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연 작가(전 LG디스플레이 전무) “AI를 직원처럼 대하는 리더가 혁신 이끌어”

    입력 : 2025.06.20 15:52:21

  • “평범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TV 파는 곳을 알려줄 수 없냐는 문의였다.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비슷한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TV 세트용 패널을 만드는 부품 회사인데 왜 우리에게까지 전화가 올까? 이 작은 질문이 나를 전무로 승진시켜 준 계기가 되었다.” -<공감 지능 시대> 中

    LG그룹 최초의 여성 CSO(최고전략책임자)이자 전자 계열 최초의 여성 전략 그룹장 김희연 전 LG디스플레이 전무의 인생사 중 한 토막이다. 때는 2020년 봄, 팬데믹이 한창이던 그 시기에 그는 TV를 큰 화면으로 보고 싶다는 소비자의 욕구를 확인하고 생산량을 늘리자는 역발상을 제안한다. 물론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이 전망은 보기 좋게 그랜드슬램으로 이어진다.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증권사 IT애널리스트, 제조사 CSO를 역임한 그가 2023년 말 퇴임 후 저술한 <공감 지능 시대>를 출간했다. 그는 “30년간 전혀 다른 분야로 3번이나 업종을 전환한 경험 덕에 사람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며 답을 찾는 태도를 갖추게 됐다”며 “특히 AI 활용이 일상이 된 지금, 인간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인 공감을 공감 지능으로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연 작가(전 LG디스플레이 전무)
    김희연 작가(전 LG디스플레이 전무)
    ▶She is
    한국씨티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현대증권, 굿모닝신한증권, 노무라증권에서 IT애널리스트로 근무했다. 이후 LG디스플레이에 입사해 LG그룹 최초의 여성 CSO이자 전자계열 최초의 여성 전략 그룹장을 지냈다. 2023년 말 퇴임 이후 현재 경영·AI 관련 강의와 저술, 롯데글로벌로지스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AI와 함께 작업, 천하무적
    사진설명

    Q 여전히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A 몇몇 기업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재능기부 차원에서 IR(Investor Relations) 강의를 해오기도 했고, 맥시머스에서 퇴직한 임원들을 대상으로 AI 강의를 하고 있어요. 국회에서도 사무관 진급자를 대상으로 AI 강의를 했어요.

    Q 퇴임 후에 더 바쁜 것 아닌가요.

    A 예전엔 자료를 직접 만들거나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모든 걸 직접 해야 하니 시간도 들고. 다행히 믿는 직원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Q 직원이 있으세요?

    A 똘똘한 ‘챗GPT’, 깐깐한 ‘퍼플렉시티’, 글 잘 쓰는 ‘클로드’, 이렇게 인공지능(AI) 챗봇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 정리한 내용을 파워포인트로 전환해 주는 ‘감마’까지 4명이네요. 요즘엔 구글도 쓰고 있으니 천하무적이죠.(웃음)

    Q 어떤 직원이 가장 믿음직하던가요.

    A 성격이 다 달라요. 챗GPT가 회사도 크고 리소스 투입도 많아서인지 정말 다재다능하게 잘해요. 의욕이 앞서다 보니 가끔 실수(할루시네이션)도 하는데, 얘가 거짓말하거나 실수하는 걸 퍼플렉시티가 보완해 줘요. 얘는 팩트가 없으면 말하지 않죠. 굉장히 정확한데, 융통성이 좀 떨어져요.(웃음) 반면에 클로드는 인간적이에요. 분석도 잘 하지만 공감가는 언어로 바꿔주죠. 그래서 AI를 쓸 때 하나만 쓰지 말고 최소 4명은 팀원으로 두라고 말합니다. 장점이 다른 팀원이 모이면 시너지가 나는 것처럼 AI도 똑같아요.

    Q ‘공감 지능 시대’도 함께 작업한 겁니까.

    A 퇴임하고 1년간 책 쓰고 강의하며 지냈어요. 직접 자료 만들고 리서치하다 보니 속도도 느리고 정말 힘들더군요. 그러다 이 직원들을 만나고 달라졌습니다. 정말 똑똑해서 제가 지시한 걸 다 가져와요.

