다. 삼성전자도 지난 5월 독일 산업용 공조 전문업체 ‘플랙트’를 인수하며 본격적인 진입을 선언했다. 플랙트는 데이터센터, 병원, 박물관 등 고정밀 환경 제어가 필요한 시설에 특화된 솔루션을 보유한 회사다. 삼성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DVM(디지털 멀티 냉방시스템) 중심의 기존 공조 라인업을 산업용 냉방 시장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특히 스마트 싱스를 기반으로 공조 시스템을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 기반으로 통합 제어하는 ‘HVAC 플랫폼’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전자업계의 이런 변화는 기존 소비자 가전의 성장 한계와 무관치 않다. 스마트폰과 TV, 백색가전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B2B와 인프라 중심 산업으로 확장하지 않으면 성장 정체를 피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HVAC은 전자제품, 에너지 솔루션, 인프라 기술이 융합되는 산업으로 전자업계가 그동안 축적한 기술 경쟁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펼칠 수 있는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는 냉각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며 “이제 냉방 기술은 산업 전체의 작동 조건이자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LG는 ‘통합·확대’, 삼성은 ‘외형·속도’전자업계의 HVAC 진출 방식은 기업마다 다르다. 같은 목표를 향하더라도 접근법이 다르면 사업의 전개 방식은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LG전자는 조직 역량을 활용해 차근차근 영역을 넓히는 전략을 택했다. 급격한 외형 확장보다는 내재화된 기술과 자산을 바탕으로 통합형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 일환으로 최근 LG전자가 수천억 원을 들여 인수한 노르웨이 기업 OSO는 단순한 포트폴리오 보완용이 아니라 LG가 지향하는 ‘통합형 냉난방 공조 플랫폼’ 구축의 핵심 축으로 풀이된다. OSO는 유럽 고효율 온수기 시장의 선두 주자로 고성능 워터스토리지 기술을 기반으로 히트펌프와 결합한 에너지 절감 솔루션을 제공한다. 히트펌프 기반 온수 시스템은 유럽연합의 탄소중립 기조 아래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분야다. LG전자는 이 회사를 통해 공조 중심의 HVAC 사업을 온수·난방까지 아우르는 에너지 솔루션 체계로 확장하고 있다. 온도 조절이라는 단일 기능이 아니라, 에너지 흐름 전체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다. 특히 LG전자가 주목한 것은 ‘유럽 현지화’ 전략이다. OSO는 노르웨이 현지 생산 인프라와 기술 인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어 인수 직후부터 제품을 현지에서 공급할 수 있다. 내부 제조 역량과 외부 기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즉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수 전략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시장 진입의 속도’를 우선한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독일 플랙트를 인수하며 유럽 산업용 공조 시장에 빠르게 진입했다. 100년 전통의 플랙트는 병원, 데이터센터, 공공시설 등 고정밀 제어가 필요한 건축물 중심의 대형 중앙공조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한 회사다. 삼성전자는 이 회사를 통해 단일 제품군이 아닌 ‘프로젝트 단위 턴키 수주’ 역량까지 확보하게 됐다. 삼성전자의 기존 HVAC 사업은 디지털 멀티 냉방 시스템(DVM) 기반의 가정용·상업용 위주였지만 이번 인수로 산업용 B2B라인업을 일거에 확보했다. 특히 공조시스템과 IoT를 연결하는 기술, 고효율 필터와 친환경 냉매 솔루션 등은 삼성의 가전·네트워크 역량과 결합해 더 큰 확장 가능성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플랙트는 유럽뿐 아니라 중동, 북미, 아시아 등 60개국 이상에 공급망을 갖추고 있으며, 대형 프로젝트 수주와 유지관리 역량도 보유하고 있다. 삼성 입장에선 내부에 없는 기술과 시장 레퍼런스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즉시 전개형 자산’인 셈이다.
