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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의 영화로 보는 유럽사]
기사입력 2020.01.02 14:00:34 | 최종수정 2020.01.07 1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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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2004)



▶영화로 그 시대를 보다.

세계 곳곳에서 식민통치에 나섰던 영국의 노예무역제도는 어떻게 폐지되었을까. 흑인을 실어 나르던 노예선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2006)>를 보면 이와 관련된 역사를 실감나게 간접 경험할 수 있다. 또한 고대 최대의 로마제국이 어떻게 쇠퇴하게 됐는지를 알고 싶다면 <로마제국의 멸망(1969)>, 예루살렘 탈환을 목적으로 했던 십자군 전쟁의 진실에 좀 더 접근하고 싶다면 <킹덤 오브 헤븐(2005)>,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한 르완다공화국 내전의 기원을 찾고 싶다면 <호텔 르완다(2004)>를 추천하고 싶다.

물론 역사 영화(historical film, 歷史映畵)가 한 시대를 그대로 담아낼 수는 없다. 감독의 의도와 관점이 존재하고 각색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역사 속에 존재하는 시대의 풍속과 시대상을 체감하게 할 뿐 아니라 현 시대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통찰력도 얻게 하는 효과적인 매체이다.

이 칼럼에서는 영화를 통해 유럽의 역사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물론 방대한 유럽의 역사를 몇 편의 영화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따를 것이다. 하지만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역작은 인류의 역사를 생생하면서도 친근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훌륭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시대│ 영화 <300 스파르탄>과 오리엔탈리즘

고대 그리스 하면 자유, 민주주의 등 오늘날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개념이 떠오른다. 또한 기계문명을 제외한 현재의 서양문화는 대부분 그리스에서 비롯됐다고 말할 정도로 그리스 철학과 문학, 미술은 유럽 문화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 영향을 준 에게 문명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는 도리아인이 남하해서 미케네 문명을 무너뜨리고 암흑시대가 됐던 BC 12세기경을 시작으로 본다. 그러나 그리스 문화의 근원에는 오리엔트 문화가 전제되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는 BC 3000년경에 성립된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해양 문명인 에게 문명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에게 문명, 즉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크레타 문명과 이후 그리스 본토와 트로이 일대에서 펼쳐진 미케네 문명의 두 시기를 포함해야 한다. 이 시기의 이야기들은 그리스 신화와 엮이면서 흥미를 주고 오늘날 판타지 영화의 소재로도 쓰이고 있다. 가령 영화 <신들의 전쟁(2011)>에서는 미궁 속에 살고 있는 반인반수의 미노타우로스와 영웅으로 등장하는 테세우스 간의 전투장면이 나온다.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 문명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크노소스 궁전 내에 살았던 괴물로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한다. 미케네 문명을 보여주는 영화로는 <트로이(2004)>와 <헬렌 오브 트로이(2003)>가 있다. 이 영화는 트로이 목마로도 알려진 그리스와 트로이 간 전쟁을 다룬 영화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트로이 전쟁이 독일 출신의 고고학자인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발굴에 성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 묘사된 이야기로만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슐리만이 발견한 트로이 유적이 BC 1150년대 것으로 측정되고 연이어 발굴한 미케네 유적에서 선형 B문자를 해독함으로써 트로이 전쟁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이처럼 에게 문명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진정한 모습은 폴리스의 성립과 더불어 시작됐다.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순조롭게 발전했으나 페르시아 전쟁과 펠레폰네소스 전쟁이라는 두 차례의 전쟁에 의해 몰락하게 된다.

300(2006)

<300 스파르탄>은 페르시아 전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루돌프 마테 감독의 영화이다. BC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황제는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쳐들어오고,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연합군을 조직한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300명의 스파르타 용사들과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을 영웅적으로 지켜나가지만, 배신자에 의해 수세로 몰린다. 레오니다스 왕은 대규모 대군과 맞서 끝까지 전장을 사수하기로 하고, 300명의 스파르타인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는 스토리다.

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페르시아 전쟁은 BC 490년부터 BC 449년까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에 맞서 치른 전쟁으로 아테네의 급성장을 일궈낸 전쟁이자 고대 그리스의 황금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전쟁이다. 이오니아 반란에 아테네가 개입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세 차례의 전투로 이어졌다. 당시 그리스의 군인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전장에서 아테네까지 42.195㎞를 달려 승전보를 알리고 절명하였다는 이야기에서 생겨난 마라톤 전투가 2차 전투이다. 3차 전투는 영화 <300 스파르탄>의 중심 소재로 페르시아군과 그리스 연합군 사이에 테르모필레 지역과 살라미스 해협에서 벌어졌던 전투이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의 정예군과 그리스 연합군이 테르모필레의 협곡을 봉쇄하고 페르시아군의 진격을 지연시킴으로써,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해군이 살라미스 해협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트로이(2004)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테네는 최고의 번영기를 맞는다. 페리클레스 시대를 맞이해 민주정치의 황금기를 주도하고 그리스 학문과 예술,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스 문화와 역사의 상징인 파르테논 신전도 건축된다. 그러나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결성해 횡포를 일삼고 동맹국을 속국으로 삼음으로써 폴리스들이 이탈하게 된다.

