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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쓴 과제·자기소개서 쏟아지자 이제는 ‘AI 작성 글’ 탐지 전쟁
입력 : 2025.05.12 17: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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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직에 성공한 30대 정모씨는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 툴들을 적극 활용했다.
일목요연하게 필요한 내용을 정리하는 것부터 글의 어색한 부분을 다듬거나, 미흡한 내용을 보충하는 데에 AI가 톡톡히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정모씨는 “초안을 먼저 작성한 다음 AI한테 톤앤매너를 맞춰서 수정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이제는 챗GPT 없이 하는 게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생성형 AI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정모씨처럼 자기소개서, 직무기술서 등에 생성형 AI를 활용하거나 과제 작성에 사용하는 대학생들도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올 1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새롭게 구독을 희망하는 서비스’를 묻는 질문에 생성형 AI가 20대에서 1위, 30대에서 2위를 기록했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은 “이들이 이미 학습과 업무에 생성형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세대임을 감안할 때 생성형 AI는 국민 구독 서비스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030 세대가 이처럼 생성형 AI를 곳곳에서 쓰기 시작한 가운데, 기업이나 학교는 채용 및 평가 과정에서 AI로 작성한 글을 골라내는 데 노력을 쏟고 있다.
AI는 웹에 있는 다양한 자료나 콘텐츠를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결과물을 생성하기에 특히 대학 과제 등에 사용할 경우 표절의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 또한 AI는 이용자의 요청에 따라 없는 정보를 생성할 수도 있어, 허위 내용이 포함된 자기소개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솎아내기 위해 AI 작성 여부를 판별하는 서비스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다만 한편에선 이 같은 판별 서비스를 회피하는 서비스도 등장하면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의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학교 과제부터 자소서까지 척척AI가 학교와 직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영역은 다양하다. 단순 내용 검색부터 자료 조사, 발표문 작성 등 AI가 활용되지 않는 단계가 없을 정도다. 인간이 수시간을 들여 하는 작업을 수분내로 처리하면서 들이는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렇다면 2030 세대 이용자들은 AI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읕까.
20대 대학생의 경우 IT 분야 전공 대학생들이 개발, 코딩과 관련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코드를 짜달라고 하거나, 본인이 쓴 코드에서 에러가 발생할 경우 해당 코드를 AI에게 전달한 후 왜 에러가 발생했는지 찾아서 정상 작동하도록 수정해달라고 할 수도 있다.
토종 AI 서비스인 뤼튼이 지난해 대학생 이용자들의 주 발화를 키워드별로 분석한 결과, ‘코딩/개발’과 관련된 요청이 33.8%로 가장 많았고 ‘기술/프로그램’ 관련 질문도 27.3%에 달했다. 또한 ‘과제(20.1%)’, ‘커리어(19.2%)’에 대한 질문도 많이 나오면서 대학생들이 주로 과제를 작성하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데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발표 자료를 위해 조사하거나 특정 산업에 대해 분석하는 경우, 대학생들은 관련된 논문을 찾은 다음 수십장의 논문을 읽기 전에 AI 서비스에 “논문의 핵심 내용을 요약해줘”라고 요청해 주요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기도 한다.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찾을 때에는 “2020년대 이후로 나온 논문이나 학술 자료, 뉴스 기사만 참조해줘”처럼 세부 조건을 달아 출처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만 빠르게 찾는 방식으로 자료 탐색 과정을 효율화할 수도 있다. 텍스트로 이루어진 발표자료를 넣으면 발표 개요를 추출해 적합한 PPT를 만들어주는 ‘감마’와 같은 서비스도 나오면서, 과제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AI를 사용하는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30대 이용자들은 보고서 작성 등 업무 관련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모씨의 사례 처럼 직무, 자기소개서에 AI를 적극 활용한다.
한 30대 이용자는 “글을 작성하는 것 외에도, 이직을 준비할 때 어떤 프로젝트에서 어떤 성과 지표를 파악하는지를 물어보고 이에 맞게 답변을 구성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AI 작성 글과 씨름하는 대학가와 기업아이디어 발굴 차원이나 글을 매끄럽게 다듬는 데 AI를 사용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다만 과제 보고서를 작성하게끔 시키거나, 자기소개서를 온전히 AI에 맡기는 것은 표절 위험부터 변별력의 문제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고등학교부터 대학가에서는 AI 활용이 급증하면서 표절률이 크게 늘었다. 논문 등의 표절 여부 탐지 솔루션 ‘카피킬러’를 운영하는 무하유가 중·고등학교 전용 탐지 솔루션인 ‘카피킬러 스쿨’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24년 하반기에 전체 평균 표절률이 전년 대비 약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AI가 작성해 준 기자 직군 자기소개서의 AI 작성 비율을 ‘그래머리(Grammarly)’에서 검사하자, 50%가 AI 작성 의심으로 분석된 모습’ <출처: 그래머리 웹사이트 캡처> 생성형 AI가 생성한 문장을 출처 없이 그대로 반영하게 되면 원본 문서에 대한 표절로 검출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제를 AI에 위탁하는 현상은 대학가도 마찬가지다.
대학교에서는 과제가 화두라면 기업들에서는 입사 지원자들의 자기소개서가 쟁점이다.
