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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한민족의 명품 소고기 발달史 21세기 K푸드 대표주자 한우
기사입력 2021.01.07 15:03:27 | 최종수정 2021.01.07 1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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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고기, 한우는 맛있다. 맛있는 만큼 비싸고, 비싼 만큼 고급이다. 이른바 고부가가치의 명품 소다. 고베 비프라고 하는 일본 와규, 최고급 스테이크 재료라는 미국 블랙 앵거스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그만큼 명성이 높다.

손꼽히는 명품 소고기를 만들어 낸 한민족인데 따지고 보면 우리는 역사적으로 소고기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일가견이 있는 민족이었던 것 같다. 신축년, 소의 해를 맞아 소고기의 역사를 보면 우리의 소고기가 맛있고, 또 소고기 요리를 잘하기로 이름을 날렸던 민족이었다. 국제 사회에 우리 소고기가 명성을 떨친 역사는 뿌리가 깊어서 약 700년 전인 13세기 말에 벌써 소고기를 수출했다. 근대의 역사학자였던 최남선은 <조선상식>에서 고려의 임금이 원나라로 장가를 들기 시작한 이후부터 탐라의 소고기를 원나라에 보냈는데 고기뿐만 아니라 고기 굽는 사람까지도 함께 딸려서 보냈다고 적었다. 원나라 공주와 결혼한 고려의 왕은 13세기 말 충렬왕이 처음이니까 이 무렵 원나라에서 고려로부터 소고기를 수입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소고기를 굽는 요리사까지도 초빙해 갔던 것이다.

소를 수출하고 고려 소고기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는 것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요리사까지 함께 초빙했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고려의 숙수가 원나라 수도인 북경에까지 직접 진출해서 고기를 구웠다면 고기 굽는 노하우가 특별했거나 아니면 고기를 구울 때 사용하는 양념이 비법이었거나 어쨌든 무엇인가 특별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 때 소고기 요리의 비법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원나라의 요리법과 어떻게 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17세기 조선 숙종 때의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를 보면 우리나라 소고기 요리, 특히 숯불구이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홍만선은 당시의 숯불구이를 설하멱적(雪下覓炙)이라고 표현했는데 조리법으로 소고기를 편편하게 잘라 칼등으로 찧어 부드럽게 만든 후 꼬챙이에 꿰어 기름소금에 재었다가 기름이 충분히 배어들면 은근한 불에 굽는다고 했다. 고기를 구울 때도 물에 담갔다가 빼면서 굽기를 세 번 반복하는데 이렇게 구우면 고기 맛이 부드럽고 맛이 좋다고 적었다.

일제 강점기 때 발행된 조선의 풍속서인 <해동죽지>에도 설리적(雪裏炙)이라는 이름으로 숯불구이 조리법이 나오는데, 옛날부터 고려 도읍지였던 개성의 명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설리적은 소갈비 혹은 염통을 기름, 마늘 등과 함께 굽는데 반쯤 익으면 물에 담갔다가 센 불에 다시 구워서 익혀 먹는다고 소개했다. 특히 눈 오는 겨울밤에 술안주로 먹으면 연하고 맛이 좋다는 것이다. <산림경제>나 <해동죽지> 등의 옛 문헌에 실린 고기 굽는 법과 기름소금이라는 양념장은 중국의 요리법과 확연하게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고려의 소고기 구이가 원나라에 이름을 떨쳤고 고려의 요리사가 초빙을 받아 중국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우리나라 소고기 또는 고기 요리법이 국제적으로, 옛날 기준으로는 중원에서 이름을 날렸던 게 13세기 말의 고려 때가 처음은 아니다. 약 2000년 전인 서기 1세기 무렵부터 줄곧 우리 민족은 고기를 맛있게 굽기로 소문이 났다.

