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춘 서울축산새마을금고 이사장 “중앙회가 바뀌지 않으면 새마을금고의 미래는 없다”

    입력 : 2025.06.30 15:20:48

  • 서울 성동구 동일로를 따라가다 보면 바깥에서 보면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서울축산새마을금고 본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지난 18년간 새마을금고의 고질적 약점을 정면으로 돌파해낸 국내 대표 성공사례로 꼽힌다. 1979년, 축산기업 산하 직장금고로 출발했을 당시 이 금고의 자산은 10억원 남짓, 거래자는 200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7년 3월, 축산업계의 실력자이자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유재춘 이사장이 금고를 맡으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당시 서울축산금고는 자산 180억원 규모의 소규모 금고였다. 조직은 비대했고 실적은 정체됐으며 재무구조는 취약했다. 직원 사기는 낮고, 회원 수도 감소세였다. 더 큰 위기는 “더는 직장금고 체제로는 존립할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그가 첫 임원회의에서 내세운 단 하나의 원칙은 지금까지도 서울축산금고의 근간이 된다.

    “합병 없이 자생적으로 성장한다. 조직을 키우되 허공의 외형이 아니라 내부를 튼튼히 한다.”

    그는 기존의 불필요한 부서를 통폐합하고, 보고 체계를 반으로 줄였으며, 클러스터 업무 구조를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사내에서는 ‘유재춘 표 클러스터 창구제’로 불린다. 창구 직원이 대출, 공제, 상담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꾼 것이다. 이를 통해 고객 대기 시간은 절반으로 줄었고, 직원들의 업무 이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이 같은 혁신 덕분에 자산은 180억원에서 현재 9500억원으로 50배 넘게 성장했다. 놀라운 점은 단 한 번의 합병 없이 오로지 내부 혁신과 철저한 현장중심 경영으로만 이뤄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국 새마을금고에서도 드문 사례로 통한다.

    유재춘 서울축산새마을 금고 이사장
    유재춘 서울축산새마을 금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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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존폐 위기에 놓였던 서울축산새마을금고를 맡아 단일 금고로는 드물게 합병 없이 자산을 180억원에서 9500억원으로 키워낸 혁신적 경영인이다. 현장을 중시하는 외유내강형 리더십으로 조직을 슬림화하고 직원 전문성을 강화했으며, 지역 밀착 금융과 ESG 경영으로 금고의 신뢰를 높였다. 축산기업중앙회장을 겸임하며 전국 축산업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외유내강’ 리더십과 현장중심 경영

    유재춘 이사장을 처음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온화한 인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조용히 웃으며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다. 그러나 조직 경영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밖으로는 온화하되, 안으로는 원칙과 성과로만 평가한다.”

    실제로 그는 서울축산금고 직원들에게 ‘가족 같은 조직’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전문가 조직’을 강조한다. 그는 “가족은 일이 안 돼도 이해하지만 전문가 집단은 결과로 말한다”고 말한다.

    서울축산금고의 현장 영업 방식은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시스템이다. 그가 자주 하는 말은 “우리 고객은 낮에는 손님 받고 밤에는 장부 정리한다. 그러니 우리가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새벽 도매시장, 야간 식당, 주말 장터, 지역 축제 현장 까지 금고 직원들이 태블릿과 휴대 프린터를 들고 고객을 만나는 모습은 이제 성동구 상권에선 익숙한 풍경이다. 덕분에 고객과의 신뢰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산이 됐다.

    또한 그는 ‘합리적으로 주더라도 공정하게 배분한다’는 성과급 원칙을 고수했다. 그는 임기 초기에 이미 성과급제를 도입해 실적에 따라 수당을 차등 지급했고, 분기마다 투명하게 실적을 공개해 직원들이 불만을 가질 틈을 없앴다. 기본급보다 성과급 비중이 지나치게 높지 않으면서도 ‘내가 뛴 만큼 나에게 돌아온다’는 신뢰가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덕분에 직원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전국 금고 평균보다 2년 이상 길다. 많은 새마을금고가 채용과 퇴사를 반복하며 직원 교육에 애쓰는 동안, 서울축산금고는 탄탄한 노하우와 충성도를 함께 갖춘 팀으로 조직 안정성을 높여왔다.

    금고 살릴 숨구멍… 미수이자·충당금 유예 절실

    유재춘 이사장은 일선금고의 중요한 현안 중 하나로 채무조정 채권의 미수이자 미인식 문제와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에 따른 부담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분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재무구조가 취약한 금고에는 엄청난 비용 압박으로 작용해 회원에게 돌아갈 혜택이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미 어려운 상황에서 추가 부담까지 지우면 사실상 숨통이 막힙니다. 반드시 적정 기간 연기하거나 단계적 시행방안을 마련해 숨통을 틔워줘야 합니다. 중앙회와 행안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해주길 간곡히 바랍니다. 그래야만 금고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며 지역 서민을 위한 안전망 기능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현장 일선에서 체감하는 가장 무거운 실무 부담 중 하나로 꼽힌다.

