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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걷기 프로젝트] 아픈 곳 치유하듯 굽이굽이 껴안은 풍경 `속리산국립공원 세조길`
기사입력 2018.02.08 16:17:30 | 최종수정 2018.02.08 17: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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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힘든 한 해였는지 한여름 더위엔 입에서 단내가 납디다. 성장은 고사하고 부도나지 않은 것만 해도 천운이었어요. 직원들이 똘똘 뭉쳐서 일하는데 사장이 쉴 수가 있어야지. 얼마나 고맙던지 연말에 집에 불러서 고기파티 한 번 했습니다. 근데 말이에요. 이게 무슨 일인지, 새해 첫해가 뜨자마자 이번엔 최저 임금이 문제예요.

그렇게 뭉쳐서 고비 넘긴 직원들에게 뭐라 할 말이 있어야 하는데, 상황은 나아진 게 없고 임금은 올려줘야 하고… 지난주엔 정말 참기 힘들어서 한 1년 만에 엄청 취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자식 같은 놈이 앞에서 말도 못 꺼내고 우물쭈물하는데, 뭔 소리 내비칠지 뻔히 알거든요. 근데 해줘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어찌할 도리는 없고… 그렇다고 나가란 말은 죽어도 못하겠고…. 소주 한잔하면서 세상 참, 해도 해도 너무 하단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어요. 성장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유지만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빚이라도 내서 좀 더 얹어 줄 수 있을 텐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말하는 폼이 아나운서 멘트하듯 어찌나 똑 떨어지는지, 생방송에 내놔도 충분히 먹고살 기운이었다.

어쩌면 그만큼 할 말이 많았고 또 실제로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한 해였다. 중소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K사장에게 2017년은 한발만 뒷걸음질 치면 말 그대로 지옥불이었다. 그래도 용케 버텨냈다. 연말 고기파티는 그러니까 그와 직원들이 함께한 나름의 의식이자 가는 해의 불운을 털어내고 오는 해의 기운을 옴팡 받자는 일종의 푸닥거리였다. 그 신성한 의식을 치른 후 새해를 맞은 K사장에게 최저임금이나 어두운 경기전망은 흑색선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려워도 다시 버텨야죠. 그래야 제 식구(직원)들 입에 풀칠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가슴이 너무 아파요. 아예 꽉 막혀서 풀리질 않아요. 애꿎은 사이다만 들이켜는데, 이게 그렇게 풀릴 게 아닌 것 같아요. 누가 한번 쓰다듬듯 만져주면, 어릴 때 엄마가 그런 것처럼 한번 둥글게 쓰다듬으면 풀릴 것도 같은데, 그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점심시간이면 공장 마당에 서서 한 30분 햇볕을 쬐고 있어요. 그럼 몸이 따뜻해지는 게 해가 만져주는 것 같아요. 말하고 보니 쑥스럽네요… 버텨야죠. 그렇게 버티는 게 인생이라던데, 그러다 보면 제대로 해 한번 뜨겠지요.”



▶고즈넉한 숲길, 웅장한 사찰

오랜만에 도착한 속리산(俗離山·1058m) 입구에 찬바람이 유난했다. 또박한 목소리로 “오늘은 영하 10도, 체감기온 영하 15~20도”라 전한 라디오 뉴스 기상캐스터의 말에 목도리를 한 번 더 휘감고 법주사로 향했다. 2월에 찾은 걷기코스는 속리산 법주사에서 세심정까지 새롭게 길을 낸 탐방로 ‘세조길’이다. 우선 세조길로 들어서기 전 찾은 곳은 법주사. 553년의 신조사가 창건한 이 사찰은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60여 동의 전각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이었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며 대부분 불타 없어졌다. 이후 1605년 사명대사가 중건했고, 지금은 국보 제5호인 ‘보은 법주사 쌍사자석등’과 보물 제915호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 등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속리산의 대표 사찰이다. 금강문을 지나 사천왕문, 팔상전, 대웅보전으로 이르는 길은 그야말로 장중하다. 특히 5층 건물인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목탑이다. 부처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모습, 룸비니에서 탄생하는 모습, 세상을 관찰하는 모습, 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 설산에서 수도하는 모습, 보리수 아래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모습,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하는 모습, 열반에 드는 모습 등 여덟 장면을 표현한 팔상도를 모신 건물이다. 각각의 형태를 지닌 문과 건물을 살펴보노라면 도시의 사각과는 다른 선과 면, 각의 다채로운 조화가 큰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게 한다. 무엇보다 고즈넉한 건 사찰을 빙 둘러싼 숲과 사찰 내부에 자리한 나무들의 자태 때문이다. 한국화 한 폭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멋스럽게 가지를 뻗은 나무가 겨울바람과 만나 만들어 낸 소리는 요즘 유행하는 프리미엄 사운드 부럽지 않았다. 살짝 나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소나무, 당단풍나무, 목련나무, 배롱나무, 야광나무, 잣나무, 보리자나무, 대추나무, 이팝나무, 주목, 백송, 모감주나무, 은행나무, 회양목, 전나무까지 어울렁 더울렁 모여 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