구운 고기를 한자로는 적(炙)이라고 쓴다. 불(火) 위에 고기(肉)가 올려져 있는 모습의 회의문자다. 1세기 한나라 때의 한자 사전인 <석명>에 ‘적’은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런데 석명에는 적(炙)이라는 고기구이 이외에 맥적(貊炙)이라는 고기 굽는 법의 설명이 별도로 기록돼 있다. 고기를 통째로 구워서 먹을 때는 각자 칼로 잘라서 먹는다고 풀이했는데 북방 맥(貊)족의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단순한 고기구이 조리법과는 차별을 둔 것으로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통 바비큐 구이와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맥적이라는 특별한 방법으로 고기를 구워먹는다는 맥족은 중국 동북지방에 살던 사람들로 지금의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무대로 활동했던 부족이며 고구려와 부여의 구성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남선은 <조선상식>에서 맥적은 고구려 특유의 고기 굽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1세기 무렵 한나라 한자사전에 소개된 고구려의 고기구이 맥적은 중국에서 삼국시대가 끝난 후인 4세기 무렵의 진(晉)나라 무렵에 더더욱 유명해진다. 진나라 사람 간보는 <수신기>라는 책에 중원의 귀족과 부자들이 북방 이민족의 풍습인 호상맥반(胡床貊槃)을 사용하고 강자맥적(羌煮貊炙)을 즐겨 먹는다고 적었다. 여기서 호상(胡床)은 서역 유목민족이 사용하던 식탁이고 그들이 먹는 음식이 강자(羌煮)인데 쉽게 말해 양고기를 물에 삶아 먹는 양고기 백숙이다. 맥반(貊槃)은 맥족의 그릇이고, 이들이 먹는 고기구이가 맥적(貊炙)이다.

4세기 진나라 때 고구려의 고기 굽는 요리가 크게 유행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무렵의 진나라는 북방민족의 침입을 받아 세력이 크게 약화될 때였기에 한족의 입장에서 먹는 음식, 생활방식까지 북방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한탄했던 구절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한우 소고기가 블랙 앵거스나 고베 비프와 함께 명품 소고기로 이름을 날리고 우리의 꽃등심과 갈비구이 등이 맛있다고 찬사를 받는 것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역사가 아니다. 그 전통이 4세기 고구려의 맥적에서부터 13세기 고려의 설리적, 그리고 21세기 현재의 숯불구이에 이르기까지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는데 우리가 소고기를 즐겨 먹은 역사는 정말 뿌리가 깊다.

좋은 음식도 먹어 본 사람이 제맛을 안다고 옛날부터 값비싼 고기인 소고기를 고급스럽게 요리해 먹었기에 지금과 같은 한국의 고급 소고기 문화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 싶다. 먼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소는 아무나 먹은 가축이 아니었다. 고대의 가축은 고기를 먹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제사에 바칠 제물로 쓰려고 키웠는데 주로 키운 동물이 소와 말, 양과 돼지, 그리고 개와 닭이다.

가축은 곧 하늘과 조상님께 바치는 제물이었으니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희생으로 바치는 가축의 종류도 달랐다. 고대의 예법을 적은 <예기(禮記)>에 따르면 소는 임금이 제물로 쓰는 가축이었다. 제물로 바친 희생은 제사가 끝난 후에는 참석한 사람들이 음복을 하며 나누어 먹는 것이 순서다. 그러니 소고기는 임금이 주관하는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먹는 고기, 즉 최고 지배계층의 고기였다.

고대의 이런 명분에 더해 농경사회에서 소는 중요한 노동력의 원천이었기에 도축을 금지했는데 금지 수위가 가장 약했던 나라가 우리였다. 중국 화북지역은 황토지역인 만큼 목초를 비롯한 지리적 특성상 소 목축이 어려웠기에 소 도축을 엄격하게 금했고 일본 또한 7세기 이후 소 도살을 엄금했다. 반면 한반도에서는 농번기에는 도축금지령이 수시로 내려졌지만 그 외에는 그다지 엄하지만은 않았던 듯싶다. 아마 소에게 먹일 풀과 볏짚처럼 사료가 풍부한 데다 소를 번식시키고 키우는 기술도 뛰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시대를 통틀어 소고기를 자주 먹었고 요리법도 발달했다. 이를 테면 신라에서는 새해 첫날이면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서 소고기를 구워 먹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조수삼이 쓴 <추재집>에 신라에서는 설날이면 단향회(檀香會)를 열고 불을 피워 떡국을 끓이며 설야멱을 먹었다고 나온다. 단향회는 한자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박달나무로 불을 피워 소고기를 구워 먹는 모임으로 보인다. 13세기 초의 고려 시인 이규보는 현대인이 마치 담배를 끊고 뿌듯해 하는 것처럼 ‘소고기를 끊다(斷牛肉)’라는 시까지 썼으니 고려에서도 그만큼 소고기를 많이 먹었다는 소리다.
조선 광해군 때의 실학자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소고기는 사람에게 가장 이로운 고기이니 판중추부사 원혼 같은 사람은 평생 소고기를 즐겼기에 93세까지 살았다면서 소고기 예찬론을 펼쳤다.

이런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 배경이 있었기에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소고기 요리가 발달했고 고구려의 맥적, 고려의 설리적, 한국의 숯불구이 같은 명품 소고기 요리가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신축년을 맞아 살펴 본 소고기 발달사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4호 (2021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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