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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영의 클래식 에세이 ② 작곡가가 진짜 작곡가가 되는 순간, 베토벤의 교향곡이 9곡뿐인 이유
기사입력 2020.08.04 14:14:37 | 최종수정 2020.08.06 14: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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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의 일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바와는 달리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진실을 말하자면 작곡가가 되는 길은 힘들고 어렵다. ‘창작이란 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일이니 어려울밖에’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오히려 이 세상에 이미 있던 것들을 배우고 익히느라 더 고되고 어렵다. 작곡가는 번개같이 떠오르는 영감을 잡아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예언자 같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적절한 아이디어를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구현 가능하게 잘 빚어내는 장인에 가깝다.

마치 목수가 자기가 다루는 재료인 나무의 성질과 결을 잘 알아야 하는 것처럼 작곡가도 자신의 재료인 소리의 성질과 결을 잘 알아야 한다. 소리에 무슨 결이 있나 하겠으나 음악가가 다루는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수십 년,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소리에 민감하여 그 성질에 통달한 음악가들이 새겨놓은 관습과 전통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결 있는 소리다. 장조, 단조와 같은 소리의 체계, 화성법, 대위법, 관현악법 같은 엄격한 규칙들이 그 예다.



그러니 작곡가는 그 오랫동안 켜켜이 쌓인 전통과 관습이라는 결을 익히고 배워야 그제야 소리라는 재료에 손을 대고, 자기 생각을 더해 작품을 빚을 수 있다. 목수가 옹이를 피하고 결을 따라 대패질하며 나무의 성질에 따라 때로는 책상을, 때로는 서까래를 만드는 것처럼, 작곡가도 결 있는 소리를 그 성질대로 다루는 장인과도 같다. 베토벤도 작곡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소리의 성질과 결을 배우고 익혔을 것이다. 어디 베토벤뿐이랴. 당대의 모든 작곡가가 그랬으리라.

베토벤이 살던 시대,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었던 작곡가는 베토벤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Gioachino Rossini, 1792~ 1868)였다. 로시니는 소리라는 재료를 다루는 최고의 장인이었다. 그가 주로 만든 오페라라는 장르는 청중의 반응과 연주자의 조건, 악기의 제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르다. 어느 저녁 갑자기 연주자가 찾아와 “선생님, 저 목이 쉬어서 높은 소리가 안 나와요” 하면, 악보를 꺼내 음을 고쳐 부를 수 있게 해줘야 하고, 청중들이 영 지루해 하는 것 같으면 20분쯤 되는 지루한 논쟁 장면 따위는 쉽게 날려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반주하는 오케스트라에 하필 호른 주자가 없다면 대충 악보를 손봐 트롬본이나 다른 악기로 대신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로시니가 오페라 한 편을 일주일 만에 작곡했다거나 몇 개의 오페라를 동시에 작곡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로시니는 소리의 성질과 결에 통달한 최고의 장인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베토벤은 달랐다. 로시니가 밥 먹듯 작곡하던 오페라를 평생에 딱 한 곡밖에 작곡하지 못했다. 그나마 서곡은 작곡한 다음에도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쳐 쓰고 또 고쳐 썼다. 베토벤이 좋아했던 장르는 오페라가 아니었으니 그럴 수 있으려니 하지만, 좋아했던 장르인 교향곡에서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다.



77년을 살았던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이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썼던 것이나, 한 세대 전에 겨우 35년을 살았던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가 평생 50곡이 넘는 교향곡을 썼던 것(번호 붙은 교향곡은 41개다)에 비하면 베토벤의 9개는 좀 초라하다. 베토벤은 장인이 아니었던 것일까? 로시니, 하이든, 모차르트에 비해 재료의 성질과 결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뒤떨어졌던 것일까?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 달랐다. 재료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이 아니라 작곡이라는 행위, 그리고 작곡가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달랐다. 베토벤이 생각하는 작곡은 그저 재료의 성격과 결을 익혀 그것을 잘 따라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재료에 결이 있더라도 혹 내 의지와 결이 길항(拮抗)한다면 기꺼이 그 결과 투쟁하는 것, 그것이 작곡이라고 생각했다. 베토벤이 생각하는 작곡가는 로시니가 생각하는 작곡가와는 달랐다. 소프라노가 목이 쉬었다고, 청중이 지루해 한다고, 오케스트라에 악기가 없다고 악보를 바꿔주는 사람이 아니라, 소리라는 재료의 결, 소리의 의지와 처절하게 싸워 나의 의지를 그 안에 새겨 넣는 사람, 그 앞에 놓여있는 관습과 전통, 양식과 역사에 맞서 투쟁하여 새로운 길을 여는 사람, 그 사람이 베토벤이 생각하는 작곡가였다. 내 의지를 온 힘 다해 어렵게 한 음 또 한 음 새겨놓은 것이 작품이니 그 작품을 환경에 따라 조정하거나 맘대로 바꾸는 일 따위는 용납할 수 없다. 이것이 그가 평생 교향곡을 9곡밖에 쓸 수 없었던 이유다.
각각의 교향곡은 운명처럼 주어진 작곡가로서의 숙명을 건 처절한 싸움과 투쟁의 기록이었을 테니.

베토벤 이후, 작곡가는 장인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그에게 작곡가가 진짜 작곡가가 되는 순간은 그 앞에 놓인 음악의 체계와 온갖 법들에 능숙해져, 그것들을 편하게 다룰 수 있게 되는 그 순간이 아니다. 주어진 온갖 관습과 전통, 법들을 익혔을 때가 아니라, 이제는 새로운 법, 새로운 체계, 새로운 전통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순간에 작곡가는 진짜 작곡가가 되는 것이다.

[음악학자 정경영]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9호 (2020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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