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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의 보르도 와인이야기] 러시아 왕족 즐긴 ‘소테른 와인’ 황홀한 단맛 곰팡이가 빚어내
기사입력 2018.07.12 11: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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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을 5000원에 살 수 있는 와인과 100만원짜리 와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와인의 가격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소가 있다. 경매에서 거래되는 희귀 와인들은 욕망과 공급의 관계에 의해 정해지고, 와인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는 오크통의 가격이라든지, 포도원 주인이 새로 산 트랙터 가격 등도 분명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와인에 들어가는 원료의 차이, 즉 포도의 차이가 본질적으로 와인 가격의 가장 큰 차이를 만든다. 고급 와인을 만드는 포도는 아주 섬세하게 재배된다. 가령 대량으로 재배되는 저가 와인은 대체로 기계로 수확한다. 하지만 기계로 수확할 경우 포도 알에 상처가 날 수 있고 이렇게 상처가 난 포도들은 품질에 따라 재분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급 와인들은 한 알 한 알 사람의 손으로 수확한 포도를 사용한다. 기계로 수확을 하는 경우, 헥타르(약 3300평)당 300유로, 손으로 수확을 하는 경우 약 750유로 정도의 비용이 든다. 고급 와인을 만드는 경우에는 수확된 포도 알들을 또다시 분류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 경우 2배 이상의 비용이 든다. 1년간 포도농사를 지으며 이러한 일들을 반복한다. 포도밭의 지층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밭갈이를 사람의 손으로 하는 경우도 있어 프랑스의 농부 중에는 포도밭을 돌보기 위해 평생 한 번도 휴가를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농부와 포도나무가 쉬는 겨울에도 고급 와인을 만드는 포도나무들은 특별한 보살핌을 받는다. 프랑스 최고급 화이트 와인인 샤블리(Chablis)의 포도밭에는 전기난로가 설치되어, 겨울에 온도가 많이 떨어질 경우에는 난방 서비스를 받기도 한다. 한마디로 포도나무 팔자가 상팔자다.



▶와인 애호가들의 성지, 소테른

아마도 한잔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는 와인은 보르도의 소테른(Sauterne) 와인이 아닐까 싶다. 소테른은 보르도 남쪽에 위치한 와인 생산지로 마을 인구가 겨우 5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와인 애호가들은 모두 이 작은 마을의 이름을 알고 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미앙(Damien)에 의하면 이 시골 마을 사람들은 아주 소박해서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은 1년에 한 번 있는 ‘멋진 정원’ 대회에서 어떻게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가 하는 것이다. 소테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농담이 있다. 소테른의 동네 이장님과 샌프란시스코 시장 그리고 홍콩 시장이 전 세계 시장 협회 모임에서 만나 같은 테이블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소테른이라는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보았으나,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기억을 못한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소테른 이장에게 실업문제, 홍콩 시장은 쓰레기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했는데, 자존심이 강한 소테른 이장이 소테른의 인구 폭발에 대해서 과장되게 이야기했다는 농담이다. 이렇게 쾌활하고 농담을 좋아하는 소테른 사람들도 와인을 만들 때만큼은 아주 처절하다.

소테른 와인은 스위트 와인이다. 평범하게 달콤한 와인이 아니라 한번 마셔보면 그 황홀함을 잊을 수가 없어서 러시아 왕족들이 즐겨 마셨다는 고급 스위트 와인이다. 소테른 와인의 단맛의 비결은 보트리티스라고 하는 곰팡이에 있다. 소테른 마을 인근의 가론강(Garonne)과 시롱강(Ciron)의 온도 차이에 의해 이 지역 포도밭에 안개가 자주 형성되는데, 이 안개는 보트리티스라고 불리는 곰팡이를 동반한다. 보트리티스 곰팡이는 추수에 가까워진 소테른의 포도 알 껍질을 약하게 만들고 낮의 따스한 햇살이 포도 알의 수분을 증발시킨다. 이렇게 건포도처럼 일그러진 포도를 수확하여 와인을 만드는 것이 바로 소테른 와인이다. 우아한 와인을 만드는 곰팡이란 뜻에서 귀부와인 혹은 노블롯(Noble Rot)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귀부와인을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우선 두 가지 기후 조건이 완벽히 갖추어져야 와인을 만들 수 있다. 반드시 보트리티스 곰팡이가 형성되어야 하고, 포도를 건조시켜 줄 맑은 날씨가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만 갖추지 못해도 와인을 만들지 못하는데, 대표적으로 2012년에는 소테른의 여러 포도원들이 와인을 생산하지 못했다. 기후 조건이 완벽하게 준비되면, 날씨가 바뀌기 전에 아주 빠른 속도로 포도를 따야 한다. 하지만 추수철의 소테른 지역 날씨는 매우 세심하고 또 변덕스럽기 때문에 좋은 날씨가 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이는 하루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일주일이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보트리티스가 잘 입혀진 포도와 그렇지 않은 포도 구분이 몹시 어렵기 때문에, 보통의 다른 와이너리보다 더 숙련된 일꾼을 고용해야 한다.



