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락가락’ 트럼프 관세 전쟁 PartⅠ] ② ‘T’의 공포 덮치나

    입력 : 2025.04.29 13:49:24

  • 무역전쟁으로 경기 침체 가능성 커져
    1930년대 소환…제2의 대공황 오나
    세계무역기구(WTO)가 트럼프발 관세전쟁으로 인해 올해 글로벌 상품 무역이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사진 연합뉴스>
    세계무역기구(WTO)가 트럼프발 관세전쟁으로 인해 올해 글로벌 상품 무역이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사진 연합뉴스>

    “사실상 금수 조치에 해당한다. 무역의 통로를 계속 막는다면 경제 발전은 불가능하다.“

    “미국인들이 힘을 남용하며 보호주의 프로그램을 전면적으로 적용한다면 우리(유럽)가 할 수 있는 것은 보복에 의지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폭탄 정책에 대한 반발 같지만, 1930년대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두고 나온 반응들이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미국에 수입되는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긴 법안으로, 당시 40%가 넘는 관세가 각종 수입품에 부과됐다. 미국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대공황과 맞물리면서 진행된 가격 디플레이션으로 이 시기 평균 관세는 60%까지 치솟았다.

    시점이 다를 뿐 고율의 관세 정책에 대한 비판은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냥 가져다 붙여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도 손색이 없다.

    주먹구구식으로 부과 관세가 설정됐다는 비판도 흡사하다. 당시 팻 해리슨 미시시피주 상원의원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두고 “이 법안은 과학적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기억하기조차 부끄러운 통나무 굴리기 등의 방식이 혼합돼 만들어졌다“고 비난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관세 폭탄’을 공식적으로 세계에 던질 당시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몇몇 국가들의 부과 관세율이 오락가락해 혼선이 빚어졌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율을 밝히며 들고 있었던 판에 적힌 대한민국의 관세는 25%였지만 행정명령은 26%로 돼 있었고, 우리 측에서 질의가 이어지자 다시 25%가 맞다고 밝혔다. 관세발표 자료가 얼마나 엉성했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에 20~40% 이상의 고율의 상호관세를 매긴 근거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산출 공식은 이렇다. 미국이 특정 국가와의 무역에서 기록한 무역 적자를 미국의 해당 국가로부터의 총 수입액으로 나눈다. 그리고 이 숫자를 2로 나누는 방식이다. 하지만 각국의 서로 다른 교역 상황 등을 감안하면 일률적으로 이 같은 산출 방식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10%의 관세를 부과 받은 영국의 경우 오히려 대미 무역 적자국이다. 또 단순히 무역 장벽 때문에 미국이 상대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고 볼 근거도 사실 충분치 않다.

    사진설명

    트럼프 관세 부과 배경, 1930년대와 유사

    하지만 1930년대가 소환된 배경이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실 국제사회와 시장이 걱정하는 부분인데, 바로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현 글로벌 경제가 1930년 스무트-홀리법이 발효된 이후 침체에 빠졌던 세계 경제상황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스무트-홀리법 자체가 대공황을 촉발시킨 것은 아니지만, 1929년 10월 뉴욕 증시 대폭락 이후 야기된 경제 불안 상황을 더 심화시켰다는 점에는 이론이 거의 없다.

    먼저, 당시 관세를 올린 상황도 지금과 흡사하다.

    스무트-홀리법이 나온 배경은 당시 미국의 주요산업이었던 농업이 위기에 처한 것에서 출발했다. 1920년대 미국 농업은 글로벌 식량 공급의 근거지였다. 이를 바탕으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농업은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전후 유럽이 경제 회복을 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유럽의 농업 생산력이 다시 제 궤도에 오르면서 미국 농산물의 수출이 줄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곡물가격 또한 1차 세계 대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과시킨 리드 스무트의원(오른쪽)과 윌리스 홀리 의원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과시킨 리드 스무트의원(오른쪽)과 윌리스 홀리 의원

    스무트-홀리법은 이런 미국 국내 상황 속에서 탄생했는데, 그 배경에서 보듯이 수입 농산물의 관세를 올려 미국 농업을 보호하자는 것이 주 목표였다. 당시 농업은 미국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컸기에 이를 지켜야 하는 것은 일종의 과제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이 쇠락한 미 제조업의 부활을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현 관세 정책의 맥락은 1930년대 당시와 유사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 시대의 첨단 제조업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을 고관세로 압박하며 자국에 공장을 짓고 생산을 하라며 사실상 윽박지르고 있다.

    미국의 관세 폭탄이 던져지자마자 강력한 시장의 반발에 부딪힌 것도 예나 지금이나 같다.

