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VR 작동시키는 AI 운영체제 경쟁, 모든 기기 연결하는 만능 시스템 나온다

    입력 : 2024.06.11 17:08:59

  • 테크업계에서는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명령을 수행하고 일부 영역에선 판단까지 대신해줄 수 있는 인공지능(AI)이 하나의 통합된 운영체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TV, 컴퓨터(PC), 자동차(스마트카), 가전제품들까지 각기 다른 운영체제(OS)가 하나의 AI로 통합되면서 마치 개인 비서처럼 AI가 디바이스를 인간 대신 통제해준다는 아이디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디바이스(데스크톱, 스마트폰, 스마트카 등)은 대부분 다른 OS 위에서 구동된다. 인간의 보조자가 되어줄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시공간을 초월하게 해줄 가상현실(VR) 기기 등을 제어하기 위해서도 OS가 필요하다.

    영화 ‘그녀(HER)’에 나오는 AI OS ‘사만다’는 사용자 맞춤형 소프트웨어로 명령어 실행뿐 아니라 인간과 교감까지 한다. 사만다는 영화 속 주인공이 사랑에 빠질 정도로 인간과 흡사한 면모를 보인다.

    오픈AI가 실시간 통역에 노래까지 부르는 AI기반 음성비서(에이전트)를 5월 14일 전격 공개하면서 영화 속 상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오픈AI는 이날 텍스트, 비전, 오디오를 통합한 멀티모달 모델 ‘GPT-4o’를 공개했다.

    GPT-4o는 기존 GPT-4 모델을 기반으로 하며, 전 세계 50개 언어를 지원한다. 기존보다 15개 언어가 추가됐다. 핵심은 음성 기능 강화다. 텍스트, 비디오, 이미지를 업로드하면 대화할 수 있고, 음성과 음성 대화도 가능하다. 종전에는 음성과 음성 연결이 불가능했다. 말을 하면, 챗GPT가 문장을 입력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음성을 입력하면 챗GPT가 음성을 출력했다.

    이날 시연에서 휴대전화로 ‘내가 좀 긴장한 상태인데 어떻게 진정할 수 있을까’라고 묻자, ‘숨을 깊이 들이마시라’는 음성 답이 돌아왔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잠자리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이 AI 모델은 다양한 목소리와 감정, 톤으로 바꿔가며 이야기를 들려주기도했다. 다른 시연에서는 종이에 적힌 수학 문제를 보여주고 풀어달라고 하자, 시각 기능을 이용해 단계별로 풀어나가는 모습이었다.

    GPT-4o는 다양한 AI 엔진을 통합해 진정한 AI 에이전트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AI 에이전트가 전자기기 OS의 끝판왕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음성 비서는 훨씬 더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으며 음성 인식 능력, 문맥을 이해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글로벌 정보기술(IT)에서 AI기술 발전과 생태계 선점을 위해 차세대 OS를 준비하는 빅테크 움직임과 맞물려 OS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가 주목된다.