▶샤를 슈발리에의 인내, 샤토 리유섹

세계적인 와인 메이커이자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양조 책임자였던 샤를 슈발리에(Charles Chevalier)는 한때 소테른에 위치한 샤토 리유섹(Rieussec)의 책임자로 일한 적이 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오너인 에릭 로칠드 남작이 샤토 리유섹을 인수한 이후, 당시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2인자였던 샤를 슈발리에에게 샤토 리유섹을 맡아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에 계속 근무한다면, 라피트 로칠드의 최고 와인 메이커로 승진할 수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하더라도 같은 메독 지역의 유명한 샤토 책임자로 스카우트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샤토 리유섹으로 자리를 옮겨서 와인의 품질을 향상 시키지 못한다면, 아마도 잘해야 샤토 리유섹의 와인 메이커로 평생 눌러앉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젊은 샤를 슈발리에는 도전을 선택했다. 동시에 보스인 에릭 로칠드 남작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고 한다. 첫째, 손해를 봐도 자신을 탓하지 않고 도움을 줄 것. 두 번째는 자신의 의사 결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

샤를 슈발리에가 샤토 리유섹을 맡고 난 이후 1988년의 날씨는 좋지 않았다. 포도가 충분히 여물지 못했는데 우기가 벌써 시작되는 것 같았다.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샤를 슈발리에는 충분히 익지 않은 포도를 딸 수가 없었지만, 오랫동안 샤토 리유섹에서 일해 온 직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폭풍에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치고 싶지 않았던 직원들은 샤를 슈발리에를 채근했다고 한다.

하지만 샤를 슈발리에는 계속 기다렸다. 걱정을 떨치지 못한 샤토 리유섹의 직원들은 마침내 에릭 로칠드 남작에게까지 연락을 했다고 한다. 남작은 샤를 슈발리에게 물었다.

“언제쯤 포도를 딸 수 있을까요?”

그 이후 에릭 남작은 매일 전화를 해서 그날 샤를 슈발리에가 무엇을 할지 물어보았지만, 추수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피크닉과 회식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그 해 11월 4일, 일반적인 추수 일보다는 한참 늦은 그날 새벽, 샤를 슈발리에는 바로 그날이 포도를 따야 할 날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새벽 5시에 일꾼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그날부터 약 열흘 가까이 모든 직원들은 아주 열심히 포도를 땄다. 그 해에 샤토 리유섹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와인 중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샤를 슈발리에는 샤토 리유섹의 성공에 힘입어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수석 와인메이커로 승진했고, 샤토 리유섹의 어려운 시기에 익힌 새로운 테크닉을 샤토 라피트 로칠드에 도입해 5대 샤토 중에 가장 뛰어난 와이너리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샤토 디켐에 얽힌 두 가지 전설

소테른에서 생산되는 와인들 중에 샤토 리유섹, 샤토 라포리 페라게(La Faurie -Peyraguey), 샤토 헤인 비노(Rayne Vigneau) 등이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역시 소테른의 맹주는 루이비통 헤네시 그룹에서 소유하고 있는 샤토 디켐(Chateau d’Yquem)이다. 한때 한 병에 수천만 원을 호가한 적도 있다. 샤토 디켐에는 여러 가지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따라다니는데 두 가지 대표적인 전설은 다음과 같다.

2001년 런던의 페트뤼스라는 레스토랑에서 바클레이즈 캐피털 직원 6명이 약 1억7000만원어치의 와인을 주문했는데, 1인당 50파운드의 식사 값은 주인이 무료로 제공하였다. 이들이 마신 와인리스트에 샤토 디켐 1900년산이 포함되었는데, 당시 우리 돈으로 약 2000만원 정도를 지불하였다.

이들은 이후 해고되었지만, 모든 와인 애호가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또 하나의 전설은 실제 확인되지는 않는 이야기인데, 어느 중동의 석유재벌이 런던 한 레스토랑에서 샤토 디켐 1897년을 시키고 한잔을 마시고 나서는, 와인이 너무 어려서 소믈리에에게 남기고 갔다고 한다. 소테른 와인이 100년 이상 오랫동안 숙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노력을 들였다 하더라도, 농부들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는 운이 좋게도, 농부들이 와인을 언제나 비싸게 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최근의 소테른 와인 가격은 옛날에 비해서 많이 떨어져서 샤토 디켐도 불과(?) 수십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고, 나쁘지 않은 소테른 와인도 몇 만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소테른 와인의 장점은 와인을 잘 아는 애호가나 혹은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편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집에 초대를 받았을 때, 혹은 모임에 와인을 가져가야 할 때, 소테른 와인 한 병만큼 편하고 폼 나는 와인도 없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4호 (2018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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