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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의 보르도 와인 이야기] 레드와인이 대세이던 보르도가 내놓은 최고급 화이트와인 ‘프티 슈발 블랑’
기사입력 2018.08.27 08: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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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로베르 피트(Jean Robert PITTE)는 그의 저서 <보르도 대 부르고뉴>에서 프랑스 한림원에 멤버로 가입하고 싶어 했던 어느 프랑스 신부의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질레(Gillet)라는 이름의 이 신부는 자신을 만나러 파리에서 파견한 두 신부를 모시고 자신이 살고 있는 부르고뉴 디종 시의 최고급 식당에 간다. 한림원 멤버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이 두 심사위원의 역할이 컸기에 최고급 음식과 최고급 부르고뉴 와인을 한 병 주문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심사위원이 입을 떨며 말했다. “와인이긴 하군요.” 질레 신부는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알아차렸다. 그 신부는 보르도 와인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질레 신부는 교양이 없다는 이유로 프랑스 한림원 후보에서 탈락했다.

프랑스 한림원의 회원 자격에 와인 취향이 포함되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이 간다. 하지만 최고급 와인이라는 왕좌를 두고 전 세계에서 경쟁하고 있는 프랑스의 보르도와 부르고뉴 지역 사람들이 서로를 라이벌로 의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와인에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어서 서로 다른 지역의 와인을 마시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나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부르고뉴와 보르도에서 각각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 기간에 부르고뉴 사람이 보르도 와인을 마시는 것 혹은 보르도 사람이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보르도 vs 부르고뉴

프랑스 보르도는 대서양에 인접하여 무역으로 부를 일군 상인들이 지배하던 지역이다. 역사적으로 바다 건너 잉글랜드의 영토에 속하였던 적도 있었던 보르도 지역의 귀족들은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아니라 잉글랜드 국왕을 지지하기도 했다. 반면 부르고뉴는 남유럽과 북유럽 그리고 동서 유럽이 교차하는 내륙에 위치해 있으며 유럽을 호령하던 최고의 기사단을 거느렸던 지역이다. 개방적인 보르도 사람들에 비해 투박한 편이며 고집도 세다. 프랑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보르도의 철학자와 부르고뉴의 역사학자가 서로의 사투리로 말싸움하는 것을 소재로 삼을 만큼 두 지역 사람들의 기질은 정반대다. 이들은 기질 만큼이나 서로 다른 스타일의 와인을 만든다. 대체로 부르고뉴에서 나오는 레드 와인은 섬세하고 우아하다. 반면 보르도에서 나오는 레드 와인은 진하고 깊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와인을 시작할 때는 보르도 와인으로 시작하지만 맛을 제대로 알게 되면 부르고뉴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거나, 오래된 보르도 와인을 마셔 보아야 고급 와인의 진정한 묘미를 알 수 있다고 하며 보르도 와인이나 부르고뉴 와인 중 하나가 더 우월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결국엔 보르도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르도 와인만 마시고, 부르고뉴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부르고뉴 와인만 마시게 되는 것 같다. 취향이나 경제적인 문제일 뿐, 와인 지식의 깊이나 상대 지역에 대한 적대감이 이유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내가 프랑스 와인 바이어가 되어 다시 보르도를 찾았던 2007년 무렵부터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어떤 보르도 양조업자들은 만찬에 부르고뉴산 고급 화이트 와인을 서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보르도의 레드 와인은 매우 뛰어나지만, 화이트 와인의 경우 부르고뉴의 ‘몽라셰(Montrachet)’나 ‘샤블리 레클로(Les Clos)’ 같은 최고급 와인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보르도는 레드 와인의 왕국이다. 전체 생산량 중에 75%가 레드 와인이며 15%만 화이트 와인이다. 그 15% 중에서도 많은 수가 단맛을 내는 스위트 와인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화이트 와인이라고 부르는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의 비율은 더 적다. 반면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60% 이상이 화이트 와인이고 겨우 30%만 레드 와인이다. 부르고뉴에는 ‘샤블리(Chablis)’, ‘뫼르소(Meursault)’ 등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마을들이 있는 반면에 보르도에는 화이트 와인만으로 유명한 곳은 없다. 보통 보르도산 화이트 와인이라고 하면 엉트르두메르(Entre Deux Mers)라고 불리는 드넓은 포도산지에서 대량으로 재배되는 저렴한 와인이 연상된다. 1953년 프랑스 정부는 샤토 올리비에(Olivier) 혹은 도멘 드 슈발리에(Domaine de Chevalier)의 와인을 최고급 화이트 와인으로 인정하였다. 하지만 이 포도원들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두 개 모두 세계적인 명성의 와인을 만든다. 그동안 보르도의 최고급 화이트 와인들은 대체로 레드 와인 생산자에 의해서 그것도 아주 소규모로 만들어져 왔다. 5대 샤토에 속하는 샤토 오브리옹(Haut Brion)과 샤토 마고(Margaux)에서 만드는 ‘오브리옹 블랑’이나 ‘파비옹(Pavillon) 블랑’은 보르도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화이트 와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대체로 보르도의 고급 와인 생산자들은 고급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데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져왔다.



