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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인문학산책 ⑥ ‘개성’이라는 근대적 가치의 발견자 존 스튜어트 밀
기사입력 2019.07.09 10:33:08 | 최종수정 2019.07.09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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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학생 50명이 공부하고 있는 어느 고등학교 교실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했다고 치자. 모두 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평소 행실도 나빴고, 친구들을 수시로 괴롭혔던 모두가 싫어하는 문제 학생이었다. 그는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도둑이라는 누명을 쓴 채 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간이 흘러 그 학생이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는 유력한 증거가 뒤늦게 나타난다. 하지만 교실은 침묵했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불편해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누명을 쓴 학생의 보복이 두려웠을 수도 있다.

진실을 인정하면 50명의 학생 중 49명이 난감해지고, 인정하지 않으면 범인으로 지목된 1명이 계속 불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49명이 불행해지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면 1명이 계속 불행해지는 것이 나은 것일까.

‘절대다수의 절대행복’을 추구하는 이른바 공리주의(Utilitarianism)는 여기서 49명의 행복을 택한다. 이것이 바로 공리주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다. 공리주의는 모든 구성원의 행복을 합산하는 일종의 집단이기적 한계를 지닌다.

같은 공리주의 철학자이면서도 존 스튜어트 밀은 1명의 행복도 부정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한다.

“일반적으로 공인된 의견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 또는 여론에 반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허심탄회하게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의 <자유론>은 이런 점 때문에 상당히 의미 있는 저술이다. 공리주의를 한 단계 성장시킨 그의 이론은 20세기를 풍미한 공동체주의의 밑그림이 됐다. 존 롤스와 마이클 샌델로 이어지는 <정의론>의 스타들도 밀의 상속자들임이 분명하다. <자유론>은 1859년에 출간되자마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막연한 찬양의 대상이었던 ‘자유’를 철학적 원리로서 본격적으로 분석한 거의 최초 책이었기 때문이다.

“전체에서 단 한 사람만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던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다른 모든 이들을 침묵하게 할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밀은 또 다른 공리주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개성’이라는 근대적 가치를 존중했다.

“개성을 파멸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전제(專制)적인 것이다. 그것이 신의 의지나 대중의 공인된 명령이라고 해도 모두 전제적이다.”

밀은 교육에 대해서도 탁견을 내보인다. ‘시험’에 대해 기술한 다음 부분을 보자.

“일반적 국민이 보편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더 나아가서 기억하는 것을 의무화하여야 한다. 의무로 부과될 수 있는 최소한의 과목에 대한 자발적인 시험을 치러야 하고, 시험에서 일정 수준에 이른 모든 사람에게 증명서를 발급해야 한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밀은 요즘처럼 등수를 매기기 위한 시험은 거론하지 않았다. 단지 한 사회 구성원이 기본적으로 체득해야 할 지식의 최소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도달했는지 측정하는 시험만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정의하고 누리기 위해 투쟁해 온 역사였다.

인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자유를 철학적으로 정의하고, 자유가 보장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고, 그 자유가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길고 지난한 과정에서 반드시 기억해야할 인물이 바로 존 스튜어트 밀이다. <자유론>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와 공리주의에 관한 큰 틀을 제공해 주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로 표현할 수 없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벌이다.”

“자유 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꾸려 나가는 자유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끊임없이 획일성의 위험을 경계한 철학자였다. 그의 <자유론>은 이른바 ‘자유’라는 폭넓고 모호한 개념을 명쾌하게 정의해 준 고전이다.

밀은 개인의 자유를 역설하면서도 그 한계 역시 분명히 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개인의 자유는 그의 행위가 자신을 제외한 어떤 사람의 이익과도 관계되지 않는 한 사회적으로 제재를 받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가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면 개인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럴 경우 필요하다면 사회적 법률적 처벌을 가할 수 있다는 논리다. <자유론>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권위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둘 사이의 절묘한 역학관계를 찾아낸 뜻깊은 저작이다. 개인과 사회라는 두 개의 공리를 모두 만족시키는 <자유론>이 19세기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근대국가들의 헌법정신으로 활용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밀은 성장과정도 특별했다. 그는 정규학교를 다니지 않고, 경제학자인 아버지 제임스 밀(James Mill)에게 세 살 때부터 개인교습을 받았다. 밀은 이미 열네 살 때 라틴어를 비롯해 그리스어, 문학, 논리학, 역사, 수학, 경제학의 중요한 고전들을 체계적으로 터득했다. 아버지로부터 독특한 천재 교육을 받은 셈이다.

이 방식의 핵심은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밀이 스스로 생각해 어느 정도 이해하기까지 기다린 다음 보충을 해주는 것이었다. 밀의 아버지는 아침 식사 전에 항상 함께 산책을 하면서 밀이 전날 읽은 책의 내용을 암기하도록 했다. 밀이 암기하는 걸 들으며 아버지는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주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공부를 마무리 지었다. 밀은 이 같은 성장과정을 통해 경험과 학습, 인격과 감성으로 무장된 완벽한 지식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밀은 당대 최고 종합 지성이었다.
밀은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점점 복잡해져가는 근대사회에 새로운 논리를 제공한 선구자였던 것이다.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만이 주권자다.”

존 스튜어트 밀이 내린 결론은 자유주의 사상의 모태가 됐고, ‘영원한 상식’으로 지금도 추앙받고 있다.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6호 (2019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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