▶탁 트인 수원지부터 야트막한 고개까지

법주사 입구 맞은편 갈림길에서 시작되는 세조길은 2016년 9월에 개통된 편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이전 속리산 진입도로는 차와 사람이 함께 다녀 자칫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곤 했는데, 세조길 덕분에 호젓한 숲길을 따라 걷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가지런히 정돈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떨어진 나뭇잎이 켜켜이 쌓여 특유의 향을 풍긴다. 마치 고요한 산사에서 전통차 한잔 마시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길은 계곡을 막으며 생겨난 넓은 저수지 옆을 에두른다. 데크로 이어진 길에서 저수지를 바라보면 웬만한 호수의 풍광 저리 가라다. 가만히 꽁꽁 언 저수지의 허연 표면을 들여다보면 곳곳에 생긴 커다란 물방울 사이사이로 시커먼 무언가가 획 지나가기도 한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데크를 밟고 완만한 경사를 오르면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제법 크다. 추위에 얼어버린 물이 계곡의 크고 작은 바위에 부딪혀 다른 계절보다 울림을 크게 한 까닭이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목욕소. 세조가 이곳에서 목욕을 한 후 피부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해서 길 이름도 ‘세조길’이 됐다고 하니 왠지 발 한번 담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목욕소를 지나 마음을 씻는 정자란 의미의 세심정(洗心亭)에 이르면 세조길이 마무리된다. 빠르면 한 시간, 풍경을 두루 살피며 걷다 서다를 반복하면 두어 시간 남짓한 거리다. 어느 곳 하나 모난 데 없이 가지런한 길은 포근하다. 마치 엄마의 손길처럼. 세조의 피부병이 치유됐듯 어쩌면 답답한 마음도 진정될 수 있지 않을까….

세조길 일주문→법주사→남산화장실→붉은 돌→눈썹바위→법주사 수원지→수정봉→대만꽃사슴 포획장→태평교→탈골암→세심정

속리산 탐방객 급증, 세조길이 효자 2년 연속 급증한 속리산 탐방객 수에 세조길이 한몫 단단히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속리산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탐방객은 134만9400명으로 전년(122만3200명) 대비 10.8% 늘었다. 세조길이 있는 법주사지구가 67만9500명으로 전체의 50.4%를 차지했다. 다음은 화양동지구 36만2100명(26.8%), 쌍곡지구 16만9500명(12.6%), 화북지구 13만8200명(10.2%) 순이었다. 사실 속리산은 1970년대까지 한 해 220만 명이 찾던 중부권 최대 관광지였다. 하지만 관광개발이 제자리에 머물고, 수학여행마저 제주도나 설악산으로 몰리면서 관광경기가 급속히 가라앉았다. 2013년 124만1200명이던 탐방객은 이듬해 119만5700명, 2015년 111만5200명으로 하향곡선을 그렸다. 그러던 것이 2016년 세조길이 뚫리면서 122만 명대로 올라선 뒤 2년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열두구비 길로 유명한 말티재 등에 관광·휴양시설이 들어선 것도 관광객 유치에 한몫하고 있다. 이 고개 주변 110㏊의 송림에는 지난해 한옥(21실)·황토방(16실)·통나무집(18실) 등을 갖춘 숲체험마을이 들어섰다. 솔향공원∼속리터널 10㎞ 구간에는 꼬부랑길이 개설됐고, 속리산 중판리 일원에는 호텔·콘도미니엄 등이 들어서는 리조트 개발도 추진될 계획이다.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9호 (2018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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