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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프로젝트] 케이블카로 유명한 통영 미륵산 걸어 올라야 볼 수 있는 편백나무 정취
기사입력 2019.06.07 1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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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올랐어요. 마의 루트라고 불리는데, 가장 어려운 루트죠. 세계 최고봉에 지금껏 우리의 루트가 없었어요. 스스로도 가장 힘든 곳에 한국의 길을 만들었다는 게 대견하기도 하고…. 스스로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이 느껴지더군요.”

그게 실패도 많았던데요. 4전5기만에 성공했다고 들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1991년에 처음 시도했다 실패했고, 2005년에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이듬해에 에베레스트를 횡단하며 주변을 살폈어요. 그렇게 2007년에 다시 도전했는데, 그 때 피붙이 같던 대원 둘을 잃었습니다. 10년 동안 함께 먹고 자던 친구들인데…. 그 땐 현역에서 은퇴할 생각도 했어요. 피 같은 놈들을 계속 죽일 순 없으니…. 후회가 컸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방황했는데, 그 친구들 덕분에 다시 산에 돌아왔어요. 약속은 지켜야겠더라고. 2008년 가을에 한 번 더 실패했고, 올 봄에 성공했습니다.”

에베레스트와는 인연이기도 하고 악연이기도 하네요.

“정말 그러네요. 처음으로 8000m급을 접한 게 에베레스트였고 그 때 사고가 났으니까. 모두들 죽는다고 했었어요. 그때도 남서벽 루트를 개척하다 150m를 굴렀는데 얼굴이 함몰되고 온 몸이 터진 상태였거든요. 마침 캠프에 머물던 미국 팀에 흉부외과 전문의가 있었는데, 마취도 안하고 생으로 응급수술을 했어요. 그렇게 살아났습니다. 그러곤 곧바로 산에 올랐어요.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가 없네요.”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왜 산악인이란 직업을 고집하는 겁니까.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 답답해요. 해외, 특히 선진국이라 불리는 곳은 세계의 역사가 곧 탐험의 역사라고 말하거든요.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에베레스트를 처음 정복했는데, 이 분은 양봉치는 소년이었어요. 영국원정대가 뉴질랜드로 훈련을 갔을 때 눈에 띄어서 원정대에 합류했죠. 그런 분이 정상에 오른 후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재작년에 돌아가셨는데, 1990년에 뉴질랜드에 갔더니 5달러 지폐 인물이시더라고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사실 밖에 나가보면 얼굴 허연 친구들이 우릴 좀 우습게 알거든요. 하지만 산악인이라고 하면 대화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서로 통성명하고 경력을 알게 되면 호칭이 ‘Sir’로 바뀌어요. 그런데 우린 아직도 왜 오르냐고 물으니(웃음).”

그러고 보면 유독 한국에 세계적인 산악인이 많네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정말 대단한 민족이거든요. 원정을 나가보면 외국인들은 아니다 싶으면 돌아가는데 한국인들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버티고 있어요. 다시 원정대를 꾸리기가 쉽지 않으니 어떻게든 올라가려는 것도 이유겠지요. 웬만하면 포기를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한테 내려올 걸 왜 올라가느냐고 물으면 답답한 거죠.”

그럼 탐험가, 산악인이란 직업의 역할은 뭘까요.

“왜 필요하냐? 탐험가는 새로운 걸 개척하는 사람이에요. 우리처럼 직접 나서는 사람들 말고 한 분야에서 새로운 걸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탐험가 아닌가요. 그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들의 역할이겠죠. 그런 도전정신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거라 믿습니다. 그래야 세계로 진출하고 그 세계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지요. 그래서 또 오르는 것이고.”



정확히 10년 전 산악인 박영석과의 대화 중 한토막이다. 당시 그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을 마치고 대학생들과 국토순례 중이었다. 인터뷰는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의 한 초등학교 교정에서 오전 6시에 진행됐다. 하루 종일 걷고 나서 밤엔 자야한다며 가장 한가한 시간을 콕 짚어 말하는 인터뷰이에게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10년이 흘러 다시금 그가 떠오른 건 편한 길 놔두고 굳이 걸어서 오른 통영의 미륵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에 비해 한없이 낮은 해발 461m의 봉우리(?)는 그야말로 멀고 험했다. 등산로 초입에서 비가 후두둑 산을 훑을 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희뿌연 안개가 휘감은 미륵산은 정상에 오를 때까지 습도가 높았다. 당연히 땀은 비 오듯 했고, 마침 마실 물도 떨어졌다. 케이블카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놔두고 도대체 왜 이런 고생을 사서했을까 스스로 원망하다 문득 박 대장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나도 힘들어요. 그런데 가다보면 되더라고. 그걸 알면서 포기하는 게 쉽겠어요, 그냥 가는 게 쉽겠어요. 난 그냥 가는 게 더 쉽던데….”