    OS는 사용자가 디바이스(전자기기)를 쉽게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인터페이스를 의미한다. 하드웨어(디바이스)의 접근성과 사용성을 높여주는 게 핵심이다. PC와 스마트폰이 대중화에 성공한 전자기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OS의 뒷받침 덕분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VR 헤드셋, 로봇,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디바이스’ 기술 개발이 속속 이뤄지는 가운데 이를 제어하는 ‘OS’를 장악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구글과 애플이 스마트폰용 OS인 ‘안드로이드’와 ‘iOS’로 글로벌 IT 패권을 차지한 것처럼 스마트폰 이후 ‘킬러 디바이스’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테크 공룡들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하드웨어를 직접 판매하는 것만큼 OS에서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이 ‘실익’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AI 기술로 인한 ‘통합’이 OS 시장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독자 OS를 통해 모든 기기를 연결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빅테크’의 공통된 과제인 셈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시너지를 극대화해야만 시장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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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R시장 생태계 구축 경쟁
    지난 4월 런던에서 열린 Meta AI Day에서 참석자들이 VR 헤드셋 ‘메타 퀘스트3’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4월 런던에서 열린 Meta AI Day에서 참석자들이 VR 헤드셋 ‘메타 퀘스트3’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AI 에이전트와 연동돼 시너지가 예상되는 분야는 스마트폰에 이어 차세대 ‘킬러 디바이스’로 각광받는 가상현실(VR)·혼합현실(MR) 시장이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VR·AR기기 시장 규모가 올해 182억달러에서 2026년 357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관건은 생태계다. 메타는 전 세계 VR 헤드셋 시장 1위 제품인 ‘퀘스트’의 생태계 확장을 위해 10년간 개발한 OS를 외부 기업들에 개방하고 ‘동맹군’을 모으고 있다. 오픈소스는 일종의 설계도인 ‘소스코드’를 공개하고 누구나 수정·재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메타는 퀘스트용 OS 명칭도 ‘호라이즌 OS’로 바꾸고 오픈소스 전환을 공식화한 상태다. 이를 두고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는 “다른 기업들도 메타의 OS를 이용해 헤드셋을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메타는 호라이즌 OS를 확장하기 위해 에이수스, 레노버 등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에이수스는 ‘게이밍 헤드셋’을, 레노버는 ‘학습·엔터테인먼트’용 헤드셋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가 OS 확장에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앞으로 이와 같은 파트너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메타의 이 같은 전략을 두고 구글이 과거 안드로이드 OS를 오픈소스로 개방하면서 스마트폰 생태계를 장악한 모습과 흡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메타의 핵심 캐시카우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바일 앱은 애플과 구글 등의 모바일 OS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메타는 오랫동안 자체 디바이스와 운영체제 구축을 갈망해왔다는 분석이다.

    MR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목적은 같지만 구체적인 전략에서 애플과 메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지난 2월 비전프로 헤드셋을 출시한 애플은 생태계 확장에 있어 폐쇄적인 방식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비전프로는 비전 OS로 구동된다. 애플 생태계에 발을 내딛고 어지간해서는 빠져나오지 않는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전형적인 ‘애플식’ 전략으로 풀이된다. 폐쇄적인 애플 생태계에 사용자를 록인(Lock-in)시켜 생태계를 공고히 하고 이들이 계속해서 애플 하드웨어를 구매하도록 유도해 하드웨어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이다.이는 디바이스의 강력한 제품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앞서 애플은 스마트폰-아이패드-애플워치 등 다양한 디바이스를 통해 이 같은 성공 방정식을 입증한 바 있다. 비전프로 초기 생산량을 줄이고 있는 애플이 MR 시장에서 이를 재현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새로운 키워드 AI 에이전트

    이와 관련해 AI 에이전트가 MR 시장에 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스마트 글라스와 같은 디바이스에 AI를 붙이면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대중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애플은 기기 내 사용을 목표로 하는 자체 소형 언어모델인 ‘OPEN ELM’을 공개했다. 스마트폰에서 직접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언어모델이다. 애플은 아직 자체 AI 언어모델 기능을 자사 디바이스에 적용하진 않은 상태다. 외부 AI 처리를 위해 오픈AI, 구글 등과의 협력설도 나온다.

    올해 6월 열릴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오픈AI의 챗GPT가 아이폰에 탑재되는 것도 공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오픈AI와 라이선스 계약을 거의 마무리 지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지난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말 AI 분야에서 진행 중인 작업의 세부사항을 공유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시장에서는 시리를 크게 업그레이드한 ‘AI 에이전트’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디바이스 영역에서 강점을 가진 애플은 필요한 시점에 AI를 자사 디바이스들에 연결해 유기적인 생태계를 공고히 하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뿐 아니라 AI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다양한 업무를 대신해주는 ‘AI 에이전트’ 경쟁이 빅테크 기업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습이다.

