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전쟁 시대] 美 에너지 위기 현황과 전망 | 흔들리는 워싱턴의 에너지 주도권… 비축유 풀어 안정화 나섰지만 인플레 발목

    입력 : 2022.11.10 16:38:45

  • 유럽대륙의 에너지 위기는 미국의 정책에 어떤 영향을 주고 변화를 가져올까.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트럼프 정부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기후변화체제로의 복귀를 앞세워 친환경 에너지 정책은 바이든을 대표하는 공약으로 자리매김했다. 바이든 정부는 2035년까지 발전 부문의 탄소 배출을 없애고 205년까지 미국 전체의 탄소 배출을 없앤다는 ‘탄소중립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국의 어젠다이기도 하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 출범 후 4년간 2조달러 규모의 청정 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진행하는 반면 화석 에너지 인프라스트럭처 건설과 개발은 사실상 중단됐다.

    사실 오바마 정부에서부터 트럼프 정부로 이어지는 사이 미국은 자국이 자랑하는 셰일 가스와 석유 생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이를 통해 에너지 강국의 면모를 뽐냈고 중동아시아와 러시아 등 에너지 주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들을 압박하는 카드로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활용해왔다. 이러한 기조는 바이든 정부에서 조금 결이 달라졌다.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의 기조를 트럼프 정부로부터 이어받음과 동시에 대선 주요 공약이었던 친환경 에너지 확장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 바이든 정부는 미국 국익 보호를 앞세워 현재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추진해왔고 인프라 재건을 위한 재정 정책 더 나은 경제복구법, 일명 ‘Build Back Better’ 법에 드라이브를 걸며 강한 미국을 내세우고 있다. 이와 더불어 기후와 환경을 강조하며 패권국다운 면모를 자랑해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18일 워싱턴DC 하워드 극장에서 열린 민주당전국위원회 행사에서 낙태권과 관련해 연설하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사진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18일 워싱턴DC 하워드 극장에서 열린 민주당전국위원회 행사에서 낙태권과 관련해 연설하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이러한 미국에 제동을 건 나라는 다름 아닌 러시아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연초부터 시작해 다시 쌀쌀해지는 늦가을까지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유럽이 위기 속에서 허덕이는 사이 미국조차 자국의 에너지 문제해결이 급선무다보니 이를 신경 쓸 여력조차 없는 상태다. 미국은 연초부터 에너지 대란에 시달렸다. 국제유가의 상승 속에서 휘발유 가격 급등으로 미국 전체에 큰 위기를 가져왔다. 에너지 정책 역시 위기를 맞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직접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 중동의 산유국 설득에 나섰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0월 초 오펙플러스(OPEC+)의 원유 생산량 감축을 결정한 바 있다. 특히 미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살한 채 결국 감산을 결정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입지는 지속적으로 좁아지고 있다. 미국은 자체적으로 비축유를 지속적으로 방출하며 유가 안정에 애쓰고 있다. 하지만 주요한 산유국이면서도 세계 최대의 소비국이기도 한 미국 입장에선 원유 수입 없이는 버티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미국 정부는 비축유 방출뿐 아니라 주요 정유기업들에 대한 가격 조정을 요청하며 시장 안정화를 꾸준히 꾀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8.2% 상승하며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전년 동월 대비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6.6% 상승했는데, 이는 근 40년 만에 최고 상승치다. 에너지 불안이 다소 진정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플레이션 상승을 제대로 진화하지 못한 셈이다. 미국 현지에서 체감하는 위기감은 더욱 높다. 일단 미국 주식 시장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주식 투자 비중이 높은 미국 가계에도 역풍이 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금리 여파로 인한 모기지 대출 부담이 향후 시장을 뒤흔들 위기의 전조로 평가받는 중이다. 자칫 방치하다가는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의 공포가 다가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유가 못 잡으면 중간선거도 위태

    물가를 잡기 위한 연준의 조치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 역시 유지될 확률이 높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스탠스가 전 세계 중앙은행을 긴장시키면서 파산 공포를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결정이 사실상 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미국의 정책에 눈과 귀가 쏠릴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국 안팎에서는 유가를 잡지 못하면 바이든 정부의 미래가 어둡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다름 아닌 11월로 예정된 미국 중간선거다. 사우디아라비아 외무부가 지난 10월 13일 성명을 내고 미국이 감산 결정을 한 달 연기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가 얼마나 중간선거를 신경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바이든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을 가진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한다면 바이든의 친환경 정책 전반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 말인즉슨 미국이 추진해온 에너지 전략 전체가 뒤흔들리는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화석연료 수급이 중심이 돼왔던 에너지 전쟁에서 미국은 항상 갑보단 을의 위치였다. 전 세계 모든 분야를 통틀어 미국이 이렇게 열세인 부분은 에너지 부분이 거의 유일하다. 이러한 상황을 뒤바꿀 게임체인저가 바로 친환경 에너지인데,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 직전에 가장 큰 위기를 러시아로 인해 맞은 셈이다.

    사진설명

    지난 10여 년간 미국의 에너지 증산으로 이에 변화가 있었지만 현재 상황에서 미국의 선택지는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결국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려는 탄소 및 친환경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현재의 에너지 위기는 미국이 탈출해야 할 가장 큰 위기다. 신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신기술 개발과 관련해 주 차원과 기업 차원에서의 경쟁력은 여전히 충분하다는 평가다. 또한 민간 R&D 역량은 글로벌 경쟁을 선도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 만큼 정부 정책만 잘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이를 극복할 코어 에너지는 높다는 것이다. 유럽 역시 그린에너지 중심 정책과 탄소중립 이니셔티브를 여전히 높은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만큼 이를 중심으로 저탄소 경제의 주도권을 가져가겠단 계획은 큰 변화가 없다고 봐야 한다.

    사실상 코로나19의 위기는 더 이상 공포를 주는 대상은 아니다. 결국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월가의 한 전문가는 “석유와 가스 에너지가 당장 급격한 속도로 줄어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에너지 안보와 산업활동이 진행되는 데 있어서 천연가스와 석유 에너지는 여전히 핵심 근간을 이루는 만큼 미국의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라고 평가했다. 당장 러시아 변수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잘 극복한다면 또 다른 기회가 창출될 것인 만큼 이를 대비한 준비과정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전문가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서 에너지 전체 전략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다”라며 “넷제로와 탄소중립의 시대에 미국의 정책이 결국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에너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동훈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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