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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⑳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천재성을 쌓아 올리다
기사입력 2020.09.02 16:42:44 | 최종수정 2020.09.05 19: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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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건축사’라는 칭호를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미친놈에게 주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라는 말을 듣고, 건축전문학교를 졸업한 안토니오 가우디. 그러나 미친놈에게 준 것이 아니라, 한 천재에게 준 학위임을 증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선이 대세인 시대에 자연을 닮은 곡선, 섬세하고 강렬한 색상과 장식, 동양적인 요소, 과감한 재료의 선택 등이 결합한 가우디의 건축물은, 시대를 앞선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카사 비센스(1878~1880년), 구엘 저택(1885~1889년), 구엘 공장단지 내 지하 경당(1898~1914년), 구엘 공원(1900~1914년), 카사 바트요(1904~1906년), 카사 밀라(19 05~1910년), 성 가족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탄생 입면 및 지하 경당(1884~1926년) 등 바르셀로나 시내와 인근에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 7개가 1984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럼 스페인을 대표하고 더 나가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가우디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1852년 스페인 레우스에서 증조부 때부터 주물제조업을 가업으로 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17세 때 바르셀로나 대학교 이공학부를 거쳐 시립 건축전문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내가 공간을 느끼고 보는 재능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와 조부 그리고 증조부가 모두 주물제조업자였기 때문이다. 몇 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건축가인 내가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했을 만큼 자신의 재능은 타고난 유전자 덕분이라고 생각했던 가우디. 물론 천재들에게 유전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후천적으로 끊임없는 노력과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면 예술가로서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우디는 자유로운 곡선을 통해 건축물을 하나의 유기체로 만들었고, 세라믹 타일을 이용해 전례에 없었던 새로운 양식을 선보였다. 또한 신이 빚어낸 산·바다·식물·동물·나무·구름·동물·곤충 등 자연에서 소재를 가져와 추상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이미지 작업을 통해 건축물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가우디가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으면서 건축학 이론이나 그와 관련된 글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20대에 7년간 사용했던 노트 한 권과 장식예술 박람회를 관람하고 나서 잡지에 기고한 원고, 개인적인 서신 등이 가우디의 건축학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기록물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제일 먼저 가우디의 흔적을 만나기 위해서는 카사 비센스로 가야 한다. 1878년에 건축을 시작해 4년 만에 완성한 카사 비센스는 가우디의 첫 작품으로 타일 제조업자인 마누엘 비센스 몬타네르를 위해 지은 집이라 타일과 벽돌 미학의 정수를 보여 준다. 또한 스페인 특유의 무데하르양식(13~16세기에 스페인에서 발달한 이슬람풍의 그리스도교 건축양식)이 돋보이고, 이슬람 사원의 첨탑처럼 망루와 옥상에 누각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우디의 일반 주택 중 두 번째로 건축된 카사 바트요는 가우디가 구엘 공원을 짓고 있을 때 직물업자로 성공한 바트요 가문으로부터 요청받아 지은 주택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1875년에 건축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 있었는데, 이를 헐고 1904년부터 1906년까지 건축하였다. 바다를 모티브로 해 건물 외벽은 색색의 유리 모자이크로 장식하였고, 내부는 깊숙한 바다, 즉 해저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그리고 카사 바트요 맞은편에는 곡선의 미학을 보여 주는 카사 밀라가 있다. 잘린 돌을 그대로 쌓아 올려 건축한 카사 밀라는 철저하게 직선을 배제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주제로 지은 것이다. 산에서 영감을 받은 가우디는 옥상의 굴뚝을 산봉우리로 표현하였고, 건물 외벽은 부드러운 산 주름을 닮아 곡선이 주를 이룬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기둥은 나무줄기나 그루터기와 같고, 지붕은 산등성이와 산비탈과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그대로 투영된 개인 주택이 바로 카사 밀라인 것이다.



가우디의 세계문화유산 중에서 3채의 주택을 둘러보았다면 이제는, 그의 대표작인 구엘 공원과 미완성의 성 가족성당을 만날 차례이다. 우선 바르셀로나 구시가지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한 구엘 공원은 가파른 몬타나 펠라다 언덕에 조성되었다. 원래 이곳은 나무와 풀이 거의 없는 바위산이자 민둥산이었는데, 가우디의 후원자인 구엘이 신도시 계획의 하나로 정원이 있는 대단지의 주택 62채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도 분양에 참여하지 않았다. 분양 목적으로 지은 2채 중 한 채에는 가우디가 살았고, 다른 한 채에는 구엘이 살았다. 14년 동안 분양을 했지만, 결국 미분양과 자금 등의 문제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그 자리에 지금처럼 공원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시가지 중심에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첨탑이 인상적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66년에 처음 기획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화와 근대화로 인간소외 현상이 일어나자, 한 출판업자가 인간의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의 집’ 즉 ‘성당’뿐이고, 가족들이 성당에 모여 기도할 수 있게 의미 있는 성당을 짓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성당의 주제는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요셉 등 세 사람의 성스러운 가족과 화목한 가족이다. 가우디가 이 성당을 처음부터 맡은 것은 아니다. 1882년 설계를 부탁받은 건축가 빌랴르가 제자와 50여 명의 노동자가 무보수로 일을 하다가 그만두자, 1883년부터 가우디가 성 가족성당 건축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40년 동안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롯이 성당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을 바쳤다.



가우디의 세계문화유산 중에서 3채의 주택을 둘러보았다면 이제는, 그의 대표작인 구엘 공원과 미완성의 성 가족성당을 만날 차례이다. 우선 바르셀로나 구시가지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한 구엘 공원은 가파른 몬타나 펠라다 언덕에 조성되었다. 원래 이곳은 나무와 풀이 거의 없는 바위산이자 민둥산이었는데, 가우디의 후원자인 구엘이 신도시 계획의 하나로 정원이 있는 대단지의 주택 62채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도 분양에 참여하지 않았다. 분양 목적으로 지은 2채 중 한 채에는 가우디가 살았고, 다른 한 채에는 구엘이 살았다. 14년 동안 분양을 했지만, 결국 미분양과 자금 등의 문제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그 자리에 지금처럼 공원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시가지 중심에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첨탑이 인상적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66년에 처음 기획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화와 근대화로 인간소외 현상이 일어나자, 한 출판업자가 인간의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의 집’ 즉 ‘성당’뿐이고, 가족들이 성당에 모여 기도할 수 있게 의미 있는 성당을 짓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성당의 주제는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요셉 등 세 사람의 성스러운 가족과 화목한 가족이다. 가우디가 이 성당을 처음부터 맡은 것은 아니다. 1882년 설계를 부탁받은 건축가 빌랴르가 제자와 50여 명의 노동자가 무보수로 일을 하다가 그만두자, 1883년부터 가우디가 성 가족성당 건축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40년 동안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롯이 성당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을 바쳤다.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0호 (2020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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