LG전자의 초대형 냉방기 ‘칠러(Chiller)’ 결과적으로 LG는 축적된 내공을 바탕으로 수직계열화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전략, 삼성은 검증된 시장 전문기업을 통해 외형과 속도를 확보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LG가 자체 역량에 외부 조각을 덧붙여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이라면, 삼성은 핵심 조각 자체를 통째로 들여와 구조를 빠르게 세우는 방식이다. 공조 사업이라는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조직 중심 대 인수 중심이라는 전략적 차별화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AI 냉각부터 탄소중립까지냉난방공조(HVAC)는 단순한 생활가전 영역을 넘어 데이터센터와 산업시설의 핵심 인프라로 격상되고 있다. AI 연산 성능 저하를 막기 위한 냉각 기술 경쟁이 본격화 되면서, HVAC은 전자업계가 가장 먼저 진입해야 할 전략 거점이 되고 있다. AI시대가 도래하며 데이터센터의 물리적 구조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고성능그래픽처리장치(GPU)를 기반으로 한 연산 장비가 대거 도입되면서 서버당 발열량이 기존 대비 수 배 이상 높아졌다. 단위 면적당 수백 와트(W)에 달하는 열이 집중되면서 기존의 공랭시스템만으로는 열을 제어하기 어려워졌고 냉각 효율은 곧바로 AI 연산 성능과 직결되는 요인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상한 것이 액체냉각(Liquid Cooling) 기술이다. 냉각수나 냉매를 직접 열원에 접촉시키는 방식이다. 공기보다 20~30배 이상 높은 열전도율을 바탕으로 효율을 극대화한다. 나아가 GPU·CPU 칩 자체를 액체에 담그는 침지냉각(Immersion Cooling)은 최근 데이터센터의 고밀도화 흐름과 맞물려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더 이상 통신·서버 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전자 기업들이 HVAC 기술과 접목해 데이터센터 전용 냉각 솔루션 시장에 뛰어든 배경이기도 하다. 단순한 에어컨이 아닌, 반도체와 연산 인프라의 생태계 일부로서 공조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LG전자는 실제로 액체냉각을 기반으로 한 CDU(Cooling Distribution Unit) 기술을 이미 자체 개발했다. 데이터센터에서 작동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에 냉각수를 흘려보내 열을 식히는 방식이다. LG전자가 개발한 CDU는 액체 기반이라 누수로 인한 시설물 훼손이 없도록 누수 전용 센서도 탑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플랙트 인수를 통해, 서버를 냉각액으로 직접 식히는 액체냉각 방식인 CDU 분야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냉각 용량과 효율을 갖춘 제품군을 확보했다. 여기에 스마트싱스 플랫폼을 연동해 원격 제어, 에너지 사용 최적화 등 ‘지능형 HVAC’ 구현할 것으로 기대된다. 플랙트는 지난해 ‘데이터센터 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DCS 어워즈 2024에서 ‘데이터센터 냉각 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냉방 기술은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냉매를 포함한 에너지 소비 구조 전반이 ESG 기준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EU는 건축물 에너지 효율지수(EPC)와 탄소배출 권고 기준에 따라 냉난방 시스템의 효율을 평가하고 있다. 미국 역시 데이터센터 PUE 기준을 통해 냉각 손실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HVAC, 장비에서 플랫폼으로플랙트그룹 냉난방공조(HVAC) 사업은 또한 플랫폼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 장비 판매를 넘어 건물 전체 냉난방 시스템을 연결하고 AI 기반으로 제어하는 ‘지능형 HVAC’ 시장 주도권 싸움이 본격화됐다. 삼성은 스마트싱스 프로를 앞세워 공조 설비의 통합 제어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에너지 사용량 모니터링, 원격 절전 설정, 설비 간 연동 기능을 산업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이를 데이터센터·병원·연구소 등 B2B 환경에 맞춰 확장 중이다. LG는 AI 기반 제어 알고리즘과 히트펌프·워터스토리지 장비를 결합한 통합 플랫폼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LG전자는 이 분야에서 비(非)하드웨어 부문 매출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ES사업본부 전체 매출에서 비하드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 수준이지만, 통합관리 솔루션과 유지보수, 구독형 서비스 확대를 통해 이를 2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조는 더 이상 공기를 식히는 장비가 아니라, 에너지 효율과 데이터 기반 제어가 핵심인 전략 산업”이라며 “결국 누가 플랫폼을 장악하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박소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