▶미래사 둘레길의 그윽한 정취

미륵산에 가려면 통영의 미륵도로 가야한다. 그곳에 닿기 위해 통영대교 대신 충무교를 택했다. 여러 차례 보수되면서 개통(1967년) 당시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통영 사람들에겐 새로 지은 것보다 더 정겨운 다리다. 한때는 뽀뽀다리라 불리기도 했다는데, 인도 폭이 한 사람 겨우 지나가기에도 버거워 연인끼리 깻잎처럼 꼭 붙어 다녔기 때문이다.

사실 미륵산 정상에 닿는 가장 빠르고 편하고 럭셔리한 방법은 한려수도 조망케이블카를 타는 것이다. 선로 거리 1975m,초당 6m까지 가속할 수 있는 이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부근에 내려 나무 데크를 오르면 한없이 맑은 날 촬영한 사진 속 한려수도가 한눈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 이 코스엔 딱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산의 남쪽에 자리한 미래사(彌來寺)가 빠졌다.

다도해의 절경이 펼쳐지는 산양일주도로를 타고 넘다보면 미래사로 향하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그길로 한동안 경사진 언덕길을 오르다보면 하늘로 고르게 늘어선 편백나무가 빽빽이 늘어선 숲이 눈에 들어온다.

미래사 초입의 ‘삼회도인문(三會度人門)’이란 현판은 미래에 오실 미륵불이 ‘삼회에 걸쳐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석두·효봉 두 스님의 안거를 위해 2~3칸의 토굴을 짓기 시작해 1954년 대웅전을 낙성하며 사찰의 모습을 갖췄다. 압권은 사찰 앞에 마련된 자그마한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산책길이다. 주차장에서 미래사까진 100m, 미륵산 정상까진 1.2㎞, 미륵불 전망대까지 200m에 이르는데, 전망대에 이르는 길이 편백나무 숲길이다. 희뿌연 안개가 산세를 가로막고 있지만 곧게 뻗은 편백나무의 위엄은 실로 대단했다. 가만히 서있으면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Phytoncide)에 몸속 나쁜 기운이 알아서 사그라질 것 같았다. 볏짚을 엮어 길 위에 얹은 덕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미륵산 정상방향과 정반대 방향인 이 길은 꼭 들러야 할 둘레길이다. 길 끝에는 아담한 미륵불이 남해바다를 바라보고 섰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 오롯이 당신의 몫

산책길을 돌아 나와 미래사 옆으로 난 오솔길로 들어서면 이제 미륵산 정상을 향한다. 이 길은 달아길의 시작이자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의 첫 걸음이다. 백리길의 시작이라니, 왠지 가파른 백두대간이 떠오르지만 산 중턱까지는 잔잔하다. 경사가 완만해 일행과 대화하기도 좋다. 날이 흐리면 습도가 높아 거짓말 조금 보태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안개가 산을 휘감은 탓이다.

중턱부터는 꽤 긴 경사가 이어진다. 이럴 땐 서두를수록 걸음이 힘들고 더뎌진다. 고작 461m밖에 안 된다고 얕잡아보다간 큰 코 다친다. 보폭을 짧게 하고 속도를 줄여도 정상에 오르는 시간 차는 고작 수십 분에 불과하다. 정상에 서면 한눈에 들어온다는 한려수도는 종일 부슬대는 비와 안개에 가려 어느 곳으로 고개를 돌려도 허옇게 바랬다.



반대편으로 내려서는 길옆에는 야소마을로 향하는 달아길 표지판이 선명하다. 물로 앞으로 전진하든 뒤로 돌아내려오든 선택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다행(?)인건 통영관광개발공사가 6월 28일까지 걸어서 정상에 오른 이들에게 내려올 땐 무료로 케이블카에 탑승할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제대로 알지 못해 이용하진 못했지만 초여름,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코스다.


서울에서 미륵도로 가는 길

경(중)부고속도로→비룡JC→산내JC→통영대전고속국도→동통영IC→통영대교→미륵도 걸어서 정상에 오르면 내려올 땐 케이블카 무료!

통영 케이블카를 운영하는 통영관광개발공사가 지난 4월 5일부터 미륵산을 걸어 올라가는 이들에게 하산 시 케이블카를 무료로 탑승할 수 있는 편도 무료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오는 6월 28일까지 진행되며 행사기간 중 평일 오후 3시 이후에 한해 편도 티켓은 판매하지 않는다. 약 2㎞ 남짓한 미륵산 등산로를 걸으며 건강을 챙기자는 의미로 시작된 건강증진 프로젝트 중 하나다.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5호 (2019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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