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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칼럼니스트가 쓴 `판타지랜드` 환상 신봉해온 미국인들은 왜 거짓말쟁이 트럼프를 선택했나
기사입력 2018.08.27 08: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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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말이나 사탄과 천국의 존재 등을 선진국 중 어떤 나라보다 진심으로 더 많이 믿는 나라다. 대통령 암살, 외계인, 에이즈의 기원, 9·11 테러, 백신의 위험성과 관련한 음모론은 얼마나 창궐하는가. 집에는 총을 쟁여둔다. 개척시대에 대한 환상과 테러리스트와 벌일 가상의 총격전을 대비해서다.

이런 일들은 모두 우리가 탈사실(post-factual)과 탈진실(post-truth)이란 용어를 접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과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이 책은 미국을 이렇게 정의한다. 판타지랜드.

커트 앤더슨 지음 / 정혜윤 옮김 / 세종서적 펴냄

타임과 뉴요커의 칼럼니스트 출신으로 <좋았던 시절>과 <광신자들>을 쓴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문화비평가 커트 앤더슨의 책이 상륙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큰 논란을 일으킨 화제작이다. 500년 동안 환상을 신봉해온 미국이 트럼프의 나라가 된 건 당연한 수순이며, 자유에 대한 미국의 실험이 말 그대로 궤도를 이탈해 버렸음을 고발해 주요 언론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 그는 이 책에서 세일럼 마을의 마녀 사냥부터 조지프 스미스의 모르몬교 창시, 할리우드와 사이언톨로지, 오프라 윈프리와 도널드 트럼프까지 이르는 방대한 사례를 분석한다. 영웅적인 개인주의와 극단적인 종교가 버무려지고, 쇼비즈니스가 더해진 미국이라는 ‘마법 국가’의 본질을 해부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무(無)에서 고안되고 만들어진 첫 번째 나라, 마치 서사시 속의 이야기처럼 창조된 첫 번째 나라였다.”

‘신대륙’ 미국은 처음부터 미신의 땅이었고, 열정적인 몽상가들, 사기꾼과 호구들이 만든 나라였다. 16세기 말 영국의 왕실학자 리처드 해클루트는 가장 열성적으로 미국병에 걸린 자였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을 다녀온 탐험가의 보고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 신세계를 금과 은이 가득한 이상 세계로 묘사한 글을 출판했다. 모험가이자 금에 눈먼 허풍쟁이 귀족 월터 롤리는 이 보고서를 보자마자 엘리자베스 여왕을 찾아가 신세계를 식민지로 만들라고 설득했고, 3년 만에 왕실로부터 북아메리카 동쪽 해안을 개발하는 독점 사업권을 따냈다. 금 채굴을 위해 세 번의 원정대를 보냈으나 그는 한 조각의 금도 발견하지 못했다.

월리 이후에도 많은 신세계 원정대가 금을 발견하는 데 실패했지만, 개척민들은 끝없이 바다를 건너왔다. 영국인에게 아메리카는 과장된 광고와 선전 책자에 속아 넘어간 이들만 가득한 실패한 스타트업이 됐다. 역사학자 대니얼 부어스틴은 이 시대를 이렇게 서술한다. “미국 문명의 기반은 광고를 순순히 믿는 사람들로 일종의 자연 선택이 이루어져 형성되었다.”

미국의 건국신화에도 판타지는 빠지지 않는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가장 유명한 일화, 즉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체리나무를 자신이 손도끼로 잘랐다고 고백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베스트셀러 전기에 실린 허구다. 그가 참전한 밸리 포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 일화 역시 허구다.

앤더슨은 미국의 정치가 오락으로 변질된 현상은 1960년대에 존 F 케네디와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고발한다. 케네디는 젊고 섹시한 이미지로 어필했지만, 이는 거짓 환상에 불과했다. 실제로 그는 골다공증과 에디슨병을 앓고 있었고 항불안제와 각성제를 복용하는 불안한 정치인일 뿐이었다. 심지어 오프라 윈프리는 “뉴에이지 사상계의 초대 교황 같은 존재”다. 미국의 수많은 명사들이 모두 그녀로부터 공식 세례를 받고 스타가 되었다. 디팩 초프라, <시크릿>의 론다 번, 셜리 맥클레인, 닥터 오즈 등은 윈프리가 만든 ‘환상 자판기’의 산출물이다. 미국에서 이 선풍적 인기를 끄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애플, 구글, 아마존 등으로 대표되는 비즈니스 세계도 종교적 요소가 넘쳐난다. 기록적인 성장을 이어가는 회사에는 마법의 동물인 ‘유니콘’이란 이름이 붙는다. 기술 관련 주식과 부동산 거품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것도 전형적인 미국의 현상이다. 숨 가쁜 속도로 미국의 판타지 문화를 비판하던 저자의 펜이 향하는 끝판왕은 역시 트럼프다. 트럼프를 움직이는 동력은 기존 제도권에 대한 원한이며, 10대 시절부터 미국의 어떤 돈벌이도 오락 사업으로 바꿀 수 있음을 그는 잘 알았다. 정치란 이상을 두고 벌이는 경쟁이 아니라 이미지를 두고 벌이는 경쟁임을 구현한 트럼프야말로 ‘판타지 산업의 신’이라는 것이다.

미국에 거짓 환상이 범람하게 된 계기로는 두 가지 변화를 꼽는다. 첫째는 196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정신적 변화의 물결이다. 1960년대 히피 정신과 자유주의의 범람은 개개인의 온갖 믿음을 합리화시켰다. 두 번째는 정보통신 시대의 도래다. 디지털 기술은 가상현실을 더 강력하게 만든다.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고립되어 살았다. 이제는 수많은 가짜 정보들이 웹상에 널려 있고, 모든 환상은 실제처럼 보이게 됐다. 게다가 환상은 중첩되며 칵테일 효과를 낸다. 가짜 정보에 또 다른 가짜 정보가 더해져 더 강력해진다.

미국이란 나라를 질근질근 씹어대는 블랙코미디 같은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지푸라기 같은 희망도 내비친다.
그는 당장 미국을 광기에서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우리의 노력에 따라 물살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며 이성의 회복을 촉구한다. ‘환상의 제국’이 된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이지만, 이는 한국사회에도 절실한 비판이기도 하다. 혐오와 불신이 들불처럼 커지는 한국사회의 이면에도 이성 대신 환상과 거짓에 현혹되는 ‘반지성주의’가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슬기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5호 (2018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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