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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명화극장] 당신의 집은 안전한가 그리고 행복한가 영화 `유전`
기사입력 2018.06.29 10: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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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해석하기 어려운 일들이 천지다. 안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사람들은 이성적(理性的)이지 않은, 불가지(不可知)의 일들을 저지르기 십상이다. 악마를 숭배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악마는 존재하는가. 낮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밤이 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그런 존재이며 그래서 늘 위험한 일을 벌이고, 겪고 산다.

하긴, 이 기이한 공포영화 <유전>이 미국과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를 모으는 것도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다. 그것도 소리 소문을 전혀 내지 않고, 사람들 속으로 슬금슬금 들어가 어느샌가 박스오피스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자체가 공포일 수 있다. 악마도 이런 식으로 사람들 마음을 훔쳐갈 것이다. 악의 기운은 늘 슬며시 퍼지는 것이다. 당신의 방 천정 구석에 악마가 오랜 기간 조용히 기생(寄生)하며 살면서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유전>의 유전은 유전적, 유전자의, 유전병 할 때 ‘유전’ 곧 ‘遺傳’이자 ‘Hereditary’이다. 그러니까 한 집안에 흐르는 이상한 피, 괴상한 기운, 잘못된 의식에 대한 이야기다.



▶복잡하게 꼬인 오묘한 이야기

애니(토니 콜레트)는 2주 전에 엄마를 잃었다. 그런데 그다지 슬프지는 않다. 가뜩이나 좀 특이한 엄마였다. 비극이 많은 집안이기도 했다. 아빠는 굶어 죽었다고 했다. 오빠도 자살했다. 자신만이 남았다. 비정상적인 가정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는 남편(가브리엘 번)과 아들 피터(알렉스 울프), 딸 아이 찰리(밀리 샤피로)와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애니는 미니어처 설치 작가다. 그녀는 집에서 일을 하는데 그녀가 만드는 작품 역시 ‘집의 공간’이 소재다. 엄마가 죽은 후 애니는 집 작업실에서 자꾸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마치 엄마가 살아 있는 듯, 아니면 엄마의 유령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기분이 자꾸 들게 된다.

이 집안에서 풍겨나는 괴괴한 분위기는 점차 점증되기 시작한다. 그중 하나가 딸 찰리다. 찰리는 다소 자폐적인 아이다. 애니는 유독 찰리에게 마음이 간다. 아들 피터는 다 큰 청소년이다. 어느 날 피터는 친구들의 파티에 가겠다고 하고 애니는 그에게 동생도 좀 데리고 가라고 한다. 하지만 피터는 찰리를 돌보지 않고 파티에서 대마초를 피우는데 열을 올린다.

그러다 땅콩 알르레기가 있는 찰리가 발작을 일으키고 급하게 차를 몰고 오는 과정에서 피터는 끔찍한 사고를 겪게 된다. 욕지기를 참지 못하고 차창 밖으로 몸을 내민 찰리가 목이 잘려 죽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 사고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그리고 점점 더 애니가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결국 자신과 비슷한 사고를 겪은 여인 수잔(앤 도우드)을 만나게 되고 그 여인을 통해 유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된다.

애니는 결국 찰리의 유령을 불러내는 데 성공한다. 그녀는 결국 영매(靈媒)가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다 짜여져 있는 운명, 그것도 유전적 운명이었음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건 과연 무슨 얘기일까. 여느 영화처럼 이 영화 <유전>의 이야기, 그 복잡한 내심 역시 처음으로 자꾸 돌아가 봐야 알아챌 수가 있게 된다. 반복하면 이렇다. ‘엄마의 남편은 굶어 죽고 오빠는 자살했다’. 그렇다면 애니와 그녀의 딸 찰리로 이어지는 유전적인 그 무엇에 주목해야 한다.

