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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⑰ 아드리아해를 울린 타르티니의 바이올린 선율, 피란(Piran)
기사입력 2020.06.04 15: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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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어로 ‘피라노(Pirano)’라고 불리는 피란은, 바이올린의 명장 주세페 타르티니의 고향이다. 하늘과 바다가 일 년 내내 에메랄드빛으로 물드는 피란은 우리에게 조금 낯설지만, 타르티니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끊이지 않는 음악의 도시이다. 그럼, 타르티니가 태어나고 자란 피란은 과거에 어떤 도시였을까? 문헌적 기록에 따르면 피란은 중세시대 때 베네치아 공국의 식민도시였기에 베네치아를 많이 닮았다. 교회 종탑, 베네치아풍의 집, 골목길, 마을 곳곳에 있는 조각상 등 피란의 모습은 작은 베네치아를 연상케 할 만큼 아담하고 예쁘다.

이처럼 피란이 외형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지닐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원주민들이 베네치아의 수준 높은 문화와 문명을 거부하기보다는 융통성을 발휘해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다양한 수산물과 포도주, 기름, 수공예품 등을 이탈리아 전역에 수출했는데, 그 중에서도 소금은 상품 가치가 매우 뛰어나 유럽 전역에 수출하였다.

피란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 구시가지 광장은 여느 유럽의 도시처럼 화려하거나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13세기 말에 조성된 광장에는 이 도시를 상징하는 주세페 타르티니의 동상이 서 있다.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그의 동상은 금방이라도 멋진 소나타를 연주할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진다. 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의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총총히 사라지지만,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콘체르토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동상은 매우 의미 있는 장소이다. 어쩌면 작은 항구 도시, 피란을 찾아오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타르티니의 음악 세계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이 광장에서 소년 타르티니도 친구들과 뛰어놀며 음악의 뮤즈를 만나 감수성을 키웠을 것이다.



바이올린 하나로 아드리아해에 감동을 준 타르티니는 1692년 4월 8일 피란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베네치아 출신으로 소금을 거래하는 상인이었다. 타르티니는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뛰어났고, 음악을 비롯한 예술 분야에 많은 관심과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가 성직자가 되길 바랐기 때문에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에서 법학과 신학을 배우도록 했다. 타르티니 역시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과 신학을 공부했지만, 그의 마음에는 언제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분보다 낮은 계층의 여자와 몰래 결혼을 감행했고,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본격적으로 신학을 포기하고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던 음악에만 집중하였다.

그 후 타르티니는 이탈리아 아시시의 한 수도원에서 바이올린 연주법, 작곡법, 음향학 등을 배웠고, 수많은 극장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하는가 하면 가끔은 솔로로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귀족들에게 그의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초청이 이어졌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수준을 한층 더 높이기 위해 이탈리아 안코나와 체코 프라하에서 2년 동안 머물며 작곡에만 몰두하였다.

은둔생활을 마치고 제2의 고향인 파도바로 돌아온 그는 성당의 최고 지휘자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타르티니는 1728년에 국립 바이올린 학교를 세운 뒤 유럽 전역에서 찾아온 제자들을 온 힘을 다해 가르쳤고, 1750년부터 죽을 때까지 170여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130여 곡의 콘체르토 등 총 300여 곡을 만들었다.

78세 일기로 사망한 타르티니가 남긴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바네사 메이가 즐겨 연주했던 ‘악마의 트릴’이라고 부르는 ‘바이올린 소나타 D단조(Violin Sonata in Gminor)’이다. 우리에게도 조금 친숙한 이 작품은 타르티니가 스물세 살 때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판 대가로 악상을 선물 받아 만들었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음악에 심취한 타르티니는 좋은 악상을 떠올리기 위해 매일 밤을 전전긍긍하며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꿈속에서 악마를 만났다. 악마는 음악적 열정에 가득 찬 그에게 “너의 영혼을 나에게 팔면 소원을 들어주겠다”라고 유혹했다. 타르티니는 주저 없이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주고 그 대가로 소원을 하나 말했다. 그의 소원은 자신의 바이올린으로 악마가 연주하는 기상천외한 연주를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악마는 그가 지구상에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천상의 소리로 젊은 타르티니를 매혹했다. 악마가 다루는 바이올린 솜씨는 인간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고차원의 기술과 화려한 선율로 타르티니의 마음을 빼앗았다. 영혼을 울릴 만큼 대단한 악마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그는 꿈에서 깨어나 정신없이 악마가 연주한 곡을 오선지에 그리기 시작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이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았을까? 비몽사몽간에 악마의 연주를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었지만, 타르티니는 구슬땀을 흘리며 자신의 모든 열정을 작곡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악마의 트릴’이라는 부제를 붙였을 만큼 이 곡은 연주법이 엄청나게 빠르고 기교가 현란해, ‘여섯 개의 손가락’이 필요할 만큼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작품이다. 한마디로 현란한 손기술의 결정체가 바로 ‘악마의 트릴’인 것이다.

그의 동상 앞에서 새삼스레 ‘악마의 트릴’을 들으며 좀 더 타르티니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그가 태어난 생가로 발길을 옮긴다.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타르티니 하우스’는 현재 기념관으로 개조돼,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1384년에 건축된 생가 건물은 구시가지 광장 주변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85년부터 1991년까지 개조 공사를 통해 기념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아담한 3층 규모의 기념관 내부에는 낡은 바이올린과 악기, 동판화, 초상화, 편지, 타르티니가 생전에 쓰던 물건 등이 전시돼 있어 팬들에게는 아주 인상적인 장소가 될 것이다.

피란 여행의 중심지인 구시가지 광장과 타르티니의 동상, 그리고 그의 생가를 본 후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골목길을 따라 한가로이 거닐다 보면 이 도시가 숨겨놓은 속살을 좀 더 만끽할 수 있다.


15세기 때 지어진 베네치아풍의 건축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중해풍의 창문과 테라스가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상상케 한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양옆으로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점, 건물과 건물 사이에 새겨진 문양, 다양한 로마풍의 조각상, 파스텔 색조의 아담한 집들이 한 장의 엽서처럼 그려진다. 짧은 시간이지만 타르티니가 다녔던 조지 교회, 친구들과 소꿉장난을 치며 놀았던 골목길, 생선을 사기 위해 자주 갔던 루카 부둣가, 산책을 즐겼던 아드리아 해변 등. 타르티니의 흔적이 남아 있는 피란은 영원히 잊히지 않는 예술의 도시로 우리의 추억 속에 남을 것이다.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7호 (2020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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