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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인문학산책 ⑫ 비장한 경계에서 태어난 꽃 ‘대중문화’
기사입력 2020.01.02 13:40:29 | 최종수정 2020.01.02 14: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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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문화니 대중문화니 하는 구분은 굳이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이론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미 매우 계급적이다. 이 같은 기준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이른바 귀족이나 교육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행위를 상류문화라고 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향유하는 것들을 대중문화라고 했다.

이 때문에 대중문화는 ‘숨어있는 문화’이기도 했다. 많은 대중이 향유했지만 이것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역사가들은 많지 않았다.

여기 그림 한 장이 있다. 신윤복의 그림 ‘소나무와 매’다. 신윤복은 세칭 풍속화가였다. 도화서(圖畵署)의 화원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대중들의 삶을 대중들의 눈높이로 그린 민중화가였다. 신윤복은 생몰연도를 놓고도 이견이 분분할 만큼 그림 이외의 기록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지칭되는 그는 남종화풍의 산수와 인물화에도 뛰어났다. 하지만 당시 화단은 그를 풍속화를 그린다는 이유만으로 ‘거리의 환쟁이’로 취급했다. 도화서에서 결국 쫓겨난 것만 봐도 그의 정신과 예술이 세상과 얼마나 심하게 불화했는지를 알 수 있다.

신윤복의 ‘소나무와 매’는 소나무에 매 한 마리가 앉아 아래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다. 진지하고 품격이 있어 보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붓 끝도 거칠고 표현법도 직설적이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그림이다. 사대부에서 그려지던 문인화하고는 다른 거친 생명력과 자유로움이 묻어난다. 정신은 자유로웠지만 행동은 은밀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경계에서 생존해야 했던 신윤복의 상황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품격과 자유로움 그 경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 말이다. 인간 세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는 지상을 내려다본다. 저 매의 눈길이 곧 신윤복의 눈길 아니었을까.

신윤복 ‘소나무와 매’



▶탱고, 대중문화의 정수

경계에서 생겨난 혼종(混種)의 매력이 듬뿍 느껴지는 춤이 있다. 다름 아닌 탱고다. 탱고(Tango)춤의 기반이 되는 탱고음악은 유럽에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로 이주한 이주민들로부터 시작된 음악이다. 이들의 음악과 춤이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의 문화와 남미 원주민들의 문화와 만났고, 그것들이 뒤엉킨 경계에서 탄생한 것이 탱고다. 탱고는 일반적으로 바이올린, 피아노, 더블베이스, 그리고 반도네온에 의해 연주된다. 탱고 음악은 기악의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기본적인 리듬은 4분의 2박자이다.

탱고춤의 매력은 흡사 영사기를 돌리다 갑자기 세워버리는 듯한 정지 순간에 있다. 가열차게 춤사위를 펼치다 고개를 돌리고 잠시 멈추고, 다시 고개를 돌린다. 지속적으로 보면 중간 중간 뭔가 끊어지는 듯한 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 쾌감은 정지와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다른 어떤 것에서도 찾을 수 없는 미학이다.

알 파치노가 주연한 영화 <여인의 향기>에는 감미로운 탱고 선율이 흘러 나온다 . 탱고의 황제 카를로스 가르델의 ‘포르 우나 카베차’라는 명곡이다. 우리말로 하면 ‘머리 하나 차이로’라는 뜻이다. 가사는 대충 이렇다. 한 남자가 경마장에서 돈을 날린다. 자신이 돈을 건 말이 ‘머리 하나 차이로’ 우승을 놓쳤기 때문이다. 돈을 따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러 가겠다는 허황된 꿈은 깨지고 남자는 좌절한다. ‘머리 하나 차이로’ 돈과 사랑을 날려버린 사내의 운명은 어쩐지 서글프다. 이 노래가사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탱고(Tango)는 세련된 춤이 아니다. 무도회에서 추는 왈츠 같은 춤과는 달리 탱고는 거리의 춤이다. 대중문화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탱고의 매력이다. 탱고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가벼운 듯하면서도 삶의 무게가 느껴지고, 경쾌한 듯하면서도 처연하다. ‘탱고’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은 ‘마음을 움직이다’라는 뜻이다.

탱고의 탄생과정을 살펴보면 비장함의 이유가 드러난다. 탱고는 19세기 말 아르헨티나의 항구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뒷골목에서 태어났다.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돈을 벌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이던 도시였다.

그들은 밤이 오면 노동의 힘겨움과 향수를 춤과 음악으로 달랬다.

당시 이민자들의 남녀비율은 50대 1이었다. 이 엄청난 경쟁을 뚫고 사랑을 성취해야 했으니 젊은이들의 춤은 비장할 수밖에 없었다. 탱고는 대중문화의 화신이었다. 해가 진 뒷골목에서 시작했지만 수많은 사람을 울렸고, 지금까지 면면히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계속될 춤이다. 인류의 갈망과 좌절이 만들어 낸 ‘몸짓’이기 때문에 탱고는 고요함 속에 작열하는 힘으로 오늘도 아르헨티나의 보카거리에서 계승되고 있다. 예술은 고상하다는 통념을 일찌감치 내버릴 수밖에 없었던 슬픈 현실이 꽃 피운 또 다른 예술. 그것이 탱고다. 정통이 아니라서 더 강렬하고, 경계에서 태어나서 더 찬란한.

▶비보이·인디밴드, 그들의 고요 속의 포효

이제 대중문화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낡은 가로등이 깜빡이던 뒷골목이나 어두운 바, 관객조차 없는 지하실을 나와 이제 세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때 화제가 됐던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보자. 이 작품은 세칭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절묘한 만남을 주제로 한다. 과거의 기준대로 따진다면 발레리나는 상류문화를 상징하고, 비보이는 대중문화를 상징한다. 사실은 이 같은 계급적 갈등구조가 이 뮤지컬이 롱런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주인공 발레리나는 비보이를 보고 반한 후 자신 역시 대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발레리나는 결국 화려하고 감미로운 듯 보이는 발레무대를 떠나 스스로 비보이 대열에 합류한다.

반대 이야기를 가정해 보자. 줄거리가 상류사회 진입을 결심한 비보이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발레리노가 된 이야기였다면 감동이 덜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역사는 그들을 계급으로 나누었지만 세월이 흘러 그들은 하나가 된 것이다.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홍대 앞에서 만나는 인디밴드는 잠복해있는 듯 보이는 대중문화의 역동적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독립’이란 뜻에서 파생된 인디밴드는 구체적으로 상업시스템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상류사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거대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음악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더 역동적인 예술을 할 수 있었다. 투자된 자본을 회수하기 위한 예술이 아닌, 자신들이 표현하고 싶은 바를 표현하는 예술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음악뿐이 아니라 모든 문화장르로 확산됐다. 이른바 대중문화는 자본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본까지 장악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중문화는 가난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순수할 수 있었다. 자본과 유리될 수 있었기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예술을 만들 수 있었다. 자본을 포기했기에 자유로웠고, 그늘 속에 있었기에 어떤 형식도 파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대중문화도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제 누구나 문화의 주인공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터치스크린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벽을 허물었다. 이제 대중문화는 더 이상 그늘 속에서 자라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안다. 가장 인간적이고 강렬한 것들은 모두 경계에서 꽃 피운 것들임을….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2호 (2020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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