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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섭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美·中, 상호관세 유예 전격 합의는 했는데… ‘실마리 vs 미봉책’ 엇갈리는 전망
입력 : 2025.06.23 1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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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왼쪽 맨 앞)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오른쪽 맨 앞)가 지난 5월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양국 경제·무역 고위급 회담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무역전쟁을 벌이던 미국과 중국이 파국을 피했다. ‘탐색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던 첫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상호 간 적용해온 관세율을 향후 90일간 대폭 낮추기로 전격 합의한 것이다. 세계 1·2위 경제 대국 간 무역 갈등의 실마리를 푸는 첫 걸음이라는 평가와 함께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어질 미·중 추가 협상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5월 10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무역협상을 벌인 뒤 다음날인 5월 12일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공동 성명에 따르면, 미·중은 5월 14일부터 향후 90일간 상대국 제품에 적용하던 관세율을 각각 115%포인트씩 인하기로 했다. 이로써 미국의 대중 관세율은 145%에서 30%, 중국의 대미 관세율은 125%에서 10%로 일시적으로 낮아지게 됐다.
미국 측 수석대표인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지난 5월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합의와 관련해 “미국 무역적자가 지난 수년간 급증하면서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생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며 “이에 중국은 유일한 보복 조치를 했고 이 과정에서 관세율은 지속 불가능한 수준으로 악화됐다”고 밝혔다. 이어 “높은 관세로 인한 결과는 양국 간의 금수조치에 해당하는 것이었다”며 “어느 쪽도 그런 결과는 원하지 않고, 우리는 균형 잡힌 무역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또 “양국 대표단은 어느 쪽도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은 원하지 않는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했다.
같은 날 중국 상무부도 “양측이 평등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이견을 해결하기 위한 내딘 발걸음”이라고 평가한 뒤 “(이번 합의는) 양국 생산자와 소비자의 기대뿐 아니라 양국과 세계의 공동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이번 회담을 기초로 중국과 계속 마주 보고 일방적 관세 인상이라는 잘못된 처사를 철저히 고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중국 측 수석 대표인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는 전날 “중·미는 중요한 컨센서스를 이뤘다”며 “양측은 통상·경제협의 메커니즘을 구축하기로 합의했으며 후속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중국은 미국과 협력해 차이는 관리하고 협력 분야는 확대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중국 상무부는 지난 4월 4일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에 올린 미국 기업 11곳에 대한 제재를 90일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또 지난달 9일 같은 조치를 취한 미국 군수기업 6곳에 대해서는 제재를 중단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지난 4월 미국 기업 28곳에 내린 이중 용도 물자(민간용으로도 군용으로도 쓸 수 있는 물자) 수출통제 조치도 90일간 중단하기로 했다.
이로써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던 양국 간 관세전쟁이 일단은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동성명을 통해 양측은 고위급 협의체가 정례화될 것임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예상을 웃도는 관세 인하폭을 반기면서 앞으로 90일간 미·중이 추가 협상 과정에서 무엇을 주고 받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추가 협상 과정에서 ‘펜타닐 관세’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지도 관심사다. 이번 합의를 거쳐 잠정 인하된 미국의 대중 관세율 30%에는 펜타닐 관세 20%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펜타닐을 이유로 지난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중국산 제품에 총 2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중국 상무부는 지난 2월 미국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등에 최대 15%, 3월에는 미국산 농축산품에 최대 15%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했다.
중국 외교부도 지난 5월 14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은 펜타닐 문제를 이유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불합리하게 두 차례나 인상했고 (이번 합의에도) 이를 유지했다”며 “중국은 두 차례 관세 부과에 모두 즉시 대응해 정당한 권익을 수호했고 이러한 조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펜타닐은 미국의 문제이지 중국의 문제가 아니고, 그 책임은 미국에 있다”며 “미국은 중국의 선의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펜타닐 관세를 부과했고 이는 중국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추가 협상에서 ‘펜타닐 관세’를 유예 또는 철회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가 미국에 대한 희토류 수출통제를 완화할지도 주목된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5월 14일 공고를 통해 이번 합의에 맞춰 지난 4월 2일 이후 미국의 관세 인상에 대응한 비관세 보복 조치들을 중단·취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지난 4월 중국이 발표한 사마륨·가돌리늄·테르븀·디스프로슘·루테튬·스칸듐·이트륨 등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에 대해서는 명확한 유예 여부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중 분쟁의 근본 요소가 해소되지 않고 있어 ‘제네바 합의’로 휴전에 들어간 무역전쟁이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 푸단대 국제연구소의 우신보 학장은 “만약 이번에 중국이 단호하게 버티지 않았다면 중국은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을 것”이라고 평가한 뒤 “중국은 미·중 협력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수사(rhetoric)가 아닌 이번 일이 일깨워준 것을 상기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중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의 원료 공급에 대한 논란과 안보 문제 등 다양한 갈등 요소가 존재한다. 중국 인민대 충양금융연구원의 왕원 원장은 “관세전쟁이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이지 구조적 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며 “앞으로도 갈등이나 심각한 의견 충돌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고 내다봤다.
또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중국 분석 책임자였던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미국의 현실적인 우려는 펜타닐에 있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양국 관계는 안정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대중 관세율이 쉽게 인하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5월 13~14일 아시아·유럽·미국 투자기관 관계자 22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개월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중 관세율 중간값 전망치는 30%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도 6개월 뒤 관세율이 30%보다 높을 것으로 본 응답자와 낮을 것으로 본 응답자가 각각 7명, 6명으로 갈렸다고 전했다. 전망치 최고 값은 65%, 최저 값은 10%였다.
[송광섭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