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나마서 입지 좁아진 中 태국 운하로 반전 노릴까

    입력 : 2025.03.06 11:22:08

  • 선박들이 싱가포르 인근 믈라카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선박들이 싱가포르 인근 믈라카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제 수로인 파나마 운하가 논란의 대상이 된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느닷없는 소유권 주장이 한몫했지만, 그 기저에는 미·중갈등이란 글로벌 파워게임이 자리잡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의 운영권을 회수하겠다고 하면서 내세운 이유도 중국이 실질적으로 운하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 홍콩에 본사를 둔 대기업 CK 허치슨 홀딩스의 자회사인 ‘파나마 포트’가 운하의 대서양과 태평양쪽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이 마냥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파나마와 중국은 부인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파나마 소유권 주장은 중국 견제 측면에서 꽤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견디지 못한 파나마가 운하 운영권을 내놓는 대신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서 빠지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현대판 실크로드 사업인 일대일로에서 중남미 루트의 핵심 국가가 파나마였다는 점에서 이 같은 소식은 중국에게 뼈아플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특히 이 일대는 세계의 핵심 지정학적 요충지여서 상황 변화는 더 안타깝다.

    중국은 일대일로의 확장 과정에서 파나마를 중남미 거점으로 삼기 위해 꽤 공을 들였다. 2017년 대만과 단교한 파나마는 중국과 수교한 후 중남미 국가 중 가장 먼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이후 지난 8년 동안 미국의 뒷마당에서 착실히 대미 견제 지형도를 그려왔지만, 그 노력이 한순간에 무위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중국의 대응이다. 미·중 갈등 구도가 지속되는 한 중국도 다음 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대일로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핵심 추진 사업인 것을 감안하면 서둘러 대안을 찾아야하는 현실적 숙제도 안고 있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 볼 글로벌 운하가 있다. 사실 아직 상상 속에만 있는 운하인데, 건설만 되면 파나마나 수에즈 운하 못지않은 지정학적 가치를 가진 곳으로 평가된다. 바로 태국 남부의 크라(Kra) 운하다. 파나마와 달리 아세안은 이전부터 중국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만일 중국 주도로 운하 건설이 진행된다면 이 지역에서의 미·중 경쟁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립외교를 표방하는 태국이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전후로 중국과 꽤 밀착하는 모양새다.

    사진설명

    400년 동안 구상에만 머물러 있는 크라 운하

    크라 운하란 아직 ‘구상’ 속에만 있는 해상길이다. 말레이시아와 인접해 있는 태국 남부의 크라지협이 건설 예정지다. 이곳이 운하 건설지로 관심을 받는 것은 지형의 이점 때문이다. 크라 지협의 가장 폭이 좁은 지역이 44㎞밖에 되지 않는데, 이곳만 뚫으면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최단 거리의 바닷길을 만들 수 있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두 대양을 오가는 시간이 2~3일 단축된다. 현재는 믈라카 해협을 돌아서 두 대양 사이를 오간다.

    이 같은 이점 때문에 꽤 오래전부터 이곳에 운하를 만들자는 논의가 있어왔다. 그 역사가 무려 400년이다. 이곳에 운하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가 처음으로 제기된 시기는 17세기다. 당시 프랑스 엔지니어가 타당성 조사를 했는데, 기술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해 무산됐다. 이후 영국, 미국 등 당대의 강대국들이 이곳의 운하 건설에 뛰어들었지만 현실화시키지는 못했다.

    운하 건설이 계속 아이디어 차원에서 머무는 것은 이곳의 험준한 지형 때문이다. 거리는 짧지만 화강암으로 이뤄진 지형 특성은 공사 진척에 상당한 난관을 제공한다. 게다가 화강암 지형은 산맥을 이루며 지협 가운데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이를 뚫으려면 폭파 등의 작업이 이뤄져야 하는데 기술적으로 만만치 않은 과제다.

    이에 화강암이 많은 지대를 최대한 피해서 건설하는 방안도 고려된 적이 있지만 그렇게 되면 운하를 지협 내 최단 거리에 만들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여러 가능성들이 검토됐지만 여전히 어느 루트를 실제 운하 공사 구간으로 삼을지 결정되지 못하고 있다. 건설이 다소 용이하다고 평가되는 트랑~송클라~나컨시탐마랏 구간의 경우 운하의 길이는 120㎞나 된다.

    여기에 더해 가늠할 수 없는 공사비도 운하 개발의 발목을 잡아온 이유다. 지협 내 최단 거리를 택하든 좀 먼거리를 취하든지간에 운하 건설에 천문학적 자금이 동원돼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가장 짧은 거리를 공사구간으로 잡을 경우 최소 200억달러(28조 8800억원) 이상,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지만 이조차도 보수적인 수치로 평가된다.

    실제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의 경우도 공사를 진행하면서 늘어나는 비용 문제로 애를 먹었다.

    관련 기술이 꽤 발전한 시기인 2007년 시작된 파나마 운하의 확장공사의 경우 추가 공사비 문제로 완공이 2년이나 지연된 적이 있다. 애초 32억달러로 예상됐던 공사비는 53억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크라 지협 공사의 어려움 중 하나인 화강암을 뚫는 방안과 관련해 소형 핵을 이용하자는 논의가 있었던 적이 있다. 이 경우 공사기간은 단축할 수 있지만 비용 면에서는 100억달러(14조 4400억원)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밀림과도 같은 주변 환경은 공사를 제때 진행하기에 적합지 않은 환경이다.