영화는 오묘하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이야기가 복잡하게 꼬여 있다. 유령이 뭐고 악마가 뭔지(여기서는 ‘파이몬’으로 묘사된다. 파이몬은 루시퍼의 충실한 부하로 인간 세계의 파멸을 관장한다. 중세 악마학에서 거론되는 존재로 여자의 외모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남자다.) 더더군다나 서구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면 도통 ‘이 집안의 문제’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세상에 악마가 정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악마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씩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다.



▶무너지는 모성, 붕괴되는 중산층

세상에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은 세상이 ‘악마적’이라고 인식하는 데서 오는 유물론적, 이성적 결과치일 수도 있다. 사실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악마라는 말이 횡행할 만큼 세상에서 지독하고 참혹한 일들이 수두룩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의식, 그 인지(認知)와 인식이 이런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영화 <유전>은 여러 가지 다양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중산층이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 주되 그것도 여성성, 모성이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그 내면마저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음을 드러내려 한다. 지금까지의 공포영화는 대개 가부장적인 문제에서 시작해(스탠리 큐브릭 감독, 잭 니콜슨 주연의 <샤이닝>) 이를 모성성이 대체하거나 혹은 엄마가 가족을 구하는(심지어 남편이나 상대 남자까지도) 이야기로 전개돼 왔다(커티스 핸슨 감독의 <요람을 흔드는 손>). 영화 <유전>의 특징은 가정을 허무는 일, 중산층의 사회 구조를 붕괴시키는 주체가 바로 여자라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 있어 최후의 보루는 ‘여성=어머니’일 수 있다. 그런데 영화 <유전>에서 남편을 죽이고 아들을 해치는 존재가 바로 여성이다. 악령을 불러내기 위해 딸의 희생을 이용하는 것 역시 엄마라는 존재다. 지금의 현대 사회가 어디까지 무너졌는지, 그것도 회복이 가능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영화를 만든 아리 애스터 감독은 적어도 미국이라는 사회는 그렇게 ‘완전하게’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전> 같은 오컬트 무비(Occult Movie·초자연적 현상이나 중세 악마의 이야기, 악령이 씌운 사람들의 얘기를 다루는 일종의 심령 공포영화)는 주기적으로 인기를 모으는 척, 사실은 시대의 반영을 가장 정확하게 해내는 작품들이다. 오컬트 영화들이 다루는 공포의 얘기는 가상의 것들을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우회로를 찬찬히 살펴보면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그 실체와 본질을 꿰뚫고 있는 내용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오컬트 영화들은 세상에서 이상한 일이 자꾸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자꾸 만들어지고 또 그만큼 사람들에게 인기를 모은다. 사람들은 세상이 예측 불가능하다고 믿으면 믿을수록 영매의 존재를 믿으려 한다. 우리가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이 이 공포스러운 현실에서 사람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경제가, 혹은 종교나 그 무엇, 곧 사회적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을 때, 그러니까 막말과 괴벽이 강한 정치꾼이 리더가 되거나, 먹고사는 문제에서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종교인들(혹은 그에 준하는 사람들)의 치부(恥部)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수십, 수백 배 더 강하게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사람들은 또 다른 존재(=영매)를 기원하게 된다. 컬트의 등장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연쇄 살인범 찰리 맨슨의 탄생 역시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오컬트 무비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모은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세계’가 지금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영화 <유전>이 미국과 한국에서,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얘기를 쉽사리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실업의 고통과 사회적 공포를 겪는 젊은이들은 차라리 악마 파이몬을 믿고 싶어 할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의 집은 안전한가. 당신의 사회는 잘 운행되고 있는가. 당신의 나라, 국가는 지금 평온한 가. 무엇보다 당신의 삶은 괜찮은가. 당신은 지금 과연 행복한가.

영화 <유전>이 묻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진다.

P.S. `유전`은 완벽하게 토니 콜레트의, 토니 콜레트에 의한, 토니 콜레트를 위한 영화이다.
그녀는 천 가지의 표정으로 악마가 스며든 내면을 연기한다. <유전>은 그런 토니 콜레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남는 장사’의 영화다. 1972년생임에도 필모그래피가 벌써 60편에 가깝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4호 (2018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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