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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명화극장] 영화 `해피 댄싱` 춤추고 왁자지껄 하지만 서럽고도 서운한…
기사입력 2018.12.04 15: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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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 댄싱>은 제목과는 달리, 밝고 즐거우며 발랄하면서도 마음껏 춤을 추거나 혹은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마냥 우울하고 어둡다는 것은 아니다. 의도된 가벼움과 명랑함이 있다. 주된 흐름은 서글픔과 그것을 이겨내는 용기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여성판 <풀 몬티>(철광산업 남자 노동자들이 전 영국수상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실업자가 된 후 스트립쇼로 생계를 유지하려고 춤을 배우는 이야기. 1997년 작)라고 부르지만 그건 편의상 붙인 광고성 수식어 같다. <해피 댄싱>은 <풀 몬티>와 상당히 다른 지점에 서있다. <풀 몬티>가 노동의 권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면 <해피 댄싱>은 노년의 권리와 그에 대한 삶을 말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산드라(이멜다 스탠튼)는 영국 런던의 중상류층 집의 안주인으로 지난 35년간 비교적 호의호식하며 살아온 여인이다. 그녀의 남편은 런던 남부의 경찰청장으로 이제 막 은퇴했으며 그간의 공로로 작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겠는가. 남편이 자신의 친구인 파멜라와 5년 전부터 외도를 한 사실을 알게 되어 집을 뛰쳐나와 자신의 친 언니 비프(셀리아 임리)가 사는 서민 마을을 찾아 간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찾게 된다. <해피 댄싱>은 늙은이들(굳이 노인들이라거나 어르신이라는 가식적인 단어를 쓰지 않겠다.)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함께 삶을 나누기 위해 모여서 춤을 배우는 이야기다. 물론 겉으로 보면 그렇다. 이들이 춤을 추는 과정에 경연에 참가하는 일도 생길 것이요, 멤버들 간에 갈등도 생길 것이고, 누군가가 죽게 될 것이다. 어쩌면 뻔한 스토리의 영화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만든 리처드 론크레인 감독은 흔한 이야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그는 여기에 영국 특유의 사회적 분위기와 정치적 아우라를 심어 놓는다.

산드라와 비프는 사실 수십 년 만에 만났다. 둘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기간에 핵전쟁을 반대하고 보편적 복지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었다. 산드라의 남편도 그랬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아니 의식적으로 변절해서 경찰이 됐고 게다가 그 조직 안에서 승승장구한 인물이 됐다. 이를 두고 오랜만에 만난 자매는, 중국식 레스토랑에 가서 설전을 벌인다. 동생은 자신이 보수주의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 “그럼 이 나라에 애들을 누가 낳고 키울 수 있게 했냐”며 짜증을 부리고 언니 비프는 비프대로 “어쩜 그러던 인간이 경찰이 될 수 있었냐”며 쏘아 붙인다. 결국 이날의 싸움은 동생인 산드라가 중국 음식점의 지배인에게 만두를 집어 던지다 경찰에 끌려가는 해프닝으로 끝난다. 산드라는 경찰차를 타면서까지 내 남편이 남부 경찰청장이라며 패악을 부린다.

영화 <해피 댄싱>에서 해피한 댄싱 장면이 그리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론크레인 감독이 하고 싶었던 얘기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늙어 간다는 것, 특히 한때 사회적 정치적 변화의 갈망에 허덕였던 그 오랜 젊은이들이 이제 늙어서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졌다(유용성이 떨어졌다)는 보다 본질적인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무리 등장인물들 상당수가 웃고 떠들고 춤추고 왁자지껄 한들 영화의 전체적인 톤은 역설적으로 다소 서럽고 서운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등장인물들 대개가 곧 언니 비프의 오랜 친구인 찰리(티모시 스폴, 영국 영화의 빛나는 신 스틸러인 이 배우는 이번 영화에서 엄청나게 감량을 한 상태로 나오는데 그만큼 늙고 병들어 보인다.)와 재키(조안나 럼리) 등은 모두 자존심 있게 늙어 가려고 애쓴다. 자존심을 지켜 가면서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산드라처럼 때 늦은 버림을 받거나, 찰리처럼 아내가 중증 알츠하이머에 걸려 남편인 자신도 못 알아 본 채 행패를 부리는 신세가 될 수 있다. 항상 진한 아이섀도를 바르며 자신의 늙은 얼굴을 감춘다 한들 재키 역시 결혼을 다섯 번이나 해치우며 인생살이를 나름 굴곡 있게 살아왔다. 언니인 비프 역시 언젠가 로마에서 만나 지독한 사랑에 빠진 ‘잘생긴’ 남자가 마치 영화에서나 있는 일인 양 결혼 2주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후에는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며 살아 온 여자다. 모두들 각자의 뼈아픈 사정을 안고 살아가는 법이다. 그걸 내세우지 않고, 안절부절하지 않으며, 요란 떨지 않고, 평정심으로 자존심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해피 댄싱>의 늙은이들, 노인들은 그러려고 노력한다. 이들이 웃고 떠들고 가능하면 연애하고 섹스하고 살아가려 하는 것은 결국 각자가 지닌 상처를 잊기 위해서다. 세상에서 잊히는 것을 받아들이되 그들 자신도 세상을 ‘주체적으로’ 잊기 위해서다. <해피 댄싱>은 그런 당당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편으로 <해피 댄싱>은 전쟁과 혁명의 6.8세대가 쓸쓸하게 퇴조하는, 그걸 지켜보는 자들의 애절한 마음을 담고 있는 송가(頌歌)와 같은 작품이다. 여전히 세상에는 변화를 위해 싸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싸움은 이제 다른 주체들이 해야 할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아무리 싸울 마음이 있더라도 그 투쟁의 고삐를 다음 세대에 내줘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것이야말로 웰 고잉(Well-going)이다. 이제는 웰 빙(Well-being)이나 웰 다잉(Well-dying)만으로는 죽음을 준비할 수 없다. ‘죽어가는 과정 그 자체’를 관리해야 하는 시대다. <해피 댄싱>은 바로 그 얘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어느 날 비프는 흑인 남자 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화끈한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30분만 기다려 달라며 비아그라를 꺼낸다. 여자는 남자에게 시간을 10분으로 단축시켜 주겠다며 요염한 포즈를 취하지만 그게 결국 과한 일이 되고 말았다. 남자가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다.
남자를 묻은 후 묘지 앞에서 동생 산드라는 언니인 비프에게 어쩜 그렇게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굴 수 있느냐고 말한다.

그 말에 언니 비프는 이렇게 답한다.

“적어도 그 남자, 웃고 즐기면서 떠났잖니.”

우리들의 죽음에는 웃음의 주단이 깔려 있는가. 과연 그걸 잘 준비하고 있는가. <해피 댄싱>은 의외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9호 (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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