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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1막1장] 무참히 버림받는 운명을 개척하려는 인간 오이디푸스
기사입력 2019.02.12 15:59:21 | 최종수정 2019.02.13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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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가 비극일까?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장 유명한 비극적 사랑이야기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10대 비극(悲劇, tragedy)리스트에 <로미오와 줄리엣>은 없다. 비극은 단순히 슬픈 극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극엔 영원히 단절된 고통과 아무런 희망이 없는 불행의 서사가 반드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으로 부활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 극이지 ‘비극’이 아니다.

몇 년 전, 서울대 도서관 대출순위 10위권 내에 그리스고전비극이 4권이나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필시 이는 신입생 필수과목으로 강화된 고전읽기 수업 커리큘럼 때문이었을 터이다. 비극은 ‘극예술’로, 무대 위 공연으로 완성되는 장르이다. 일상과 동떨어진 운명, 신, 저주 등의 소재로 책으로는 600장에 육박하며 2500년 전 생소한 별나라 이야기 같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바쿠스)에게 바치는 합창제에서 발전된 그리스 비극은 노래로 표현되었다. 악보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마치 판소리의 고수처럼 코러스는 배우의 대사에 맞장구를 치는 탄식으로 극을 이끌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발생한 비극

신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비극이 같은 내용을 다룬다고 착각하기도, 헷갈려하기도 한다. 신화는 신(神)들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비극은 신이 점지해주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오만한 인간들이 신의 예언이나 계시에 따라 별안간 처절하게 무너진다. 그리고 ‘인간이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어려운 물음을 관객석에 던진다. 2500년 동안 이 울림으로 우리는 반성하고 사색했다. 종교적인 의식에서 파생한 비극 공모전에 아테네 시민 남녀노소 모두 열광했다. 공연시즌이 되면 아크로폴리스 언덕 남쪽 기슭에 위치한 디오니소스 야외극장에는 1만6000여 명이 빽빽하게 운집할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비극의 사회적 위상을 엿볼 수 있다.

비극엔 정답이 없다. 운명이라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저주의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만다는 끔찍한 결말만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를 처음 고안할 정도로 합리적인 고대아테네인들이 왜 이런 비관적인 이야기에 환호했을까? 고대 아테네인들은 무대 위 주인공의 절규에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인간다움에 대해 고뇌했다. 비극은 토론문화로는 접할 수 없던 또 다른 내면성숙의 문화, 즉 일종의 감성적 놀이였다.

▶아버지가 박은 대못으로 발이 부은 아기 오이디푸스

그리스 비극의 3대 작가인 소포클레스(BC 496 ~406)가 칠순이 다 되어 세상에 내놓은 <오이디푸스 왕>은 그리스 비극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오이디푸스는 ‘발이 부은 아이’라는 의미의 고대그리스어이다. 태양의 신이자 예언의 신인 아폴론은 테베의 왕 라이오스에게 친아들이 아버지인 자신을 죽이고 어머니인 왕비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내린다. 죽음의 공포에 떨던 라이오스는 갓 태어난 아들을 산에 버린 것도 모자라, 기어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핏덩이 아기의 두 발에 대못을 박아 쇠사슬로 묶어 버린다. 그러나 양치기에게 발견된 아기는 마침 아들이 없던 고린도(코린토스)왕의 금지옥엽 양자가 되어 왕세자로 늠름하게 성장한다. 어느 날, 총명하고 용맹한 오이디푸스는 델포이신전에 가서 아폴론 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묻는다. 돌아온 대답은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이었다. 부모님을 지키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왕국 고린도에 돌아가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돌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어느 무리와 시비가 붙어 그들을 몰살시키는 오이디푸스는 이 무리의 수장이 그의 친부인 라이오스인 줄 모른다. 와중에 오이디푸스는 테베를 괴롭히는 스핑크스의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이냐’는 수수께끼의 정답(인간)을 풀어 공석인 테베의 왕에 추대된다. 그리고 자신의 생모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2남 2녀를 얻는다. 태평성대도 잠시. 곧 테베에 가뭄과 기근, 역병이 돌아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된다. 선왕 라이오스의 살해범을 추방해야 나라의 우환이 해결된다는 예언에 따라 오이디푸스는 범인을 쫓으려 총력을 기울인다. 허나 모든 추론은 결국 범인으로 자신을 지목하고 그는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자,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는 충격을 받아 목을 매고, 오이디푸스는 그녀의 옷에서 장신구를 빼어 자신의 눈을 찌른다. 장님이 된 그는 두 딸을 데리고 아기 때 버려졌던 키타이론 산으로 가 숨어 지낸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그의 고조부 카디무스의 재앙에 의한 것이고, 이 원죄의 파장은 오이디푸스의 아들과 딸에게까지 미쳐 집안은 결국 풍비박산난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주창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에 우리에게 오이디푸스는 어디선가 들어봄 직하다. 이는 유아기 남아들이 어머니를 전적으로 의지해 아버지에 극단적 반감을 가지는 것을 나타내는데, 사실 오이디푸스는 천륜을 어기는 운명의 소용돌이를 벗어나려 무진장 애쓴 인물이다.



▶‘무대는 연기의 교과서’를 증명할 황정민의 오이디푸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BC 470~399)보다도 윗세대인 작가 소포클레스가 창작한 대사는 분명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연극의 극적 묘미로 해결된다. 대사 속에 담긴 인간의 탐욕, 간계, 어리석음, 미련함을 어떻게 동시대적 무대언어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리스 비극의 성공이 가늠된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세상을 호령하던 영웅호걸도 운명에 순응하고 처절하게 멸망한다. 그중 오이디푸스만이 진실을 알기 위해 의지를 굽히지 않고 운명에 도전장을 내미는 진취적 캐릭터다.

영화 누적관객 1억 명의 국민배우 황정민이 자신이 나고 자란 연극무대에 또 다시 도전장을 내민다.
그동안 그는 ‘무대는 연기의 교과서’라는 지론으로 출연, 연출로서 무대를 놓지 않았다. 이번 <오이디푸스>에 4주 동안 원캐스트로 출연하며 황정민은 남다른 각오로 배우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우리가 놓치며 살고 있는 인간적 삶에 대한 메시지를 강렬하게 선사할 황정민 오이디푸스가 기대된다. 연극 <오이디푸스> - 100분

· 공연일시 : 2019년 1월 29일(화)~2월 24일(일)

화,목,금 8시 | 수 3시 | 토 3시, 7시 | 일,공휴일 2시 |

· 공연장소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 출연 : 황정민, 배해선, 남명렬, 최수형, 박은석, 정은혜 등

[황승경 국제오페라단장, 사진제공 샘컴퍼니]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1호 (2019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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