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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인문학 산책] 최적화 추구 사회 불행해지는 인간
입력 : 2025.06.17 17: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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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물류의 심장은 켄터키주 북부에 있다. 이곳에 온라인쇼핑의 절대 강자 아마존에어의 물류 허브가 있다. 드넓은 황무지에 9만 3000㎡ 면적의 자동 분류 센터, 화물기 100대, 트럭 300대를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거대 창고가 들어섰다. 온라인 가구 업체 웨이페어도, 택배 업체 UPS와 DHL도 이곳에 물류 센터를 두었다. 미국 인구의 65%가 여기서 965킬로미터 반경에 사는 데다, 근처에 공항 다섯 곳이 있고, 철도역과 항구도 있어서 물건이 드나들기 편리하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주문한 후, 상품 이동 경로를 꼼꼼히 살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물류 흐름은 우리 상식에서 크게 어긋난다. 미국 북서부 메인주는 뉴욕에서 가깝다. 그런데 그곳에서 잡은 바닷가재는 일단 서쪽 켄터키주로 머나먼 여행을 한 후, 여기에서 분류되어 다시 뉴욕의 레스토랑까지 배달된다. 경기도 파주에서 만든 물건이 트레일러에 실려 일단 충청북도 충주까지 보내졌다가, 다시 트럭을 타고 서울로 배송되는 것과 같다.
소비지 근처에서 생산된 물건이 곧장 배송되지 않고, 머나먼 길을 돌아 우리 손에 주어지는 이유는 아마존 입장에서 이게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체 물류비용이 적게 들고 동선이 최소화되어 이익을 극대화할 방법을 시뮬레이션해서 트럭과 화물기, 컨베이어벨트와 뽁뽁이로 이루어진 순환계를 돌린다. 그 와중에 바닷가재의 맛과 신선도는 떨어지고 품질은 나빠지겠으나, 아마존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량 유통을 통한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충분히 보상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최적화라는 환상>(위즈덤하우스 펴냄)에서 미국 작가 코코 크럼은 이 비상식적 물류 방식을 지배하는 논리가 최적화라고 말한다. 최적화(optimization)는 본래 수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제약조건을 고려하면서 숱한 변수들을 가장 알맞게 조절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최적화를 지향하고, 최적화에 지배되고, 최적화에 홀려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란 언제나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 ‘한정된 자원과 상황 속에서 최대한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끌어올리는 행위’에 집착하는 까닭이다. 그 탓에 노트 위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았던 이 개념이 수학을 넘어서 경제학과 공학에, 더 나아가 생산, 물류, 마케팅, 광고 등으로 퍼져가면서 점차 사회 전체를 움켜쥐고 있다. 그 중심엔 세상을 뒤덮은 네트워크와 클라우드, 그리고 거기서 끝없이 쏟아지는 데이터가 있다. 생생한 감각적, 감정적 현실을 잘게 쪼개서 숫자로 바꾸고, 그 숫자를 계산하고 정렬해 최적의 흐름에 맞추어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우리 생각을 사로잡고, 우리 일상을 포획한 것이다.
최적화 논리는 “더 많이, 더 좋게, 더 빨리”란 구호에 집약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물건을 더 많이, 더 빠르게 생산하고, 사람을 더 효율적으로 쥐어짜며, 소진될 때까지 몰아붙이는 기술들이 기업을 넘어 사회 전 영역에 속속 도입되는 중이다. 동네 식당마다 들어선 키오스크, 식탁 사이를 돌아다니는 배달 로봇은 그 선연한 증거다. 여기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들이 와주지 않으면 동네 식당엔 도대체 누가 오는 걸까.