    구글은 기존에 스마트폰에 설치했던 음성 AI 비서인 구글 어시스턴트를 제미나이 어시스턴트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구글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차세대 AI ‘제미나이’를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들어 스마트폰에 탑재한다. 제미나이는 기존 안드로이드폰에 기본으로 탑재된 음성 비서인 ‘구글 어시스턴트’를 대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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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전원) 버튼을 오래 누르면 구글 어시스턴트가 아니라 제미나이가 작동한다. 제미나이에 텍스트, 음성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고 현재 화면을 스크린샷으로 가져오거나, 촬영한 사진을 불러와 제미나이와 소통할 수 있다. 제미나이에는 텍스트 외에도 이미지, 음성 등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헤이 구글’이라고 말해도 제미나이가 호출된다. 제미나이에는 전화를 걸거나 알람을 맞추는 구글 어시스턴트 기능이 그대로 있다.

    최근 로봇이 AI와 접목되면서 두뇌 역할을 하는 OS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최근 들어 ▲하드웨어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로봇 제작 원가 하락 ▲AI 탑재를 통한 로봇의 지능 향상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로봇 전용 OS의 개발 등으로 상용화가 다가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는 2023년 135억달러 수준이던 로봇용 소프트웨어 시장이 2032년 8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발전으로 인해 휴머노이드 로봇은 전기차와 스마트폰 다음으로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지배적으로 사용되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치열한 로봇 ‘두뇌’ OS 개발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엔비디아 등은 오랜 시간 로봇 하드웨어뿐 아니라 로봇 소프트웨어 기술을 개발·축적해왔다. 이들 빅테크는 로봇 하드웨어의 기술 발전을 예의 주시하면서 소프트웨어 시장 진입 시기를 가늠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로봇을 구동하는 OS뿐 아니라 로봇기술 개발까지 시작부터 지원하는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 MS는 로봇 소프트웨어 ‘인텔리전트 로보틱스’를 선보인 바 있다. 지능형 로봇을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구글과 아마존도 각각 ‘구글 클라우드 로보틱스 코어’와 ‘로보메이크’를 내놓는 등 관련 기술을 축적 중이다. 개발자, 통합 업체 및 운영자가 로봇을 쉽게 관리하도록 돕는 기능이 탑재됐다.이미 클라우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글과 아마존의 경우, 로봇 OS 시장에 진출할 때 상당히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클라우드는 로봇 운영에 핵심적인 보안, 데이터, 양방향 통신 등 기술을 아우르는 플랫폼의 뼈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올해 연례 개발자 행사에서 휴머노이드 개발을 위한 AI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 ‘그루트’를 선보였다. 엔비디아는 2021년부터 오픈로보틱스와 같은 스타트업과 GPU와 같은 AI 반도체 기반 시스템에서 로봇운영체제의 성능을 가속화하는 개발을 해왔다.

    네이버는 로봇 전용 OS인 ‘아크마인드’를 선보이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아크마인드는 네이버 웨일 브라우저와 삼성 엑시노스를 기반으로 구동된다. 네이버는 상용화를 위해 아크마인드를 자체 개발 로봇 ‘루키’에 적용하고, 시범 테스트를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 루키는 네이버 제 2사옥인 ‘1784’에서 활동 중인 서빙 로봇이다. 네이버는 연내 110여 대 루키에 아크마인드를 순차적으로 탑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타이젠 OS가 탑제된 인공지능(AI) 로봇 ‘볼리’
    삼성 타이젠 OS가 탑제된 인공지능(AI) 로봇 ‘볼리’

    로봇 하드웨어 분야에서 남다른 기술력을 보유한 삼성전자도 독자 소프트웨어 확장에 시동을 걸었다.

    삼성전자는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선보인 AI 로봇 ‘볼리’에 자체 OS인 ‘타이젠’을 탑재했다. 스마트TV 같은 가전제품에 이어 AI 로봇에까지 타이젠을 적용한 것으로 주목된다.

    앞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에서 독자 OS 구축에 나섰지만 이미 시장을 장악한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 iOS의 벽을 넘지 못했다.

    로봇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OS는 현재로선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OS 생태계가 그러했듯 로봇 OS를 두고 오픈소스·폐쇄형 진영의 대립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빅테크가 로봇 전용 OS를 본격적으로 내놓을 경우, 현재 생성형 AI 시장처럼 진영이 나뉘어 각기 다른 생태계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황순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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