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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인문학산책 ⑲ 인류는 과연 진보했는가?
기사입력 2020.08.04 11: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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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앞에서 무너진 문명의 성과물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스스로 일군 문명을 부정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처해있다.

인류역사는 소통과 콘택트로 발전해왔고 진보해왔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의회 민주주의가 만들어졌고, 평등하고 보편적인 교육이 가능했다. 소통과 콘택트가 있었기에 인적인 교류와 국가적 교류가 가능했고 세계화를 이룰 수 있었다. 의견과 지식이 이동하면서 과학이 발전했다. 그러나 이에 그 소통과 콘택트가 부정당하고 있다.

방송에서는 연일 사람들과 거리를 두라고 요구한다. 심지어 공공기관에서 명령한 격리를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 인간의 문명이 세운 학교도 가지 말아야 하고, 종교적 장소들과 제의도 부정된다. 어제까지 세계화를 부르짖던 나라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국경을 걸어 잠갔다.

또한 전근대의 상징이었던 개인통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오히려 찬사(?)를 받는 공적인 행위가 되고 있다. 빅브러더에 의한 개인통제를 이야기한 조지 오웰이나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이 생각난다. 그 소설들이 이야기한 문명의 이면이 두렵게 다가온다. 우주까지 점령한 듯 어깨에 잔뜩 힘을 주던 과학도 체면을 구겼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백신도 치료제도 만들지 못했다.

▶80년 전보다도 느려진 뉴욕의 주행속도

이런 상황에서 오래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어졌다.

‘인류는 과연 진보했는가?’

그렇지 않다는 답을 해야 할 것 같다. 인류가 이룬 진보는 착각일 수 있다. 여기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1907년 뉴욕의 평균 마차 주행속도는 시속 17.7㎞였다. 1990년 뉴욕의 평균 자동차 주행속도는 시속 9㎞ 정도다. 오히려 느려진 것이다. 자동차 기술이 눈이 부시게 발전했고, 과학적이라는 교통체계가 도로를 관리하고. 수만은 전문가들이 도심 교통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지만 뉴욕은 오히려 느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인류가 진보하고 있다고 맹신한다. 뉴욕의 주행속도 변화에서 알 수 있듯 자동차산업의 발전은 오히려 뉴욕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영국 웨일스의 스완시대학 정치학 교수인 클라이브 폰팅 박사는 진보의 세기로만 알고 있는 20세기는 퇴보된 야만의 세기였다고 평가한다. 폰팅 박사는 <진보와 야만(Progress & Barbarism)>에서 사람들이 중단 없는 전진의 시기였다고 굳게 믿고 있는 20세기에 관해 새로운 잣대를 들이댄다.

우리는 보통 20세기를 모든 것이 진보하고 평등과 민주주의가 정착된 시기였다고 믿는다. 정말 그랬을까. 그렇지 않다. 슬프게도 진보의 세기였다는 20세기 내내 몇 나라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들의 가장 보편적인 통치형태는 독재였다. 무력을 가진 집단이 돈을 가진 집단과 결탁해 권력을 독점하는 형태가 가장 일반적인 정치구조였다는 이야기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확산되기는커녕 인간의 권리가 제한되고 억압받는 건 여전하다는 이야기다.

중국공산당은 20세기 동안 자국민 5000만 명을 죽였고, 구소련은 1700만 명을, 기타 아시아독재정권들은 400만 명의 자국민을 죽였다. 20세기 내내 자국정부에 의해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최소로 추산해도 1억 명이 넘는다는 것이 폰팅 박사의 주장이다. ▶평등은커녕 오히려 계급 사회가 부활하고 있는 인류의 현실

평등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인류는 봉건시대와 다름없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거의 모든 나라에서 노예제나 인종차별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하지만 계급사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자본이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귀족제도와 다름없이 세습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영국의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가 고급공무원인 아이가 아버지처럼 고급공무원이 될 확률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73배나 높다. 부모가 전문직 종사자일 때 자식 중 40%가 전문직을 갖는 반면 부모가 육체노동자인 경우 단 7%만 전문직 종사자가 된다.

20세기 내내 국가 간 불평등은 오히려 더욱 심화됐다. 몇몇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들이 빈국의 처지를 벗어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선진국 대부분은 이미 19세기 이전부터 선진국이었던 나라들이다.

부자 나라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나라는 더 가난해지는 현상은 오히려 20세기 말 더욱 심화됐다. 1990년대 중반 89개국의 생활수준이 1980년대보다 더 나빠졌고, 43개국은 1970년대보다도 더 가난해졌다.

