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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한·중·일 牛肉 잔혹사 소고기 요리 선진국 한국, 그 이유는?
기사입력 2020.06.05 15:01:40 | 최종수정 2020.06.06 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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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큼 소고기 요리가 발달한 나라도 흔치 않다. 꽃등심에 갈비는 물론 소머리국밥과 꼬리찜 등등. 머리부터 꼬리까지 알뜰살뜰 요리하고 이어 곱창과 양에 선지까지 먹지 않는 부위가 없다.

돼지고기가 중심인 중국이나 근대에 들어 소고기를 먹은 일본과 비교해도 그렇고, 텐더로인에 티본까지 부위별로 다양한 스테이크가 발달한 서양과 견주어 봐도 소고기 요리만큼은 한국이 선진국이다. 왜 이렇게 소고기 요리가 발달했을까.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그 맛을 안다고 옛날부터 우리가 소고기를 많이 먹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소가 귀했기에 어쩌다 한번 먹는 소고기를 남김없이 살뜰하게 먹다보니 별별 부위를 다 요리해 먹었던 때문일까.

한국과 중국, 일본의 소고기 식용 역사를 비교해 보면 나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데 덤으로 소와 관련된 한·중·일의 흥미로운 정치, 경제, 문화사도 엿볼 수 있다.

고대 동양에서 소는 선악과처럼 금단의 동물에 가까웠다. 임금이 하늘에 제사지낼 때 바치는 제물이었고,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함부로 소를 잡으면 극형에 처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농사에 필요한 가축이기에 수시로 금살령(禁殺令)이 내려진 데다 먹으면 자칫 치도곤을 치러야 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았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중·일 세 나라의 역사를 보면 소고기를 먹으려는 자와 못 먹게 말리는 자의 다툼이 치열했다. 금단의 식품, 소고기를 두고 벌인 밀당의 역사가 그렇게 간단치가 않았다. 우리의 경우 고려 시인 이규보가 마치 담배 끊은 사람이 금연 성공기를 쓴 것처럼 ‘소고기를 끊다(斷牛肉)’라고 읊은 시에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왕년에 불가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향신 채소를 끊고 시를 한 수 지은 적이 있었다면서 그때 소고기도 아울러 끊었지만 마음으로만 끊었을 뿐, 고기를 눈으로 보면 먹지 않고 견딜 수가 없었기에 언급은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고기를 봐도 먹지 않을 수 있기에 이 시를 짓는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얼마나 소고기를 좋아했는지 안 먹으면 금단현상이 생기고 마침내 금식에 성공했다고 시까지 남긴 것을 보면 소를 잡지 말라는 정부 정책이나 고기를 먹지 말라는 종교의 계율도 맛의 유혹을 막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고려는 물론이고 조선시대에도, 특히 농사철에는 소 도축을 엄격하게 금지했지만 그럼에도 잘 지켜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종실록>에 평안도에서는 손님을 맞을 때 소를 잡아 그 고기로 대접하는 것이 풍속이 됐고 의주에서는 한양을 오가는 사신 일행에게 소를 잡아 대접하는 것이 아예 닭 잡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가 됐으니 문제라는 상소가 보인다.

나라에서 금지하건 말건 조선시대 소고기는 최고로 인기였다. 광해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실학자 이수광이 <지봉유설>에 소고기 예찬론을 펼쳤다. 소고기는 사람에게 가장 이로운 고기이니 판중추부사 원혼 같은 사람은 평생 소고기를 즐겼기에 93세까지 살았고 소는 풀을 날로 먹으니 독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감안해 좌의정 이헌국은 4월부터 8월까지는 소고기를 먹지 않았고 80세까지 살았으니 섭생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알아둘 일이라고 했다. 재상까지 지낸 사람이 농사에 필요해 도축을 금하지만 몸에는 좋다고 하니 조선시대 사람들 소고기를 먹으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헷갈렸을 것 같다.

중국도 역사적으로 소 도축을 엄하게 막았지만 당나라 시인 두보는 소고기를 먹고 사망했다. 호남성의 호숫가 사당을 구경 갔다 폭우로 섬에 고립되는 바람에 열흘을 굶었다. <신당서>에는 이때 소식을 들은 현령이 배로 보내 온 소고기와 술을 급하게 먹고 운명했다고 나온다. 그런데 두보가 먹은 소고기는 그 자체로 위법이다. 당나라 때 소고기를 먹으면 처벌이 가볍지 않았다. 법령인 <당률>과 해설서인 <당률소의>를 보면 관청이나 개인 소유에 관계없이 소를 도축할 경우 1년 반의 도형(徒刑)에 처한다고 나온다. 도형은 강제노역 형으로 일종의 노예 살이다. 더불어 곤장 10대를 때렸다. 내 소를 내 마음대로 잡아먹어도 곤장을 맞고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송나라 형법인 <형통>에도 소를 죽이면 곤장 20대를 때리고 1년 동안 노역을 시킨다고 나오고 명나라 법전인 <대명률>과 청나라의 <대청률례>에도 비슷한 조항이 있다. 이렇게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이 엄격했으니 중국인도 무슬림이 돼지고기 피하듯 소고기를 먹지 않았어야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소고기로 인한 황당한 사건들이 역사에 다양하게 기록돼 있다.