글로벌 커리어 플랫폼 ‘레주메 지니어스(resume genius)’가 3월 공개한 채용담당자 설문 결과에 따르면, 58%의 응답자가 ‘지원자가 서류에 AI 도구를 쓸까봐 걱정된다’라고 답했다.
특히 실제 문제 사례를 묻는 질문에서는 ‘자기소개서나 추천서를 AI로 생성해 제출하는 경우’라는 답변이 47%로 가장 많았고, ‘포트폴리오나 창작물을 AI로 만들어 내는 경우(35%)’, ‘채용에 참고할 수 있는 링크트인이나 그 외 소셜미디어 프로필을 AI로 생성하는 경우(33%)’도 많았다.
이렇다보니 생성형 AI로 쓴 문장을 검출해내는 솔루션도 속속 나오고 있다. 카피킬러를 운영하는 무하유는 생성형 AI에 특화한 ‘GPT 킬러’ 서비스를 대학교와 기업들에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턴잇인(Turnitin)’과 같은 서비스가 나와 있다.
AI 작성 여부를 판별하는 주요 서비스인 GPTZero <출처: GPTZero 웹사이트 캡처> 이 같은 탐지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 문장구조의 특징과 AI의 특징에 기반해 그 차이점을 찾고, 이를 통해 생성형 AI가 작성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비율을 추측하는 방식이다.
무하유가 자사 솔루션을 사용하는 금융권, 공공기관 등의 지난해 자기소개서 89만 건을 분석한 결과, 이 중 48.5%가 생성형 AI 활용 의심으로 나타났다.
생성형 AI 덕에 글 작성이 쉬워지고 시간도 단축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이력서 홍수’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글로벌 HR 플랫폼 리모트의 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AI가 상용화되면서 일부 구직자들은 무차별적으로 여러 기업에 지원하는 ‘묻지마 지원’을 하는 경향을 보였다. 기업들은 부적격 이력서를 골라내는 데만 평균 9.24일을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성형 AI 때문만은 아니지만, SK텔레콤의 경우 지난 2023년부터 신입 채용에서 서류 전형에 앞서 필기 전형을 먼저 진행하는 큰 변화를 주기도 했다. 한 차례 전형을 진행해 지원자를 먼저 솎아내면서 방대한 서류에 대한 검토 과정을 단축한 것이다.
AI 탐지 피하는 AI까지 나왔다기업과 대학들이 AI 탐지 솔루션을 활용하기 시작했다면, 반대쪽에서는 이 같은 탐지를 회피하기 위해 AI로 글을 다시 한번 다듬는 솔루션도 나왔다. 단어나 말투를 다시 교정함으로써 생성형 AI 글로 분류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 목적이다.
해외서비스인 ‘언디텍터블 AI(undetectable AI)’의 경우 서비스명처럼 AI에 탐지되지 않도록 글을 교정해준다. 작성한 글을 붙여 넣으면 일단 생성형 AI 작성 글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는지 분석한 후, 인간적인 문체로 교정해주는 식이다.
국내에서는 토종 서비스인 뤼튼이 이 같은 ‘AI 탐지 방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AI로 탐지되기 어렵도록 자연스러운 말투로 다시 작성해주는 기능이다. 직접 AI 글을 넣어 활용해보니, 문장이 너무 건조하지 않도록 중간에 조사를 적당히 추가하거나 ‘중시한’과 같은 표현을 ‘중요하게 여긴’ 등으로 풀어 써주는 식이었다. 한 AI 업계 관계자는 “AI로 생성한 글을 사람이 직접 수정하게 된다면 글에 사람 특성이 녹아들어 탐지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다만 AI 기반 탐지 회피 서비스를 사용하면, 수정된 글도 여전히 AI 특성을 갖기에 탐지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람인, 원티드랩 등 국내 주요 구인구직 플랫폼들도 구직자들을 위해 AI 기반의 자기소개서 첨삭 기능이나 표절 검출 기능을 지원한다.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나 딜레마한편 생성형 AI 작성 글을 모두 탐지하고 이를 구분해내는 것은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한 AI 작성 글 탐지 솔루션의 경우 AI 글을 100% 탐지하기 어렵고, AI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이 작성한 글도 잘못 탐지할 가능성도 있어 온전히 맡기기엔 한계도 있다. 이러한 오탐지의 가능성으로 인해 하버드, MIT 등 미국의 주요 대학들도 교수가 AI 탐지 툴을 활용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고 있다. 한국 대학들도 마땅한 가이드라인은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 총장들을 조사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7.1%는 생성형 AI와 관련한 학교 정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AI로 다른 원본 문서를 표절하거나 허위 이력을 기재하는 경우는 문제가 있지만, 단순히 AI를 활용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특히 이미 기업 실무에서는 번역이나 교정, 보고서 작성이나 통계 분석 등 업무에 AI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기에, 이 같은 AI 활용 능력 또한 지원자의 역량 중 하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한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는 “AI 작성 비율을 분석해주는 서비스를 테스트로 사용해본 적도 있지만, 아직 AI 작성 글을 탐지하는 방법이 완벽하지 않다 보니 대응책 중의 하나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위의 SK텔레콤 사례처럼 필기전형과 서류전형의 순서를 바꿔 서류 검토의 비중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자기소개서 속 작성해야 하는 문항 수를 줄이면서 서류 전형의 중요성은 낮추고, 대신 시험이나 면접 등 다른 채용 단계에서 지원자 검토를 강화하는 방안도 나타나고 있다.
[정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