    당시 1000여 명이 넘는 경제학자들은 당시 후버 대통령에게 의회를 통과한 스무트-홀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라며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들의 요지는 미국의 관세 정책은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촉발할 수밖에 없으며, 보호무역주의를 심화시켜 사실상 세계 무역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실제 당시 미국 후버 정부의 관세 인상 정책에 각국은 보복 관세로 맞받았다. 지금처럼 캐나다가 가장 앞장을 섰다. 캐나다는 지난 3월 초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자 즉각 보복관세를 발효했다. 후버 정부 시절 캐나다는 관세를 2배로 올려 맞대응했다. 당시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산 제품에 대해 수입제한 조치를 단행했고, 아르헨티나, 호주, 캐나다, 쿠바, 프랑스, 이탈리아, 멕시코, 스페인, 스위스 등 9개국은 미국 제품을 겨냥한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또 후속 파장으로 1920년대까지 잘 유지되던 다자간 무역협정들도 타격을 받았다. 더그 어윈 다트머스대 교수는 “당시 미국을 배제한 무역 블록이 형성됐다”고 했다.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분하에 수입할당제, 무역허가제 등 다양한 비관세 장벽을 도입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특히 현재 미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는 중국의 반발이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게 100% 넘는 관세를 부과했는데, 중국도 이에 상응하는 미국산 수입품 관세로 맞받아치며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합종연횡 흐름도 본격화되고 있다. 1930년대처럼 유럽의 반발도 거센데, 최근 유럽연합은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또 중남미에서도 미 관세 정책에 공동 대응을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의 반관세 결집 행보도 본격화되고 있는데, 자신들의 앞마당 격인 아세안을 방문해 미국의 마구잡이식 관세 정책에 반하는 흐름을 모으려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2025년 트럼프발 미국의 관세 정책은 글로벌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며 미 경제의 버팀목인 국채까지 흔들고 있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미 국채는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금리가 보통 내린다. 세계의 투자금이 안전자산으로 몰리기 때문인데, 하지만 트럼프의 관세 정책 이후 오히려 국채금리가 높아졌다. 이는 미 국채의 지위가 흔들린다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고, 현실화되면 그 파장은 사실 가늠하기 힘들다. 관세충격이 금융위기로까지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돌아가는 상황이 간단치 않다고 판단해 관세폭탄을 던진 후 90일의 유예기간을 결정한 것이다.

    스무트-홀리 관세법, 전 세계 교역 25% 줄여

    스무트-홀리법 시행의 결과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미국 경제도 살리지 못하고, 세계 무역량을 감소시키는 등 자유무역하에 번영하던 세계 경제에 치명타를 가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당시 전 세계 교역 규모가 25% 정도 줄었다.

    제임스 미처너 산타클라라대 교수는 “세계 무역이 붕괴되어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경제 침체였던 대공황이 악화되었다”고 했다.

    트럼프발 관세 충격의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글로벌 교역량 축소는 점점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WTO는 ‘세계 무역 전망과 통계’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상품 무역 성장률이 전년 대비 0.2%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지난해 10월만 해도 올해 무역이 3%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WTO는 만일 90일 유예된 트럼프의 상호관세가 전면 시행된다면 올해 상품무역은 1.5%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가 간 장벽이 닫혔던 2020년 이후 최악의 하락폭을 나타내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글로벌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경기 침체에 대한 걱정도 키우고 있다. 미국 기업들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최근 미국 경제 성장의 기여도가 큰 빅테크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애플이 관세 폭탄을 피해 생산기지를 옮기는 조치에 나섰고, 엔비디아는 미·중 간 관세전쟁으로 인한 수출 제한 여파로 1분기에만 7조 8000억원가량의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애덤 포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경기 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크다”며 “미국 경제가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스태그플레이션적’ 충격을 겪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의 조너선 그레이 최고책임운영자(COO)도 “트럼프 대통령이 신속하게 협상을 타결하지 않으면 미국 경제는 경기침체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30년대 이코노미스트지는 스무트-홀리법과 관련해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은 경제 분야에서 높은 생활 수준은 값싼 생산과 양립할 수 있다는 객관적인 교훈을 가르쳐왔지만 새 관세 법안이 잘못된 방향으로 세계를 이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당시 뉴욕타임스는 “미국과 같은 규모의 경제를 가진 국가는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관세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관세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제관계 불안정성도 1930년대와 유사

    여기서 불안한 구석이 한 가지 더 있다. 1930년대 당시와의 유사성이 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대공황 시기 촉발된 경제적 민족주의적 흐름이 국가 간 정치적 긴장을 고조시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측면이 컸는데, 현재 이와 유사한 흐름이 글로벌 정세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대공황 직후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득세하며 2차 대전이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폭탄을 던진 현재도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 등 유럽에서 극우 성향의 정치적 흐름이 세를 불려가고 있다. 독일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프랑스에서는 국민전선이 원내 제2당까지 오른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극우주의적 성향을 숨기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온건 보수성향만 있던 우파 진영에서 강경 인사들이 득세를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에서는 국가 간 물리적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해묵은 중동전쟁을 포함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도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최근 중국-대만간 전쟁 시나리오는 트럼프발 글로벌 관세전쟁에 거세게 반응하는 중국이 대만 침공으로 맞불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도 국지전 성격의 국가 간 충돌이 있었다.

    3차 세계대전 가능성이 기우로 끝나면 좋겠지만,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리 간단치는 않아 보인다.

    국제사회의 여러 확전 가능성이 있는 전쟁 중에 가장 심각하게 여겨지는 것이 중국과 대만 간 충돌인데, 일각에서는 6개월 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된 수상한 움직임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4월 초 중국은 반 년 만에 대만 포위훈련을 벌이가는 하면, 대만 상륙작전을 가정한 군사훈련을 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이 지난해 2월 시뮬레이션 형태로 진행된 ‘킨 에지 2024’ 합동 군사 훈련에서 사상 처음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정한 워게임을 실시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6호 (2025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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