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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택의 ‘감각 너머’ 여정 기운의 붓, 자연의 숨결을 그리다
입력 : 2025.06.18 14: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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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택 작가 ▶ He is
우종택 작가(인천대학교 조형예술학부 교수)는 자연과의 깊은 교감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수묵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다. 그는 숯가루, 먹, 백토, 송진 등을 섞은 자신만의 ‘용묵법’을 개발해물성과 기운의 흔적을 화폭에 남긴다. 산속에 들어가 자연과 하나 되는 ‘접기(接氣)’ 과정을 통해 즉흥성과 몰입의 미학을 실천하며, 자연의 본질을 추상적 언어로 표현한다. 최근 독일 등 해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적 감성과 동양적 사유를 세계 미술계에 알리고 있다.경기도 광주 대지산의 숲은 조용히 우종택 작가를 품는다. 나무가 스스로 낙엽을 버리고, 새가 낮은 소리로 울고, 바람이 방향을 바꾸는 그 산속에서 그는 먹을 들고 붓을 쥔다. 그리고는 말없이 화선지 앞에 선다. 그러나 그는 그리려 하지 않는다. 계획하지 않는다. 단지, 기다린다.
“산수화를 보면 나무가 있고, 돌이 있고, 계곡이 있죠. 하지만 그건 시각화에 불과합니다. 풍경은 눈으로 보지만, 자연의 본질은 오감 전체로 느껴야 합니다.”
우 작가의 작업은 ‘자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존재하는 것’에 가깝다. 그는 매년 겨울이면 혼자 텐트를 짊어지고 대지산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한 달을 꼬박 보낸다. 영하 20도의 혹한, 쏟아지는 폭설, 뜨거운 호롱불 하나 없는 그 시간은 작가에게 수행이자 사색의 시간이다.
“제가 그 시간을 ‘접기(接氣)’라고 표현합니다. 자연의 기운을 내 몸에 받아들이는 행위죠. 무당이 신을 내리는 것을 접신이라 한다면, 저는 자연의 숨결과 접속하는 접기입니다.”
그 겨울은 그에게 단지 불편함과 추위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 되는 고요한 기회였다. 처음에는 떨리고 아팠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버텨지는 감각이 찾아왔다고 한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과정에서 제 스스로가 하나의 붓이 되는 겁니다. 이를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죠.”
‘획’이 되기 위한 시간들우종택 작가의 예술적 여정은 번화한 서울 거리에서 시작됐다. 인물 크로키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점차 자연으로 향했고, 태풍이 휘감고 간 숲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휘어진 나무 한 그루는 그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꺾이지 않은 생명 앞에서, 그는 질문을 시작했다. 자연이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
그는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전통적 기법에 머물지 않았다. 파묵도, 발묵도 아닌, 자신만의 ‘용묵법’을 개발했다. 먹에 숯가루, 백토, 감자전분, 송진 덩어리를 섞어 만든 재료는 화면 위에서 독특한 질감과 번짐을 만든다. 그 흔적들은 마치 찌르고, 솟구치고, 날아오르는 몸짓처럼 화면 위에서 춤춘다.
“붓을 들기 전까지 나는 그림이 어떤 모습이 될지 모릅니다. 중간에 확인하지도 않아요. 완전히 끝나고 난 뒤, 그제야 그림이 나를 향해 말하기 시작하죠.”
그가 선택한 붓도 다르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쓰는 납작 붓 대신 둥근 붓을 고집한다. 붓의 봉(鋒)과 호(毫)를 통해 우주의 기운을 모아내기 위해서다. 그는 선을 단지 시각적인 요소로 보지 않는다. “서양에서 선은 드로잉의 도구지만, 동양에서는 선 자체가 완성입니다. 그것은 기운의 흔적이죠.”
자연을 공유하는 방식‘감각너머 예술’에서 설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우종택 작가 우 작가의 작업이 놀라운 이유는, 단지 표현 방식에 있지 않다. 그는 자연의 사물과 기운을 단지 모사하거나 상징으로 전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연이 이미 완성한 것을 내가 어떻게 더 잘 그릴 수 있겠느냐”며, 손대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선택을 한다.
그의 설치작업 중에는 강가에서 발견한 7톤짜리 차돌이 있다. 그는 이 돌에 어떤 인위적 가공도 하지 않았다. 먹을 바르거나 윤을 내지 않았고, 단지 그것을 그대로 옮겨전시장에 배치했다.
“비를 맞고 햇빛에 마르며 생긴 저 돌의 빛깔을 내가 어떻게 흉내낼 수 있을까요. 그건 자연의 완성이고, 저는 그 기운을 공유하는 통로일 뿐입니다.”
우 작가는 자신을 ‘공유의 작가’라고 말한다. 그는 자연의 기운을 표현하는 대신 관람객에게 소개하고, 전시장에서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한다. 인간의 시각적 판단이 개입될수록 자연의 본질은 흐려진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종종 추상적이고 해석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깊은 울림을 준다.
‘감각 너머’로 가는 길우종택 작가의 예술은 단지 조형물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일종의 수행이며 철학이고, 미학에 앞서 태도다. 그는 그림을 통해 무언가를 보여주기보다, 관객이 자기 내면의 자연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택한다. 그것은 동양 사유에서 말하는 ‘무기교의 기교’와 닿아 있다. 일부러 덜 채우고, 덜 꾸미고, 남겨둠으로써 오히려 더 큰 감응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최근 경기 파주 갤러리끼에서 진행중인(~6.3) 기획전 ‘감각 너머 예술 / more than meets the eye’을 통해 대중과 다시 한 번 마주하고 있다. 윤명로, 정현과 함께하는 이 전시는 감각적 인식을 넘어선 예술의 본질을 탐색하려는 시도로, 평면 회화와 조각 설치 작업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진다.
전시 제목처럼, 우 작가의 작품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겨냥한다. 그가 화면에 새긴 것은 먹도 아니고 선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연에서 온 기운, 기운이 흘러간 자리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지만, 체험할 수 있는 진실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시각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제는 감각 너머, 마음과 기운의 세계로 넘어가야 할 때가 아닐까요?”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