논리만 제대로 서면 숫자는 쉽게 최적화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인간관계를, 사회를 최적화하려 하면, 크고 작은 부작용이 따른다. 가령, 미국 신발회사 자포스는 모든 점에서 최적화를 추구했다. 먼저, 땅값 싼 곳으로 사무실을 옮겨 급여, 세금, 부동산 비용을 최소화했다. 이어서 포드주의 기법을 동원해 생산을 최적화하고, 판매 사이트를 정교한 A/B 테스트를 통해 세밀하게 기계화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상담할 때 나타나는 고객의 감정적 반응을 최적화하려 했다. 고객이 감탄을 자아내는 순간을 파악한 후, 일일이 점수를 주어 상담원 성과를 매긴 것이다. 그러나 이는 측정할 수 없는 걸 함부로 수치화함으로써 직원에 대한 전면 감시와 함께 극도의 감정 노동을 강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최적화가 낳은 부작용건강관리 또는 자기 관리 앱들은 인간 몸과 마음을 최적화하려 한다. 좋은 루틴을 설계해 주고, 필요한 습관을 몸에 붙여주며, 자산을 관리해 주고, 더 나아가 인간관계까지 관리해 주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부키 펴냄)에서 애덤 알터 뉴욕대 교수는 ‘목표, 피드백, 향상 등’을 강박하는 이러한 앱들이 행위 중독을 유발해서 목표 달성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과소비를 유발하며, 강박증과 우울증을 불러오는 등 건강을 망치고 행복을 해치기 십상이라고 주장한다. 최적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기 삶을 스스로 관리하면서 얻는 다양한 지식, 여유, 장소 감각 등을 빼앗긴다. 기계와 화학물질을 이용해 농업이 자동화하면서 인류는 더 적은 토지와 노동으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낮아지는 곡물값에 반비례해서 늘어나는 씨앗 값, 비료 값, 농약 값에 농부들의 삶은 갈수록 나빠지고, 단일 작물 재배가 늘면서 감염병이나 기후 변화에 극히 취약해졌다. 농촌 공동체가 무너지자, 농사짓는 방법이나 원리를 이해하는 이들은 점차 줄어들고, 예기치 못한 사태에서 충격을 줄여줄 여분의 자원, 지역마다 축적된 장소 감각을 활용한 대응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첨단 산업도 다르지 않다. 2021년 텍사스주에서 벌어진 대규모 정전 사태는 최적화가 어떤 재앙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마존의 바닷가재 운송망처럼, 최적화를 빌미로 텍사스 전력망도 극도로 복잡하게 설계되었다. 여러 차례 통합을 거치면서 대형화하고, 어지러운 경로를 거쳐서 전력이 공급됐다. 이는 평소에는 극히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나 텍사스주 전력망의 절반 이상이 한 번에 붕괴했는데도, 아무도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대처가 느릴 수 밖에 없었다. 여분의 우회로를 충분히 갖추지도 못했고, 현장 지식을 갖춘 인력도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우울해지는 인간코크 크럼은 말한다. “최적화는 세상의 모든 걸 숫자로 바꾼다. 그러나 사회가 효율성에 집착할수록 우울증 발병률은 높아졌고,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불안이 커졌다. 기후 재앙·공급망 붕괴 등 최적화 모델이 놓친 문제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현실은 숫자가 아니므로, 숫자만을 중심으로 운영하면 좋은 삶도, 좋은 회사도, 좋은 사회도 이룩할 수 없는 것이다.
아마존이 바닷가재를 배달하는 시장, 즉 최적화가 지배하는 세계에선 사람들은 점차 맛을 잃어간다. 본래 바닷가재의 맛, 제철 과일과 채소의 맛은 소수 부유층의 혀에서만 풍미를 발하고, 대다수 시민은 떨어진 재료의 맛을 합성 감미료로 감추는 패스트푸드와 밀키트에 중독된다. 물론, 최적화에 저항해서 틈새시장도 점차 생겨난다. 요즘 동네마다 신선한 식재료를 판매하는 농수산물 가게가 늘어나는 이유다. 이처럼 우리에겐 최적화를 보완하고 넘어설 수 있는 다른 삶이 필요하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