예컨대 송나라 때는 소를 죽이지 못하게 하니 혓바닥만 자르거나 소꼬리만 잘라 먹다 잡혀 관청에서 처벌했다는 사례가 여러 차례 보인다. 소설 <수호지>에도 무송이 호랑이를 잡으러 가기 전 소고기 두 근을 먹고 간 것을 비롯해 소고기 먹는 장면이 모두 20여 차례 이상 보인다. 백성들의 조정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설정이라는 풀이도 있지만 어쨌든 옛날 중국인들은 법을 어겨가며 소고기를 열심히 먹었다. 일본의 소고기 식용 역사 또한 흥미롭다. 1872년 2월 18일, 10명의 자객이 메이지 일왕의 궁궐에 침입하다 잡혔다. 사로잡힌 자객을 심문했는데 침입 이유가 황당했다. 서양 오랑캐의 영향을 받아 일본인이 고기를 먹게 되면서 신성한 일본 땅이 더럽혀졌기에 일본 정신을 지키기 위해 궁중에 침입했다는 것이다. 그 해 1월 24일 메이지 일왕이 소고기를 공개적으로 먹고 난 직후 일어난 사건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육식을 금지했던 나라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한테 받은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다며 단발령에 반발했던 조선의 선비들처럼, 일본의 수구파 사무라이들 역시 소고기 먹기를 거부했고 억지로 먹으라고 한 왕을 암살하려 했던 것이다. 일본인의 육식기피 전통이 얼마나 뿌리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은 무려 1200년 동안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 서기 675년, 덴무 일왕이 가축을 도축하지 말고 먹지도 말라는 금지령을 선포한 이후부터다. “소, 말, 개, 원숭이, 닭을 먹으면 안 된다. 그밖의 동물은 금지하지 않는다. 어기는 자는 처벌한다.”

그러면 옛날 일본인은 소고기를 전혀 먹지 않았을까? 평소에는 소고기를 먹지 못했지만 예외적으로 환자에게는 소고기를 허락했다. 다시 말해 소고기를 음식으로 먹을 수는 없지만 약으로는 복용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일본서는 소고기가 약으로 유행했다. 이름하여 우육환(牛肉丸)이다. 얼핏 진짜 약 같지만 사실 우리 소고기 완자나 서양의 미트볼과 다를 것 없다. 1865년 도쿄에 최초로 문을 연 일본식 소고기 전골인 규나베 음식점 역시 간판에 보양식품 소고기라고 광고했다. 전통적으로 소고기를 약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랬던 일본에서 메이지 일왕이 돌연 육식금지령을 해제했다. 메이지 유신으로 소고기를 먹어 왜라고 불렸던 일본인의 체형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소고기를 거부했던 일본인들은 전통 생선요리인 스키야키에 생선 대신 슬쩍 소고기를 넣어 먹으면서 1200년 만에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이렇듯 한·중·일 세 나라에서 소고기는 모두 금단의 고기였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소 도축에 대해 엄격했던 반면 우리는 비교적 느슨한 편이었다.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겠는데 일단 소 사육 환경과 관련이 있다.

중국 북방은 겨울이 춥고 건조한 데다 길기 때문에 양 떼가 먹을 풀은 있어도 소들이 먹기에 적합한 풀은 잘 자라지 않는 나라다. 게다가 북경을 비롯해 화북 지방은 황토지대가 많은 데다 밀농사 지역이기에 소가 먹을 사료를 마련하기가 힘들어 소 사육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일본은 섬나라니까 원천적으로 종자 도입에 한계가 있다. 소를 마구 잡아먹었다가는 씨가 말라버린다.

중국과 일본이 소 도축에 더욱 엄격했던 이유다. 반면 소가 농업에 필요한 가축이었던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였지만 한국은 소가 먹을 풀이 풍부하고 벼농사가 많아 소 사육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소고기를 먹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옛날부터 중국과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소고기를 많이 먹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안다고 소고기 요리가 우리나라에서 유별나게 발달한 배경이 아닐까 싶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7호 (2020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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