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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⑥ 프랑스 ‘클로 뤼세(Clos Luce)’에서 만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흔적
기사입력 2019.07.09 10: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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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5월 2일은 전 세계인들이 존경하고 추앙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서거한 지 5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다빈치가 자신의 고향인 이탈리아 피렌체가 아닌 프랑스 앙부아즈에서 사망한 사실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조국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 한 시골에 있는 작은 성, 클로 뤼세에서 세상을 떠났고, 앙부아즈 성 안에 있는 위베르 성당에 묻혔다.



파리에서 초고속 열차인 TGV를 타고 ‘투르(Tour)’라는 곳에 도착하면 다빈치가 1516년부터 4년간 머물렀던 클로 뤼세에 한 발짝 다가선다.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도시지만, 투르는 중세 시대 때부터 루아르강을 따라 고성들이 많아 고성 여행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전성기 시절에는 무려 3000여 개의 고성이 있었고, 지금은 루아르강 언저리를 따라 수백 개의 고성이 중세 시대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아낸다. 그래서 투르 중앙역에서 조금만 벗어나 ‘프랑스 중부지방의 젖줄’이라고 불리는 루아르강으로 가면 보석 같은 고성들이 여행자들의 눈과 마음을 매혹한다.

그럼 어떤 연유로 다빈치는 프랑스로 건너오게 된 것일까? 의문의 수수께끼는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가 1515년 12월 이탈리아를 침공한 전쟁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수아 1세는 전리품으로 바티칸 미술관의 개관작품인 <라오콘의 군상>을 교황 레오 10세에게 요구한다. 그러자 교황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라오콘의 군상>의 진품이 아닌 청동으로 만든 모조품을 건넨다. 하지만 프랑수아 1세가 모조품에 만족하지 않자 이탈리아 최고의 천재인 다빈치를 그에게 소개했고, 이듬해 다빈치를 정중하게 프랑스 앙부아즈로 모셔갔다. 이때 다빈치는 미완성의 작품 3점을 가지고 왔는데, <성 안나와 성 모자>와 <세례자 성 요한> 그리고 나머지 한 점이 바로 <모나리자>이다. 물론 이 작품들은 프랑수아 1세가 다빈치로부터 사들여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다빈치의 흔적을 찾아가는 본격적인 여행은 앙부아즈 성 안에 있는 위베르 성당에서 시작된다. 이 작은 성당 안에 다빈치의 영혼이 500년 동안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9년은 다빈치 서거 500주년이라 그와 관련된 축제도 열리고, 위베르 성당에 안치된 다빈치 영묘 앞에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수많은 꽃다발이 놓인 영묘를 조용히 바라다보면 67세 일기로 생을 마감하고 조국이 아닌 프랑스에 묻힌 다빈치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르네상스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다빈치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조금 떨어진 ‘빈치’라는 마을에서 1452년 아지랑이가 어른거리는 봄날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는데, 그중에서도 음악과 미술에서 큰 두각을 나타냈다. 그래서 아버지는 소년 다빈치를 자신의 친구인 베로키오에게 보내 미술 교육을 받게 하였다. 이때부터 다빈치는 인체 해부학을 비롯한 사실주의의 기교를 배우게 된다. 훗날 정확한 묘사는 그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적 인간형의 대표주자로 만드는 데 초석이 된다.



다빈치는 미술뿐 아니라 수학, 물리, 천문, 식물, 해부, 지리, 토목, 기계 등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명실공히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피렌체 여인은 <모나리자>로 그려지고, 새는 비행기가 되고, 물고기는 잠수함이 되고, 강과 강 사이엔 튼튼한 다리가 놓이고, 집을 짓고, 다양한 연장과 세밀한 설계도 등 그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하얀 종이 위에 그려지고 분석되어 수없이 반복된 실험과 연구를 통해 현실로 바뀌었다.

다빈치에 대한 수많은 상상과 그의 업적을 생각하며 앙부아즈 성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10여 분 걸으면 장밋빛의 벽돌과 하얀 석재로 지어진 아담한 클로 뤼세에 이른다. 외부에서는 높은 담벼락 때문에 내부가 잘 보이지 않지만, 입구에 들어서면 탁 트인 공터가 눈에 들어오고 건물 뒤뜰에는 파릇파릇한 정원수들이 제각기 눈높이를 맞추며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고 있다. 현재 이곳은 박물관으로 개조돼 해마다 10만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유럽에서 아주 인기 있는 명소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다빈치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던 클로 뤼세에 발을 내딛는 순간 하얀 수염의 다빈치가 다가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넬 것만 같다. 500년 전의 다빈치와 <모나리자>가 머물렀던 곳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감동이 일어난다.

일명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우스’라고 불리는 박물관은 다빈치의 침실, 작업실, 주방, 작은 예배당, 손님 접견실 등 아홉 개 전시실로 나뉘어 있다. 안내 표시에 따라 다빈치의 손때가 묻은 방들을 차분하게 둘러보다 보면 다빈치가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환영을 경험하게 된다. 침실에 들어서면 어린아이처럼 곤히 잠든 다빈치를 만나고, 접견실에 들어서면 그의 열렬한 후원자인 프랑수아 1세와 환담하는 모습이 보이고, 작업실에서는 복잡한 설계도를 보면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집중하는 그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주방에 들어서면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만 같고, 여러 가지 양념으로 새로운 소스를 만들고 있는 다빈치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다빈치가 최후를 맞이한 침대와 마주하는 순간, 여행자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다. 붉은 커튼이 가냘픈 기둥에 가지런하게 매어져 있고 진한 나무 향기가 풍기는 침대에서 르네상스풍의 고풍스러움이 그대로 배어난다. 이 자리에서 프랑수아 1세 품 안에서 마지막 생애를 마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1519년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는 5월 2일, 다빈치는 이 침대에 누워 조용히 한 줄기 빛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는 죽기 바로 열흘 전 자신의 노트에 “우주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다(No Being disappears into the void)”라는 글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나지막하게 “오 국왕이여, 주인이여, 신이여(Sovereign, Master and Lord!)”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다빈치가 남긴 20여 개의 그림과 1만여 페이지나 되는 연구 노트, 코텍스는 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곁에 남아 빛을 발한다.
21세기 문명사회에서도 우리는 그가 발명한 포크를 사용하고, 그가 그린 <모나리자>를 감상하며 그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우리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그의 천재성과 세계관을 해부하기 위해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학자가 다빈치를 연구한다. 그를 뛰어넘을 새로운 천재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런 연구는 계속될 것이고, 우리는 다빈치의 흔적을 찾아 이곳으로 여행을 올 것이다.

[이태훈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6호 (2019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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