이어 페르시아 전쟁의 수혜를 받지 못한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결성하자 결국 아테네와 스파르타 양 진영 사이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한다. 30년간 계속된 전쟁은 아테네의 패배로 끝나고 이어 폴리스 전체가 급격히 쇠퇴하면서 그리스 세계는 분열되고 몰락의 길을 걷는다. 외세인 페르시아 대제국에 맞서 승리했던 그리스 공동체가 내부 폴리스 간의 권력 다툼과 전쟁으로 멸망했다는 사실에 씁쓸함이 느껴진다.

페르시아 3차 전투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는 <300(2006)>, <300: 제국의 부활(2014)> 두 편이 더 있다. 1962년도에 처음 제작된 영화 <300 스파르탄>이 다른 두 편에 비해 군사 전략이나 전투상황, 원로원 등 당대 그리스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영화 <300>과 <300: 제국의 부활>은 비주얼에 비중을 많이 두어 판타지적인 느낌이 강하다. 가령 영화 <300 스파르탄>에서는 각 도시의 대표자들이 페르시아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지 토론하는 모습이 보이고,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표가 지도를 가지고 전략을 짜는 장면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반면 영화 <300>에서는 스파르타 병사로 체격이 탄탄한 멋진 배우들이 등장해 볼거리를 제공하며, 영화 <300: 제국의 부활>에서는 페르시아 해전의 유일한 여성 지휘관이었던 아르테미시아를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로 등장시킴으로써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들 두 작품은 페르시아 병사를 괴물로 표현하고 왕을 기괴하게 나타내며 특수효과를 통해 스펙터클과 액션을 강조함으로써 역사적인 사실보다 환상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느낌이다. 아무튼 페르시아 전쟁이라는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두고 영화가 세 편 이상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 전쟁이 가져다준 자유와 민주라는 가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증에 충실한 영화 <300 스파르탄>조차도 이 영화가 전달하려고 하는 자유나 민주주의의 가치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원래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서 나타난 동양적 취향을 나타냈던 말이다. 그러나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가 발간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을 계기로 ‘서양의 동양에 대한 인식’이라는 폭넓은 의미로 쓰이게 됐다. 이 책에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동양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제도로 기능했다고 주장한다. 유럽 열강들이 동양의 국가를 식민지화하면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양과 동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이 속에서 서양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성숙하고 정상이지만 동양은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열등하고 이상한 존재라는 식의 인식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타이탄(2010)



영화 <300 스파르탄>은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BC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황제는 노예제로 운영되는 거대한 제국을 움직여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치기로 결심했다. 당시 그리스는 세계에 단 하나 남은 자유의 요새였다.” 여기서 그리스는 자유의 도시국가로, 페르시아는 노예제로 운영되는 전제국가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리스 폴리스들이 추구했던 ‘자유’는 시민 개개인의 자유라기보다는 국가의 자주권에 가까운 의미였다. 특히 스파르타는 소수의 도리아인이 다수의 피지배층을 거느린 국가였기 때문에 지배층은 정치와 군사에만 몰두했고 토론을 바탕으로 한 민주정치가 발전하지 못했다. 페르시아를 특징지은 노예 제도와 관련해서도 당시 아테네를 비롯한 대부분의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다수의 노예를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었으며, 피지배층의 비중이 높은 스파르타는 노예가 없으면 국가 운영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과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황제가 등장할 때의 모습 또한 매우 대조적이다. 레오니다스 왕의 붉은 망토는 불굴의 투지를 상징하며 전략을 짜는 모습이나 전투 장면 등을 통해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성숙한 인물로 나온다. 반면 크세르크세스 황제는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술을 마시거나 가무를 즐기며 부하의 직언을 무시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모습을 통해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성숙하지 못한 인물로 표현된다.

이와 같이 그리스에 대해서는 이성과 자유를 연결시키고, 페르시아에 대해서는 향락과 독재를 연상시키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영화적 상상력과 흥미를 감안한다 해도 편향되고 일방적인 이미지와 콘텐츠로는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타이탄(2010)



▶그리스에서 폴리스가 발달한 이유

그리스 지역은 큰 강이나 평야가 없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안선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통일되기 어려웠다. 이러한 조건은 그리스인이 이주하여 정착하는 과정에서 자유를 주었고 개인주의를 낳았으며, ‘폴리스’라는 도시국가 형태를 발전시켰다. 도시국가들은 동맹 및 대립 체제를 형성하며 세력 균형을 꾀하고 그 속에서 성립된 원칙이 힘의 논리로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각각의 도시국가는 완결 구조를 가진 독립체였으나, 그들 사이에는 혈연과 언어, 종교, 문화를 토대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헬레네스(헬렌의 자손)라고 불렀고 언어가 다른 이민족을 바르바로이(듣기 거북한 말을 지껄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후에 야만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됨)라 하여 자신들과 구분했다.
반면 동양에서는 강력한 통일국가를 중심으로 한 위계 속에서 힘의 논리보다는 중심국가와 주변국가 간의 사대교린(事大交隣)이 주요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이미영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과 대구가톨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시네필리아 영화연구회 멤버로 활동 중이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2호 (2020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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