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슬라식’ 자율주행 시동 건 현대차 XP2 프로젝트로 미래 모빌리티 길 연다

    입력 : 2025.03.05 18:06:01

  • 현대자동차의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자율주행 4단계 모빌리티 서비스 중인 ‘아이오닉5’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를 달리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자율주행 4단계 모빌리티 서비스 중인 ‘아이오닉5’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를 달리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자율주행 기능 최적화를 목적으로 하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전용 차 개발 프로젝트 ‘XP2’를 가동했다. 테슬라, 화웨이 등 자율주행 선도 업체들이 채택하고 있는 ‘엔드 투 엔드’ 방식 자율주행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전략이다. 이 차량은 300여 대를 제작해 실제 제품 테스트를 진행한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SDV 전용 차량 프로젝트 XP2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현대차 미래차플랫폼(AVP) 본부 수장을 맡고 있는 송창현 현대차 사장이 주도한다. 송 사장은 2026년까지 SDV ‘페이스카’ 개발을 완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발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현대차그룹 역시 테슬라, 화웨이 등과 어깨를 견주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업체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XP2는 테슬라가 처음 사용한 ‘엔드 투 엔드’ 방식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하는 현대차의 첫 차량이 될 전망이다.

    자율주행 방식의 ‘패러다임 전환’
    구글의 자율주행 자회사 웨이모가 미국 서부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LA)에서 로보(무인)택시 서비스를 대폭 확장한다. <사진 연합뉴스>
    구글의 자율주행 자회사 웨이모가 미국 서부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LA)에서 로보(무인)택시 서비스를 대폭 확장한다. <사진 연합뉴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개발·양산하고 있는 자율주행 기능은 크게 ‘모듈’과 ‘엔드 투 엔드’ 방식으로 나뉜다.

    모듈 방식은 레이더, 라이다와 같은 다수의 센서를 차량에 부착하는 방식이다. 미리 차량에 입력한 지역 지도를 기반으로 운행해 정확성이 높지만, 도로에 변수가 나타나거나 지도가 업데이트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자율주행 기능을 내기 어렵다. 자율주행에 특화 설계를 하지 않은 차량이라도 다수의 라이다 등 센서를 부착해 자율주행 기능을 갖추게 하기에도 어렵지 않다.

    다만 장비가 많이 필요해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 특히 라이다 생산 분야에서 중국 업체들이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행정부가 중국과의 2차 관세 전쟁을 벌일 확률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이 방식을 적극 활용할 경우 미국 판매에 제약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모듈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업이 구글 웨이모의 로보택시 서비스다. 웨이모의 핵심 기술 경쟁력은 우선 라이다 센서와 고정밀 3D 매핑 기술을 결합한 정교한 환경 인식 능력이다. 로보택시가 서비스하는 지역은 한정돼 있는 만큼 해당 지형에 대해서는 정교한 운전 기술을 보인다. 웨이모는 현재 현대차 아이오닉5를 기반으로 6세대 로보택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모듈 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테슬라가 사용하기 시작한 방식이 엔드 투 엔드다. 이는 카메라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AI가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카메라로 읽어들인 전방의 교통 정보를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한다. 모듈 방식에 비해 정확도가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지역 데이터만 학습하면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작동한다. 테슬라를 포함한 자율주행 선도 업체들이 이 방식을 활용하는 것도 이 같은 확장성 때문이다.

    테슬라는 최근 중국 내 풀 셀프 드라이빙(FSD)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 시장의 차량 판매를 늘리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노력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로드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과정으로 본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인구가 3000만 명을 넘어가는 대도시에서 비포장길, 산길, 눈길 등 열악한 도로까지 다양한 도로 형태가 존재한다. 극한 환경인 중국 도로 데이터를 테슬라 자율주행이 학습할 경우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FSD를 적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전략이다.

    엔드 투 엔드 방식의 자율주행은 테슬라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전략적으로 이 같은 방식의 자율주행을 육성하면서 화웨이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중국 정부는 소프트웨어 기업인 화웨이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집중 개발하도록 하고 기존의 완성차 업체들은 하드웨어를 개발하도록 하는 이중 전략을 쓰고 있다. 화웨이에서 개발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자국 완성차 업체들이 모두 채용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방식은 최근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 중국 완성차 업체들 중 BYD, 광저우 자동차 등이 화웨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ADS’를 탑재하고 있다. 최근 국내 사용자들이 중국에서 화웨이 최신 소프트웨어인 ‘ADS 3.2’를 탑재한 차량을 탑승하는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주행 영상을 보면 이 시스템을 장착한 차량은 교차로 꼬리 물기 차량을 알아서 피해가는 식으로 사람과 유사한 수준의 주행을 보여준다. 같은 차선이라도 갓길 정차한 차량이 있다면 중앙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해당 차량을 피해가는 모습은 웬만한 사람 운전자보다도 나은 모습을 보인다.

    현대차, 모듈 방식서 테슬라 방식으로
    현대차 미래차플랫폼(AVP) 본부 수장을 맡고 있는 송창현 현대차 사장. <사진 연합뉴스>
    현대차 미래차플랫폼(AVP) 본부 수장을 맡고 있는 송창현 현대차 사장. <사진 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엔드 투 엔드 방식의 자율주행 개발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본사 자율주행사업부와 자회사 포티투닷(42dot), 미국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까지 3개의 조직에서 자율주행을 개발한다. 모셔널이 모듈 방식의 자율주행을 개발해 웨이모와 같은 로보택시 모델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면, 42dot은 엔드 투 엔드 방식을 연구해왔다.

