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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명화극장] 인간의 상실(喪失)에 대한 격조 높은 장송곡 영화
기사입력 2019.06.28 1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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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의 소설 <하나레이 베이>가 영화로 만들어져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하염없는 궁금증이 일었다. 하루키의 이 ‘기묘한’ 이야기가 어떻게 영화로 그려졌을까. <하나레이 베이>는 하루키의 천재적 상상력이 사뿐사뿐, 마치 무하마드 알리가 이전의 캐시어스 클레이란 이름이었을 때 나비처럼 스텝을 밟는 느낌으로, 그러다가 어느 새 얼굴에 핵폭탄 같은 주먹을 안기듯 심장에 쿵 하는 충격을 주는, 기이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 그리고 상실

<하나레이 베이>는 하루키의 단편 모음집 <도쿄 기담집>에 실려 있는 소설 가운데 하나이다. 피아노 바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중년 여성 사치(요시다 요)는 하와이 호놀룰루 해변으로 서핑 여행을 떠났던 19살 아들 타카시(사노 레오)가 상어에 물려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타카시는 오른쪽 다리를 상어에게 뜯겨 그 충격으로 익사했다. 하루키는 소설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상어가 사람을 즐겨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살덩어리가 내는 맛은 어느 쪽인가 하면 상어의 기호에는 맞지 않는다. 한 입 베어 먹었다가도 대개는 실망해서 그냥 가버린다. 그래서 상어에게 습격을 받더라도 패닉상태에만 빠지지 않으면 한쪽 팔이나 다리를 잃을 뿐, 살아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녀의 아들은 너무 놀랐고 아마 심장발작 같은 것을 일으켜 대량의 바닷물을 마시고 익사했을 것이다.”

하루키는 인간의 살이 상어의 기호식품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어쨌든 그의 소설 속 주인공 사치는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하와이 해변 하나레이에 가게 됐고 이후 이상한 기분이 들어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를 찾아가게 된다. 세월이 10년쯤 흘러 그곳에서 과거 아들 또래의 남자 아이 둘을 만나게 되는데 어느 날 그 아이들에게서 이런 얘기를 듣는다.

“혹시 보셨어요? 아줌마가 앉아 있는 모래사장 뒤쪽에 외다리 서퍼가 서 있는 거요?”

“다리가 한 쪽이 없어?”

“네. 오른쪽이요.”

사치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타카시가 돌아와(혹은 저승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해변 주변을 헤맨다고 생각한다. 사치는 그날 밤부터 며칠간 해변을 미친 듯, 이 잡듯 뒤지고 다닌다. 하루키의 소설을 보면 이 기담(奇談)의 섬뜩함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해변에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다리 한쪽이 없는 남자 아이가. 그런데 이건 꼭 공포스러운 일만은 아니다. 그 복잡다단한 감정을 영화는 어떻게 표현해 내고 있을까. 그게 궁금했다. 심히 궁금했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마츠나가 다이시 감독의 하루키 문학에 대한 해석 능력이 참으로 올바르고 지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키의 소설은 기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하나레이 해변>은 결국 인간의 상실(喪失)에 대한 격조 높은 장송곡 같은 작품이라는 것을 간파해 냈기 때문이다.

24살쯤 결혼해 애를 낳느라 자신의 꿈을 포기했던 여자가 재즈연주가랍시고 마약에 빠져 살다가 다른 여자 품에서 죽은 남편과의 지긋지긋했던 삶을 뒤로 하고 19살까지 키운 아들이 갑자기 죽으면 도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 말 그대로 상실감이 대단할 것이다. 하지만 하루키가 얘기했던 상실은 아들을 잃은 모성의 애달픔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이시 감독은 잘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상실은 자신의 욕망의 상실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상실했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이 사라짐으로써 거기에 투영돼 있던 자신의 욕망마저 빼앗긴 듯한 느낌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다. 아니 슬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치가 아주 전형적인 케이스다. 그녀는 남편을 증오했고 사사건건 반항적인 남자 아이였던 아들 타카시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인해 살아가는, 생존해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한 셈이다. 그리고 그 아들이 죽음으로써 이타(利他)와 자기애 혹은 이기(利己)의 경계, 본질을 알게 된다. 그녀가 외다리 서퍼 유령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결국 그녀 스스로를 다시 찾으려는 안간힘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거나 못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 그 대상이 아들이든 남편이든 아니면 연인이든. <하나레이 베이>는 결국 삶을 이어가게 하는 모티브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려 한다. 외다리 서퍼가 됐든 무엇이 됐든 그것은 구체적인 무엇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든 무엇을 대상으로 하든 원망, 증오, 한숨마저도 구체적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다이시 감독은 소설 속에 없는 장면을 영화에 덧붙여서 이야기를 확장시켰다. 사치는 외다리 서퍼 유령을 찾아내지 못한 채 도쿄 집으로 돌아와 10년 동안 박스 속에 넣어 덕 테이프로 꽁꽁 싸놨던 아들 타카시의 물품들을 꺼낸다. 아이의 옷가지들을 들춰내며 사치는 그때서야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린다. 죽은 아들에게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건 너무 하잖아?”

사람이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으려면 자신의 죄에 대한 참회가 우선돼야 하듯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려면, 그래서 사랑의 구원을 얻으려면 그 관계를 거듭나게 해야 한다. 원망과 증오를 내려놓으려면 그것의 실체를 밖으로 드러나게 해야 한다. <하나레이 베이>는 사랑의 기술이 아니라 사랑하기의 기술을 말해 주는 영화인 셈인데, 그건 사치가 아들 또래의 또 다른 서퍼 아이 타카하시(무라카미 니지로)가 여자 아이와 데이트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자를 만족시키는 세 가지 방법을 아니?”

“그게 뭐에요?”

“여자의 얘기를 잘 들어 줄 것, 여자의 옷차림을 칭찬해 줄 것, 가능하면 맛있는 것을 많이 사줄 것.”

이쯤 되면 <도쿄 기담집·하나레이 베이>의 주제가 잘 드러난다. 사치는 이제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됐고(마약 중독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죽은 아들 타카시를 사랑하게 됐으며 그럼으로써 연고가 없는 또 다른 아이에게 사랑의 기술을 가르쳐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문학과 영화의 기막힌 조우

마츠나가 다이시 감독이 주인공 사치의 캐릭터를 쌀쌀맞고 말이 별로 없으며, 독설을 툭툭 내뱉는, 좋은 말로 하면 쿨(Cool)한 성격으로 만들어낸 것은 이 소설의 묘미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배우 요시다 요가 정확하게 그 역을 수행해냈다.
한 편의 멋진 소설이 또 한 편의 멋진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나레이 베이>는 문학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 영화라는 또 다른 산을 무사히 오른 작품이 됐다. 문학과 영화는 이렇게 만나야 하는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6호 (2019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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