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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권의 뒤땅 담화] 당신은 알까기에서 자유로운가
기사입력 2020.07.06 17:02:37 | 최종수정 2020.07.07 09: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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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힘들어서 이젠 그만 두기로 했어. 동반자 플레이를 지켜보느라 내 골프도 힘들어지고 무엇보다 내가 감시자로 변하는 것 같아서야.”

정기 골프모임에서 고수로 우대받는 사람이 저녁 모임에서 나지막이 토로했다. 정확한 룰과 매너를 신봉하는 그는 일명 필드의 감별사로 통한다.

일단 본인부터 스코어는 물론 룰에 관해 철저하다. 패널티 구역에서의 공 처리, 디벗 처리, 스코어 표기 등에서 PGA룰을 최대한 적용한다.

친한 사람 중 싱글 수준의 스코어를 자랑하거나 어느 날 불쑥 실력이 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검증에 나서는 사람도 그였다. 정기모임에서 한 조에 배치해 검증한 결과 5~10타 부풀려졌다고 알려주곤 했다.

이러다 보니 정작 본인의 샷에 집중 못하고 상대방이 룰을 지키는지, 속이는지 매번 감시만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더라는 것. 본인의 골프뿐만 아니라 상대방 골프까지 챙겨야 했다.

요즘은 가능하면 본인 샷에 충실하고자 한다. 정의감에 불타던 예전의 열정과 무게에서 벗어난 그의 골프는 한결 편안하다.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현장에 심판이 없는 유일한 게임이란 점은 자신을 가장 잘 속이는 경기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숱한 골프 명언이 이를 말해준다.

“골프란 최악의 적인 자신과 함께 플레이하는 것이다.” (핀리 피터던)

“18년 동안 탁자에 앉아서 상대하는 것보다 18홀 매치플레이를 한 번 해보는 쪽이 상대를 더 잘 알 수 있게 한다.” (그랜트랜드 라이스)



골프심리가 가장 잘 드러나는 건 공이 OB구역 근처 숲으로 날아갔을 때다. 동반자들은 멀리 페어웨이에 있고 공이 OB구역 경계표시 약간 밖에 걸쳐져 있으면 딜레마에 빠진다.

OB구역 아닌 척 벌타를 무시하고 그대로 치든지 보이지 않게 안으로 공을 옮겨놓으려는 유혹에 시달린다. 인지상정이다.

자신의 공이 맞는지 확인한다며 집어든 후 원래 자리에 놓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라이가 좋은 곳으로 살짝 옮겨 놓고 싶은 충동을 누가 말리겠나.

얼마 전 홍천 소재 비콘힐스CC에서 옛 직장동료들과의 라운드 때다. 내리막 파5홀서 티샷한 공이 왼쪽 패널티 구역 근처로 날아갔다.

낙하지점 부근 풀 속에 같은 브랜드의 공이 있기에 내 공인 것처럼 그대로 샷을 했다. 하지만 미스 샷이 나와 완전히 패널티 구역에 공이 들어가 버렸다.

이 때 한 동반자가 페어웨이 한 가운데 멀리 잘 놓인 공을 보고 누구 공이냐고 외쳤다. 브랜드와 번호를 보니 분명 나의 공이었다.

초구가 바위나 나무를 맞고 멀리 페이웨이에 잘 들어온 것이었다. 공을 찾았다며 이미 샷을 해버려 내 공이라고 도저히 말할 용기가 없었다.

너무 쓰라렸다. 속이지 않고 제대로 했으면 2타 정도 줄여 파를 잡을 수 있었다. 착한 골퍼로 태어나야겠다고 반성했다.

강도가 더 센 이야기도 있다. 큰 내기가 붙은 게임에서 한 사람 공이 러프로 날아갔다. 함께 찾아준다던 동반자가 공을 발견하고는 모르게 발로 눌러버렸다.

이것도 모르고 당사자는 공을 찾았다고 외치며 멋진 샷을 날려 그린 위에 올렸다. 어이없었지만 동반자로선 말할 입이 못됐다. 알까기를 저지른 상대를 자기보다 더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아무리 친한 동료라도 티에서 그린까지 동반자 3명이 전혀 타인처럼 보일 때가 있다. 3명이 페어웨이에 있고 혼자만 숲속에 있을 땐 더욱 그렇다.” (밀튼 그로스)



속이는 행위는 나쁘지만 너무 미세한 부분까지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이 또한 생각해 볼 일이다. 앞서 언급한 패널티 구역이나 OB선상에 공이 놓일 때다.