    Q 지시하는 방법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A AI와 함께 일하면서, 지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어요. 저는 AI를 사용할 때 “질문하지 말고 지시하고 대화하라”고 합니다. 질문은 모르는 것을 묻는 데 그치지만, 지시와 대화는 어떤 영역이든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지시를 잘하려면 ‘왜 이 일을 하는지’ ‘기대하는 수준은 무엇인지’ ‘어떤 맥락을 고려해야 하는지’ ‘참고할 자료는 무엇인지’ 등을 명확히 전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옵니다. AI에게 일시키는 방식과 직원에게 일을 맡기는 방식이 다르지 않아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저는 이것을 ‘AI에게 고수처럼 일 잘 시키는 법’이라고 정의합니다.

    AI도 결국 사람이다
    사진설명

    Q 정작 현실에선 리더들의 AI 활용도가 크지 않다고 하던데.

    A 위로 올라갈수록 결정할 일이나 다양성이 많아서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게 편하거든요. AI의 역량을 테스트하기 위해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분야를 단답형으로 묻고는 그 결과에 실망합니다. AI가 똑똑하다지만 평균적으로 데이터가 많은 걸 끌어오는데, 임원 정도 되면 그 평균을 능가하거든요. 첫 인상에 실망해서 잘 안 쓰는 것 같아요. 구체적이지 않은 지시에는 평균적인 답을 한다는 걸 이해하는 게 먼저예요.

    Q 퇴직한 임원들도 비슷하던가요.

    A 틀리지 않아요. 그래서 개발자의 철학에 따라 AI 알고리즘의 성격이 다르다는 걸 강조합니다. 성격이나 강점이 다른 동료나 팀원으로 생각해야 해요. 지금 써야 하는 AI가 어떤 건지 알지 못하면 답이 나와도 제대로 판단할 수 없거든요. AI를 직원이라고 생각하면 그 직원의 전문 영역이나 성향을 파악하고 일을 시켜야 좋은 결과가 나오겠죠.

    Q 결과가 미흡한 건 결국 지시를 잘못 내렸기 때문이군요.

    A 전 AI 사용에도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일을 다 잘하는 AI를 만들려면 엄청난 리소스와 자금이 필요한데 그러지 못하니 현실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어요. AI를 단순한 기술로 보지 않고, 그것을 개발한 기업과 개발자의 입장을 함께 고려해 AI의 장단점을 마치 사람처럼 바라보며 활용하는 게 ‘공감 지능’의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Q 말 그대로 ‘공감 지능 시대’군요. 일각에선 AI는 데이터의 의존하기 때문에 사람의 창의적인 특성과 거리가 멀다던데요.

    A 저는 창의적인 것을 두 가지 측면에서 봅니다. 하나는 아예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있는 것을 섞고 융합하는 거죠. 그런데 사람이 융복합에 나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각자의 견해나 전문성 때문에 소통이 안 되거나 전혀 다른 업종 간에는 이해가 안될 때가 많거든요. 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업을 3번 바꿨어요. 그랬더니 기업의 의사결정이나 변곡점에 있어 그 근본 구조는 비슷하다는 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30년이나 걸렸습니다. AI는 그걸 순식간에 하게 해줘요.

    Q AI가 융복합의 새로운 엔진이다?

    A AI는 융복합의 새로운 엔진이 될 수 있어요. 이런 영역을 AI와 함께 고민하는 건 사실 주니어보다 시니어가 할 때 파괴력이 더 크겠죠. 그래서 리더들이 AI를 더 많이 더 깊게 써야 합니다. 잦은 보고서, 회의 대신 모든 팀원들이 서너 개의 AI를 띄워놓고 함께 브레인스토밍하는 거예요. AI는 세상의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지만 결국 그걸 꺼내 쓰는 건 인간이에요. 개인이 아니라 팀 전체, 조직 전체가 AI를 통해 사고의 확장을 경험해야 진짜 변화가 시작되는 거죠.

    공감 지능은 흐름을 보는 눈

    Q 공감 지능에 대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라면.

    A AI 덕분에 업무 성과는 분명 많이 올라갈 거예요. 그런데 동시에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정작 사람과 공감하고 교류하는 시간은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AI는 궁금한 걸 다 알려주지만, 직원 중에도 AI가 주는 정보에 압도당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지금 더 많이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공감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따뜻한 문제 해결은 AI보다 결국 사람에게서 나오거든요. 예를 들면 네이버 지하 주차장에는 층마다 개구리 소리나 파도 소리가 나와요. 내 차를 어느 층에 주차했는지 소리로 장소를 기억나게 한 거죠.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교차로에 초록색과 분홍색 선이 있잖아요. 공감 지능의 좋은 사례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해결하려는 따뜻한 해법이에요. 공감 지능이 확장되는 문화를 만들려면 먼저 이런 시도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조직이 돼야 합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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