▶생테밀리옹 마을에서 만든 화이트 와인

제라르 페르스(Gerard Perse)가 1993년 생테밀리옹 마을의 샤토 몽부스케(Monbousquet)를 인수하고 처음 화이트 와인을 만들자 해외의 와인 애호가들은 매우 열광했다. 그동안 레드 와인만 생산하던 지역에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는 아이디어가 창의적이었고, 생테밀리옹에서 생산되지만 생테밀리옹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프랑스의 규제도 이야깃거리였다. 심지어 와인의 맛도 좋았다. 몽부스케 블랑의 상업적인 성공에 힘입어 생테밀리옹의 다른 와인 메이커들이 따라갈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가장 혁신적이라고 하는 컬트 와인 메이커들도 대체로 ‘내 땅은 화이트 와인에는 맞지 않는다’며 피했고 어떤 와인 농부는 ‘최고급 레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땅에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것은 낭비’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어쩌면 생테밀리옹의 포도밭이 실제 화이트 와인에 맞지 않는 땅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당시만 해도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하던 제라르 페르스와 같은 편으로 알려지기 싫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이후 약 20년이 넘은 지난 2016년, 생테밀리옹의 상징과 같은 존재이자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와인을 만드는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이 화이트 와인을 처음 출시했다. 작년 겨울 샤토 슈발 블랑의 재무 담당 임원인 아르노 라포르카드(Arna ud de Laforcade)와 점심을 하는 자리에서 그는 화이트 와인을 만들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2006년 샤토 슈발 블랑은 인근의 포도원을 인수했다. 이름도 아주 길었던 샤토 라투르뒤팡 피작(Chateau La Tour du Pin Figeac)은 이웃의 다른 포도원처럼 오랫동안 레드 와인만 만들었던 와이너리다. 샤토 슈발 블랑이 위치한 곳은 포므롤 플라토(Pomerol Plateau)라고 불리는 유명한 언덕으로 페트뤼스, 샤토 레벙질, 샤토 슈발 블랑과 샤토 피작 등 세계적인 포도원들이 밀집한 곳이다. 샤토 라투르뒤팡 피작도 이 언덕에 위치해 있고 한때는 최고급 레드 와인을 만들었던 기록도 있었다. 슈발 블랑 양조팀의 처음 계획은 토양과 와인의 품질을 향상시켜 이 포도밭을 샤토 슈발 블랑에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직접 만들어 보니 이 포도밭이 ‘샤토 슈발 블랑’의 이름에 어울리는 최고급 적포도를 생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심을 하던 양조팀은 컨설턴트의 조언에 따라 2008년 실험적으로 화이트 포도품종을 심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품질이 좋았다. 2012년 프랑스 정부의 허가에 따라 포도밭의 아주 일부는 원래 계획대로 샤토 슈발 블랑에 포함시키게 되었고, 나머지는 화이트 와인을 만들기 위해 남겨두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 9월 말에 처음으로 ‘프티 슈발 블랑(Petit Cheval Blanc)’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첫 빈티지인 2014년산은 겨우 4500병이 생산되었으며, 앞으로도 많아야 최대 2만 병 정도만 생산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보르도 포도원들은 최고급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것에 대해 과거에 비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훨씬 적극적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포도밭의 일부가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데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거나,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만드는 것이 현재의 비즈니스에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거나, 혹은 무언가 절박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5호 (2018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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