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년 월 제 호]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
[이민우의 보르도 와인 이야기] 포도 품종 같은데 가격은 저렴 보르도 위협하는 나파밸리 와인
기사입력 2019.01.10 15:02:11 | 최종수정 2019.01.10 15:03:37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프랑스 보르도의 최고급 포도원인 ‘샤토 무통 로쉴드’는 1970년대 중반 와인 역사에 길이 남을 영광과 불명예를 함께 얻었다. 1855년에 발행된 와인판 미쉐린 가이드 <그랑크뤼 클라세>의 오리지널 편에서는 5개의 등급 중 2등급, 즉 4스타에 머물렀지만 절치부심 끝에 1973년의 개정판에서는 5스타, 즉 1등급으로 상향되었다. 당시의 농무부 장관이었던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주도한 보르도 와인 등급 개정은 지난 160년 동안 포도원의 분할과 폐업 그리고 1855년 당시 담당자의 실수로 누락되었다가 같은 해 12월에 다시 등재된 ‘샤토 컹트메를(Cantemerle)’을 제외하고는, 그랑크뤼 클라세 목록에 생긴 유일한 변화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3년 후인 1976년 5월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와 타임지가 주최한 미국과 프랑스의 국가대항전 성격의 와인 시음회에서 전혀 맞수라고 생각지 못했던 캘리포니아 와인에 패배하였다. 이 행사 이후 ‘샤토 디켐’의 소유주였던 뤼 살뤼스(Lur Saluce)는 “무통이 1등급으로 승격하기 위해 정치적인 로비를 하는 대신 품질 개선에 힘을 쏟았다면 결코 이런 불명예는 없었을 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샤토 무통 로쉴드에서는 ‘애호가 수준의 많은 시음회들 중 하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 시음회가 ‘파리의 심판’이라는 별명으로 와인 역사에 길이 남아 영화까지 만들어질 것은 더욱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와인 미라클>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하여 애호가들 사이 인기를 얻었던 이 영화는 짐과 그의 아들 보 배럿(Bo Barrett)이 ‘샤토 몬텔레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양조장을 건설하는 이야기를 1976년 파리의 시음회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북동부 나파밸리의 와이너리



1976년의 와인 테이스팅에는 그랑 크뤼 1등급 와인들 중에 샤토 무통 로쉴드 외에도 ‘샤토 오브리옹’과 ‘샤토 몽로즈’가 프랑스 와인을 대표하여 출품되었다. 적포도주인 카베르네 소비뇽과 청포도, 즉 화이트 와인 품종인 샤르도네의 두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었던 시음회에서 ‘스택스 립 와인 셀러스(Stag’s Leap Wine Cellars)’가 총점 127.5점으로 카베르네 소비뇽 부분의 1등을 차지하였고 무통 로쉴드(126점)와 오브리옹(125.5점)이 그 뒤를 이었다. 오랜 전통을 가진 프랑스의 유명 포도원들과 초보적인 캘리포니아의 와인 농가가 겨룬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1932년 겨우 금주령의 악몽에서 깨어난 미국의 와인농가의 사정과 비교하여, 2차 세계 대전의 참화를 겨우 벗어나 경제를 재건해 나가는 도중 1차 석유파동의 위기를 만난 프랑스의 와인농가의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1976년 와인 테이스팅의 결과는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합계한 총점 형태로 정해졌는데, 이는 심사위원들의 서로 다른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가령 어느 심사위원이 자기가 선호하는 와인에 높은 점수를 주고, 상대 와인에는 몹시 낮은 점수를 준다면 총점 합계에서 최종 순위가 왜곡될 수도 있다. 당시 테이스팅의 심사위원 중 하나였던 삐에르 브레주는 샤르도네 평가에서 캘리포니아 ‘산 샬론(Chal one)’에 16점을 주었던 반면 프랑스 산 ‘조셉 드루앙’에는 5점, ‘데이비드 브루스(David Bruce)’에는 겨우 0점을 주어 그 차이가 최대 16점이 됐다. 반면 또 다른 심사위원인 삐에르 타리는 ‘릿지 몬테 벨로(Ridge Monte Bello)’에 가장 높은 17점, 그리고 꼴찌에도 11점의 좋은 점수를 줌으로써 최대 6점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만약 상대 평가 방식으로 당시 시음 결과를 다시 종합한다면, 샤토 오브리옹이 1등(평균 2.8등)으로 올라가고 그 뒤를 이어 스택스 립 와인 셀러스 그리고 심사위원의 절반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한 ‘샤토 몽로즈’가 공동 2등이 된다. 1976년 시음회와 관련한 무수한 반론과 유럽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와인 양조가들이 큰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나아가 캘리포니아가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 도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는 2007년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위치한 와이너리에서 한 달간 양조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파밸리 와이너리들의 장비와 양조 기술, 배후 시장과 꾸준한 투자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샤토 라피트 로쉴드의 전 사장인 크리스토프 살랑(Christophe Salin)도 지난 2014년 “샤토 라피트 로쉴드가 만약 새로운 와이너리를 하나 더 설립하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나파밸리가 될 것”이라고 공언한 적도 있다.