    하지만 현대차가 XP2라는 프로젝트명을 띄우고 본격 개발을 시작했다는 것은 현대차가 ‘테슬라식’ 자율주행 개발에 무게를 더 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의미가 있다. 모듈 방식에는 다수의 라이다 센서가 필요한데, 이들 부품은 고가일 뿐만 아니라 라이다 시장을 사실상 중국 업체들이 점령하고 있어 미국 같은 시장에 수출하기에도 불리했다.

    XP2가 시제품 한 두대 제작에 그치지 않고 차량 수백 여 대를 직접 생산한다는 점 역시 특징이다. 업계에서는 이 정도 수량을 제작한다는 것은 단순한 테스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주행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엔드 투 엔드 방식은 AI의 학습이 필수인 만큼 데이터가 중요하다. 테슬라가 중국 시장을 놓지 않는 이유도 미국과는 다른 중국의 주행 데이터를 학습해 중국 시장에도 FSD를 적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최근 현대차는 XP2의 양산 계획을 다소 축소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당초 1000대로 계획됐던 차량 생산 계획은 1월 중순께 300여 대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계획에 따르면 이들 차량에 대한 국토부 인증을 진행해 일반 공도에서 테스트 운행할 계획이었지만, 차량 인증은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테스트 공간에서만 운행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일반 운전자가 함께 달리는 일반 도로 주행 데이터를 수집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주행 조직 융합 노력

    최근 들어서는 자율주행 개발을 목표로 현대차그룹 내 연구조직들 간의 융합 노력도 시작됐다.

    현대차그룹은 1월 20일 남양연구소에서 자율주행 타운홀 미팅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자리에는 송 사장을 비롯해 현대차 자율주행사업부 임원들과 차량 설계·개발을 담당하는 임직원이 다수 참석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담당자들이 모두 모여 자율주행 로드맵을 공유하자는 취지다. 송 사장은 여기서 “완성차 업체들의 자율주행 기술은 향후 5년 이내에 판가름 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 사장은 네이버랩스 대표 출신으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 42dot을 설립한 소프트웨어 전문가다. 현대차그룹은 송 사장이 SDV(소프트웨어기반차량)의 틀을 닦을 적임자로 보고 지난해 초 미래차플랫폼(AVP)본부장에 임명했다. 이 같은 연구조직의 변화는 초반부터 깔끔하지는 않았다. 이전까지 CTO로 연구개발조직을 이끌던 차량 하드웨어 전문가 김용화 전 사장이 물러나고 송 사장이 연구개발조직의 키를 잡으면서 오랜 기간 하드웨어 위주 연구개발을 해오던 현대차그룹 연구개발진과 송 사장을 필두로 한 소프트웨어 중심 개발진의 의견 충돌이 있어왔다. 송 사장이 현대차그룹 연구개발의 허브인 남양연구소를 찾아 직원들과 소통한 것은 이 같은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XP2 프로젝트는 현대차가 구상하는 자율주행 로드맵의 출발점으로 기능할 전망이다. 지난해 진행한 ‘CEO 인베스터데이’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는 2026년 출시가 예정된 제네시스의 전기 플래그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90’에 양산차로는 처음으로 SDV 플랫폼의 일부 기술들을 적용할 계획이다. 2027년 이후에는 순차적으로 모든 차량에 이 플랫폼을 적용한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를 위한 새 해법으로 카메라 중심 엔드 투 엔드 방식에 중점을 두고 개발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42dot을 비롯해 모셔널 등 국내외 파트너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가형 차에도 자율주행…中 무서운 추격

    한편 중국 완성차 업체들은 저가형 모델에도 자율주행 기능을 추가하는 전략에도 시동을 걸고 있다. 기존까지는 중국 전기차 중에서도 약 5000만원 이상의 차량들에만 고급 사양으로 이들 기능이 추가됐다.

    2월 11일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왕촨푸 BYD 회장은 전날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열린 스마트 전략 발표회에서 전 차종에 자율주행 시스템 ‘신의눈’(天神之眼)을 탑재해 ‘전 국민 자율주행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율주행 시스템이) 더는 가질 수 없는 사치품이 아니며, 안전벨트·에어백처럼 필수 도구”라고 했다. 저가 모델을 포함한 거의 모든 차종에 첨단 자율주행 시스템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선언이다.

    BYD는 중국에서 10만위안(약 1988만원) 이상 차량에 ‘신의눈’을 기본 탑재하고, 7만위안(약 1392만원)짜리 ‘시걸’ 해치백 등 저가 차종 3개에도 이를 적용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3만달러(약 4362만원) 이상 모델에만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됐다. BYD가 2023년 처음 선보인 ‘신의눈’은 카메라와 레이더 센서를 이용해 원격 주차를 포함한 자율주행 기능을 제공한다. 테슬라의 FSD 등 자율주행 관련 기능은 3만 2000달러(약 4654만원) 이상 모델부터 적용된다. BYD는 또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의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차량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딥시크 모델 탑재로 인해 운전 중 음성명령 기능 등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예측이다. 테슬라는 아직 중국에서 FSD 출시 승인을 받지 못한 상황인 만큼, BYD 자율주행의 시장 장악력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제완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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