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육아를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같이 공부도 하고, 모임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 자연스레 삶을 나누도록 지인들끼리 아이를 같이 기르는 것이다. 한 부모가 일이 있으면, 다른 부모가 아이를 맡아 대신 돌보기도 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아이들이 언제든지 친구 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한 일이다.
타인을 문턱 안으로 들여 밥을 나누는 일은 그를 진짜 가족으로 대접하는 일이다. 아이는 본래 부모 홀로 키울 수 없다. 공동체가 키울 때 아이는 가장 건강하게 자란다. 미국 인류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에 따르면, 음식 공유와 공동 육아는 인류 진화의 핵심 동력이다. 할머니와 이모가 참여해서 엄마와 함께 아이를 길렀기에 인간은 고도의 사회성을 갖추게 되었다.
어른의 사랑은 아이에게 더 많은 음식과 보살핌을 보장한다. 대가족에서 사랑받으려면 아이는 말귀를 잘 알아듣고 눈치가 좋아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와 무던히 잘 지내야 한다. 진화의 선택압이 성격 모나고 눈치 없는 아이에게 불리했기에, 인류는 거대한 무리를 이루면서도 서로 협력하는 능력을 얻었다.
아이를 같이 기르고 타인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일로부터 인류의 역사는 시작했다. 먹기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행위이다. 먹는 행위 없이 우리는 자신을 유지할 수 없다. 우리는 먹이를 베어 물고, 씹어서 찢어발기고, 삼켜서 소화한다. 생존을 위해 맛보고 먹는 일은 우리 몸과 마음을 바꾼다. 러시아 비평가 미하일 바흐친은 먹는 입 안에서 자아가 세계와 만나 자신을 유지하고 확장한다고 말했다. 먹고 마시는 행위는 파괴함으로써 보존하고 부서뜨려 성장하는 일이다. 음식을 먹음으로써 우리는 세계를 나로 변화시킨다. 이 때문에 우리는 먹기를 개인적 경험으로 자주 착각한다.
그러나 먹기는 항상 사회적이다. 다른 많은 동물과 달리, 인간 아기는 혼자서 먹지 못하고, 첫 번째 음식인 젖부터 다른 사람 품에 안겨야 간신히 먹을 수 있다. 그 때문에 먹는 일은 자아와 타자가 관계 맺는 일이고, 타인과 함께 나를 형성하는 사회적 행위가 되었다. 먹기에는 늘 다른 사람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은 바사니오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와 함께 사고팔고, 말하고, 걸을 테지만, 너희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너와 친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함께 먹기는 어디까지가 ‘우리’인지를 알려준다. 우리는 누구나 함께 먹지만, 아무와 함께 먹지는 않는다.
음식은 친밀감과 유대를 만든다. 사람 사이에 음식을 놓으면, 서먹함은 빠르게 사라진다. 영어 단어 컴패니언(companion)은 ‘동료, 친구, 반려 등’을 의미한다. 이 말은 라틴어 콤파니오넴(companionem)에서 왔는데, 콤(com-)은 ‘함께’란 뜻이고, 파니스(panis)는 ‘빵’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친구나 반려는 ‘함께 빵을 나누는 사람’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을 말한다. 음식은 나와 너를 벗으로, 연인으로, 가족으로 만든다.
함께 먹기는 인간의 근원적인 음식 체험이다. 음식은 늘 혼자 먹을 때보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나 동료와 함께 먹을 때 더 맛있다. 음식과 함께 우리는 그에 얽힌 기억이나 감정을 같이 먹기 때문이다. 혼자 먹기에 익숙해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혼밥’이 맛있어지려면 엄청난 정신적·심리적 에너지가 요청된다. 우애가 빠진 식사는 목숨 연장 행위에 불과할 뿐 실제로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밥상 공동체이자 알코올 동맹 속에서 사회적 삶을 살아간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혼자 밥이나 술을 먹는 일은 대부분 한 인물의 사회적 고립과 실존적 소외를 상징한다. 소설에서 사건을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는 잔치나 파티를 열어 인물들을 한 장소에 몰아넣는 일이다. 식탁이나 술상을 놓고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 사랑, 우정, 사업, 음모 등 온갖 사건들이 펼쳐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먹는 일은 우리 삶에서 너무나 중요하기에 음식은 자주 한 인간의 은유로 사용된다. 사치하고 화려한 음식을 즐기는 일은 쾌락에 중독된 방탕한 마음과 분수를 알지 못하는 도덕적 타락의 증거가 된다. 좋은 재료와 섬세한 조리 솜씨를 분별할 줄 아는 혀는 풍부한 교양과 단련된 취향을 보여주는 근거로 제출된다. 둘 사이, 즉 잘 조율된 감각과 어리석은 집착 사이엔 아주 얇은 벽밖에 없어서 상황과 맥락에 따라 잘 처신하지 않으면, 우리의 사회적 평판은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음식 사진 한 장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한 인간의 윤리적 감각을 선명히 보여준다. 푸시킨은 말했다. “문명화한 인간의 위장은 선량한 마음보다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 섬세함과 고마워하는 마음이다.” 비통한 참사가 벌어졌을 때 농담을 내뱉는 인간처럼, 섬세함과 고마워하는 마음이 깃들지 않은 음식 표상은 그 사람의 저열한 인격을 폭로한다. 육체의 허기를 메울 때 아무것이나 먹진 않듯이 정신(명예)의 굶주림을 달래는 일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사진일지라도 음식 나누기는 우리의 원초적 경험에 속하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함께 먹기에서 타자에 대한 배려와 우애가 소실되면, 식탁은 소름 끼치는 지옥으로 바뀐다. 상사가 한없이 ‘라떼는 말이야’를 늘어놓고 업무 확인과 지시를 반복하는 밥자리보다 차라리 혼자 먹는 편이 좋다. 우정 어린 식사는 축복이나 적과의 식사는 끔찍할 뿐이다. 구역질 나는 배신과 암살, 복수와 보복이 숱하게 식탁에서 일어난다.
역겨움은 우리 몸이 음식을 거부할 때 생긴다. 사악한 마음은 우리 안에서 음식을 쫓아낸다. 인간은 함께 음식을 나눌 때 행복해지고, 도무지 같이 먹지 못할 때 불행해진다. 배신한 연인이 건넨 독 넣은 음식은 흔히 불굴의 영웅에게 치명적 상처를 입히고, 그를 죽음의 늪에 빠뜨린다. <니벨룽의 노래>에서 크림힐트는 잔치를 이용해 니벨룽족을 몰살함으로써 남편 지크프리트의 오랜 원수를 갚는다. “크나큰 비탄 속에 왕의 축제는 끝났도다./ 언제나 기쁨의 대가는 결국 고통으로 치러지는 법이로다.” 영웅들의 화려한 잔치에서 시작한 이 서사시는 잔치가 파괴되고 피와 눈물로 가득한 세계가 열리면서 끝난다. 마음 놓고 함께 먹을 수 없는 세계는 고통과 슬픔이 지속된다.
연말이다. 곳곳에서 모임이 열리고, 잔치가 벌어진다. 친구나 연인과 만나서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이 어떤 뜻이 있는지를 깊이 성찰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7호 (2022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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