우리나라 와인 시장이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아시아 이웃나라들과 다른 가장 독특한 특징을 꼽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미국 와인의 인기를 꼽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소비자들은 미국 하면 ‘와인 생산지역’이란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은데, 미국과 정치·경제·문화 모든 면에서 교류가 많은 우리나라의 와인 소비자들은 미국산 와인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지난 11월까지 우리나라에 수입된 와인들 중 미국산 와인의 비중은 약 15%로, 프랑스산과 칠레산 와인의 다음이며 이탈리아산 와인보다도 조금 앞선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프랑스와 칠레가 가장 많고 그 다음에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의 순서로 와인 수입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갤로(Gallo)’와 ‘베린저(Beringer)’에서 만드는 저렴한 미국산 테이블 와인뿐만 아니라, ‘오퍼스 원(Opus One)’, ‘케이머스(Caymus)’ 등 최고급 와인들까지 마트와 백화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미국 와인들은 크게 포도품종 와인과 블렌딩 와인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포도품종 와인은 쉽게 말해서, 와인 레이블에 사용된 포도를 표시하는 것이다. 스택스 립 와인 셀러스 카베르네 소비뇽, 샤토 몬텔레나 샤르도내처럼 1976년 시음회 전후로 인기를 끌었던 와인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후 자신감을 갖게 된 캘리포니아의 와인 메이커들은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등 서로 다른 포도가 보르도 와인들처럼 블렌딩된 와인들을 시도하게 되는데, 대표 와인들인 오퍼스원(Opus One), 인시그니아(Insignia) 등은 보르도산 특급 와인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포도품종’ 와인이 프랑스 와인과 다른 미국 와인의 특징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포도품종 와인이냐 블렌딩 와인이냐의 구분이 캘리포니아산 고급 와인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해당 포도가 75% 이상 될 경우, 포도를 레이블에 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비록 와인 레이블에 표시하지는 않으나 특정 포도를 75% 이상 사용하는 포도원들은 보르도에도 많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레드 와인 중 하나인 ‘페트뤼스’가 대표적이다. 페트뤼스는 진흙이 대부분인 차가운 토양에 위치해 있는데, 과거에는 다른 포도도 조금 사용했었으나 지금은 100% 메를로 포도로 만든다. 물론 와인 레이블에는 포도품종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5대 샤토의 맏형인 샤토 라피트 로쉴드는 대표적인 ‘카베르네’ 와인으로, 카베르네 소비뇽을 위주로 블렌딩하며 80% 이하로 블렌딩한 적은 지난 20년간 1999년(74%) 단 한 번뿐이었다. 최근 2013년에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98%까지 사용하였다.

이쯤 되면 물론 토양과 기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적어도 스타일 면에서 캘리포니아산 고급 레드 와인들은 보르도 와인을 많이 닮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보르도 와인은 나파밸리 와인의, 혹은 나파밸리 와인은 보르도 와인의 대체제가 될 수 있을까? 보르도 와인과 나파밸리 와인의 숨겨진 차이는 알코올 도수에 있다. 훨씬 덥고 건조한 나파밸리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쉽게 14도를 넘고 보르도 와인은 최근에 많이 높아졌지만 대체로 13도 정도에 머무는 편이다.
게다가 와인 라벨에 표시하는 알코올 도수는 실제 도수와 약간의 편차는 허용하고 있는데, 나파밸리 포도원들은 조금 낮게, 그리고 보르도 와인들은 0.5도 조금 높게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산도와 당도 등의 차이가 있어서 와인 애호가에 따라서는 보르도 와인 혹은 캘리포니아 와인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최근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보면, 컬트 와인이라고 불리는 특징을 가진 와인들이 아니라면 미국와인과 프랑스 보르도 와인을 눈감고 알아 맞추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0호 (2019년 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민우의 보르도 와인 이야기] 포도 품종 같은데 가격은 저렴 보르도 위협하는 나파밸리 와인

[Best Restaurant] 참나무 장작향 머금은 한우 꽃등심 스테이크 서울 청담동 ‘더 미트 퀴진’의 유혹

새해 골프가 기대되는 ‘스마트 겨울나기’ 필드 라운드 힘든 겨울은 기회의 시간, 근력 운동으로 거리 ..

[Health for CEO 걷기 프로젝트] '변산반도국립공원 내소사 전나무숲길' 하늘 향해 곧게 뻗은 전나무 숲..

[황승경의 1막1장] 죽어서야 영원한 자유 얻은 오스트리아 국민 황후 ‘씨씨’


경제용어사전 프린트 이메일 전송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