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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y Walking] 임시수도기념관부터 국제시장까지… 부산 원도심에서 찾은 흑백사진의 흔적
기사입력 2020.02.05 14: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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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타워에서 바라본 원도심과 부산항



“1년이면 수십 번은 부산에 들르는데, 볼 일 마치고 하루 정도 시간 내 나서면 십중팔구 헤매더라고요. 해외관광객들처럼 휴대폰에 지도에 바리바리 들고 다니기도 부담스럽고, 다 알려진 장소에 알려진 맛집 찾아가는 건 시간이 아깝고, 그러다보니 출장을 가도 사무실에서 업무만 보고 올라옵니다. 곰장어에 돼지국밥이 전부예요.”

서울 본사에 근무하며 한 달에 한두 번 부산 지사로 출장을 가는 이 차장에게 요즘 고민 아닌 고민이 생겼다.

“그런 사정을 집사람이 어떻게 알겠어요. 남들이 맛 좋고 멋 좋은 곳으로 출장 다닌다고 부러워하니 하루는 그러더군요. 출장을 그렇게 다니는데 어떻게 매번 빈손으로 올라 오냐고. 한 번쯤 가족여행 겸해서 가면 어떠냐고.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막상 하자고 생각하니 이것도 일이더라 이겁니다. 여행사에 맡기기도 뭣하고, 헛 참.”

이 고민, 어디 이 차장만의 고민일까. 여행을 앞두고, 특히 가족이란 수식어가 동반된 여행에 엄마든 아빠든 여행리더가 갖게 되는 부담은 충분히 대단한 고민이자 스트레스다. 남들이 가는 곳은 물론이고 이제 막 알려지려는 명소에 동네 맛집까지 계획에 넣으려면 승진시험 준비 저리가라다. 여기에 참고할 만한 팁이 하나 있다.

“대도시를 여행할 땐 그 도시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발달한 교통수단을 중심으로 일정을 짜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 여행 작가의 조언이자 여행일정을 잘 짜는 비결 중 하나인데, 부산이라면 서울 못지않게 거미줄처럼 뻗은 지하철이 가장 명확한 정답이다. 꼭 이 차장의 하소연 때문만은 아니지만 2월에 <매경LUXMEN>이 찾은 곳은 바다가 아름다운 도시 ‘부산’이다.

임시수도기념관



▶늦겨울, 따뜻한 바닷바람, 짙푸른 항구…

그러니까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부산역까지 걸린 시간이 3시간 남짓. 책 한 권 꺼내놓고 읽다 말다, 휴대폰 만지작대며 영화 한 편 볼까 말까한 시간이 지나자 곧 부산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찾은 부산은… 아니 부산역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부산시 측의 말을 빌면 “유라시아 대륙을 향한 기점으로 부산역의 상징성을 살려 역 광장을 미래 100년을 위한 공간으로 새 단장했다.” 청년 스타트업의 공동 사무실과 북카페, 옥상정원이 들어선 복합공간으로 변신한 건데, 확성기 소리 요란한 한 무리와 곳곳에 노숙인이 짐을 풀던 이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는 풍경이다.

역 광장으로 나서면 바다내음과 비교적 따뜻한 바람이 느껴진다. 서울에서 약 600여㎞ 떨어진 이곳은 그만큼 남쪽에 자리한 덕에 한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하다. 부산의 원도심 골목을 누비는 겨울여행자들이 많은 건 바로 이 기온 덕분인데,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이 많은 원도심을 걷다보면 목 뒤로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서론이 길었다. 부산 원도심, 그 중에서도 근대문화유산 산책의 첫 여정은 지하철 1호선 부산역에서 네 정거장 떨어진 토성역에서 시작한다.

우선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부산지역의 역사를 살펴봐야 문화유산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시절 부산은 일본과 청나라 등 국제 교류의 중심지였다. 특히 초량 왜관(草梁倭館)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근거지였다. 당시 일본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항만과 철도 등 전국의 교통망 확충에 나섰다. 또한 도로, 토지 구획 등의 시가지 계획을 세워 현재 부산 중구 중앙동 지역을 중심으로 토목공사와 북항 매립공사를 진행해 해안을 매립하고 시가지를 확장했다. 개항 이전엔 없었던 새로운 문물과 건축, 산업의 산물은 그렇게 부산에 스며들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근대문화유산으로 남게 됐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동상