    하지만 운하 건설이 추진이 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운하 개발을 둘러싼 강대국들 간의 헤게모니 다툼이다. 400년이란 긴 시간 동안 크라 운하 개발 논의를 이끈 이들은 시대의 강대국들이었다. 운하 개발 논의가 처음으로 제기된 17세기는 유럽 열강이 동남아로 진출했을 때와 맞물린다. 프랑스 엔지니어가 타당성 조사를 한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란 얘기다. 현 태국의 왕조가 시작된 18세기에는 아예 당시의 강대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운하 개발 주도권을 놓고 다투기도 했다. 그러다 영국은 당시에도 주요한 해상 요충지였던 믈라카해협 일대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예 운하 건설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1946년 영국은 태국과 맺은 조약에서 “시암(태국의 옛 지명) 정부는 영국 정부의 사전 동의 없이 인도양과 시암만을 잇는 어떠한 운하도 영토를 가로지르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후 운하 건설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는데, 다시 떠오른 것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공산화 바람이 지나고 난 1980년대다. 이때 운하 건설을 추진하고자 했던 곳은 2차 세계대전 후 세계 패권국이 된 미국이다. 운하 건설에 관심 있는 민간 분야의 인사와 재단들이 태국 정부와 접촉을 했다. 당시 동맹이면서 동남아시아에서 세를 확장해 가던 일본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미·일 양국 역시 운하 건설 추진에 동력을 붙이지 못했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 최근에는 중국이 개발의 주체 격으로 종종 거론되고 있다. 지난 2015년 중국과 태국의 민간 분야에서 크라 운하 개발과 관련해 양해각서(MOU)를 맺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글로벌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중국이 미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강대국들이 크라 운하 개발을 주도한 것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양국 정상회담 주요 의제에 포함됐는데…

    현재 중국 당국은 크라 운하와의 관련성이 제기될 때마다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고 하고 있다. 특히 일대일대로와의 연계성이 부각될 때는 적극적 부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의가 그런지는 의문이다.

    중국의 안보 측면에서 인도양과 태평양을 오가는 안정적인 해상길을 확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적 과제인데, 이 대목에서 크라 운하의 지정학적 가치가 꽤 크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으로 들어가는 원유 수입의 80% 이상이 믈라카해협과 남중국해를 거쳐 들어간다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만일 미국이 남중국해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믈라카해협을 돌연 통제라도 한다면 중국은 당장 원유 수송길이 막히는 초유의 에너지 안보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게다가 믈라카해협과 인접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는 친중 국가로 분류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 일대 해상 이니셔티브와 직결되는 태국의 운하 개발이 진행된다면 자신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국익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양국 관계는 부쩍 가까워진 분위기다. 지난 2월 5일 태국 정부가 중국과 연결되는 고속철도 사업의 2단계 공사에 대해 승인을 내 준 것이 대표적이다. 일대일로 육상길의 일환으로 중국 쿤밍에서 라오스를 거쳐 방콕에 이르는 고속철도가 현재 건설 중인데, 양측 간의 공사비 관련 대립으로 그동안 사업 진행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했다. 이 사업은 지난 2019년에 시작됐다. 이 철도는 태국을 지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까지 연결되는 중국의 범아시아 육로 연결 구상으로, 태국 구간의 사업이 진척되지 않으면 계획 자체가 무위로 돌아간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왼쪽)가 지난 2월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왼쪽)가 지난 2월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 볼 부문은 태국 역시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꽤 공을 들이고 있는 모양새라는 점이다. 지난 2월 5일 2단계 고속철도 사업 추진 결정이 패통탄 친나왓 총리의 첫 중국 공식 방문 직전 이뤄졌다는 점이 묘하다. 물론 이 같은 분위기를 무조건 크라 운하 개발과 연관 지을 수는 없지만 태국의 관련 행보가 간단치 않아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2000년대 들어 태국 역시 역대 정부 마다 운하 개발에 의지를 엿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월 5~8일 패통탄 친나왓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크라 운하 개발 관련 사안이 국가 간 논의 테이블에 올려진 주요 의제에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패통탄 총리가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직접 크라 운하 개발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현재 태국 정부는 랜드 브리지(Land Bridge)란 새로운 운하 개발 방식을 제안한 상태다. 이는 기존의 육지를 뚫어 운하를 건설하는 것이 아닌, 철도나 도로를 교량처럼 활용해 해상과 해상을 잇는 새 복합운송경로를 말한다. 패통탄 총리의 아버지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재임 시절 첫 제안을 했는데, 지난 2023년 패통탄 총리의 전임자인 세타 타위신 전 총리가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패통탄 총리는 이를 이어받아 이번 중국 국빈 방문 시 관계자들과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랜드 브리지 방식 운하 건설 예정지는 태국만 쪽에 있는 춤폰과 안다만해를 끼고 있는 라농 구간이다. 총 90㎞ 구간으로 양쪽에 각각 항구를 각각 건설하고, 그 구간은 새로 건설되는 철도와 고속도로 등으로 연결된다. 2030년 완공이 목표다.

    태국 정부가 랜드 브리지를 크라 운하 개발 방식으로 내놓은 것은 국가의 오랜 고민이 자리잡고 있다. 크라 지협에 운하를 뚫으면 태국 남부 지역은 본토로부터 분리될 수밖에 없는데, 이 지역은 예로부터 이슬람 분리 독립주의자들의 근거지였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는 운하 건설로 국토가 나뉘면 종국에는 영토를 상실할 수 있는 우려를 항상 가져왔다. 이 문제 역시 그동안 지속적으로 운하 개발 논의를 좌절시킨 주요 이유다.

    그렇다고 이 방식 또한 완전한 것은 아니다. 벌써부터 비효율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솜퐁 시리소폰실프 쭐라롱껀 대학교 교수는 “항해 거리를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박, 선적, 하역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4호 (2025년 3월) 기사입니다]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