    서울축산금고의 성공 뒤에는 중앙회와의 보이지 않는 긴장도 함께 숨 쉬고 있다. 전국 1275개 새마을금고를 하나로 묶는 중앙회는 명목상 ‘지원기관’이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검사권과 제재권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다. 지난해 새마을금고 사상 초유의 중앙회장 구속 사태는 내부 견제기능의 부재를 드러냈다. 유재춘 이사장은 이를 ‘중앙회 시스템의 구조적 실패’라고 진단한다.

    그가 가장 문제로 삼는 것은 검사권과 제재권이 한 기관 안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검사하고 바로 징계한다는 것은 검사가 곧 판사라는 뜻 입니다. 외부 위원과 현장 이사장이 함께 참여하는 제재심의위원회를 만들어야 공정성이 담보됩니다.”

    그는 여러 차례 이 같은 문제를 중앙회에 건의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과 오히려 강화된 검사가 전부였다고 한다.

    최근 새마을금고를 둘러싼 여러 사건과 금융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제도 개선과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한 대대적인 혁신안을 내놨다.

    지난 6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새마을금고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자산 8000억원 이상 대형 금고는 반드시 상근감사를 선임해야 하며, 3000억원 이상 금고는 매년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또한 감독기관의 직접 제재가 가능한 임직원 범위가 전무·상무 등 핵심 간부까지 확대되어 실질적인 책임과 투명성이 강화될 전망이다.

    이번 개정안은 몇년간 전국적 뱅크런 사태와 중앙회장 구속으로 드러난 새마을금고 시스템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되었으며, 행안부는 이를 통해 국민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 서민금융기관으로 새마을금고를 재정립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장 금고의 자율성과 책임경영을 동시에 요구하는 새로운 시험대가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서울축산금고는 이 규제에 모두 해당한다. 그는 규제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자산 천억원 금고와 1조원 금고를 동일 기준으로 두드리면 작은 금고가 먼저 무너진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전국 새마을금고의 평균 자산은 2260억원 수준이다. 이를 한 기준으로 관리하면 소규모 금고는 무리한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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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실채권 처리, 자회사 비용구조 개선 필요

    새마을금고의 뿌리 깊은 현안 중 하나는 부실채권(NPL) 처리다. 대부분의 금고는 중앙회 자회사인 MCI대부에 부실채권을 매각하는데, 문제는 높은 수수료다.

    “자회사가 금고를 위해 만들어졌다면 최소한의 관리비만 받고 이익은 다시 돌려줘야 합니다.”

    그는 수수료를 현재 1.7%에서 실비 수준인 0.5%대로 낮추거나 초과 수익을 환원하자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마저 어렵다면 금고별로 수수료를 차등 적용해 어려운 금고일수록 부담을 덜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한 그는 중앙회가 투입한 1조원 규모의 자회사 투자를 일선금고의 희생의 대가라고 표현했다. MG손보, M캐피탈 등 일부 자회사는 수년째 적자를 내면서도 금고가 쌓아둔 자금으로 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어려운 금고를 구조조정하고 건전화했다면 뱅크런도 방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가 ‘중앙회의 대대적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이유다.

    예보기금 문제도 시급하다. 부실 금고 합병과 청산에 쓰이는 기금이 고갈되면 중앙회는 추가 납부를 요구한다. 이는 곧 건강한 금고에도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는 “한시적으로 중앙회 적립금을 별도 계정으로 돌려 취약 금고를 지원하고 예보기금 인상은 단계적으로 해야한다”라고 강조한다. 즉, 중앙회가 일선 금고의 ‘한국은행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다.

    ‘신뢰의 MG’를 위한 5+1 혁신안

    서울축산새마을금고의 본질은 ‘서민금융’이다. 은행 문턱이 높은 이들에게 작지만 든든한 금융 파트너가 되어주고, 지역에 이익을 환원하는 구조다. 유 이사장은 이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 소상공인 지원책과 연결한 ‘맞춤형 복지금융 플랫폼’을 만들고자 한다. 이미 그는 장애인복지단체 연계 프로그램, 시니어 돌봄 적금, 저소득층 긴급 대출 등 다양한 지역 맞춤 상품으로 ESG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중앙회에 ‘5+1 혁신안’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첫째, 부실 자회사를 정리하고 둘째, 자회사 순이익의 최소 30%를 금고로 환원하며 셋째, 자산 규모별 맞춤형 지도감독 체계를 도입하고 넷째, 검사와 제재 기능을 분리해 투명성을 확보하며 다섯째, 맞춤형 ESG 지원 플랫폼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1’은 중앙회가 단기 유동성 지원창구를 마련해 뱅크런 사태를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인터뷰 마지막 질문에 그는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금고는 서민과 지역을 위한 공공재입니다. 60년을 지켜온 무형의 신뢰는 하루만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중앙회가 현장을 믿고 자율성을 보장하면 우리는 반드시 더 강해집니다. 일선 금고가 원하는 현안에 보다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서울축산새마을금고가 증명한 것은 간단하다. 현장을 존중하고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이면 작은 조직도 흔들림 없는 뿌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방아쇠를 당길지는 중앙회에 달려있다. 변화할 것인가, 무너질 것인가. 새마을금고의 운명은 다시 현장의 손끝에서 결정된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8호 (2025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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