토성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산은 ‘임시수도기념관’이다. 1926년 8월 10일에 준공된 경남도지사 관사였으나 이후 한국전쟁기 부산 임시수도 시절에 대통령 관저로 사용됐다. 2000년 이후에 건물 복원공사가 진행되어, 내부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집무실에 앉아있는 모습과 생활공간 등이 복원돼 있다. 기념관 정문을 등지고 왼쪽 계단으로 내려서면 동아대 부민캠퍼스 후문이 보인다. 이곳에 자리한 박물관은 옛 경남도청 건물이다. 지금은 내부를 깨끗이 단장해 여러 전시회가 진행 중인데, 무료관람이 가능해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도 볼거리, 배울 거리가 많은 공간이다. 박물관에서 보수동 쪽으로 나서면 보수사거리 근처에 ‘보수동 책방골목’ 입간판이 보인다. 전쟁 통에 부산이 임시수도가 된 후 이북에서 피난 온 손정린 씨 부부가 보수동 사거리 목조 건물 처마 밑에서 미군부대에서 나온 잡지와 책으로 노점을 시작한 게 책방골목의 시작이 됐다. 7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곳에선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중고서적이 훌륭한 셀피 배경이 되기도 한다. 새 책보다 40~70% 싼 가격에 책을 살 수 있는데, 아동도서부터 해외서적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책방골목에서 나와 국제시장 버스정거장을 지나자마자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자주색으로 채색한 아담한 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80년의 역사를 간직한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 성당’이다. 이 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복병산 체육공원으로 난 나무계단이 보이는데 해발 49m에 불과한 이 동산에 1910년 건설한 상수도 ‘배수지’와 1933년에 완공한 부산측후소(기상관측소)가 있다. 나름 나무 데크로 마무리된 산길을 오르면 정상에 자그마한 공원이 있는데, 이곳에서 시선을 멀리두면 부산항을 둘러싼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용두산공원의 명물 부산타워



▶부산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부산타워

복병산 정상에서 남성여고 방향으로 내려와 골목길을 한참 따라가다 보면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배경으로 유명한 ‘40계단’이 나온다. 지금이야 계단하면 영화 <조커>가 떠오르지만 20여 년 전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개봉했을 땐 너도나도 계단을 내려오며 안성기와 박중훈을 연기했다. 사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항만조성공사로 생겨난 해안 비탈길에 만들어진 계단이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수많은 피난민들이 아래에서 위로 물동이를 이고 지며 밟았던 아픔의 계단이기도 하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주 촬영지였던 40계단



40계단 주변엔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을 기리는 ‘백산기념관’과 ‘용두산공원’이 자리했다. 일제강점기에 용두산공원은 일본인들의 성지였다. 부산타워가 있는 자리에 일본 신사가 있었던 탓이다.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곳이자 부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명소 중 한 곳이다. 특히 60층 높이의 부산타워에 오르면 빙 둘러 주변을 확인할 수 있는데, 날이 좋으면 해운대 누리마루,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태종대, 40계단, 감천문화마을, 깡통야시장, 영도대교, 동백섬, 광안대교, 달맞이고개가 모두 눈에 들어온다. 부산타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생긴 타워다. 부산을 눈에 담고 용두산공원에서 내려오면 부산을 대표하는 대형시장인 ‘부평시장’ ‘깡통시장’ ‘국제시장’ 그리고 대로 건너 ‘자갈치시장’이 이어진다.

특히 부평시장은 부산 최초의 상설시장이다. 시장들이 이어져 있어 걷다보면 자연스레 경계가 없어지는데 곳곳에 부산만의 먹을거리가 즐비해 보고 듣고 즐기는 맛이 있다.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자갈치역에 이르는 길은 대략 8~10㎞. 각 코스에 얼마나 머무느냐에 따라 서너 시간이 후딱 지나갈 만큼 볼거리가 많다. 현재 부산을 엮어낸 세월의 더께가 그득한 길이다.

동아대 부민캠퍼스 박물관. 옛 경남도청 건물이다.



▷찾아가는 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거나 서울역에서 KTX를 이용해 부산에 도착하면 부산지하철 1호선을 이용해 토성역에서 내린다.


이곳부터 여정이 시작된다. 산책을 마치고 부산역으로 돌아오려면 자갈치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면 된다. 구도심길을 걷다 들른 박물관과 기념관은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부산 원도심 근대문화유산 산책 코스

토성역→임시수도기념관→보수동 책방골목→성공회 성당→복병산 배수지→40계단→백산기념관→용두산공원→부산근대역사관→국제시장→자갈치시장→자갈치역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3호 (2020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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