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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쟁 시대] 日 에너지 위기 현황과 전망 | 전력난 놀란 日정부 원전 재가동으로 선회
입력 : 2022.11.10 16:4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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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일본 정부는 7년여 만에 전국적으로 국민들에게 ‘여름철 절전 요청’을 했다. 실내 온도를 28℃ 이하로 하거나 불필요한 조명을 끄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것인데, 전력예비율이 안정적 공급을 위한 최소 기준치인 3% 근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내린 조치이다. 6월 하순에는 때 이른 더위로 전력예비율이 내려가자 도쿄 등에 대해 ‘전력수급 핍박(압박) 주의보’를 내리는 등 어려움도 겪었다. 노후 화력발전소의 가동 중단이 이어진 가운데 원자력 발전소의 재가동이 지지부진한 것 등이 일본 전력난의 원인으로 꼽혔다. 여름뿐 아니라 겨울철 추위가 심할 경우 전력난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나오면서 ‘전력의 안정적 공급’은 일본 정부의 핵심적 단·중기 에너지 과제로 떠올랐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사할린2’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사할린에너지’의 권리·자산을 새로 만드는 러시아 법인에 넘기는 내용 등을 담은 ‘비우호적 행동에 대한 특별경제조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일본은 극동의 에너지 개발사업인 사할린2를 통해 연간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의 10%가량을 조달하고 있는데, 러시아의 조치로 기존에 이 프로젝트에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기업이 제외되면 수입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미국·유럽과 보조를 맞춰 제재에 나섰던 일본에 보복하는 차원에서 나온 조치라는 분석도 있었다. 설립된 법인에서 기존 일본 기업이 지분율을 유지할 수 있게 돼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 내에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인식이 더욱 커진 계기가 됐다.
지난 6월 일본정부는 전력예비율이 크게 떨어지자 기업과 시민들에게 절전을 당부했다. <사진 연합뉴스> 최근 일본의 에너지 전략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전력 등의 안정적 공급과 에너지 안보이다. 일본 언론은 최근 벌어진 전력난과 에너지 자원 조달의 불확실성 등을 두고 ‘에너지 위기’라는 표현을 쓰며 전력 등 에너지 안정적 공급·확보와 에너지 안보 강화를 주문·강조하고 있다. 기존 일본 에너지 정책의 기본 방향은 ‘S+3E’로 집약된다. 안정성(Safety)을 기반으로 에너지 안정공급(Energy security), 경제적 효율성(Economic efficiency), 친환경(Environment)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목표이다.
작년과 올 초까지만 해도 국제적인 흐름에 맞춰 일본 정부와 사회의 관심도 탈탄소와 친환경에 많이 쏠렸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에너지 자원 값 상승 등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와 안정적 공급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특히 수입하는 화석연료에 에너지원의 80%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일본 입장에서는 최근의 국제 정세는 ‘수급의 불확실성과 일본의 약점’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이에 따라 중장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 도입을 신속하게 늘려 일본 정부가 목표로 내세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게 중요하며 단·중기적으로는 원전의 활용도를 높이고 기존 시설 등을 활용해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에너지 안보의 대응력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원전은 탈탄소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주요한 전력원이라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일본 정부가 전력의 안정적 공급과 원유·LNG를 비롯한 에너지 자원 조달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목하고 있는 게 원전이다. 일본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원전 신설·개축을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최근 바꿔 차세대 원전의 개발·신설을 검토하기로 했고 원전의 재가동이나 운전기간을 늘리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원전 전략 변화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통해 나왔다. 그는 지난 8월 “차세대형 혁신로 개발·건설 등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항목이 제시됐다”며 “여러 방안에 대해 연말에 구체적 결론을 낼 수 있도록 검토를 가속해달라”고 밝혔다. 일본 언론은 이 발언에 대해 ‘원전의 신·증설’로 전환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원전의 운전기간 연장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운전기간을 원칙적으로 40년으로 정했으며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인정하는 경우 최장 20년 연장해 총 60년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운전기간에 대한 상한을 폐지하고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안전심사를 거쳐 연장 운전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원전 운영기간의 상한이 없고 정기적으로 규제당국이 안전성을 확인한다. 미국에는 60년 이상 운전할 수 있는 원전이 6기가량 있다.
LNG 수입 10% 차지 ‘사할린2’ 러시아 움직임 따라 불확실성 커져일본 정부는 내년 여름 이후 재가동되는 원전을 최대 17기로 늘리는 방안도 추진한다. 여기에 더해 일본 정부는 원자력규제위의 심사에는 합격했으나 지자체의 동의를 얻지 못했거나 안전 대책 공사가 늦어져 아직 재가동에 돌입하지 못한 원전 7기에 대해 내년 여름 이후 적극적으로 가동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새로 내놓았다.
닛케이에 따르면 경제산업성은 전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내년부터 멈춰있는 화력발전소의 일부를 예비전력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해나 특정 자원의 조달 문제 등으로 전력의 차질이 생길 때 이들 예비 화력발전소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전력사로부터 후보를 받아 예비 전력원용 화력발전소 목록을 만들고 이들에 대해서는 관리를 지속해 가동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추진 방안이다. 일본의 전력사들은 탈탄소 움직임과 에너지 자원 가격 변동 등의 영향으로 이용률·수익성이 낮아진 화력발선의 가동을 멈춰왔다. 경제산업성에 다르면 2030년까지 일본에서 신설되는 화력발전소가 1400만㎾인데 폐지되는 것은 4300㎾로 추정된다. 일본은 최근 에너지 안보와 안정적 공급을 중시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탈탄소에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 일본의 전력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재생에너지 18% ▲원전 6% ▲LNG 37% ▲석탄 37% ▲석유 7% 등이다. 일본은 작년 수립한 제6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203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3년에 비해 46%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2030년 전력원을 ▲재생에너지 36~38% ▲원자력 20~22% ▲LNG 20% ▲석탄 19% ▲수소·암모니아 1% 등으로 가져가겠다는 계획표를 내놓았다. 2050년 탄소 실질배출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높이는 게 큰 틀이다.
탈탄소를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해가지만 전력의 안정적 공급과 원가 등을 감안해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석탄화력발전을 2030년까지 포기하지 않는 점도 눈에 띈다. 작년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40여 개국이 지지한 석탄화력발전의 단계적 폐지안에 일본은 미국·중국 등과 함께 동참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석탄에 대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지만 공급 안정성이나 경제성에서 뛰어나다. 재생에너지를 도입하는 중에 조정 전력원으로 역할이 기대된다’라고 평가했다.
[김규식 매일경제 도쿄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