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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명화극장] 영화 도대체 1970년대 마약왕에 주목하는 이유가 뭘까
기사입력 2019.01.07 11:15:49 | 최종수정 2019.01.07 11: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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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약왕>은 <내부자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우민호 감독의 야심찬 제2의 한국 현대사회극이다. 영화감독들은 연어처럼 펄펄 뛰어 오르며 자꾸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지금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기원(起源)했는지를 궁금해 하기 때문이다. 우민호는 현대 한국사회가 여전히 권력과 언론, 재계의 유착으로 기형화돼 있으며 본격적으로 그렇게 되기 시작한 때를 알고 싶어 한다. 그걸 알아야 현재를 고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민호가 1970년대 ‘마약왕’ 이두삼(본명은 이황순)의 시절로 돌아간 이유다.

꼭 이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주인공 이두삼은 영화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혹은 사회과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캐릭터인 것이 사실이다. 보통은 극악한 가정환경이나 성장 과정 탓에 마약 중독에 빠지거나 비슷한 범죄에 연루되기 십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달리 이두삼은 순전히 자신의 개인의지, 그것도 자본과 권력을 향한 끝없는 욕망에 의해 마약을 선택하는 인물로 나온다.

한국 현대사에 이런 인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어쩌면 이두삼은 당시의 한국사회가 ‘범죄적 경제구조(국가독점자본주의)’를 취사선택 했듯 그 역시 ‘마약 회사’를 만들려고 했을 뿐일 수도 있다. 적어도 그 자신은 그냥 장사=비즈니스=회사를 한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국가 범죄는 도덕이나 윤리로 쉽게 재단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쟁이 그렇다. 이두삼 역시 자신의 마약 장사가 국가적으로 ‘큰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현재 심각한 도덕 불감증에 빠져 있거나 악마적인 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두삼은 말 그대로 스스로를 비즈니스맨이라고 생각하고 또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으로 처신하며 살아간다. 그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한다.

“대만에서 원료를 사다가 국내에서 가공해서 일본으로 수출하잖아? 이건 애국이야 애국!”

우민호가 풍자하는 이두삼의 행각, 그가 벌이는 범죄행보는 당시 국가 권력의 비호 하에 특권층의 배만 부르게 했던, 그리고 그렇게 키워져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재벌들의 지원 하에 거꾸로 독재 권력이 유지되는 시스템의 순환 구조를 암시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만행도 서슴지 않아도 됐으며, 또 그러려고 했던 시대라면 마약왕이든 대통령이든 무슨 차이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종이 한 장 정도 차이는 차이가 아니다. 결국 같다는 얘기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이두삼이 마약왕이 되는 기간은 비교적 짧다. 그 단시간의 ‘입신양명’ 과정이 인상적이다. 한낱 하급 밀수업자에 불과했던 그는 어느 날 ‘이제부터 마약을 팔겠어’라고 선언하듯 결심한다. 마약 기술자 백 교수(김홍파)를 모셔오고 마약 유통업자로 전과자인 최진필(이희준)과 판을 짜는 동시에 일본 야쿠자와 선이 닿아 있는 국내 조폭 조성강(조우진)과 살 떨리는 거래를 벌이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무엇보다 아무런 공포감을 보이지 않는다. 배포가 큰 것과 다른 얘기다.

이두삼은 그 모든 것을 그냥 장사를 하기 위해 만나는 ‘비즈니스 미팅’ 쯤으로 생각한다. 일본 도쿄에서 그가 벌인 활극 역시 ‘마케팅’ 과정에서 벌어진, 술자리에서의 해프닝 정도로 여겨진다. 결국 당시 권력의 선(線)에 닿아 있는 여인 김정아(배두나)와 손을 잡게 되고 중앙정보부 실세인 함실장(최귀화)에게 접근하게까지 된다. 이두삼은 함실장에게 말한다. “각하를 도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용의가 있다.” 이두삼은 반공협회 고문을 비롯해서 각종 단체에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한다. 바야흐로 이두삼의 세상이 된다.

우민호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주인공 이두삼의 마약 인생 흥망사는 비교적 ‘드라이’하게 그려진다. 채색감 없이, 어마어마하게 드라마틱한 얘기일 텐데 꼭 그렇지 않게, 마치 뉴스 릴을 보듯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우민호 감독은 거기에 그 이상의 의미를 덧붙이는 것 자체가 이두삼을 자칫 영웅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이두삼은 영웅이 아니다. 시대가 낳은 기형아였을 뿐이다. 우민호 감독은 주인공 이두삼의 삶을 최대한 밋밋하게 그려냄으로써 지금껏 칭송돼 오던 한국 경제의 성장 신화라는 실체, 그 허상을 목도하게 하려 노력한다. 이두삼의 마약인생처럼 한국의 경제 성장 역시 빠른 시간에 성취된 ‘작품’이다. 사람들 대다수가 오랫동안 그것을 ‘기적’이라 불러 왔지만(부르게끔 강요당했지만) 우리는 한강 물밑으로 정작 어떤 비극적 종말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이후에는 진실을 외면하려 애써왔다.

이두삼이 몰락한 것은 한 순간이었다. 그는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돈으로 해낸 증축(增築)이 세상의 변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오판했다. 이두삼처럼 한국사회도 한 순간에 붕괴했다. 박정희가 그랬고 전두환도 그랬다. 돈으로 이룬 권력과 세상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마치 마약 중독과 같은 것이어서 이상한 자기 최면에 빠지게 한다. 영화 <마약왕>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마약을 팔아 잠시나마 부귀영화를 누리는 줄 알았던 한 범죄자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정치사회 권력 역시 같은 맥락이었음을 등치시킨다.



영화는 의외로 흥미롭고 리드미컬한데다 적당히 폭력적이고 적절한 웃음과 유머가 가미됐다. 그만큼 관객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했다는 얘기다. 다만 관객과 백퍼센트 교감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사회적 의식과 그것을 적절하게 비벼낸 스토리 구성 등은 물론 나쁘지 않지만, 이상하게 새롭지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영화는 알 파치노 주연의 1984년작 <스카페이스>의 이야기 구조, 설정, 미술, 의상 등을 상당히 모방한 듯한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마약에 취해 경찰을 향해 총을 쏴대는 (그것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송강호의 연기는 언제나 명불허전이지만 알 파치노가 한번 해낸 연기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배두나의 팜므 파탈 연기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미셸 파이퍼를 따라가지는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연기자와 감독을 탓할 필요는 없겠다. 이런 류의 영화, 곧 갱스터 무비 혹은 범죄 드라마는 ‘한국형’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독보성을 확보하기에는 이미 장르적으로 확고한 규칙과 어느 정도 정해진 표현, 설정 등을 지니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새로운 무엇을 만들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라는 얘기다.

영화는 늘 “왜?”라는 질문에 답을 충족시켜야 한다. 우민호는 <마약왕>을 왜 만들었을까? 결국 1970년대를 통해 지금의 세상을 갈파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장르 영화적 재미와 시대적 의지 사이에서 다소 어정쩡하게 왔다 갔다 한 측면이 없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재미있다고 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루하다고 할 것이다. 당신은 과연 어느 쪽일까?

[오동진 영화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0호 (2019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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