20세기에는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몇몇 초국가적 기업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세계 경제를 움켜쥐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나라들을 피폐한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있다. 여기에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는 환경문제, 핵무기개발, 테러 등의 문제까지 20세기는 축복이 아닌 재앙으로 얼룩진 시기였다.

폰팅은 역사를 진보라고 보는 건 유럽과 미국의 엘리트 학자들만의 시각이라고 못박는다. 지구촌 대부분 사람들이 야만을 경험하고 있는데 몇몇 혜택 받은 자들이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현대사를 재단한다는 지적이다. 폰팅 박사는 21세기 역시 낙관하지 않는다. 그가 21세기 역시 퇴보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유는 지구 에너지의 고갈 때문이다.

눈앞으로 다가온 에너지 고갈은 인류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지속적인 환경파괴와 계급 간 갈등은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제어가 불가능한 거대한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이제는 진정한 진보가 무엇인지를 생각할 때

인류는 끊임없이 안전하고 편리하며 풍요로운 세상을 꿈꿔왔다. 그것을 위해 과학을 발전시켰고,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꿈의 이면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데 보름(15일)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건강한 성인 남성이 잠자고 먹는 시간을 빼고 부지런히 걸었을 경우 보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고속열차를 타고 가는 지금은 3시간 정도가 걸린다. 산술적으로 보면 과학의 진보는 인류에게 14일 21시간을 가져다 줬다. 그런데 그 시간은 어디로 갔는가? 그 시간이 인간에게 와서 인간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애석하게도 그 남겨진 시간은 인간에게 행복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 시간에 또 다른 일을 하게 됐을 뿐 인간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행해졌는지도 모른다. 더 많은 가짓수의 일을 스트레스 받으며 하게 됐을 뿐이다.

이제 과연 무엇이 진보인지를 생각해 볼 시간이다. 생명연장 같은 성과를 생각해보자. 인류의 훌륭한 업적이지만 여기에도 이면은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불과 200년 전 인류보다 수십 년을 더 살게 됐지만 역시 행복하지는 않다. 중환자실에 누워 인공장치의 도움을 받으며 생명을 유지하거나 요양원에 누워 자기가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 채 죽어가는 생명이 과연 진보의 선물인가.

물론 인류는 과거보다 나아진 측면도 많다. 하지만 지금의 오만은 이제 버려야 한다. ▶문명의 붕괴를 막을 새로운 가치관 필요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느 날 지구상에서 소멸해 버린 이스터 섬 사람들 이야기를 꺼냈다.

“이스터 섬 사람들은 완전히 고립되어 살았다. 이스터 사회의 붕괴가 흥미를 끄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이스터 섬과 현대 세계는 소름 끼칠 정도로 비슷하다. 세계화, 국제 무역, 항공기, 인터넷 덕분에 오늘날 모든 국가가 자원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스터 섬에 살았던 11개 부족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은 돈을 받는 일에 집중해 왔다. 그리고 세계를 하나로 똑같이 만들기를 염원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보일까.

세계화를 곧 진보라고 믿는 건 여러 가지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바나나의 예를 들자.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바나나 품종은 점점 단일화되고 있다. 예전에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바나나 품종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생산성과 크기, 유통 및 보관의 편리성 등의 이유 때문에 이 요구를 만족시키는 바나나가 재배면적을 넓혀가고 있다.

이 같은 품종 단일화는 병충해와 기후변화에 취약하다. 단일 품종이기 때문에 한 번의 병충해나 기후변화가 종의 멸종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폴리네시아의 이스터 섬은 태평양에서 고립되어 있었다. 이스터 섬 사람들은 곤경에 빠졌지만 피신할 곳이 없었다. 구원을 요청할 곳도 없었다. 어느 날 우리 지구인이 곤경에 빠진다면 어디에,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이런 이유에서 많은 학자가 이스터 섬의 붕괴를 하나의 비유로, 어쩌면 우리 미래에 닥칠 최악의 시나리오로 보는 것이다.”

이제 인류는 기로에 서 있다. 한 사회가 생존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치관을 고수할 것인지, 새로운 가치관으로 대체할 것인지를 현명히 판단하는 데 달려있다.

현실이 아무리 암울하다 해도 인간은 더 낳은 세상을 꿈꾸었기에 멸망하지 않고 존재해왔다. 수많은 한계 속에서도 과거를 돌아보고 내일을 꿈꾸어야 할 의무가 인간에게는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믿었던 성과들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영국의 사학자 E H 카(Edward Hallet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학자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필자는 이 말보다는 “역사에서 절대자는 과거나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쪽으로 움직여 나가고 있는 미래에 있다”는 말을 더 좋아한다.
인류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미래를 만들 것이다. 아니다. 꼭 만들어야 한다.

[허연 매일경제 문화스포츠부 선임기자·시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9호 (2020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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