“정식대회가 아니라면 그대로 치거나 공을 조금만 옮겨도 스트레스나 양심의 가책을 크게 받을 필요까진 없습니다. 친한 사이엔 그 정도는 양해해야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너무 자신을 옥죄는 것 같아요.”

현 정신과의원 김기현 원장의 말이다. 멀리 떨어진 사람을 불러 시비를 가리거나 필드에서 고함을 지르면서까지 양해를 구해야 할 정도라면 골프 자체가 스트레스이고 정신건강에 마이너스다.

그렇다고 룰을 어기거나 속이는 행위를 밥 먹듯이 일삼는 행위에는 선을 긋는다. 그는 모든 면에서 정확하고 모범적으로 정평이 난 친한 정신과 의사 부부의 에피소드를 전했다.

그 의사가 자기보다 골프를 잘 하는 아내와 경기 도중 간혹 은근슬쩍 교묘하게 점수를 속이더라는 것. 지켜보니 재밌고 우스웠다며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내기에 들어가기 전 디벗 자국에 공이 빠졌을 때 빼놓기로 했을 때도 다양한 속이는 행위가 일어난다. 실제로 디벗 자국은 물론이고 잔디가 없거나 덜 자란 곳도 디벗 자국이라며 공을 옮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바로 디벗 논쟁이다. 이래서 내기가 붙으면 아예 이런 로컬 룰을 없애 볼터치 금지를 강력하게 내세우는 골퍼도 있다.

스코어 표기에서도 직간접적으로 속이는 행위가 종종 발생한다. 첫 홀 동반자 전체 스코어를 파로 적고 둘째 홀은 보기를 보장하는 식이다. 마지막 홀은 모두 파로 기재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집단으로 자신들을 속이는 행위다. 스코어에 대한 강박관념이 전체를 담합하게 만들어 양심의 가책을 없애는 심리라고 김 원장은 분석한다. 정의가 아닌 선택과 타협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것.

횡단보도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와도 여러 명이 함께 건너는 것과 같은 심리다. ‘일파만파’는 매우 불합리하고 한국에만 있는 것이라며 첫 홀부터 철저한 스코어 기록을 주장하는 파도 있다.

간혹 캐디가 타수를 잘못 적을 때도 속이는 행위가 나타난다. 타수를 줄여 오기할 때 그냥 못 본 척 넘어간다. 거꾸로 1타라도 높여 적으면 바로 클레임을 걸어 교정한다.

넉살 좋게 속이는 행위도 있다. 몇 달만에 필드에 나왔다거나 요즈음 허리가 좀 안 좋다며 엄살을 부리는 경우다.

이러다가 정작 멋지게 티샷을 날리고 수시로 파를 잡으면 동반자들이 무너진다. 아프다더니 어찌된 일인가 싶어 헷갈린다.

“골프할 때 주특기가 테니스라 하고 테니스할 때 주특기가 골프라고 한다”는 다이애너 쇼어의 말도 이와 비슷한 이치다.

보브 아이론스는 핸디캡과 관련해 속이는 골퍼들의 심리를 간파했다. 골퍼들은 두 개의 핸디캡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자랑하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내기할 때 쓰는 핸디캡이라고 했다.

겉으론 양보하면서 다른 의도가 도사린 경우도 있다. 티잉 구역이나 페어웨이, 그린에서 먼저 플레이하라고 양보하는 케이스다.

준비된 사람부터 플레이하도록 룰이 개정됐지만 양보 받은 사람은 모종의 압박에 시달린다. 서둘러 플레이를 마치게 유도하는 교묘한 속임수다. 미스 샷이 나올 확률이 매우 크다.

상대방에 관여치 않고 오직 자신에게 엄격한 룰을 적용하는 인상적인 골퍼를 만난 적 있다. 디벗 자국에 상대방 공이 빠지면 옮기도록 하는 등 최대한 관대한 대신 본인에겐 철저한 모습에 감동받았다.

동반자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강요하거나 직접 훈계하는 식이 아니라 묵묵히 경기하는 은연중에 지혜와 지식을 전달하는 메신저 같았다.

몇 년 전만 해도 골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룰과 매너, 속임수 등과 관련해서다. 싫은 사람과는 다시 만나지 않으면 되지만 친한 사람과 얽히면 괴롭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보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 않고 좀 편안해졌다.
과연 골프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골프에서 테크닉은 겨우 2할이다. 나머지 8할은 철학, 유머, 비극, 로맨스, 멜로드라마, 우정, 동지애 등이다.” (그랜트랜드 라이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8호 (2020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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